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239화 (239/240)

<에필로그>

게이트는 무사히 닫을 수 있었다.

신들이 봉인된 덕분인지 물리적인 저항력은 완전히 바닥. 미사일 몇 방에 그대로 박살나서는 지상으로 추락했다.

나는 죠엘의 도움으로 현장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내 정체는 이미 발각 된 바. 이후로 줄곧 높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그들은 실제 내막을 알고자 했고, 길고 긴. 그리고 지루한 담화를 이었어야 했다.

세상은 달라졌다.

폭주하는 신의 고동은 세계를 겁먹게 했다. 돈과 권력으로 세상을 재편하던 이들조차 한낱 미물이 되어 그 아래에서 벌벌 떨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벌에는 만민이 평등하다. 그런 것이 세상에 각인되었다.

어쩌면 발악하던 벨이 남긴 유일한 긍정적 산물이 아닌가 싶다.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사회를 위해 많은 것들을 베풀었다.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의 물품이 쏟아져 나왔다. 경 단위의 금액이 삽시간에 풀려나오니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시간이 흐르고, 각인된 공포가 사라진다면 인류는 다시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다.

‘이제는 괜찮겠지?’라며 다시 범죄와 부패가 만연하고, 이기주의가 그 아래로 뿌리를 내리겠지. 하지만 괜찮다. 그때가 되면 또 다시 이를 정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다. 적어도 인류가 존속하는 상황에서는.

“이제 그만 들어가요. 찬바람은 몸에 안 좋아요.”

팔짱을 끼고 붙여오는 죠엘의 말에, 회상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몸이 좀 으슬으슬 거리는 것이 감기 기운이 조금 있는 거 같았다.

“돌아가면 따듯한 스프라도 먹어요. 미소가 친구들한테 받아 온 게 있다고 하던데.”

“하퍼가 먹으라고 보내 온 것들도 잔뜩 있지 않나?”

“에이, 그건 나중에 손님 접대용으로 써야죠. 금가루 들어간 걸 먹고 싶어요?”

그도 그렇다.

작게 웃으며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이런 건 조금 불편하군.”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난……

그 날 이후로 힘을 잃었다. 봉인을 위해 쿤과 함께 모든 정수를 내어놓고 신격을 포기했다. 신은 신들끼리. 모든 걸 묶어서 그대로 차원 밖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지금도 경계 어디선가 묶여버린 신들이 떠돌고 있겠지.

후회는 없다.

다만, 약간의 안타까움은 남아 있다. 그 힘이 있었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조금 더 나은 삶을 만들 수는 있었겠지. 기적과 같은 치료. 기적과 같은 물건들.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은 수없이 많았다.

“전 차라리 좋은데요.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좋은 거 같아요.”

“그런가…….”

하지만 서율이의 말대로 힘이 사라져 버린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신들도 사라지고 난 뒤, 그 힘을 내가 온전히 가지고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더 이상 나를 견제 할 존재가 없는 상황에서 독보적인 위치가 된다면. 벨이 안 된다고 장담 할 수 있나? 전 세계가 나를 숭배하고 두려워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인간대로.

그렇게 소소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같은 세상을 보고, 같이 고민하고, 같이 늙어가요.”

“우리 아내는 늙어도 예쁠 테니 고민은 없겠네.”

“후후. 뭘 바라시고 그렇게 입술에 침을 바르실까?”

“글쎄. 안정기에 들었다고 하니까 살짝 욕심이 날지도?”

“꺅!”

서율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힘은 모두 사라졌지만, 육체는 그래도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병에 걸리고 나이를 먹고 상처 입으면 흉터가 남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나, 남들이 봐요!”

“보라고 하는 거야.”

“주책!”

뭐라고 해도 괜찮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안고 가겠다는데, 누가 불평 할쏘냐.

크게 웃으며 걸어갔다.

* * *

“아빠~!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집에 도착하자, 앞치마 차림의 미소가 나를 반겼다.

뒤로 세주랑 소유. 회사 식구들도 보였다.

그 날의 전투 이후, 개척자와 보조팀은 의미를 잃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빠르게 해체 수순을 밟고, 그대로 해체되었다.

나는 이들을 전부 끌어와 내 회사에 취직시켰다. 연줄이고 낙하산인가? 뭐,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그들의 도움을 받은 것도 있고, 그 동안 속이고 아무 말 하지 않은 것도 있으니 보답 차원이라 생각했다.

죠엘과 함께 차린 타이쿤은 1년 전보다 훨씬 크게 성장해서 이제는 세계 100대 그룹 언저리에 명함을 내밀 정도가 됐다. 신의 힘은 모두 사라졌지만 그 동안 누적한 데이터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현대 기술로 부족분을 채워가며 물건을 개량. 높은 호응을 얻으며 지금도 순풍 단 항해를 지속중이다.

