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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3화 (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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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으로...

배는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경로 비스무레하게 가고 있었다. 물론, 중간에 자다 깨서 조타륜 확인하고 자던 조타수 깨워서 조지기도 했지만. 일단은 큰 문제 없이 돛을 반만 펼친채로 역풍 이겨내면서 잘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오전에는 보일거라고 하지 않았나?"

옆에서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이 여자 해적선장의 이름은 마리아. 그을린 피부에 금발이라는 독특한 조합을 하고, 나를 바라보는 눈에 의심이 건빵에 박혀있는 애벌레마냥 꿈틀거리고 있다.

"아, 물질 한 두 번 해보십니까? 원래 도착 예정시간을 말하면 거기에서 서너시간 차이가 있는 법입니다."

이게 무슨 걸어가는 것도 아니고. 바람 별로면 조금 늦어지고, 괜찮으면 빨리 가는 거고 그런거지.

그 말에 마리아는 끙 하는 소리와 함께 선장실 옆 벽에 기대었고. 시간이 더 지나자. 정면에 섬 하나가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했다.

"다 왔네."

나의 말에 그녀가 그 섬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섬이 있네."

그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마리아를 바라봤다.

"그럼 섬이 어디로 움직이는 물건도 아닌데. 당연히 거기 있었으니까 거기 여전히 있겠지요."

내가 섬을 하나 새로 창조한 것도 아니고. 있는 거 찾아간 거에 뭐 그런 대사를 하고 그러냐. 내 말에 그녀가 대답했다.

"전에 항해사는 이렇지 않았는데."

그 말에 내가 픽 웃었다. 어차피 해적이다. 자주 가던 해역을 그냥 통쨰로 외우고는 항해사랍시고 깝치고 다니던 녀석이었겠지. 애초에 선장이라는 녀석이 길을 잃었다는 것 자체가 딱 답이 나온다. 이 새끼들 중에서 제대로 물질 할 줄 아는 녀석은 없다.

이 녀석들 완전 오합지졸이잖아.

"저거 끼고 돈 다음에는 한 사흘 정도는 조타륜 고정하고 달리면 됩니다."

그 말에 별다른 대답 없이 마리아가 내 쪽으로 파이프를 내밀었다.

"담배 피나?"

당연히 피지. 나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한 다음 건네주는 파이프를 입에 대고 몇 모금 빨았다. 그리고 담배 연기가 허공에서 흩어지는 건 물끄러미 바라본다.

"... 뭐야 이거."

바람이 생각보다 쎄고, 연기가 너무 밑으로 깔리는데. 여기는 이렇게 바람이 쎈 곳이 아니다.

"씨발."

나는 망원경을 챙겨서 섬을 바라보았고,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영 비실비실한 걸 확인한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움찔거리는 구름 덩이들을 확인한다.

그냥 구름이 낀 정도가 아닌데. 왜 이렇게 거지같은 일은 연속으로 일어나는 거야. 나는 선원들을 보면서 외쳤다.

"탑 세일(메인 돛 위에 달려있는 보조 돛) 다 접어라! 나머지는 굴러다니기 쉬운 물건들 다 동여메고!"

그 말에, 마리아가 나를 본다.

"갑자기 뭐야?"

그 말에 내가 대답한다.

"배 위에서 굴러먹은 세월을 걸고 말하는데. 저희 재수 털렸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조만간 폭풍우 하나 만날 것 같은데요."

그리고 나는 마리아를 바라봤다.

"까놓고, 피해가려면 피해 가는게 최고지만. 저거 피하면 못해도 6주는 바다 위에 떠있어야 합니다. 그럴 식량이 있습니까?"

그 말에 그녀가 얼굴을 굳힌다.

"불가능해. 선원들 가죽 장화 벗겨서 뜯어먹어도 6주는 못 버텨."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버티고, 뚫고 갑니다."

뚫고 갈 수 있을까. 규모가 조금 작은 녀석이면 할 만할 텐데.

주변에 구름이 점점 짙어지고 부는 바람이 심해진다. 그리고 빗방울이 가늘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마리아가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버틸 수 있겠어?"

그 말에 내가 대답한다.

"폭풍 속에서 버티는 거 말하시는 겁니까? 어려울 것도 없지요."

그건 어려운게 아니다. 주먹싸움으로 치면 가드 올리고 버티는 거니까.

"버티는게 아니라. 그거 타고 갈 겁니다. 엄청 빠르게."

근데 나는 이상하게 지금 카운터를 치고 싶단 말이지.

폭풍이 뭐냐. 폭풍이다. 바람이라고. 비바람. 범선은 당연히 바람으로 간다. 잘 쓰면 뭍에서 걸어가던 사람이 말 타고 달리는 속도로 갈 수도 있는게 폭풍 속을 항해하는 배다. 문제는...

