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226화 (226/240)

몸이 가볍다.

쿤이 줄곧 느끼고 있는 점이다.

상태창이 사라졌기 때문? 힘의 구현이 불편해진 점은 있지만 사용하면 할수록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마치 목발을 짚고 걷다가, 이제 온전하게 두 발로 선 기분. 어색함이 사라질수록 할 수 있는 것들도 점차 많아져 갔다.

“크아아아—!”

“입 닫아라.”

대기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괴물이 입을 다물고 바닥으로 찌그러졌다. 그대로 발로 머리통을 밟고는 몸을 띄웠다. 발 아래로 날 선 할버드가 스쳐갔다. 날을 발로 튕기며 몸을 돌려 회전력을 가미해서 아쿤을 휘둘렀다. 의식의 검이 삽시간에 둘을 베어냈다.

텅—!

핏물이 떨어지기 전 표정 없던 남자가 불쑥 다가와 묘한 파동을 쏘아냈다.

마법과는 느낌이 달랐다. 아쿤으로 끝을 찍어 튕겨내고는 신성력을 강하게 둘러 밖으로 쏘아냈다. 축복의 발현. 다른 점이라면 강력한 압력이 그 안에 서려 있다는 것이다. 남자가 뒤로 튕겨나가 벽에 부딪혔다.

‘이들도 탑지기군.’

몇 번 부딪치니 대충 알 거 같았다.

아마도 유르고의 조각을 들고 왔던 이들과 동인 인물. 단순히 표정이 없는 게 아니라 어떤 방법이든 정신 지배를 받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피해를 받아도 물러섬이 없고, 죽음을 불사하며 달려들었다.

“오빠, 숙여요!!”

그 순간, 새빨간 불꽃이 머리를 스치며 쏟아졌다.

루루의 불꽃이었다. 몸통 만 한 불덩이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졌다. 탑지기들이 그대로 불에 휩싸여 마구잡이로 튕겨나갔다.

“하아압!!”

그 사이로 세이혼이 뛰어 들었다.

번뜩이는 검광에 탑지기들이 그대로 베어졌다. 꽤나 손발이 잘 맞는 모습이었다.

“이제는 네 차례다. 도망 칠 곳은 없다.”

“누가 도망친다는 거지?”

짝. 박수 소리와 함께 반으로 잘렸던 탑지기들과 괴물들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잘렸던 몸이 붙고 그르륵 거리는 숨소리를 내뱉으며 전의를 불태웠다. ‘사, 살아났어?’ 루루가 깜짝 놀라 뒷걸음을 쳤다.

‘네크로맨시는 아니고……대체 뭐지?’

죽은 자를 살리는 게 아니라 억지로 생명을 불어넣어 꾸역꾸역 일으키는 거 같다.

만약 이것이 이단의 능력이면 이를 쫓아 베어내면 되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힘들이 있다고 생각하지? 네가 보는 세상이 전부라 생각하지 마라.”

“굳이 세상 전부를 안 봐도 알 수 있는 게 있다. 집착이 패망의 지름길이라는 것.”

“탑지기의 숙원을 네가 알 수 있을 것 같으냐!?”

“뮬라 뭐 해. 네 자식은 네가 처리해야지.”

“……오너라, 붉은 심장.”

뮬라가 낮은 한숨과 함께 독특한 문구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붉은 섬광과 함께 그의 몸 주변으로 이글거리는 불꽃이 피어났다. 루루의 정령술과 비슷한가 싶었지만, 느낌이 달랐다. 조금 더 폭발적이고 흉맹한. 마치 미쳐버린 정령을 몸에 두른 거 같았다.

“아버지! 이번에도 방해를 하려는 겁니까!?”

“자식이 어리석은 길로 가려 한다면 그래야겠지.”

“……흥! 아버지는 항상 그랬어요. 제가 하는 일은 모두가 못마땅했죠. 제 업적이 탑에 새겨지는 것이 그렇게도 두려운 건가요?”

“우리는 진리는 쫓는 자. 어찌하여 탐욕을 부리는 것이냐.”

“오직 그것 밖에 없으니까요. 탑에 박혀 진리를 쫓기 위한 삶에, 추구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모든 진리를 밝혀 그 빛나는 이름이라도 벽에 새겨야 하지 않을까요?”

“……말이 안 통하는구나. 오늘은 아버지의 역할을 해야겠다.”

쿵. 거대한 울림과 함께 뮬라가 움직였다.

되살아난 괴물들이 순식간에 그에게 달려들었다.

“키에에에엑!!!”

