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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2화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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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에게 버려지고, 해적한테 구원받다

무인도 생존 법칙은 이전에 있던 세상에서 참 많이 봤다. 일단 물을 찾고, 햇볕을 피해라.

"지랄하고 자빠졌어 아주우우우우우!"

나는 내가 버려진 모래섬을 보면서 절규했다. 풀떼기 하나 없는 모래사장. 물이 있을 리 없는. 한 바퀴 섬을 도는데 10분도 걸리지 않는 작은 규모.

물이 어디있고 그늘이 어디있냐. 개뿔 무인도에 버려져 본 적도 없는 새끼들이 쓴 책에 내가 뭘 바라겠냐만.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뱃사람들의 신성한 법률에는 이런 섬에 사람을 버릴 때 약간의 물과 식량, 그리고 총알 하나를 장전한 권총을 주게 되어있지만.

이 새끼들은 하나도 주지 않은 굉장한 악질 해적들이다. 지들 물자가 딸린다고 해도 어떻게 이렇게 잔인한 일을 할 수가 있어. 이단 중에서도 아주 상 이단 해적놈들이다.

이럴거면 차라리 그냥 죽이지. 나쁜 새끼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멀리 사라지고 있는 배를 바라봤다.

묶여있던 살갗이 쓸려서 엄청 아픈데. 거기에다가 이 새끼들 나를 이 섬 인근 바닷가에 버린거라. 상처에 소금물 들어와서 엄청 아프다.

일단, 뭐라도 할 수 있는게 없을까.

라는 생각에 주변을 뒤져보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진짜 그냥 모래 뿐이다. 나는 터벅터벅 섬의 한 가운데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Way hay and up she rises early in the morning! 개같은 새끼들."

좆 된건 확실한데. 나갈 방법이 진짜로 없는 건가.

나는 발에 툭 하고 차이는 유리병 하나를 바라봤다. 이건 또 뭐야.

작은 브로치 하나가 들어있는 유리병이었다.

딱 봐도 상당히 비싸보이는게 가져가서 팔면 괜찮은 음식 서너끼는 우습게 사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뭐하냐.

여기에 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닌데. 머리 위로 쏟아지는 뙤약볕이 진짜 뒤지게 뜨겁다. 입에서 김이 올라오는 것 같은데.

하루가 그렇게 지났다. 당연히, 해가 떠 있을 때에는 이런 섬이 으레히 그렇듯이 엄청 덥지만. 밤이 되면 모래톱이 순식간에 식어서 소름끼치게 춥다.

"차라리 거지가 나은 편이네."

이럴 줄 알았으면 10년 전에 배를 타는게 아니었어. 니미럴. 나는 내 손에 쥐고 있던 펜던트를 바라보다가 가까스로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거의 시뻘겋게 익는 수준으로 몸이 달아올라서 눈을 떴다. 눈 앞이 핑핑 돌기 시작한다. 벌써 물이 딸리는 건가. 이러다가 진짜 뒤질 수도 있겠는데.

해가 점점 더 높이 뜨고 입 속이 바짝 마르다 못해 내장까지 말라 비틀어질 지경이 되었을 때 흐릿한 눈 너머로 배 한 척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기회야!"

시발... 시발... 연락할 방법이 없나!? 저거 놓치면 나는 여기에서 이렇게 그냥 죽을 수 밖에 없다. 제발 부탁이니까... 무슨 방법이...

나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유리병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이걸로 빛을 반사하는 건 불가능하고...

무심코 열린 펜던트에 보이는 작은 거울.

좋아... 이거면.

나는 그걸 거울 삼아서 그 배에 대고 빛을 반사하기 시작했다. 제발 기어와. 이리로 와. 내가 이뻐해줄테니까 나 좀 데려가. 가능하면 럼주면 좋겠지만, 안된다면 물이라도 상관 없으니까. 물통에 이끼 끼어있어도 그냥 퍼먹을 테니까. 나한테 먹으라고 벌레들의 성을 던져주면 벌레까지 씹어먹을테니까.

데려아아아아아!

"좋아! 살았다! 이건 살았어! 주님 감사합니다! 다른 세계에서도 당신에게 찬미를 올릴게요! 시발 죽을 뻔했네!"

선두가 이쪽으로 향하는 배를 보면서 나는 땅에서 한 바퀴 돌고 펄쩍 뛰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Way~ hay~ and up, she rises~!"

배가 거의 다 다가오고. 나는 거기에 걸려있는 깃발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찬미 같은 소리하네. 저주하고 싶다. 나중에 죽고 나면 우리 한 번 면담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하느님?

또 졸리 로져야?! 내가 바다에서 물질 하면서 해적을 딱 다섯 번 봤는데. 10년 동안! 그 중에 두 번이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간격으로 나타나는게 말이 되냐. 이 새끼들은 조금 젠틀해야 할 텐데.

배에서 롱보트 하나가 떨어져 이리로 다가온다. 모르겠다. 이렇게 해도 뒤지고 저렇게 해도 뒤지면. 일단은 배에 다시 타고 보자. 나는 지금 다가오는 선원들의 똥꼬라도 핥을 각오로 다가오는 롱보트를 바라봤다.

다가온 롱보트 안에는, 선장 모자를 쓰고 있는 여자와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바다를 돌아다녔는지 실크 셔츠에 온갖 때가 잔뜩 묻어있는 상태였다.

