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은 곧바로 군인들의 안내를 받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되었다.
괴물이 등장하고 군이 투입되었다면 우리가 관여 할 여지는 없었다. 다만,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서 이렇게 안내 인원이 따로 왔다는 건 등장 시기가 멀지 않다는 이야기. 이제 막 괴물들이 등장했다는 말과 같다.
어떤 일이든 초동대처가 중요하다.
처음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건 당연한 수순. 이대로 물러나 수수방관 할 수는 없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우리를 안내하던 병사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하퍼를 통해 미국방성 장관으로. 그리고 다시 연락 체계를 통해 우리를 안내하는 병사로. 게이트의 이상현상은 군인보다 관련자가 대처하기 편하다는 논리였다.
병사가 차를 세우고 우리를 보고 말했다.
“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현재의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게이트 관련 경험이 있는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으라 하더군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필요하다면 도와 드려야죠. 전부가 이동하는 건 힘드니, 저와 서율이만 따라가겠습니다.”
“준경 씨. 보고를 위해 저희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럼 한 명만 따라오는 것으로 하죠.”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소향을 돌아봤다.
본래, 이 무리의 리더는 그녀가 돼야겠지만 내 위압능력은 이럴 때 주도권을 가지고 오기 편했다. 그녀가 살짝 긴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향 씨는 일단 숙소에서 대기해 주세요. 그쪽 상황을 보고 따로 연락을 드릴게요.”
“꼭 개입해야 할까요? 만약 군이 대응하지 못하면 큰 일이 날 텐데……”
“괜찮아요. 여기는 미국이잖아요. 대응 프로토콜은 어느 나라보다 잘 되어 있을 거라 믿어요. 게이트 상황만 체크하고 돌아 갈 테니 먼저 가서 기다려 주세요.”
무어라 더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내가 그대로 대화를 끊었다.
우리를 안내하던 다른 병사가 차를 갈아타고, 일행을 나누었다. 나와 서율이. 그리고 정부에서 나온 인사와 경호원들이 새로운 그룹을 이루었다.
“그럼 늦게 않게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나도 소망한다.
작은 손짓으로 인사를 건네고 차를 출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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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간이 펜스가 쳐지고, 주에서 투입한 병력이 외곽을 보호하고 있었다. 탱크와 같은 병기는 아직 투입되지 않았지만 영화에서나 보던 특수부대의 모습은 꽤나 흥미로웠다.
물론, 그만큼 상황이 긴박하다는 거겠지.
“이곳입니다.”
우리는 상황실에 도착했다.
이건 지금 만들어진 장소가 아니었다. 볼튼 사가 게이트를 관리하기 위해서 이 중 구조 경계라인을 구축하고 그 점점이 박아 둔 건물이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구조였는데, 지금에 와서는 사용하기에 편리했다.
“오……”
“저게, 게이트에서 나온?”
상황실 중앙에 커다란 스크린이 하나 있었다.
가장 안쪽. 괴물이 등장하는 지역의 영상을 계속 송출해 주고 있어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일그러진 불꽃에 사냥개를 닮은 외관.
등 뒤로 비죽 튀어나온 날개에 바닥에 닿을 것 같은 이빨. 개의 모습을 닮은 악마라면 설명이 될까. 게이트를 넘어 이곳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괴물은 딱 그런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건 의외였다.
나는 당연히 변이된 인간들이 등장했을 거라 예상했다. 아노스에 남은 대부분의 것들이 그런 변이체니 당연한 일이라 여긴 것이다. 이런 괴물? 어디서 온 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 바톤! 마계의 사냥개들이 어떻게 이곳으로?
그 순간, 머릿속으로 목소리 하나가 파고 들어왔다.
탐욕의 악마왕 아르톤이다. 차남혁의 뒤에 붙여 두었는데 이곳으로 따라온 모양이다. 화면에 눈을 두고 의식으로 물었다.
— 마계의 사냥개라고? 너와 같은 악마라는 건가?
— 같은 수준으로 취급하면 불쾌합니다. 바톤은 마계의 입구에서 적의 침입을 막는 존재. 주인의 상식으로 비교하면 경비견 정도가 될 겁니다.
— 경비견이라. 그런 존재가 어떻게 이곳까지 넘어오게 된 거냐? 너희는 이단을 피해서 숨어있지 않았나?
잠시 동안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악마들은 이단의 힘을 두려워 해 자신들을 봉인하였다. 그러던 것이 쿤의 개입으로 힘이 돌아오기 시작하여 아르톤이 대표로 빠져나왔던 것이다.
잠깐, 빠져나왔다. 그 말은 입구가 열렸다는 걸로 해석 할 수 있는 건가?
— 아무래도 제가 나온 틈을 통해 유르고의 힘이 침입 한 거 같습니다.
— 역시 그건가.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놈들이 왜 게이트로 넘어와?
— 잊은 겁니까? 우리 악마는 정신체죠. 그리고 기본적으로 어두운 감정을 식사로
삼습니다. 봉인에서 나온 바톤들이 냄새를 쫓아 게이트를 넘어 왔다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죠.
