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214화 (214/240)

전력이 뒤쳐짐은 알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희망은 있다.

‘의식의 검’. 무엇도 베어 낼 수 있는 이 힘이면 순간적인 방심을 파고들어 상대의 목을 잘라 내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차남혁과 빅터 역시 아바타의 형식으로 이곳에 들어와 있다.

나와 경우가 같다고는 말 못하지만, 무언가 제약이 있기는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이 아예 비관적이라고 단정하지는 못한다.

발끝에 힘을 주고 빠르게 쇄도했다.

“그대로 짓이겨주마.”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물고 태어난 금수저로 목구멍을 뚫어 버릴 테니까.”

기습적인 찌르기.

탄소강 단검으로 차남혁의 가슴팍을 노렸다. 짧은 발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옆으로 돌아갔다. 앞섬이 찢어지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생각보다 내 속도가 빠르니 당황한 모양이다. 육체적 스펙은 이 상태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터라 부분적 이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찌른 상태로 몸을 돌리며 팔꿈치로 차남혁의 안면을 노렸다.

관성을 제어하고, 2차 공격으로 들어가는 기교는 세이혼과 죽어라 연습했던 부분이다. 끌리는 발을 타고 먼지가 확 피어올랐다.

“쥐새끼. 반항은 거기까지다.”

섬뜩한 감각이 머리를 타고 전해졌다.

발끝에 힘을 주고 몸을 그대로 튕겼다. 어깨 너머로 날붙이가 스치고 지나갔다. 빅터다. 거리가 제법 있었는데, 장병기로 내 공세에 끼어들었다. 속도전 사이를 간파하는 눈과, 그에 걸맞는 스펙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

차르르릉……!!

찌릿하게 울리는 소리.

창이다. 스쳐간 창대가 부르르 떨리며 어깨 위를 때렸다. 둔탁한 충격에 절로 인상이 써졌다. 뼈가 상한 건 아니지만, 만만치 않다. 재빨리 몸을 돌린 뒤,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 중 하나를 던졌다.

타앙. 불꽃이 튀고 무위로 돌아갔다.

역시 이 정도로는 안 통한다. 하지만 애초에 노린 건 그게 아니다. 단검을 던지고 나서 곧바로 수류탄을 하나 까서 아래로 굴렸다.

폭음이 이어지고 불꽃과 흙먼지가 안을 가득 메웠다.

“서율아, 일단 도망쳐.”

“사, 삼촌?”

재빨리 제단 위의 심장을 가방에 우겨넣었다.

그리고 그걸 서율이에게 건넸다. 무겁지만 메고 갈 정도는 된다. 싸움이 격해지면 그녀를 보호하는 건 불가능. 차라리 어디로든 일단 피해있는 것이 나았다.

“어서!!”

크게 외치고, 단검을 휘둘렀다.

먼지 사이로 철로 만들어진 창대가 휘면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불꽃이 튀고, 충격에 몸이 휘청거렸다. 늘어난 신체 스펙으로도 이 공격을 온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위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잔재주를 부리다니!”

“군수업체 관계자께서 수류탄을 잔재주라 부르면 쓰나!”

번개같이 창대를 밀어내고, 허벅지에 쟁여 둔 권총을 꺼내 발사했다.

타탕. 탕. 군사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은 건 아니지만, 신체 스펙이 워낙 뛰어나 조준점은 매우 정확했다.

쩌억—!

하지만 총알은 나아가던 방향 그대로 얼어붙었다.

새파란 물결이 바닥을 타고 번져서, 막대한 운동에너지를 그대로 잡아먹은 것이다. 첫 공격에서 밀려났던 차남혁이다. 악귀와 같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자존심이 조금 구겨졌겠지.

“역시 이름 없는 자와 관계가 있나 보군.”

“글쎄. 그건 직접 알아내는 게 좋지 않을까?”

“걱정 할 필요 없다. 네놈을 잡아 사지를 하나하나 뜯어내면서 알아 낼 테니까.”

“혓바닥에 모터라도 달았나? 왜 이렇게 가벼워?”

도발은 항상 주요하다.

차남혁이 일그러진 얼굴로 내게 달려들었다. 새파란 물결이 발밑을 타고 전해졌다. 이건 일종의 아우라와 같다. 주변에 냉기속성을 전하고, 위해를 가하는 공격을 그대로 얼려버리는. 첫 공방에서는 발휘를 안 했으나. 지금은 유지하고 있다.

