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232화 (232/240)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넘실거리는 힘을 느꼈다.

알 수 있었다.

세계가 변하고 있음을.

“하아……”

깊은 숨 속에 넘실거리는 힘이 실려 있다.

손끝을 적시는 이 기운은 마치 들끓는 용암과도 같다. 자칫 놓아 버리면 주변을 녹여 버리고 말 정도로. 눈을 천천히 뜨며 이를 손끝으로 잡아 흘러넘치지 않게 제어했다.

……게이트는 여전히 남아 있다.

쿤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고 해도, 아직 스토리는 모두 끝이 난 것이 아니다. 유르고. 벨. 그리고 내게 힘을 준 신까지. 셋과 엉킨 두 세계의 이야기는 종장을 두고 있다.

— 삼촌! 삼촌! 듣고 있어요!?

서율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피스를 손으로 고정하고 답을 했다.

— 무슨 일이야?

— 티비든 뭐든 확인해 봐요! 지금 북에서 미사일을 발사 하려고 해요!

— 미사일?

게이트에서 벗어나 핸드폰을 꺼냈다.

특보로 북의 움직임을 방송하고 있었다. 위성사진과 감시 결과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도들. 원체 도발이 많았던 나라인지라 그렇구나 하고 넘어 갈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북에 누가 넘어가 있는지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누구의 지휘를 받는지도 알고 있다.

벨이 원하는 건 추방된 세계에서 돌아오는 일이다.

아노스에서 그러했고, 우리 세계에서도 그러했다. 유르고가 파괴를 하면 이것을 막기 위해서 재생의 힘이 필요하다. 균형의 신이 나를 통해서 이를 과거부터 뒤집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작업은 진행 중이다.

전쟁이 시작된다면?

북에서 시작한 전쟁이 세계로 퍼져서 대 학살의 서막을 연다면? 지독한 파괴는 재생을 부르는 목소리가 될 것이다. 아노스에서는 정령과 악마 등이 자신의 둥지로 몸을 숨겨 이를 모면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유르고에 타락한. 그리고 벨의 조종을 받는 무리들이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전쟁은 나라 한 둘 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터. 극단적으로 인류가 멸망하는 결과까지도 볼 수 있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주먹을 세게 쥐고는 공간을 밟았다.

내가 있던 곳을 기억하고 있다. 몸을 잘게 나누고 그 위치로 이동했다. 당황한 서율이의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 삼촌!?”

“우리 쪽 사람들을 모아 줘. 더 이상 느긋하게 대응 하기는 힘들 거 같아.”

“아, 알았어요.”

서율이가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사이에 하퍼에게 따로 연락을 걸었다. 통화음이 잠시 이어지고 익숙한 목소리가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지금 들리는 속보와 관련된 이야기인가?”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그가 물었다.

대북관련 뉴스는 세계적으로 관심을 두는 바. 그 역시 이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방송가 연줄을 당겨 줘. 더 이상 물밑에서 작업하는 건 어려워. 세계도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야 해.”

“이름 없는 자가 출연을 하는 건가?”

“이제는 그에게 이름을 붙여줘야 하겠지. 적어도 이 난장판을 막아내려면.”

“으음. 알겠네. 내가 최대한 빠르게 연줄을 당겨보지. 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네. 최소한 일주일 정도……”

“삼일. 그 이상은 무리다.”

“여유를 안 주는군. 알겠네. 한 번 최선을 다해보지.”

하퍼는 이단의 두려움을 알고 있다.

그만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 왔다. 그의 능력과 가문의 힘. 그 둘이 힘을 발휘해 준다면 전 세계적인 방송도 가능할 것이다.

이미 내 얼굴이 차남혁을 통해서 알려진 상황에서 머뭇거리는 건 어리석다. 크게 때리고 적을 몰아서 한 번에 처리해야 한다.

“삼촌, 연락 됐어요. 조금 있으면 다 이쪽으로 올 거예요.”

미소와 회사 식구들.

그리고 주변 지인들까지. 생각해보면 지켜야 하는. 지키고 싶은 이들이 꽤나 많다. 하지만 그들을 하나하나 불러서 내 곁에 두는 건 하책일 뿐이다. 상책은 위험이 되는 걸 사전에 처리하는 일.

“좋아. 전부 다 모이면……”

콰아앙—!!!

무어라 말 하려는 순간.

갑작스러운 폭음과 함께 땅이 거칠게 흔들렸다. 황급히 서율이를 당겨 안고는 중심을 잡았다. 떨림은 한 동안 이어지다 서서히 사라졌다.