"거기 너."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의 여자가 말을 걸자 나는 대답했다.

"예."

"여기가 어딘지 아냐?"

... 예?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지금 목이 말라서 제정신이 아니라 그런데..."

그 말에 여선장이 나에게 가죽 주머니 하나를 던져주었고 나는 그 안에 있는 액체를 쭉 들이켰다. 머리가 약간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정신이 돌아온다.

"질문이 뭐였는지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 말에, 여선장이 다시 말한다.

"여기 어디냐고."

아니 그걸 니가 나한테 물어보면 그림이 너무 이상하지 않냐? 나는 여기에 버려졌고. 너는 배를 타고 여기에 왔잖아. 그럼 니가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고. 내가 그 질문을 하는게 순서에 맞지 않겠냐.

"그건 저도 모르겠는데요."

그 말에 여선장의 얼굴이 구겨진다.

"괜히 시간낭비했군. 돌아간다."

잠깐만, 그냥 돌아가게? 나는 당황하면서 말했다.

"여기가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디인지 알아 낼 수는 있습니다, 저 이래뵈도 10년이나 배타면서 항해사 하던 놈입니다!"

살려줘. 가지마. 그 말에 일단 뒤를 돌아서 돌아갈 채비를 하던 여선장이 몸을 돌렸다.

"요즘 항해사였다고 하는 시원찮은 놈들이 많던데 말이지."

그 말에 나는 재빠르게 대답했다.

"그냥 상선 항해사 같은 똑같은 곳만 다니는 멍청이들이랑은 다릅니다. 이래뵈도 탐험선의 항해사였습니다! 진짜 약간 시간만 주시면 여기가 어딘지 짐작하고, 원하는 곳으로 도착시켜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그녀가 약간 고민하다가 말했다.

"우리가, 최근에 항해사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곤란했는데. 좋아, 해적질에 관심 있나?"

그 말에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해적질을 한다는 것은 다시는 나는 정상적인 항해를 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여기서 죽는 것보다야. 나는 큼큼 하고 헛기침을 하고 여선장에게로 한 걸음 다가가면서 말했다.

"원래 해적질을 동경했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전에 있던 항해사보다 몇 배는 나은 녀석이라고 자부합니다."

일단, 한 번 사용은 해보지. 라고 여선장이 말하고 뒤의 남자들에게 턱을 까딱하자 두 사람이 나를 부축해서 롱보트에 태우고 배를 향해서 다가가기 시작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육포와 럼주를 먹으면서 기운을 차리고 잠깐 쉰 다음에 해가 지는 걸 바라봤다.

저기가 서쪽이고.

나는 선장실에 들어가서 지도를 펼쳐놓고. 밖에 나와 해가 완전히 진 걸 확인하고 하늘을 바라봤다.

"뭐하냐?"

여선장의 말에 나는 별 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검지를 입술에 가져간 채로 쉿 소리를 냈다.

"붕어자리, 헤르멘 성, 흰개 자리...."

나는 체크를 끝내고 말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십니까?"

그 말에 여선장이 대답했다.

"녹슨 면도날."

이야기는 들어본 장소다. 해적들 소굴들 중 하나라고 했던가. 나는 다시 선장실로 들어가서 지도를 살펴보고 따라온 마리아가 지도에 위치를 알려준다. 충분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밖으로 나와서 조타륜을 잡고 외쳤다.

"돛 반만 펼치고! 역풍타고 올라간다!"

그 말에, 일하던 선원들이 저 새끼는 뭐야? 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옆에서 여선장이 말했다.

"일단 지시에 따라라!"

그 말에, 선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나는 조타수에게 외쳤다.

"서북 12도로, 역풍 타는거니까. 조타륜 잘 쓰고."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조타수의 표정을 보고 나는 머리를 짚었다. 조타수가 뭐 저래? 나는 그를 밀쳐내고 빙그르르 조타륜을 회전시키다가 팔뚝으로 조타륜을 멈춘채로 조금씩 조작을 하기 시작했고, 배는 역풍을 맞으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가야 하지?"

여선장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이틀 뒤에는 섬 하나 보일 겁니다. 그거 끼고 돌아서 약간 더 가면 해류 하나 만나는데. 거기에서 바람 잘 안고 달리면 대충 3주 안에는 도착합니다."

그 말에 여선장이 말했다.

"잘 아는군."

"이 근처에 탐험왔다가 조난당한거라서요. 아직 머리 속에 이 근방 그림은 그려져 있습니다. 뭐, 얼마 안지나서 까먹겠지만."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나름 마음에 든 모양인지. 여해적이 나를 보며 말했다.

"이름이?"

"레이먼드."

나의 대답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정말로 우리가 녹슨 면도날에 도착하게 된다면, 정식으로 항해사를 부탁해도 괜찮겠나?"

그 말에 나는 웃었다.

"해적 배에 한 번 타면 뒤지기 전에는 못내린다던데. 저는 이미 타지 않았습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조타륜을 살짝살짝 조작하면서 조타수를 조지기 시작했다.

"이 하루하루 럼주 쳐먹는 기생충 새끼. 딱 보고 배워라. 나중에 내가 일어나서 잘못 가고 있으면 넌 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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