그걸 시발 할 수 있냐 없냐가 문제지.

"지금만 해도 배 나가는 거 보세요."

말 그대로 쫙쫙 나가고 있다. 가는 길에 딱 맞는 순풍이 아니라 옆에서 불어오는 측면풍인데다가, 탑 세일은 접고 메인 세일만 펼치고 있는 상태인데도 왠만한 순풍 싸대기 치게 배가 달리고 있다.

"이 정도 바람이면. 바다여신이 생리통이 엄청 심한 모양인데. 짜증 지대로 부리시네."

나는 갑판을 바라보다가 소리쳤다.

"거기 똑바로 안 묶냐!? 그거 풀리면 너 목 따서 바다에 버려버린다?! 농땡이를 피울 시점이 없어서 태풍 전에 밧줄을 그따위로 묶냐?!"

파도도 점점 강해진다. 돌아버리겠는데 이거. 배 흔들거리는게 점점 심해진다.

빗줄기도 점점 굵어지기 시작하고...

"아 씨발! 좀 평안한 항해 못하는 거냐!? 왜 갑자기 이딴 거지같은 날씨를 만나고 지랄인데!"

조타륜을 움직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안하던 뱃멀미가 다 나려고 하네! 바닥에 침을 뱉은 나는 양 손으로 조타륜을 잡고 외쳤다.

"야! 이 젓가락 만한 딱다구리들아! 노래라도 부르면서 유쾌하게 가자! 어차피 우리는 이거 못 뚫으면 굶어 뒤질 팔자니까! 이래 뒤지나 저래 뒤지나 똑같으면 빨리 뒤지는게 낫겠지! 기합 빡 넣고! 펍 가서 자랑할 거리 한 번 만들어 보자고!"

그 말에 사람들이 나를 한 번 흘긋 보고는 외친다.

"뭐 부를깝쇼!"

그 말에 내가 조타륜을 휘리리릭 회전시키면서 말한다.

"이걸 뚫고 가려면 취하지 않고는 힘들겠지! 드렁큰 세일러나 부르자!"

내가 무인도에 떨어졌을 때 흥얼거리던 그 노래다. 그 말에 갑판의 인원들이 밧줄을 붙들고 우르릉 우르릉 소리를 내며 벼락질이 떨어지는 가운데 선창을 시작했다.

"What will we do with the Drundken sailor(취한 선원 가지고 뭐 할까?)"

세번의 선창이 끝나고 내가 외친다.

"Early in the storming(폭풍우 시작할 때)~!"

노래가 시작되고, 녀석들이 비슷한 후렴구를 반복해서 세번 넣으면 나는 조타륜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선창을 넣는다. 그렇게 하는 동안, 벼락이 떨어지고 하늘에서 우르릉 거리는 천둥이 들리고 난리가 났다. 그리고 옆에서 마리아가 외친다.

"줄 풀리려고 하잖아, 등신들아! 가서 묶어!"

그 말에 나는 마리아를 슬쩍 보고 눈이 마주친 그녀가 나를 보면서 픽 웃는다.

"네 말대로, 뚫어보자."

"저 조타륜에만 신경 쓰겠습니다."

그 말에 마리아가 내 어깨를 툭 치고 정면을 바라본다.

"그거나 잘 신경써라."

그리고, 갑판 위는 완전히 마리아가 붙들고 선원들을 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동안 배 타면서 완전히 놀았던 건 아닌지, 다른 녀석들이 배가 흔들려서 제대로 걸어다니지도 못하는데 마리아는 제법 흔들리지 않고 서서 계속해서 선원들을 호령한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저 멀리에서 다가오고 있는 커다란 해일. 아 주여. 아까 함부로 말한거 미안해요.

씨... 지금 바람 어디에서 불고 있지?

뒤에서 오고 있다. 나는 높게 휘파람을 한 번 불었다. 좋아. 한 번 해볼 만 하겠는데.

"저거 보이냐아아아!"

나의 외침에 물을 퍼내고 밧줄을 붙들고 낑낑거리던 선원들이 내가 가리킨 곳을 본다. 저 정도 거리에서 저렇게 선명하게 보이는 해일이면... 모두들 표정이 안좋아진다.

"표정 피고 새끼들아! ...이렇게 된 이상 뚫고 간다아아아!"

그리고 나는 조타륜을 조정하면서 배가 해일이랑 정면충돌하게 만들었다. 뒤에서 오는 바람이 있으니까. 충분히 넘을 수 있을거야. 가는 방향도 맞고!

"물건들 다 꽉 묶었다고 믿는다! 저거 넘으면서 덜렁거려도 되는 건 니 놈들 불알밖에 없어! 알았냐!"

마리아의 외침에 선원들이 킬킬거리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가오는 해일을 바라본다.