황급히 거리를 벌리며 수류탄을 하나 더 까서 던졌다.

굉음과 함께 지반이 통째로 울렸다. 하지만 얼음의 막이 폭발 반경 안에서 한 차례 휘감고 난 뒤 보이는 건 멀쩡한 차남혁의 얼굴이었다.

일반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총알을 얼려버리는 것으로 봐서는 물리적 충격으로 그것을 돌파하는 건 거의 무리. 의식의 검으로 냉기방어를 돌파하여 피해를 주는 것이 최선이다.

……서율이는?

말을 듣고 몸을 피한 상태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아르톤의 모습도 안 보인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아무래도 그녀의 뒤를 쫒아 간 거 같다. 서율이가 가진 것이 심장이니, 어쩌면 그걸 이용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이곳에 남겨 둔 채 싸우는 것이 좋았을까?

아니다.

이단의 힘이 없는 악마라 한다면 서율이를 어떻게 하기는 힘들어. 최악이라고 해 봐야 아바타가 해체되어 접속이 끊기는 정도. 직접 저 둘에게 넘어가는 것보다는 그편이 낫다.

“후우.”

그렇다면 필요 한 것은 눈앞의 두 놈을 이기는 것.

“남은 수류탄이 몇 개지? 언제까지 그걸로 버틸 수 있다고 보는 거냐?”

“내가 누차 말 하고 있지?”

단검을 움켜쥐었다.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초상력이 간당간당하다. 아마 두어 번 정도 의식의 검을 전개하고 나면 더 이상은 쓸 수 없을 것이다. 승부를 가르는 것은 그 두어 번의 충돌. 긴장하고 집중하자.

“혓바닥이 길다고.”

간다.

바닥을 차고 냉기 위로 몸을 던졌다. 새파란 기운이 즉시 나를 파고들었다. 의식의 검을 갑옷처럼 발휘해서 몸에 들렀다. 의식의 갑옷이라고 해야 할까. 시린 냉기가 몸 주변에 맺혀서는 그대로 잘려나갔다.

차남혁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다.

손끝으로 힘을 집중해 냉기를 찢고 그 안으로 단검을 우겨넣었다.

집중된 의식이 힘을 밀어내며 통로를 만들었다. 안으로 들어 갈 수록 그 정도는 심해져, 몸으로 직접 압력을 가했다.

이건 마치 심해를 향해 들어가는 잠수정과 같다.

뚫는다.

흩어 지는 의식을 하나로 모았다. 의식의 검은 얼마나 집중하고, 흐트러짐이 없냐에 따라 위력이 갈린다. 새파란 냉기와 마찰하는 하얀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쩌어엉—!

마침내, 중첩된 냉기를 돌파하여 검을 차남혁의 목에 들이밀 수 있었다.

일그러지는 그의 얼굴이 더욱 참혹해 보였다. 하지만 그 검을 마주 쑤셔 박기 전, 강대한 파동이 내 몸을 통째로 흔들었다.

집중된 의식이 흔들리고, 백열하는 검이 흩어졌다.

순식간에 다시 모인 냉기가 이에 충돌하고, 기껏 돌진했던 내 몸만 튕겨져 나갔다.

“커억……!”

피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거친 호흡과 함께 육체의 상태가 나빠졌다. 링크로 부여된 아바타가 충격에 흔들린 것이다. 아마 이런 충격을 몇 번 더 받는다면 그대로 접속이 끊길 것이 분명했다.

버릇처럼 입가를 닦고 허리를 폈다.

“단순한 쥐새끼가 아니군. 대체 뭐였지, 그건?”

창을 빙빙 돌리며 빅터가 물어왔다.

그 상황에서 나를 방해 할 수 있는 건 그밖에 없었다. 다만, 예상하지 못한 건 폭발적으로 돌진한 내 공격을 그가 반응하여 끼어들었다는 점.

단순한 군수회사의 관련자라 보기는 힘들었다. 무언가 독특한 무리를 익히고 있다. 창을 쓰는 것으로 봐서는 창술일까? 하긴, 현대화기를 쓸 수 있음에도 그걸 무기로 택한 것 자체가 자신감의 발로일지도 모르겠다.

“빌어먹을 놈……!”

