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225화 (225/240)

쿤은 재판 대기실에 고립된 이후 만약을 대비하기로 작정했다.

신이 경고한 것은 카넬과 흰 눈의 남자 둘. 하지만 흰 눈의 남자는 찾았지만 카넬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 공작을 피고 있음이 분명 할 터. 앞서 적의 유대관계를 상정하고 만약을 대비하기로 생각한 것이다.

일단 세이혼과 뮬라를 통해 마라의 이상을 파악하러 보냈다.

현 상황에서 황제가 뒤통수를 친 것이 아니라면 그 배경에 마라가 엮여 있음은 무엇보다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녀를 확보, 황제의 마음을 우리 쪽으로 돌리는 것이 필요했다.

다만, 상대의 전력을 모르는 상황에서 세이혼 하나로 이를 만족하기는 어렵다.

‘저곳인가……’

쿤이 마라가 머물고 있는 별채 앞에서 몸을 수그리고 있다.

재판소에 있어야 할 그가 이곳에서 어떻게? 그건 바로 아도란 덕분이다. 아도란이 변형 마법으로 쿤으로 변신. 쿤이 신성력으로 그와 연결을 해, 재판 과장을 파악했다. 스킬로 있던 것도 아니고 축복에 존재하던 능력도 아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아도란과 연결을 하여 재판을 목격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는 적중했다. 쿤은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일 수 있었다.

‘묘한 느낌. 이곳이 맞는 거 같군.’

마라는 황제의 숨겨둔 애인과 같이 외부로는 소문이 나있지 않다.

밀실. 찾기 힘든 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일전에 황제를 따라 갈 때도 많은 예방 조치를 하고 움직였다. 하지만 쿤에게는 초월적인 감각이 있다. 눈을 가리고 몇 번을 빙빙 돌아도 한 번 갔던 곳은 바로 찾을 수 있다.

건물에 몸을 붙인 쿤이 천천히 안쪽을 살피며 들어갔다.

‘이건……또 색다른 거로군.’

검은 색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들이 주변을 순찰하고 있었다.

커다란 할버드와 금속 재 방패를 등에 맨 채. 굉장히 안 어울리는 복장에 안 어울리는 기도였다. 칙칙하게 느껴지는 기운은 마치 죽은 자의 것 같지만, 그 안에 도사린 것은 강렬한 본능이었다.

‘이단의 종자인 것인가……’

미묘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답일 것이다.

쿤이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쿤을 손에 쥔 채 심호흡을 했다. 상황을 유리하게 끌어오려면 모험은 필요하다.

탁. 바닥을 차며 튀어나갔다.

“……!”

인접한 경비 중 하나가 쿤을 발견했다.

기도가 한 차례 흔들리더니 곧장 들고 있던 할버드를 휘둘렀다. 바람이 쪼개지며 쿤의 얼굴을 때렸다. 속도부터 반응까지. 기사 이상의 수준이었다.

키릭. 쿤이 아쿤으로 할버드의 날을 긁어가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강대한 힘이 몸을 찍어 눌렀지만 힘이라면 쿤도 뒤지지 않는다. 그대로 이겨 낸 뒤 품 안으로 들어가 목을 찔렀다.

“크르르……”

죽지 않는다.

황급히 몸을 숙여 금속 방패를 회피하고, 발을 걸며 중심을 앗아갔다. 상대의 몸이 기우뚱 넘어갈 때, 반지로 불꽃을 불러 그대로 전신을 불태웠다. 붉은 빛이 태양처럼 터져 오르고, 로브가 삽시간에 가루가 됐다.

‘리자드맨……!?’

아니, 정확하게 리자드맨이라 부르기는 힘들었다.

리자드맨의 몸에 얼굴은 인간의 것이었다. 게다가 팔은 북부 산지에 산다는 고목 오우거의 것을 닮아 있다. 합성 괴물. 그리고 전신에 박혀있는 그리자 파편이 눈에 들어왔다.

“우……우우우우!!”

괴물이 울부짖으며 다시 달려들었다.

전신에 불이 붙었음에도 전투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군.’ 이렇게 되면 힘을 아끼는 방식으로는 어렵다. 쿤이 즉시 자세를 잡고 상단세로 아쿤을 들어 올렸다. 단검임에도 흰 빛이 어려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일단.

세로로 검을 긋자 달려들던 괴물의 몸이 그대로 토막 나, 좌우로 흩어졌다. 금속 방패도 불을 이겨내는 피부도 의식의 검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후우.”

쿤이 숨을 토해냈다.

괴물은 이 하나가 아니었다. 소리를 듣고 접근하는 적의 숫자가 많았다. 잠입이 될 만 한 지형이었다면 그냥 숨어서 도망가고픈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고, 어차피 싸워야 하는 거라면……

“후딱 베어주마.”

속전속결이 정답.