물론, 하퍼와 죠엘.

그들을 통해서 연결 된 수많은 사람들이 조력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 때, 인간의 신에서 어엿한 회사의 회장으로.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국립묘지 다녀오는 길이에요?”

“참배를 해야 했으니까. 정말이지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

“아빠 잘못도 아니잖아요. 너무 죄책감 가지지 마세요.”

외투를 벗고 미소 옆에 나란히 섰다.

내 정체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건 세계 정부의 고위급 인물과 내 가족 정도. 남은 이들은 나를 ‘이름 없는 자’의 관계자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아쉽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이름을 기리며 숭배의 행렬을 이어가는 자들이 있다. 그 숫자는 억 단위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살아있으며 지금 이곳에 있다는 걸 안다면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

숭배는 추상적 대상으로 족하다.

‘이름 없는 자.’는 복잡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삶의 가장 가까운 부분. 지켜야 할 것과 경계해야 할 것을 나누었을 뿐이다. 그 말을 따르고, 자신의 삶에 만족해한다면 신앙의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와서 힘을 잃은 내가 전면에 나서서 왈가왈부하는 건 어리석은 일.

이 세계에서 신은 실존할 필요가 없다.

“아, 그러고 보니 편지 왔던데. 소방본부랑, 경찰청. 그리고 뭐더라? 하여튼 여러 개 왔어요.”

“물건이 잘 전달 된 모양이구나. 이렇게라도 할 일을 해야지.”

그 날의 전투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경찰, 군인, 소방관. 민간인을 포함하면 숫자가 얼마나 늘어나는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집계되지 않은 이들도 있어 아직까지 그 범위가 오락가락이다. 단지 휩쓸린 이들이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데, 천재지변을 당한 것과 같다.

힘을 잃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였다.

피해 입은 이들에게 보조금을 지불하고, 부서진 지역을 재건하는데 돈을 투입했다. 인부를 사고, 공사 업체를 불러들였다. 모금도 비밀리에 진행하고,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애를 쓴 이들을 위해 보답하는 것도 있지 않았다.

물건이 부족하고 환경이 열악한 소방관들을 위해 돈을 투입하고, 군을 위한 노력도 더했다. 경찰도 마찬가지. 대통령과 나는 밀약을 맺었기에 일정 선에서 영향력을 쓸 수 있었다. 그는 아직 내가 힘을 잃었다는 걸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배경으로 깔린 공포가 그를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나를 도운 행동 덕에 대통령의 지지율이 엄청나게 상승했다는 점이다. 과거 그가 좋지 않은 대통령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걸어가는 행보는 좋다. 그렇다면 된 것이다. 나를 두려워해서든, 새로운 깨달음이 있어서인지 상관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 행동이면 족하니까.

왕은 있는지 모르는 것이 좋다고 하지 않는가.

그 말 대로다. 잘 굴러가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위를 바라보지 않는다. 옆을 보고, 소중한 이를 챙길 수 있게 된다.

그것이야 말로 태평성대라 부를 수 있지 않겠는가?

“아빠, 그거 타요.”

“아!”

쓸데없는 생각이 많았나 보다.

쫄아 든 스프의 불을 끄고는 냉큼 접시로 옮겨 담았다. 살짝 탄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친구한테 배웠다면서 미소는 또띠아를 만들어서 내왔다. 옆구리가 살짝 터진 건 샐러드로 가렸다.

조금 더 배워야 할 거 같구나, 딸아.

음식들을 테이블로 옮겼다.

잔뜩 늘어놓으니 그럭저럭 모양새는 괜찮다.

세주는 이미 팔을 걷고 식사준비에 돌입중이다. 동식이도 배가 고픈지 코를 킁킁 거리고 있다. 얼마 전에 결혼한 소향은 사진 찍기 바쁘다. 하나를 두고도 전부 다 다른 행동이 나온다. 가볍게 웃고는 서율이와 미소 사이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한 점 거짓 없이 나오는 말.

이렇게 둘러앉아 걱정 없이 배를 채울 수 있으니, 이게 행복이지 않을까? 이제는 더 이상 아래를 볼 필요도, 위를 올려다 볼 필요도 없다. 옆을 돌아보며,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다른 사람들처럼.

* * *

서울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발코니.

적은 테이블과 의자 두개를 내어놓고는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한 손에는 와인 잔이 다른 한 손에는 사랑하는 여자의 손이 잡혀 있다. 둥글게 뜬 달도 우리가 부러운지 환하게 빛나고 있는 중이다.

