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234화 (234/240)

바람 길을 타고 바로 날아갔다.

골목 어귀,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로 차준혁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온통 피투성이. 가느다란 숨소리만 귓가를 맴돌았다.

곁에 내려 힘을 써 그의 몸을 치유했다.

“차준혁. 정신이 드나?”

“쿨럭……! 당신은……이름 없는 자. 어째서 당신이?”

“네가 지금껏 도왔던 것이 나니까. 대체 무슨 일인가? 어째서 이런 꼴이 됐지?”

“그랬군요. 쿨럭. 국가가 아닌 당신이……더 잘 된 셈인가……”

상처가 깊다. 힘을 쏟아 붓고 있음에도 쉽게 호전되지를 않고 있다.

“그만 말해라. 상처가 위독해.”

“쿨럭……! 그럴 시간 없습니다. 이걸 가지고 가세요.”

팔을 부여잡고 부들거린 그가 비닐에 싸인 USB를 내밀었다.

헐떡이는 모양새가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 갈 거 같았다.

“이건……”

“아버지가……남혁이의 계획을 정리해 둔 장부입니다. 만약의 일이 생겼을 때, 그룹은 따로 국내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계획 해 둔 거죠.”

“그럼, 이번 일도?”

“네……쿨럭!! 전부 담겨 있습니다. 완전히 살펴보지는 못했으나, 친아들을……이런 꼴로 만들 정도라면 정보가 매우 중요하다는 얘기겠죠.”

“설마, 차동남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거냐?”

답 없이, 차준혁이 고개만 끄덕였다.

친아버지가. 아무리 계획에 방해가 되는 일을 했다고 해도, 자신의 핏줄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차남혁을 방관하고, 긴밀한 관계를 취하고 있음은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우리 가족은……쿨럭! 어긋났어요. 그 괴이한 힘이 등장하기 전 부터. 이미 멈출 수 없는 호랑이 등 뒤에 탄 기세. 핏줄을 타고난 것이 죄라면……저라도 그걸 막고 싶어요.”

“너는……”

“하아. 그렇게 하면 핏줄로 이어지는 죄를 조금은 갚을 수 있겠죠. 미소한테 한 짓도……웃는 얼굴이 예뻤는데. 그 이름대로. 만약 우리가 이런 처지가 아니었다면 다른 방식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었을까요?”

눈빛이 흐려지고 있다.

그는 이미 날 보고 있지 않다. 손끝이 가느다랗게 흔들리고, 뿌연 눈매에 그려지는 건 아름다운 기억이었다. 죽음에 발 걸친 자의 모습이다.

“조금 서글픈 건……아무것도 해 보지 못한 것……마음도 전하지 못한 것……”

“차준혁!”

“다음번에는……정말로 떳떳한 남편이 되고 싶어요.”

툭. 차준혁의 손이 미끄러졌다.

핏물이 내 품을 적셨다. 체온이 식어가고 그의 혼이 육체를 떠나 저 먼 곳으로 흩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잡고 싶다. 나는 그럴 수 있다. 망자를 부리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신의 힘을 다룰지언정 신은 아니다. 삶과 죽음에 내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그것이 서글프고 억울하다 하여도.

손으로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나는……그를 이렇게 바라보지 않았다. 더러운 재벌가의 차남. 조금 제정신이 박히기는 했으나, 내부의 정보를 알아 낼 소스로 생각했을 뿐, 그 자신에 대한 건 고려하지 않았다. 어찌 이리도 이기적일까.

그의 처지, 그의 생각, 그의 마음은?

욕망에 취해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과 내가 다른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것 보기 좋은 위선적인 허울을 몸에 걸친 채, 빛을 밟으며 숭배의 목소리만 담을 뿐.

타앙—!!

그 순간. 총소리와 함께 거대한 탄환이 날아왔다.