“무, 무슨 일이죠?”

“나도 모르겠다. 설마 북에서 공격이 시작된 건가?”

“그, 그런!”

황급히 창가로 다가가 밖을 살폈다.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미사일 공격으로 인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랬다면 절대로 이 정도 수준에서 멈췄을 리 없으니까.

“……저건!”

검붉은 피부에 등 뒤로는 기괴한 철통을 메고 있다.

입에는 가스 마스크 같은 것을 단 채. SF영화에 나오는 괴물 같은 외모다. 하지만 나는 이 괴인이 누구인지. 아니, 무엇인지를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볼튼 사를 통해서 만들어내던 개조 변이체다. 과학력으로 이단의 변이체를 통제하여 무기로 쓰려던 시도. 그 결과물이 지금 거리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꺄악! 삼촌, 저기요!”

골목 어귀. 변이체의 발아래로 5~6살 정도의 아이가 보였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상황.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꺄아아악!!”

동시에 변이체가 손을 휘둘러 아이를 잡아채려 했다.

어머니의 비명 소리가 들리고, 주변에 떨어져 있던 이들이 눈을 감았다. 다가올 비극을 예단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한 걸음 더 빨랐다. 변이체의 손을 잡아채고 아이를 망령제어로 빼돌려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

“캬아아아아!!!”

익숙지 않은 저항에 변이체가 울었다.

그때마다 가스 마스크에서 기묘한 연기가 솟구쳤다. 등에 멘 철통에서는 보글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무언가 약물로 이단에 타락한 변이체를 조종하는 듯 보였다. 시도 자체는 멍청하지만, 순간이나마 변이체를 조종한다는 건 꽤나 대단했다.

“……너는 돌릴 수 없겠구나.”

유르고의 힘이 뿌리 깊게 박힌 것도 그러하지만, 군사적 실험을 너무 당해 육체가 이미 붕괴해 있었다. 유르고의 힘을 잘라내면 육체는 더 이상 살아 있을 수 없었다. 파괴와 재생을 동시에 다룰 수 있지만, 죽음의 영역은 내가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편히 쉬어라.”

의식의 검. 아니, 솔직히 검이라 부르기 힘든 힘이 변이체를 아래에서 위로 저미고 지나갔다. 육체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흙먼지에 엉키는 유르고의 힘은 그대로 잡아서 묶어 두었다.

“이, 이름 없는 자!”

“오……! 진짜다! 이름 없는 자가 나왔어!”

“우리를 도와주려고 오신 건가요!?”

얼굴을 알아본 시민들이 곧바로 모여들었다.

지금 내 얼굴은 본래의 것과는 달라져 있었다. 반지의 변형능력을 내가 직접 다룰 수 있어서 얼굴을 바꿨기 때문이다.

“안전한 곳으로 피해 있어라.”

“우, 우리끼리 도망가라고요? 지켜 주셔야죠!”

“그래요! 저기, 안전한 곳까지만 좀 안내해 주세요!”

“물러나라. 위험한 것이 너희만 있는 줄 아느냐!”

도와줘도 이 지랄병은.

달라붙는 인간들을 뒤로 밀어내고는 몸을 띄웠다. 나중에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겠지만,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많고 그만큼 모자란 인성도 널려있다. 내가 구하고자 하는 건 관계 된 지인. 그리고 되도록 많은 인류 순이다.

“……한 둘이 아니군.”

도심이 한 눈에 들어오자, 수많은 변이체가 활개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 수를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나 혼자서 이들을 처리 하는 건 불가능하다.

……W.K 전 기체 기동하라.

연결된 의식을 통해서 모든 W.K를 깨웠다.

내 주변 지인들에게 보호를 위해 두었던 개체를 제외하고. 하퍼에게 받은 뒤 준비 중이던 기체들이 한 번에 움직이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투투투투투……!!

그리고 조금 지나자 헬기와 함께 군 병력이 도심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대처는 조금 빠르지만, 일반 군인이 변이체들을 상대하기는 힘들다.

“후우……”

내 도움이 없다면.

하늘 위로 올라서서는 신성력을 잔뜩 끌어왔다. 흰 빛이 노을처럼 낸 몸 주변을 감싸갔다. 곡식이다, 화장품이다, 물이다 해서 내가 풀어 둔 신성력은 상당히 많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돌면서 커지고, 이름 없는 자의 존재로 우상숭배로 증폭된 신성력이 내 몸으로 흡수가 되었다.