몸 주변으로 신성력이 피어올랐다.

#

“죄인, 쿤은 고개를 들라.”

괴물과의 전투가 한창인 순간, 쿤은 하나의 상황을 더 맞닥뜨리고 있었다.

재판. 증인과 증거 등이 나열되면서 최후 변론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아도란이 재판관의 말에 따라 고개를 들었다.

“죄인이게 마지막으로 변론 할 시간을 주겠다. 마지막 변론이 끝나면 그대로 판결로 이어지니 신중하게 답변하기를.”

“잠시 만요! 최후 변론은 제가 대신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순간, 재판장 뒤쪽에서 한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라라였다. 황제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고 재판장을 비롯한 장내 사람들의 시선이 한 번에 쏠렸다. 그녀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라라, 아가씨. 지금은 재판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사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그게 아닙니다. 쿤, 오빠는 지금 목을 다쳐서 말을 하기 힘들어요. 미리 작성해 둔 변론 내용이 있으니, 제가 그걸 대신 읽겠다는 겁니다.”

“변론 내용 말입니까?”

재판관이 턱짓을 하자 경비들이 다가가 라라가 가지고 있던 종이를 확인했다.

확실히 변론에 대한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경비가 ‘변론 내용이 맞는 거 같습니다.’ 라고 확인을 하자 재판관이 쿤을 봤다.

끄덕. 쿤이. 아니, 아도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지자 라라가 종이를 다시 빼앗아서는 냉큼 그의 옆으로 가서 섰다.

“크흠. 그럼 최후 변론을 시작하도록 하시죠.”

“네. 일단 존경하는 재판장 님……”

느긋하고 천천히.

시간을 끌어야 한다.

#

“후우……후우.”

마지막 남은 괴물을 처리했다.

더 이상 경험치가 오르거나 정수의 수급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죽은 괴물의 그리자를 통해서 신성력이 회복되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꽤 특이한 일이다. 어째서 이단의 힘으로 채워져 있는 그리자를 처리하면서 신성력이 회복이 될까.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콰앙—!

생각은 여기까지.

폭음이 지저에서 들려왔다. 황급히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나선 형태의 계단이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안쪽 깊은 곳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루루.’

쿤이 즉시, 난간을 잡고 아래로 뛰어 내렸다.

주변 경물이 빠르게 스쳐갔다. 층계가 순식간에 지나가고, 폭음과 연기가 발견된 위치에 도달 할 수 있었다.

벽을 번갈아 차며 속도를 줄인 뒤 바닥에 착지했다.

“쿤!?”

“쿤 오빠!?

“일단 이곳부터.”

쿤이 즉시 의식의 검을 뽑아 휘둘렀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괴물들은 이곳에서 있었다. 흰 빛이 강렬하게 터지고 몇 마리가 단번에 쓸려갔다. ‘정리한다.’ 세이혼도 정신을 차리고는 의식의 검을 뽑아냈다. 루루의 불꽃과 의식의 검. 주변에 있던 괴물들은 삽시간에 처리가 되었다.

“어떻게 된 건가? 자네는 지금 재판 중인 거 아니었나?”

“그건 아도란이 나로 변신한 거야.”

“와! 그런 거였으면 미리 말했어야죠! 얼마나 놀랐는데.”

“미안. 하지만 만약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어.”

“만약?”

쿤은 루루의 질문에 답 하지 않고, 뮬라를 봤다.

“마라의 위치는?”

“이 아래. 만약이라는 건 그녀의 배신인가?”

“그래. 만약 그녀에게 변고가 생긴 것이 아니라, 변고를 위장하여 황제를 흔드는 거라면 일단은 내가 재판장에 있도록 믿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뮬라 네가 이런 비전의 사용이 가능하다면 그녀 역시 이를 염두에 둘 가능성이 있는 바. 넘어온 일행을 적이 관찰한다고 했을 때, 무슨 수를 쓰기 전에는 내가 없다고 확신 시키는 것이 중요했지.”

“잠깐. 마라가 왜 이런 짓을 할 거라 생각하는 거지? 이미 자네의 협조를 구하지 않았나?”

“아직은 가정에 불과하지만 그녀가 두 가지 마음을 먹고 있다면 가능한 일이지.”

쿤이 말을 하면서 일행을 독려했다.

적이 있는 곳은 조금 아래. 이 상황도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이제부터는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내가 마라를 만나고 나서 가장 크게 의문을 느낀 점은 어째서 황제인가야. 별의 탑이 이단을 가지고 놀다가 실수해서 큰 패착을 불러왔다면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게 수순이야. 하지만 황제가 그 수습에 도움이 되는가? 권력과 인력이 유르고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함은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

“아……하긴 그렇군.”