일반 총이 아닌, 대물 저격총. 도심을 거칠게 때릴 정도의 총성과 바람을 찢어 버리는 속도. 강철 강판이라도 우습게 뚫어 버리는 관통력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하지만 그런 조건 따위는 의미가 없다.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우그러뜨렸다. 기분이 더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내가 온 정신을 다하지 못하여 죽은 사람이 이곳에 있는데, 저격까지 당했다. 아마도 차동남. 자식을 죽인 아버지가 거지같은 계획을 지키기 위해서 나까지 노리는 것이다.

아니면……아들을 이곳에 풀어 둔 것이 계획의 일부였나?

정보를 빼돌리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사살하기 위해서?

“하아……”

숨결이 붉다.

피를 닮아 있다. 화가 나서. 짜증이 나서. 모르겠다. 나는 균형의 사자이나, 지금 만큼은 파괴를 양 손에 휘두르고 싶다. 재생의 싹이 태어나는 것은 오물을 태우고 난 뒤. 그러니 이번만큼은 이것이 옳다고 믿고 싶다.

“멀리 떨어져 있다고 나를 피할 수 있다고 보는가?”

공간을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찢었다. 내게 물리적인 제약은 의미 없다. 파괴라는 것은 지금껏 유르고가 보여준 그런 재롱 수준이 아니다. 진정한 힘을 사역할 수 있다면 단 한 번의 호흡으로도 인류를 말살 할 수 있다. 내가 그 수준은 아니지만, 1~2 Km떨어진 곳에 잠복한 스나이퍼 정도는 충분히 끌어 올 수 있다.

“커억……!”

군용 장비에 번들거리는 고글.

내가 군수품에 대해서 자세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이런 장비가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안다. 볼튼 사. 그들의 지원을 받아 국내에서 준비하고 있던 것이 분명하다. 차남혁이 무엇을 시도하든, 차동남 역시 그것에 동조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어리석었는지 모른다.

차남혁을 제어하려면 그의 부친을. 그의 가족 전부를 손 안에 두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내가 미소로 겪은 고통 탓에 일부로 그것은 피했다. 일종의 암묵적 합의. 나는 너의 가족을 건드리지 않으니, 너 역시 그렇게 해라.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런 걸 따지는 건 우습다.

오늘 분명하게 알았다.

……치익! 부대는 당장 공격을 개시해라!

스나이퍼가 허리춤에 찬 무전기.

거친 소리와 함께 수많은 기척이 한 번에 감각권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기세를 숨기고 일반인 수준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만큼 잘 단련이 됐다는 말.

이단의 냄새는 없다.

하지만 이런 명령을 따르고, 재벌가의 사병이 되어 국내에서 난장을 친다는 건 결국 스스로의 선택이다. 목숨을 내어 놓고, 움직인다면 나도 대응해 주는 것이 옳다.

“……와라.”

아쿤을 불렀다.

아니, 이제는 아쿤이라 칭하기도 어렵다. 상징이었던 성물이 흩어져 가루가 되어 빛과 같이 뭉쳤다. 그리고 영화 속 광선검처럼 뻗어 올랐다. 하얗게 타오르는 불꽃. 내 키를 넘어서 건물 옥상에 닿을 정도로 커졌다. 달려들던 기세들이 한 순간 주춤하는 것이 느껴졌다.

휘둘렀다.

검은 건물을 가로지르고 내가 원하는 것들만을 베어냈다. 수십이 단번에 쓰러졌다. 무전기가 침묵했다. 총알도, 폭발물도. 심지어 괴물도 아니다. 그들이 감당 할 수준이 아니었다.

“목숨을 걸었다면 덤벼 봐라. 너희는 갓난아기가 아니다. 스스로 총을 쥐고 누군가를 죽이고자 마음을 먹었다면 그만큼의 대가를 품에 안아라.”

“제, 젠장!! 전원 사격!!!”

“쏟아 부어!!”

“반격할 틈을 주지 마라!!”

불꽃과 함께 천둥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도심에서 들려 올 수 없는 소리의 향연. 어둠에 물들어 있던 건물 곳곳에서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오지 마라.