차남혁이 일그러진 얼굴로 몸을 일으키다 잠시 휘청거리며 주저앉았다.

완벽하게 처리하지는 못했으나, 의식의 검이 그의 몸을 흔드는 것에는 성공했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아바타 상태. 의식의 검에 실린 내 의지가 그 접속 자체를 방해하고 있었다.

“잠시 쉬고 있어라. 이놈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그렇다면 전황은 1:1.

사용 가능한 의식의 검은 한 번 정도. 하지만 상대가 무리를 믿고 들어오는 무사 타입이라면 그 한번이 무기가 될 수 있다.

심호흡을 하며 몸을 바로 세웠다.

이차전의 시작이었다.

#

생각해보면 특기와 스킬을 제외하고 순수한 육체로 싸워보는 것도 꽤 오랜만이다.

세이혼과 수련 할 때는 폐가 터질 때 까지 싸우곤 했는데.

능력이 부족함에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다른 것들은 곁가지일 뿐이다. 육체와 정신. 두 가지를 가지고 적과 맞서는 것이 정말로 내 힘이라 할 수 있다.

“흐음. 확실히 자세가 남다르군. 네놈도 어디선가 무예를 익힌 건가?”

“글쎄. 대전 게임으로 배운 적은 있는 거 같은데.”

“흥. 말로는 지지 않는군.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그 힘이 무엇이든 내게는 통하지 않으니까.”

부웅. 창을 거칠게 흔들어, 나를 겨눴다.

발을 넓게 벌리고 낮아진 중심. 단단하게 움켜쥔 창대와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의 구도. 말 하는 투는 굉장히 재수 없지만 확실히 제대로 배운 모습이다.

양 손에 단검을 나눠 쥐고는 가볍게 발을 끌었다.

살짝 불안해 보이는. 하지만 그만큼 반응이 쉽고, 돌진이 용이한 자세였다.

“독특하……”

말이 길어.

즉시, 바닥을 차고 튀어나갔다. 깜짝 놀란 빅터가 창대로 바닥을 치며 응대했다. 쩡! 하는 울림과 함께 낭창거리며 휜 창이 내 목을 향해 순식간에 다가왔다. 굉장한 속도. 아마 육체 스펙을 스텟으로 정의한다면 그가 나보다 윗줄일 거 같다.

……점에는 선으로.

한 점으로 응축되는 창격을 비스듬히 단검으로 흘렸다.

세이혼이 누차 하던 말이 있다. 점으로 귀결하는 공격은 그 끝에 실을 달고 돈다는 식으로 파훼하면 쉽다고. 반응하는 속도와 움직임이 뒷받침 돼야겠지만, 가능만 하다면 지금처럼 쉽게 상대의 품을 파고 들 수 있다.

일격. 이격. 삼격.

연달아 찌르기를 했다.

하지만 제대로 들어 간 건 없다.

검격이 파고드는 순간, 창대를 옮겨 잡은 빅터가 단봉처럼 이를 방어했기 때문이다. 긴 창이 거리에 이득이 있되, 거리를 주면 불안하다. 그렇다면 짧게 잡고 근거리에서 이득을 취하라. 단순하지만 어려운 방법을 빅터는 순수한 육체 스펙으로 해결했다.

서걱—!

삼격을 방어하고 다시 창대의 끝으로 손을 옮긴 그가 그대로 창을 횡으로 그었다.

황급히 몸을 틀었지만 옷이 베이는 건 피할 수 없었다.

큰 공격에는 큰 틈이. 허나, 이번 공격에서는 그 안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크게 횡으로 그은 공격 이후, 빅터가 곧바로 창대를 수직으로 세웠기 때문이다.

아마 들어갔다면 머리로 떨어지는 창대를 맞이했어야 할 것이다.

“소용없다. 잔재주를 부려봤자,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무의미할 뿐.”

“하아. 어째, 만나는 놈들이 하나같이 중2병에 걸린 거지? 설마 네놈도 꿈이 세계 정복이냐?”

“그런 의미 없는 일에는 관심 없다. 내가 원하는 건 절대적인 힘. 더욱 강한 힘을 위해서 그와 손을 잡았을 뿐이다.”

천생무인……이라고 포장하기에는 하는 짓이 아니꼽다.

