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행동 할 때 필요한 것은 크게 두가지다.
앞으로 나아갈 계획과 뒤를 단단히 받쳐 둘 대비책.
나는 신의 힘을 깨우쳤다. 아직, 균형을 모두 맞추지 못해서 완벽하다고는 말 할 수 없지만 이단이든 뭐든 혼자서 처리 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적진으로 뛰어드는 건 어리석다.
내게는 지킬 사람들이 있으니까.
“미소는 제가 맡았어요. 연구실 지하는 핵공격도 막을 수 있는 벙커로 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잘 부탁하지.”
미소는 죠엘에게 맡기고 바로 움직였다.
서율이는 회사 식구들을 챙겨서, 내 편과 함께 피신하고 있는 중. W.K도 대량 배치해 두었으니 일단은 걱정 없다.
투투투투……
요란하게 따라오는 헬기와 함께 나는 하늘을 걸어 한 곳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정부의 상징이자, 권력의 총아. 대통령이 기거하는 청와대였다. 이미 귓가를 통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도심에 나타난 괴물과 그에 대한 방책. 극단적인 제안과 소심한 대처책들이 번갈아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이야기도.
“믿을 수 없습니다!! 정체도 모르는 인물과 대면을 하라니요!”
“허면 어떻게 합니까? 그 괴물들에 대해서 장관은 알고 있나요? 정보가 하나라도 있냔 말입니다!”
“정보는 우리가 수집하고 있다지 않습니까? 지금 군이 도심을 통제하고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있습니다! 이미 상황은 우리 손 안에 들어왔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수작질입니까!?”
난잡하다.
핏대를 세우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 사이로 곤혹스러운 기운의 남자가 감지되었다. 현직 대통령.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아, 이제 손 털고 정권교체를 준비하던 인물이다. 아마 그 자신은 이런 상황과 떨어지고 싶겠지.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면, 남은 임기와는 상관없이 맡은 바 일을 해야 한다.
— 물러나십시오! 이곳에서는 비행을 할 수 없습니다!
라이트가 들어오고, 방송 헬기가 뒤로 물러났다.
취한 듯 따라왔지만, 자기들이 어디 위에서 날고 있는지 이제 깨달은 것이다.
됐다. 어차피 이 뒤의 이야기는 굳이 많은 사람들의 눈이 필요하지는 않으니까. 천천히 고도를 낮춰서 청와대 앞마당에 내렸다.
질 좋은 잔디와 멋진 조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나름대로 잘 꾸며놓고 사는가 싶다.
철컥. 철컥.
금세 청와대 경호팀이 달려와 내 주변을 에워쌌다.
멋진 경호복장에 권총. 필요하다면 즉시 사살 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받고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상황에 겁을 먹겠지만, 나는 다르다. 손끝으로 권총을 뺏어 그대로 분해했다. 튕겨 나오는 부품들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물러나라. 나는 너희와 다투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하, 하지만……”
“물러나지마 멍청아! 청와대에 무단 침입한 괴한이다! 절차에 따라 제압해!”
망설이는 셋과 독려하는 하나.
남은 병력 열 하나가 달려들었다. 대상을 지키기 위해서 훈련받은 몸짓. 그 자체에는 유감이 없다. 손끝으로 모두를 눌러 바닥에 앉혔다. 나는 이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시선을 들어 대통령이 있는 방 안을 바라봤다.
“나와라. 너에게 할 말이 있으니.”
작지만 또렷한 말이 대기를 타고 퍼졌다.
대통령의 기세가 크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쉽지만, 이 남자는 대가 굳세지 못하다. 어찌 대통령직은 수행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대가 여린 인물은 비상시에 대처를 하지 못한다.
한숨이 나왔다.
언제부턴가 나라의 수장은 정치적 도구. 한 몫 빼먹기 위한 자리로 되새김질 되고 있다. 마치 목 좋은 상관을 차지하기 위한 졸부들처럼. 투자하고, 선동하고, 공격해서 그 자리를 잡으면 웃던 얼굴을 싹 갈아 치우고 이득을 위해 손을 벌린다.
그렇게 자리를 차지한 인물에게 국가를 위한 충성도 책임감도 의연한 자세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상황을 모면하고 임기가 끝날 때 까지 자신의 목을 보전하고자 하는 안일한 마음 뿐. 나라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건 좀 실망스럽다.
손을 뻗어 대통령을 잡아 당겼다.
“허, 허억……!”
“내 말이 안 들렸는가, 대통령?”
“무, 무슨 짓이냐!?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다!”
“알고 있다. 그렇기에 수많은 이들 중 너를 선택한 것이지.”
손을 휘저었다.
조각되어 있던 돌이 툭 떨어져 나와 의자 모양으로 변했다. 휘둥그레 떠지는 대통령의 눈이 재미있다. 그의 발치 뒤로 하나. 내 뒤로 하나. 앉을 곳을 마련한 뒤 엉덩이를 걸쳤다. 대통령도 멈칫거리다 그 위로 앉았다.