고개도 들지 마라.

이곳은 너희가 알고 있던 곳이 아니니까.

“으, 으아아아악!! 이게 뭐야!! 불이 안 꺼져!!”

“빌어먹을!! 수류탄이 안 통한다고! 저 괴물은 대체 뭐야!!”

“이, 이런 건 들은 적이 없어!!! 우리가 상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이곳은 지옥이다.

#

메케한 화약 냄새와 피 비린내가 코끝을 자극했다.

발치가 붉은 핏물로 물들어 있다. 죽음. 그리고 죽음. 내 주변에 있는 건 온통 죽음뿐이었다. 단 한 점의 자비도 없이 힘을 쏟아냈다. 후회나 가책. 있다. 하지만 돌아보는 건 불가능하다. 삶과 죽음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은 여기서도 같이 해당된다.

“다 죽었다. 이제 어쩔 셈인가?”

아무도 없는 공간 위로 말을 던졌다.

숨죽인 길고양이와 고장 난 조명의 지직 거리는 잡음. 내 질문에 답을 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차준혁이 죽는 순간부터. 나를 공격하러 들어온 이들이 모조리 떼죽음 당하는 순간까지. 모든 걸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것도 자신의 안방에서.

마치 손 안에 든 장기 말을 다루는 대국의 고수처럼.

“나와라.”

차동남의 저택을 반으로 갈라서 나머지를 통째로 가루로 만들었다.

벽과 계단. 지붕이 하늘 위로 날아갔다. 억눌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기사. 아니, 괴사인가? 다음 날의 기사가 궁금하다. 하지만 지금의 난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다. 잘게 떠는 늙은이 하나를 당겨왔다.

“히이익……!”

초라한 모습이다.

“친자식까지 죽이면서 계획 한 일의 결말. 어떤가?”

“후우……후우……나, 나는……”

“떨리는가? 노쇠한 심장이 당장이라도 멈출 것 같은가? 자식이 죽어서? 아니면 공들인 계획이 실패해서? 아니면 저들과 같이 내 손에 죽을까봐?”

널브러진 시체를 손으로 가리키자, 헐떡이던 차동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늙은 몸이다. 얼마 못 살 것이 분명하다. 좋은 걸 처먹고, 온갖 향락을 누렸어도 천수는 어쩌지 못한다. 헌데, 그런 노구를 이끌고 아들까지 버리며 이런 일을 진행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어째서냐. 어째서 네 아들까지 버리며 이런 일을 벌인 거냐.”

“나, 나는……”

“답 해. 네게 남은 자유는 오직 그것밖에 없다.”

머리를 손으로 쥐었다.

차동남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목이 한 차례 움직였다. 떨림이 사라져갔다. 본능적 공포보다 앞서 무언가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는다? 네 핏줄을 죽인 것조차?”

“나는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문의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후대로 이어가는 것이 내 역할이다. 죽어버린 둘째? 어리석어. 그까짓 감정에 휘둘려서 가문의 대업을 저버리다니. 그런 놈을 아들로 생각 한 적은 없다.”

“그래서 첫째에게 모든 걸 맡겼다?”

“흐……흐흐흐. 내게서 알아내고 싶겠지. 우리 남혁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지만 소용없다. 이미 늦었어. 네가 아무리 용을 써 봐야 그 아이는 세상 위에 군림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

“군림이라. 그래서 작은 오점 정도는 그냥 무시했던 거로군.”

얼굴의 변형을 풀었다.

내 본래 모습. 차남혁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부들부들 떨더니 손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너, 너!!! 네가 이름 없는 자라고!?”

“놀랐나?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얼마든지 있는 법이라고.”

“말 도 안 돼! 너 따위가 그런 힘을……대체 어디서? 아니, 어째서? 고작 천것 따위에게 그런 힘이 내렸다고?”

“천것이라. 돈으로 탑을 쌓아 올리니, 나머지는 네 아래로 보이는 건가?”