하지만 그의 불꽃이 괴물을 집어 삼키는 순간, 섬뜩한 비명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불꽃은 육체를 잠식하고 순식간에 이를 가루로 만들었다. 단순히 태운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루루의 불이 지저의 용암과 같다면, 뮬라의 것은 태양과 같았다. 억지로 생명을 불어넣어 몸을 일으키던 괴물들도 그 기반이 통째로 사라지는 통에는 버틸 수 없었다.

“세이혼.”

“남은 걸 정리하지.”

뮬라가 일인분 이상을 해 주니, 남은 걸 정리하면 된다.

쿤이 세이혼과 눈빛을 주고받고는 몸을 움직였다. 손으로 셈 할 수 있는 적만이 남아 있었다.

“나도 움직여야겠군.”

하지만 그 순간.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로브의 남자가 움직였다. 나무로 만든 지팡이로 땅을 쿡 찍더니 새파란 마법진을 둘러 쿤과 세이혼의 움직임을 막아섰다.

“……카넬.”

“나를 알고 있나?”

“알다마다.”

현상범 중 하나니까.

쿤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

“최후 변론, 잘 들었습니다.”

쿤이 열과 성을 다해서 싸우고 있을 무렵, 라라가 읽어 내려간 최후 변론도 끝나가고 있었다. 천천히 또박또박 읽었지만 끝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 말고도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이번에는 짧게 부탁드립니다.”

“어째서 쿤 오빠의 죄를 증명하는 자리에 제가 없었죠? 그를 가까운 곳에서 가장 오랫동안 봐 온 사람은 저예요. 정말로 반란도와 무슨 관계가 있다면 제게 먼저 물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개인적인 감정이 객관적인 진술을 방해 할……”

“저들은 객관적으로 말 한 건가요? 그걸 어떻게 믿죠?”

재판관의 말을 라라가 막아섰다.

“크흠. 그걸 판단하는 건 저희의 몫입니다. 아가씨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지만, 업무에 대해서는……”

“그렇다면 객관적으로 봐도 저와 루루를 보호하고, 융을 본국으로 송환해 온 쿤에게 대놓고 죄를 묻는 게 얼마나 말 도 안 되는 일인지도 알겠네요? 세상에 어떤 반란도가 그래요? 편지 한 장 건넸다고 뒤의 일들은 모두 사라지는 건가요?”

라라가 다시 한 번 말을 끊었다.

재판관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무어라 행동을 취하고 싶은데 바로 뒤에 황제가 있으니 못 하는 표정이었다.

이에 라라가 기세를 올려서 말을 이었다.

“이게 얼마나 무의미한 논쟁인지는 재판관님도 잘 알고 있지 않나요? 힘겹게 성공하고 돌아온 사람을 저격하는 모략 질임은 눈에 뻔히 보이잖아요.”

“그만 해라.”

“……폐하.”

뒤편에 앉아있던 황제가 나섰다.

손을 들어 라라의 말을 막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그를 아낀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제국에는 제국의 법이 있고, 그에 합당한 절차가 있다. 재판장은 답을 하라. 쿤에게 죄가 있는가?”

“잠시만……”

“그만. 어서 답을 하라.”

황제가 나서니 상황은 단번에 종결되었다.

원로 재판관이 나서 의견을 수렵하더니 빠르게 의견을 타진해 왔다. 라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결과는 이미 나와 있었다.

“유죄라 이거군.”

“이건 억지에요! 완전히 결과를 정해놓고 몰아붙이는 경우잖아요!”

“제국의 절차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말이냐?”

“그, 그건……”

라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시간을 더 벌어야 한다. 쿤의 일이 끝나고 상황을 뒤집어 둘 패를 마련하기 전까지는 이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대로 판결이 나고 심한 벌이 떨어지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잠시 생각하다 크게 앞으로 튀어나갔다.

“만약 오빠를 벌할 거라면 저도 같이 받겠어요!”

“……여기는 장난하는 곳이 아니다.”

“저는……저는 이미 오빠의 아이를 가지고 있어요! 오빠가 벌을 받는다면 저도 같이 받겠어요!”

“뭐? 그게 정말이냐?”

에라 모르겠다. 라는 얼굴로 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가 충격 받은 얼굴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리 사석으로 던질 수 있는 핏줄이라 해도, 대가 이어 질 수 있다는 말은 쉽지 않은 부분이었던 모양이다.

꽤나 길게 침묵이 이어졌다.

“좋다.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지.”

장고 끝에 황제가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에 그에게로 쏠렸다.