“그래서 생각 한 것이, 유르고의 심장이야. 뮬라, 네가 그랬지. 심장은 태고의 정령 때문에 손을 댈 수 없었다고. 하지만 제국의 황제라면 어떨까? 그들이 지켜오는 물건이라면, 그 주인이 봉인을 풀 수 있을 거 같은데.”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두 번의 실패로 분개한 탑지기.

유르고를 정화 할 수 있는 인물과 제어의 중추가 되는 심장. 두 가지를 손에 넣는다면 아집으로 이어지는 세 번째 시도도 가능하다.

쿤이 생각했던 마라의 계획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렇다면 더욱 이해가 안 된다. 잘 진행되는 일을 왜 어그러뜨리는 거지?”

“불안감을 느낀 것이겠지. 첫 번째 제어 시도에서 그녀는 뮬라의 제지를 받았어. 과거, 비슷한 일이 있었던 거겠지?”

“……나와 몇 몇 탑지기들은 유르고를 제어한다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그대로 깊은 지저에 봉인하기를 원했지. 그 과정에서 마찰이 있었고, 나를 비롯한 소수의 탑지기들은 탑을 떠나야 했다.”

“마라는 아마 뮬라가 또다시 방해를 하지 않을까 불안해 한 걸 거야. 그래서 나를 궁지로 몰아넣어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환경을 만든 거지.”

“면책을 빌미로 협조를 요구한다?”

쿤이 고개를 끄덕였다.

뮬라가 등장하고 난 뒤 곧바로 움직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마라라면 뮬라가 쿤과 같은 일행으로 들어왔음을 아는 건 무리가 아닐 터. 위험성을 경고 받고 일에서 손을 떼는 걱정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쿤이 걸음을 세웠다.

계단이 끝나고, 독특한 문양의 문이 나타났다. 그 너머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들. 이곳이 종착지임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었다.

“흰 눈의 남자와 카넬.”

신이 경고했던 인물들.

마라 혼자서 이 일을 계획했을 리 없다. 반드시 둘 역시 이 일에 개입되어 있을 터. 아마 문 너머에서 풍기는 강력한 기운의 주인이 그들이지 않을까.

덜컹—!

쿤이 강하게 문을 밀쳤다.

#

하얀 색 커다란 의자를 중심으로 삭막한 인테리어가 주변을 장식하고 있었다.

갈색 로브로 몸을 가린 인물이 하나, 앞서 상대했던 괴물이 다섯. 알 수 없는 표정의 남자 넷이 뒤로 시립해 있었다.

쿤이 문을 박차고 들어갔음에도 별 다른 반응은 없었다.

“재미있군. 황궁 깊숙한 곳에 이런 놈들이 잔뜩 모여 있다니.”

“……재판장에 있는 건 대체 누구죠?”

하얀 색 의자에 몸을 묻고 있던 사람이 일어났다.

찰랑거리는 은발. 바로 마라였다. 무언가 횡액을 당했거나, 억지로 겁박당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쿤, 자네 말이 맞는 거 같군.’ 세이혼이 상황을 짧게 인정했다.

“이래 봐도 산전수전 다 겪어온 사람이라서. 만약을 대비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런가요.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거 같네요. 아버지가 갑자기 등장해서 당황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마라. 그만 두어라.”

“아버지. 끼어들지 마세요.”

뮬라가 성큼 나서자, 마라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이미 두 번이나 실패한 일이다. 이제 와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거늘 어찌 이런 무모한 일을 벌이는 것이냐?”

“변명은 그만 두세요. 아버지는 그저 두려워 도망간 겁쟁이일 뿐이에요. 우리는 탑지기.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고 그 빛을 쫓는 자들이에요. 겁을 집어먹고 도망가 버리는 건 우리와 맞지 않아요.”

“어리석은 소리. 우리는 신이 아니야. 그저 남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을 뿐. 아노스에 살고 있는 다른 생명들과 같을 뿐이거늘, 그것으로 신 놀음을 해서는 안 된다.”

“무지한 것들의 사정 따위 신경 쓰지 않아요.”

“마라야!!”

뮬라가 다급히 외쳤지만, 마라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렸다. 흉흉한 기세를 내뿜던 괴물들과 표정 없는 남자 넷이 슬금슬금 일행에게로 접근해 왔다.

“협상은 결렬인가.”

“……저 아이는 내가 처리하겠네. 자네는 자네가 해야 할 일을 하게나.”

“이 또한 내 운명의 연장선인가?”

“흐름은 엉키고,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게 됐네.”

그것이면 충분하다.

쿤이 아쿤을 들어 올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정해진 미래가 없는 거라면 얼마든지 자신이 있다. 눈앞의 장애물을 치우고, 보란 듯이 사랑하는 사람과 떵떵 거리며 살 계획이다.

그렇다면 일단……

“크아아아!!”

이놈들부터.

쿤의 몸이 한 점의 바람이 되었다.

※작가의 말

아도란 매소드 연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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