“역시 전부 모이면 시끌시끌하네요.”

“활기차서 좋지. 쑥 빠지면 조금 허전할 정도라니까.”

“후후. 잘 보면 오빠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거 같아요.”

“여보.”

“아, 맞다. 헤헤.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귀엽게 혀를 베어 무는 모습에 고개를 돌려 입술을 맞췄다.

살짝 발그레해 지는 볼. 이런 게 어색할 사이도 아니건만, 여전히 수줍어한다. 그렇기에 더욱 가슴이 뛰고 그녀와 있는 것이 즐겁다.

“와인 맛…….”

“좋아하는 맛이 있으면 선택해 줘. 잔뜩 물고 들어가 줄게.”

“방금 말, 조금 변태 같았던 거 알아요?”

“그 정도야 뭐. 남자는 다 가슴에 변태 하나둘 정도는 품고 산다고.”

“알고 보니 변태 신이었군요.”

“차라리 짐승의 신이라고 해 줘.”

짓궂게 웃으며 서율이의 코를 잡았다.

그녀가 ‘앙’하며 입을 벌렸다. 그 사이로 포도를 쏙 집어넣고는 다시 입을 맞췄다. 우물거리며, 하나를 둘이 나눠먹을 수 있었다. 달콤하고 야릇하다. 이 시간을 이렇게 편히 즐길 수 있는 것이 즐겁다.

“역시 그리운 모양이네요?”

“……음.”

“눈을 보면 알아요. 매일 식사 후에는 여기로 나와서 달을 보잖아요. 아니, 달이 있는 곳에 떠 있던 게이트. 그 너머의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죠?”

“점집 하나 차려도 되겠어.”

1년. 게이트는 닫히고 아노스의 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쿤이 무사 할 지. 힘을 잃은 채, 공화국을 잘 이끌어 가고 있을 지 걱정이 된다. 세이혼과 아도란. 로리안 등이 곁이 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 애가 나오면 참 잘 할 거 같아요.”

“내가?”

“그렇게 아끼고 그리워하는 거 보면, 자기 자식은 어떨지 충분히 알 수 있죠.”

“그렇게 되는 건가. 하긴, 당신 닮으면 얼마나 예쁠까? 안 예뻐 할 수가 없겠는데?”

“피. 그것도 아부라고.”

샐쭉이 보기는 하지만 싫지는 않은 거 같다.

자식이라. 미소가 있지만 또 다른 느낌이다. 나이차가 워낙 커서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우리가 잘 살면 그만 아니겠는가. 사실, 뭐 쿤도 도둑놈인건 마찬가지고. 내가 찔려 할 필요는 없다.

“왜 웃어요?”

“아, 그게 생각해 보면 나나 쿤이나 처지가 비슷해서. 둘 다 도둑놈 아니겠어?”

“그 신에 그 신도네요. 딱 비슷한 사람끼리 점지해 주었던 거 아닐까요?”

“그래서 균형의 신이었나?”

“뭐래요?”

같잖은 농담에 서율이가 어깨를 두드리며 픽 웃는다.

즐겁다. 그리고 조금 아쉽다. 이 가벼운 농담을 마주보고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저 멀리 떨어진 세계. 아노스에서 숨 쉬고 있을 내 친구와.

“바람이 차다. 이만 들어갈까?”

“어머, 지금 눈빛이 음흉했어요.”

“음흉하라고 눈빛 보낸 거야. 의사가 그랬잖아. 이제 안정기라서 부부생활을 해도 괜찮다고.”

“어휴, 그 동안 어떻게 참았대요?”

“그러게 말이야.”

“꺅! 또 이러기에요?”

서율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발그레한 볼과 놀란 눈동자가 귀엽다. 코끝에 입을 맞추고 볼을 비볐다. 온기가 좋고, 그 숨결이 달콤하다. 아쉬움은 잊자. 내 곁에 이리도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으니까. 현실에 만족하고 곁을 보며 살아가는 거다.

쿤과 내가 그렇게나 바라던 삶을.

“아, 여보. 발코니 창문. 열어두면 추워요.”

“내가 나중에 나와서 닫을게. 지금은 여기에 집중해 달라고.”

그래도 지금……이라며 앙앙거리는 서율이의 입을 다시 틀어막았다.

한참 분위기 타는데 돌아가면 그렇지 않은가. 이럴 때는 힘이 없는 게 아쉽다. 예전 같으면 멀리서 손짓으로 문을 닫았을 텐데.

드르륵……!

“…….”

발코니 자동 센서가 있던가?

아니면 바람?

“여보?”

“아무것도 아니야. 자, 들어가자고. 오늘은 재우지 않을 줄 알아.”

상관없다.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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