"3... 2.... 1... 임펙트! 허리 숙이고! 엉덩이에 힘 빡 넣고!"

나는 외치면서 상체를 숙였고, 배의 앞이 확 들리면서 경사 비슷한게 생겨버리고, 배가 파도때문에 확 솟구치며 안쪽으로 바닷물이 한 가득 들어온다. 뒷바람이 밀어주지 않았으면 이대로 뒤집혔을거다. 가까스로 해일을 넘자 아번에는 배의 선두가 확 아래로 내려간다.

"재밌네 젠장!"

잔뜩 들어온 바닷물을 신경 쓸 여유도 없이 다시 배의 앞머리가 물에 잠겼다가 솟구치면서 다시 바닷물이 잔뜩 들어온다.

"다 퍼내라! 니들 이름을 까쳐먹어도 물은 퍼내! 팔 부러졌으면 이빨로 물동이 들고 퍼!"

선장이 바닷물에 흠뻑 젖은 채로 선장모를 붙잡고 그렇게 외치고 선원들이 달려들어서 미친듯이 물을 퍼낸다.

"와 시발 나 멀미나려고 한다아아아!"

나는 잔뜩 젖은 채로 물을 뚝뚝 흘리면서 조타륜을 계속해서 조작하기 시작했고. 배는 어쨌든 계속 떠 있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원 한 명이 외친다.

"포어 마스트(전방 돛대)! 부러질 것 같습니다아아아!"

그 말을 선장이 바로 알아듣고 달려들어서 그동안 묶어놓고 있던 밧줄에 커틀러스를 가져가서 미친듯이 톱질을 시작한다. 잠시 뒤에 끊어지는 밧줄과, 고정할 물건이 없어서 휘날리는 포어 메인 세일. 일단 속력은 조금 떨어지겠지만. 속력 더 붙이려다가 이 배가 절름발이가 될 수도 있다.

바람 못 버티고 마스트가 박살나면 폭풍 끝나고 나서 답이 없으니까.

휘날리는 돛과 치렁치렁거리면서 엄청난 속도로 흔들리는 밧줄. 신고 있는 신발에는 물이 잔뜩 차서 이제는 거의 반쯤 바닷물에 잠긴 느낌이다.

그렇게 대여섯 시간이 더 지났다. 이제는 노랫소리고 뭐고 다들 앓는 소리를 내면서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바람을 살폈다. 아까보다야 훨씬...!

"좋아, 야! 바람 약해진다! 우리 지금 반쯤 살아난 상태니까! 목숨 아까우면 조금만 더 버티자!"

그렇게 두어시간이 더 지나고. 우리는 다시 쨍쨍한 태양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 해를 보자. 모두가 긴장이 풀렸는지 허 하면서 갑판에 주저앉고, 마리아는 마스트에 기대어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다.

물론, 나도 지금 거의 조타륜에 메달려있는 느낌으로 서 있다.

"야, 닻 내려라. 여기서 한 이틀 쉬자."

그래도 충분하다. 딱 보아하니까 그거 뚫고 나오느라 못해도 사흘은 벌었다.

그 말에 가장 갓 들어온 신출내기 몇 명이 끙끙거리면서 닻들을 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진이 빠져서 바닥에 주저앉고 아래를 보며 외쳤다.

"개새들아! 우리가 여기 뚫고 나온게 다 누구 덕이야! 선장한테 박수 한 번 때려라!"

그 말에 모두가 진이 빠진 상태에서도 웃으면서 박수를 친다. 마리아가 그 모습에 픽 웃으면서 선장모를 한 번 살짝 들었다 놓았다. 그걸 확인한 나는 다시 외쳤다.

"나는 쌩깔꺼냐!? 이쪽도 박수 한 번 받자! 저거 뚫느라 개고생한건 나라고!"

그 말에 이쪽으로도 쏟아지는 박수.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 말했다.

"니들도 겁나 힘들지 않았냐!? 하다못해 해군 나부랭이들이나 탐험선 나부랭이들도 이런거 하나 끝나고 나면 술 거하게 쳐먹는데! 우린 해적이잖아!"

그렇습니다아아아! 하면서 도대체 그 진빠진 얼굴에서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모를 정도로 배 위에서 고함이 울려퍼졌다.

럼... 럼... 럼... 나는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그걸 들은 선원들이 하나씩 그 중얼거림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나는 삐걱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넣고 일어나서 외쳤다.

"럼! 럼! 럼! 선장 우리 술 좀 마십시다아아아!"

그럽시다아아아! 하는 외침. 그리고 그 말에 마리아가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면서 대답했다.

"내가 꺼내오리? 꺼내 먹어 새끼들아."

우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선원들 몇 명이 배 아래로 내려가서 술통을 꺼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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