“하……하하! 당연하지 않나? 돈 없는 것들은 그저 버러지일 뿐이야! 우리 같은 귀족을 위한 받침대. 그것들은 아무런 생각도 없어! 비전도 없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구더기일 뿐이야! 그런 것들을 밟고 선 우리에게 세상의 영광이 내려서는 게 당연하지 않나!?”

발악하는 차동남의 모습에서는 이단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아이러니하다. 누구보다 저열한 욕망으로 뒤덮여 있는데, 전혀 이단의 기운이 없다니. 차남혁이 국내로 유통되는 유르고는 전부 제어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이상하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서 아버지조차 장애물이었는지 모르겠다.

선민을 위해 허락된 힘이라 떠들었음에도 부친에게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웃기지도 않는다. 이 집구석은 대체 어떤 구조로 돌아가고 있는 건가? 욕망에 짓눌려서 사람의 탈을 벗어버린 건가?

그리고 그 대가는 가장 인간적이었던 차준혁이 뒤집어쓰고?

“아아아악!!!”

차동남의 팔을 밟아서 으깨버렸다.

고통스러운 비명이 귓가로 들어오는 마음이 조금 안정된다. 파괴와 재생은 항상 한 쌍으로 움직인다. 내 다른 면에서는 고통스러운 생명을 치료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썩은 싹은 완전히 잘라내야 올바른 토양에서 올바른 식물이 자랄 수 있다.

“보아라. 지금은 누가 천것이지? 아들의 작은 오점을 탈피하기 위해서 서류 한 장으로 다루던 인간이 지금은 네 앞에 있다. 네가 아무리 원해도 가질 수 없는 힘을 가지고. 기분이 어떤가?”

“그, 그만 둬!!! 네가 아무리 이래봐야 내 아들의 계획이 시작되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둠스데이. 그 계획을 말 하는 건가?”

“어떻게 그 이름을……?”

흠칫하면서 입을 닫아보지만 이미 나온 말을 다시 담을 수는 없다.

몸을 더욱 깊이 숙여 그와 눈을 마주쳤다. 공포와 불안. 온갖 두려움으로 점철 된 눈동자가 시야에 잡혔다. 그렇게나 대단해 보이던 그룹의 회장은 고작 이 정도였을 뿐이다. 아니, 무엇이라 해도 다를까.

나도 마찬가지다.

허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USB에는 무엇이 담겨 있지?”

“그럴 듯한 내용으로 꾸몄을 뿐이다. 그걸로 뭘 알아 낼 수는 없을 거다!”

“그런가. 차준혁, 그는 고작 이런 것 때문에.”

쓰린 감정이 올라와 눈을 적셨다.

그가 말 한 대로. 이런 방식이 아닌 다른 만남이었다면 미소와 어울리는 한 쌍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썩은 오물통에서 피어난 연꽃과 같은 인간이었으니까.

어쩌면 이 또한 균형일지 모르겠다.

한 가문의 핏줄이 이렇게 더러워 졌을 때, 스스로 자정하기 위한 인물이 탄생한. 비록 다 피지 못하고 저물고 말았지만 그 향기는 아직 내가 맡을 수 있다.

“네 의지는 내가 받아가마.”

차준혁의 몸을 당겨서 안았다.

그는 이 가문과 멀리 떨어진. 안락한 장소에 묻어주고 싶다. 다시 태어난다면, 좋은 토양에서 커 나갈 수 있도록.

“하, 하하……! 포기하는 거냐? 그래, 이미 늦었다고!”

“포기? 내가 그런 걸 할 사람은 보이나?”

웃는 차동남의 머리를 손으로 강하게 쥐었다.

그의 영혼이 느껴진다. 가지고 있는 기억들도. 이를 억지로 뽑아낸다면 아마 영혼이 뒤틀려서 몸에 튕겨 나가고 말겠지.

하지만……

내가 그걸 신경 써야 하는가?

나는 지금 파괴.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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