“쿤의 판결이 유죄인 것은 변할 수 없는 것. 허나, 황가의 핏줄과 연관되어 있고 그가 해 온 행적이 황가에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타국의 대표를 독단으로 처리하는 것은 대외적으로 쉽지 않은 일. 나는 죄인, 쿤에게 미궁행을 선고하고자 한다.”

“미궁?”

“미궁이라 하셨습니까?”

웅성거림이 퍼졌다.

라라가 고개를 휘휘 흔들다, 가까이 서 있는 재판장 경비에게 물었다. 미궁이 무엇인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제국 건설 시부터 있었던 고대의 미궁입니다. 그곳을 통과하는 자는 어떤 죄라도 면책해 준다는 오래된 법칙이 존재하고 있죠.”

“통과 한 사람은 있나요?”

“……아직까지 없는 걸로 압니다.”

라라가 황급히 황제를 바라봤다.

통과한 사람이 없는 미궁이라면 사형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그녀의 눈을 그렇게 묻고 있었다. 허나, 황제의 태도는 완강했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하지만……”

턱. 라라가 다시 따지려 하자, 쿤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정확하게는 쿤의 모습을 한 아도란이. 깜짝 놀란 라라가 돌아보자, 그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전투를 치르며 쿤이 의견을 전해왔던 것이다. 재판을 뒤집을 수 없다면 미궁 정도가 최선. 탈출한 사람이 없다고는 하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럼 결론이 났군.”

탕탕. 법봉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

“어리석은 놈. 혼자서 발버둥 쳐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끄러워. 헛소리 하는 그 입부터 뭉개주마.”

쿤의 몸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발치를 따라 불꽃이 튀었다. 카넬의 지팡이에서 나온 불꽃이다. ‘왜 죄다 불이야?’ 쿤이 속으로 불만을 품으며 고속으로 검을 튕겼다.

반투명한 베리어에 부딪히며 새파란 불꽃을 만들어냈다.

“이런 걸로 막을 수 있을 거 같냐!?”

의식이 하나로 모이며 아쿤에 집중되었다.

강력한 힘의 집중이 공간의 왜곡을 낳고, 베리어를 일순간 흐트러뜨렸다. 그 사이로 쿤이 강렬한 찌르기를 시도했다.

“소용없다.”

부서진 베리어 파편들이 빠르게 모여 들어서는 의식의 검을 붙잡았다.

마치 늪 속으로 빠진 발과 같다. 강렬하게 힘을 관통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달라붙는 저항에 전진하는 힘이 그대로 바닥나고 말았다.

“그 잘난 의식의 검을 내가 대비하지 않았을 거라 본 건가?”

“그래? 그럼 이것도 한 번 막아 봐라.”

상대가 늪이라면 늪을 통째로 날려 버리겠다.

쿤이 심호흡과 함께 힘을 끌어왔다. 주변에서 끌어 모으는 힘들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었다. 히어로 메이커 당시 느끼던 감각에 가까워졌다. 색색의 실들을 하나로 엮어 멋진 스웨터를 짜는 것과 같다.

형태는 다양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힘은 결국 큰 틀로 합쳐진다.

무언가를 파괴하는가. 무언가를 재생하는가. 그리고 그 중간에 서서 이것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바로 그 자신의 몫이다.

쩌저저적—!

엉겨 붙던 카넬의 배리어가 삽시간에 갈라졌다.

강에 설치한 보로 해일을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 넘치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부서진 것이다.

“어, 어떻게!?”

“우리 쪽에는 너보다 더 빼어난 마법사가 있어서 말이야.”

“건방 떨지 마라!!”

타앙. 바닥을 찍은 지팡이를 통해 검은 회오리가 올라왔다.

짙은 이단의 냄새가 쿤의 코를 자극했다. ‘이제야 제대로 풀어내는군.’ 입을 비틀어 올렸다. 상대가 거칠게 나온다면 거부 할 생각은 없다.

“부서져라!!!”

올라오는 연기의 끝으로 의식을 투영했다.

검이 아닌, 손으로. 빛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이 허공에 나타나 그대로 연기를 잡아 좌우로 뜯어버렸다.

저항?

그런 건 느낄 수 없었다. 부서진 이단의 힘이 허공에서 정화되고, 남은 여력은 불꽃과 함께 타올랐다. 그 사이로 허망한 카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자, 이제 누가 마법사지?”

아쿤이 카넬의 목에 닿았다.

※작가의 말

끄앙. 짧아서 죄송합니다.

쓸때는 많아 보였는데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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