……카메라.

마침 상황을 찍으러 온 헬기에 내 모습이 잡혔다.

언론을 통해서 상황을 주지하기로 계획 한 바, 지금과 같은 일이라면 이득이 될 거 같다. 최대한 화려하게 힘을 뽑아낸 뒤, 영역 내로 퍼뜨렸다.

화아악—!!

축복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축복 세트.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축복들이 한 번에 뭉쳐서 빛과 함께 세상으로 떨어졌다. 소총으로 변이체를 잡기는 힘들지만 축복이 서리면 이야기는 다르다. 흰 빛이 터지고 변이체들이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보, 보고 계십니까? 지금 이름 없는 자가 쏟아낸 흰 빛이 괴물들을 몰아내고 있습니다!!”

“이건 기적입니다! 재앙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신이 내려온 것일까요!?”

“괴물들이 밀리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 찬란한 빛을! 이건 구원의 빛입니다!”

격앙된 리포터의 목소리가 대기를 타고 전해져 들어왔다.

중립을 지켜야 하는 위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러기 힘들 것이다. 슬쩍 한 번 본 뒤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축복에 밀린 변이체들이지만 아직 숫자는 많이 남아 있다.

“혼탁한 종자들을 밀어내라!!”

“오, 오오오오!!”

“밀어내자!!!”

군의 통수권 따위는 깡그리 무시한 채, 병력을 독려했다.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거나 막아서지 않았다. 부대를 끌고 온 지휘관들조차 지휘봉을 휘두르며 내 뒤를 쫓았다.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어갔다.

#

변이체들이 등장한 것은 서울 인천을 포함한 경기 지역과 강원도 일대. 즉, 전방에 국한된 지역이었다. 내가 축복을 사용한 것은 서울 지역이니 나머지는 군의 힘으로 변이체를 상대해야 했다. 꽤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 서울을 정리하고 바로 지원을 갔지만 내 몸이 여럿이 아닌 한에는 다 막을 도리가 없었다.

나라가 뒤집어졌다.

아니, 세계가 뒤집어졌다. 변이체의 공격은 마치 외계인의 침공과 같이 다루어졌다. 온갖 매체에서 이를 다루고 자칭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이 나와서 의견을 주고받았다. 어느 하나 맞는 게 없었다. 무의미한 공방과 책임 소재 논란. 그리고 향후 방지 대책까지 쓸데없는 말들은 늘어갔다.

그 와중에서 좋은 소식이 있다면, W.K가 예상외의 활약을 보여 주었다는 것 정도. 내 힘이 늘었기 때문인지, W.K 기체 하나 당 변이체 두엇을 손쉽게 상대했다. 서울의 피해가 적었던 것은 내 힘도 있지만 W.K 활약도 한 몫 했다.

“잔인해요. 어째서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거죠?”

“방해를 하려는 거겠지. 북에서 하려는 행동과 연관이 있음이 분명해.”

“아무리 목적을 위해서라도 상관 없는 사람들을 이렇게나……”

“욕망에 눈이 먼 자들이니까.”

씁쓸해하는 서율이를 다독였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피해자가 4자리를 넘어서고 있다. 대규모 전염병이나 자연재해가 와도 이 정도 규모의 피해가 나온 적은 없다. 패닉은 쉽게 가라앉지를 않았다.

“내가 직접 북으로 가 봐야겠어.”

“……북으로요?”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대처를 할 수 없어.”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아노스가 쿤의 활약으로 정상화 길을 걷고 있는 바. 지금 우리의 세계로 유르고의 힘이 추가적으로 들어 올 확률은 적다. 그렇다면 벨이 취할 수 있는 액션은 가진 전력을 활용하는 것밖에 없다.

북에서 움직이는 차남혁 등을 처리하고, 남은 잔당을 제거하면 벨은 양손과 양다리가 모두 잘리게 된다. 그는 차원에 격리된 존재. 수단만 모두 제거 할 수 있다면 더 이상의 위협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 전에 잠시 만나 볼 사람이 있지만.”

“만나 볼 사람? 누구요?”

본디, 적을 치기 위해서는 안을 단단히 하라고 했다.

나라꼴이 이 모양인데, 그냥 두고 가는 건 마뜩지 않다. 북의 공작을 알아내고 난 뒤 만일을 대비하기도 해야 하니까.

“대통령.”

우두머리와 대화가 필요하다.

※작가의 말

저는 글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읍읍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