“너는 내게 알고 싶은 것이 있고, 나는 네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으, 으음. 그렇다면 이런 무례한 방문이 아니라 정식으로 찾아오면……”
“한가한 소리 할 시간이 없다. 위에서는 미사일로 나라를 노리고, 도심에는 괴물이 넘쳐나는데, 절차를 운운 할 때인가?”
“하, 하지만 나는 대통령으로서의 체면이 있는……컥!”
힘으로 멱살을 쥐어 당겼다.
뒤쪽에서 다급히 총구를 겨누는 소리가 들렸지만 힘으로 전부 고정시켰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얼어붙었다.
대통령을 바싹 당겼다.
긴장으로 얼어있는 표정과 탈출구를 찾아 흔들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네가 체면 차리는 시간에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네 위치는 사람들을 보호하라고 준 것이지, 어깨에 휘장 차리라 준 것이 아니다. 이해했나?”
“아, 알았으니 이것 좀……”
멱살을 풀었다.
한심하다 이런 인간이 일국의 대표라는 것이.
좋은 배경과 훌륭한 정치적 입지. 많은 사람을 부리는 권력의 보트 위에서 노를 저어 보지 않은 깨끗한 손이 유세를 위해 흔들렸었다. 그걸 보고 먼 바다로 가자며 투표를 한 것은 결국 국민.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가.
쓸데없는 생각. 지금은 그것이 급한 것이 아니다.
“들어라. 지금 도심에 들어와 민간인을 학살한 괴물들은 볼튼 사에서 찍어낸 유르고의 종자들이다. 변이체를 과학적으로 제어하여 무기화 한 것이지.”
“보, 볼튼 사?”
“보고는 받았을 텐데? 타락한 종자를 쫓아 그들의 거처를 흔들어 놓은 것은 비밀이 아니다. 설마 그조차도 몰랐다고 말 할 건가?”
강경하게 몰아붙이자,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모를 리 없다. 볼튼사는 국내 방위산업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 내가 볼튼사를 흔들어 사업을 절단 내어 놓았을 때 아마 원망한 놈들이 여럿 있을 것이다. 워낙 빌붙어서 해쳐먹는 놈들이 많으니까.
“하, 하지만 볼튼 사에서 그 괴물들을 왜 풀어 놓는다는 말이오?”
“흔들기 위해서. L그룹의 장남, 차남혁이 북으로 넘어간 것은 알고 있나?”
“……무슨?”
“첩보에 조금 더 힘을 써 보라고. 국가 안위를 헤치는 놈이라면 국정원에서 알아채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북에서 수괴 놈과 손을 맞잡고 미사일 놀음을 하고 있다.”
대통령이 모른다.
차남혁의 움직임은 볼튼사와 맞물려서 이미 대외적으로 밝혀졌다. 아니, 그 전에 내가 직접 까발렸는데 모를 리 없다. 그가 다른 게이트를 타고, 북으로 몰래 넘어갈 수 있던 건 결국 누군가 눈을 흐리고 있다는 말이 된다.
처음에는 대통령으로 생각했던 바.
그게 아니라면 측근 중 누군가 허수아비를 세우고 차남혁과 공조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모여있는 사람 중에서 하나를 꼽자면……
“너로군.”
쿵쾅거리는 심박수로 알 수 있다.
뱀 같이 생긴 중년인을 당겨왔다. 버둥거려봤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비서실장 안남수. 명찰에 떡하니 이름이 박혀 있다. 최측근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인물이 허수아비의 눈을 속였다는 이야기인가.
“무, 무슨 짓이냐?”
“언제부터 그들과 내통을 하고 있었지?”
“내통? 무슨 소리냐!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라 생각을……”
딱. 손가락을 튕겨 입을 다물게 한 뒤 그의 영혼을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비틀었다.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고,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흘러나왔다. 나는 균형의 사자. 하지만 그것을 위해 몸 바치지는 않는다. 필요하다면 재생도. 파괴도 될 수 있다. 덜덜 거리는 그의 제약을 풀어준 뒤 다시 물었다.
“언제 부터냐?”
“사, 사, 삼 개월 전부터 입니다. 이, 이일만 처리해 준다면 차기 대권 주자로 밀어 준다고……”
“남수, 이 친구! 지금 무슨 말인가!?”
“죄, 죄송합니다. 너무 달콤한 제안에……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기는.
제일 저열한 변명일 뿐이다. 어쩔 수 없는 건 없다. 모든 건 선택이다. 그 결과를 받아 들이고 책임을 지는 것 역시 선택한 당사자.
“차남혁이 하려는 게 뭔지 아나?”
“모, 모릅니다.”
“또 당하고 싶은가? 이번에는 네 혼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수도 있는데.”
“히이익!! 저, 정말입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 아!!! 한가지. 한가지 들은 게 있습니다.”