그렇게 무를 추구하는 거라면 산에 처박혀서 도라도 닦든지. 군수업체에세 한 발 담갔으면서 저딴 소리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딴 놈한테 지면 혼나겠지.”

세이혼에게.

단검을 고쳐 쥐고는 자세를 취했다. 상대가 나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음은 파악했다. 하지만 본디 인간은 그런 환경에서 성장했다. 보다 강한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월등한 존재와 싸우기 위해. 그렇게 발달한 것은 무(武)이며. 세이혼을 통해 전해 받은 기술 역시 그 이치에 부합한다.

강함이라는 것은 단지 빠르고 힘이 세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다.

“와라.”

부드럽게. 빠르지 않은 속도로 빅터에게 접근을 했다.

바르게 세워 두었던 창이 마치 총알처럼 날아왔다. 궤적을 보고 피하는 것은 무리. 이미 감지하고 몸을 돌리고 있다. 그래도 조금 부족함이 있는지 볼이 길게 찢어졌다. 아픔은 없다. 하지만 육체가 더욱 희미해지고 있음은 알 수 있다.

단검으로 창대를 밀며 걸음을 더 내딛었다.

빅터는 창대를 회수하지 않고, 그대로 찍어 눌렀다. 힘을 과시하는 것이다. 허나, 원했던 바다. 누르는 힘 그대로 몸을 돌리며 창대를 바닥으로 눌렀다. 극이 바닥에 박히니, 빅터가 인상을 썼다. 그리곤 그대로 힘으로 이를 빼 내려 했다.

키릭.

“……음!?”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힘이 강해도, 긴 창의 경우 끝을 잡고 들어 올리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중심을 내가 점유하여 누리고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대로 창신을 긁으며 빅터의 목덜미를 노렸다.

쾅. 한 손을 창에서 뗀 빅터가 내 팔목을 부여잡았다.

속도 하나는 확실히 굉장하다. 하지만, 그렇게 흐트러진 자세로 다급히 잡아서는 나를 제지 할 수 없다.

잡힌 팔을 흔들어 당기며 창대를 발로 찼다.

힘을 위로 주던 빅터가 그 움직임에 비틀거리고, 그대로 내 당기는 힘에 딸려왔다. 중심이 무너진 상황이라면 천근의 무게도 네 푼의 힘을 이겨 낼 수 없다.

콰앙—!

빅터가 바닥에 곤두박질을 쳤다.

비명도 없이 크게 벌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해가 안 가는 눈이다. 그가 무를 어떻게 닦았는지는 모르겠으나, 힘과 속도에 치중하여 다른 것들을 버린 마당에 승부는 나 있던 것과 마찬가지다.

단검을 움켜쥐고 그대로 목을 향해 찔렀다.

— 꺄아아아악!!!

하지만 그 순간.

날 선 서율이의 비명소리가 나를 멈추게 했다. 하나로 모인 집중이 깨어지고, 링크로 그녀의 상태가 전해졌다.

“사랑하는 사람은 지켜야 하지 않겠어?”

날개를 퍼덕이며, 아르톤이 서율이를 안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작가의 말

저번 편에 의문을 남긴게 있어 첨언합니다.

* 아도란은 심장을 쿤에게 넘겼는데 왜 무사하냐?

: 쿤은 폭주 할 당시 준경을 밀어내고, 그에 관련된 특기 역시 취소되었습니다. 무한의 주머니 역시 일단은 상자소환으로 담아 두었던 터. 바로 해체되며 안의 물건도 밖으로 튕겨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심장도 있었습니다.

다만, 상기 내용을 글에 설명하는 건 너무 어색합니다. 주인공인 준경이 1인칭 시점에서 다급한 나머지 신경쓰지 않는 걸 제가 3인칭으로 설명 할 수도 없죠. 그렇다고 후기에 남기는 것도 이상하고...왜, 그랬을까? 라는 생각으로 독자분들이 추리해 주기를 바라고 그냥 두었을 뿐입니다.

* 준경은 신성력을 바탕으로 육체를 구현. 쿤은 육체에 이단에 힘이 들어선 겁니다. 차이가 분명합니다.

* 탱크를 조종하는 부분은 확실히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다만, 본디 망령제어에 혼의 결집같은 스킬이 있었던 것처럼, 쿤 역시 죽은 조종사들을 비슷하게 다루었다 생각해 주세요.

*이제 종장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입니다. 끝가지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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