“말해라. 거짓을 토로 할 생각은 버리고.”
“둠스데이. 둠스데이 프로젝트라 그랬습니다. 러시아 과학자 둘이 와서 차남혁과 대화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둘은 제가 러시아어를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릴 때 모스크바로 유학을 간 적이 있어서……”
그 이상은 듣고 싶지 않다.
남자의 이마를 쳐서 그대로 재워 버렸다. ‘둠스데이’라. 꽤나 유치하지만 목적이 분명해 보이는 이름이다.
대통령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여전히 배신의 충격을 벗어나고 있지 못했다.
“정신 차려라. 통수권자가 흔들리면 나라가 중심을 잡지 못한다.”
“나, 나는……이런 일에는 경험이 없소. 내가 뭘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 거요?”
“어차피 큰 걸 바라지는 않는다. 사람은 모든 진실을 알고 모든 이치를 깨우쳐서 행복을 얻는 것이 아니다. 바라는 것을 보고,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 뿐. 너는 대통령의 얼굴과 이름으로 국민을 다독여야 할 책임이 있다.”
“……대국민 담화라도 열라는 말이오?”
“네가 첫째다. 공격의 목적성을 분명하게 밝히고, 국민이 대처해야 하는 태도를 명시해라. 혼란은 안 된다.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네가 바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위협에 처한 대한민국을 첫째로, 북의 위협을 막고 난 뒤는 전 세계로 공론화를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무리 유르고의 종자들이 수를 많이 내어 두었다 해도 숨을 곳이 없을 터. 나는 그때 남은 잔당을 처리하고 이 지저분한 난장판을 처리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알려 주시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래도 아예 머저리는 아니군.
필요한 것들을 대통령과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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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스데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그냥 해석하자면 종말의 날 정도. 하지만 차남혁은 자기 입으로 세계를 손에 넣겠다 말을 했다. 그런 인간이 다 같이 죽자는 선택을 했을 거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옵션은 몇 가지 없다.
말 그대로 북을 이용해서 남으로 공격을 쏟아 붇는 것. 세계전쟁의 불씨를 당기고, 그 혼란 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힘을 얻는 것이다. 그 대상은 단연 유르고의 심장. 더 이상 유르고의 파편이 반입되지 않는다 해도 남은 것을 제어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을 조종하는 건 어렵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차남혁의 생각에서.
다만, 이것은 몇 가지 제한점이 따라온다.
차남혁이 유르고의 심장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모른다는 점.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그 자신의 안전을 백프로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 어찌 보면 가진 돌을 다 던지고 개싸움을 하자는 의도로도 해석이 된다.
그 차남혁이 이런 계획이라.
가능성을 몇 점으로 두어야 할까.
만약 이것이 아니라면 둠스데이가 지칭하는 건 물리적 파괴가 아닌, 다른 어떤 종류의 파괴를 말한다 생각 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게이트의 붕괴. 쿤과 나의 관계를 단절하고, 과거를 뒤틀려 할지도 모른다. 고정된 현실은 게이트를 통해서 신의 힘을 받아 성립 된 것. 이를 억지로 박살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역시 장담 할 수는 없다.
내가 확실히 모르는 만큼, 차남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역학 관계를 좌우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이미 쿤의 세계에 손을 뻗었겠지. 그게 아니라는 건 그 역시 내가 모르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모르겠군.”
대통령은 회유하여, 안을 다지기 위한 수단으로 남겨 두었다.
내가 북으로 떠나면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사건을 매듭지어 혼란스러운 국민들을 다독일 터. 내각은 개판이지만 적어도 굴러는 갈 것이다. 아니, 상황이 어려운 만큼 이번만큼은 좌우의 다툼 없이 의견을 모을 수 있겠지.
그게 아니면 국회의원이고 뭐고 잡아다가 영혼을 털어 버리면 되니까.
상황이 막장인데 나도 망설일 이유가 없다. 필요하다면 전 세계 각국의 대통령을 죄다 납치해서 한꺼번에 매달아 둘 수 있다.
부작용이 더 커서 선택하지 않았을 뿐.
위이이잉—!
그렇게 고민이 길어지고 있을 때.
몇 명에게만 알려둔 번호로 핸드폰이 울렸다.
[차준혁]
이 상황에서?
통화 버튼을 누르고 연결했다.
“……쿨럭! 여, 연결이 된 건가……”
지친. 그리고 힘이 빠진 목소리.
“차준혁? 무슨 일이냐?”
“후우……쿨럭! 쿨럭! 여, 여기 도, 동수로……사거리.”
“차준혁!”
“빨리. 나……더 이상 힘이……”
뚜—!
갑자기 통화가 끊겼다.
동수로 사거리라면 알고 있는 곳이다. L그룹 회장이 살고 있는 자택 인근으로, 직접 찾아 가 본 적도 있으니까.
……대체 무슨 일이냐.
※작가의 말
이 글은 제 고양이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