— 잠깐. 그 말은 악마들이 게이트 근처에 봉인되어 있다는 말이야?
질문을 던지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나무랐다.
악마왕 아르톤이라면 오랫동안 아노스에서 살아온 존재. 그에게 게이트 너머 지역에 대해서 묻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었음에도 이를 떠올리지 못했었다.
—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원을 박리하면서 악마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차원적인 마법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그가 한 장소에서 떠날 수 없던 바, 우리도 그 위치에 봉인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그? 봉인을 한 게 너희 스스로가 아니란 말이냐?
— 우리가 한 건 맞지만, 이를 보조해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유일한 조력자였죠.
— 대체 그 사람이 누구인데? 봉인 될 당시 살아있는 사람이 있었던 건가?
아르톤과는 몇 번이고 길게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정보를 파악해 낸 적은 없었다. 어쩌면 그가 악마이기 때문에 내가 꺼려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소스가 될 수 있는 존재임에도 말이다. 어리석다. 이 점은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고개를 한 번 흔들고 다시 아르톤에게 집중했다.
악마들이 모두 봉인될 시점에 살아 있던 존재. 그리고 악마왕에게 조차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실력자. 과연 그런 인물이 누구인지가 궁금했다.
— 아도란. 그런 이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 잠시 동안 대꾸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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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악마를 도운 존재에서 아도란이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 물을 수가 없었다. 게이트 너머에서 등장하는 바톤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주변으로 포진한 병력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르톤의 설명에 의하면 바톤은 정신체이기는 하지만 그 수준이 높지 않았다. 즉, 아르톤처럼 완벽한 정신체의 상태를 유지 할 수 없다는 의미. 게이트를 넘어오면서 일부가 현체로 돌아서고 물리적 공격에 저지를 당하고 있었다.
다만, 그조차도 물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무시가 가능했다.
“뒤로 물려라!! 주 방위군이 격벽 안으로 진입할 틈을 열어!”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성이 무전기를 통해 어딘가와 거칠게 통화를 했다.
방위선을 치고 있던 병력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그 사이로 중화기를 든 주 방위군이 투입되었다. 현대 화기의 위력을 굳이 말로 설명해야 할까? 순식간에 수천 발을 쏟아내는 화기들의 집중에는 악마라 해도 이겨 낼 재간이 없었다.
“흠.”
일단은 다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이틈에 생각을 이어갔다. 봉인지의 열린 틈으로 이단이 침투. 그 결과로 바톤들이 게이트를 넘어서 이쪽으로 왔다고 치자. 하지만 이미 알다시피 이단이라는 것은 공기 중으로 전파되는 병원균이 아니다. 아무리 틈이 열렸다고 해도 봉인 중이던 마계의 마수가 갑자기 미쳐서 우리 쪽으로 돌진한다는 건 이상하다.
……결과에는 원인이 있어야 한다.
몬스터가 등장해서 이 난리를 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 단순하게 생각 할 수 있는 건 게이트 관리 기구의 행동이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다. 관리 기구는 일단 유엔 소속 행정부서에 가깝다. 하지만 몬스터의 등장으로 군이 주력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면 그쪽의 영향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몬스터로 게이트에 접촉을 못하고, 군의 개입으로 기껏 출범시킨 관리기구가 힘을 못 쓰는 상황. 정확하게 볼튼사가. 아니, 그 배후에 있는 이단의 종자들이 원하는 방향이다. 고로, 지금의 상황은 적이 유도한 현실이라는 의미.
그렇다면 어떻게?
아노스에서 봉인에 영향을 미치려면 그쪽 대상자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게이트가 몬스터로 점유된 지금 상황에서 그쪽으로 누군가 접촉해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생각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단 하나.
아노스에 있는 존재 중 이곳의 의사를 받아 공작을 벌이는 자가 있다.
그것도 봉인지에 직접 영향을 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가.
“삼촌, 어떻게 해요?”
“음.”
서율이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적의 배경을 파악했으면, 할 수 있는 것을 떠올려 보자. 일단 필요 한 건 몬스터의 난입을 막아내는 일이다. 그리고 이 상황을 제어하는 것에 현재 관리기구의 필요성을 역설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선점하고 들어 갈 수 있으니까.
— 유르고. 일전에 말 했던 것. 지금 가능한가?
— 일전이라면……변신 말입니까?
— 그래. 나를 감추고 적을 치기 위해서는 확실히 모습을 가려 둘 필요가 있다.
아르톤은 정신체인 악마 중 최상급에 달하는 존재.
실체와 비실체의 변환이 자유롭다. 그 말은 자신의 형태를 바꾸어 남을 흉내 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서율아 너도 준비 해 둬.”
“방법이 있는 건가요?”
“이럴 때는 정공법이 좋지.”
“네?”
“정면에서 때려 부순다.”
볼튼사에 분명하게 경고를 했지.
그 경고를 듣지 않는다면 벌을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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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잠시 들어가 아르톤과 위치를 바꾸었다.
서율이에게는 미리 말 해 두었다. 그녀는 나와 똑같은 아르톤의 모습에 놀라워했다. 더불어 악마니까 조심하라는 경고도 미리 해 두었다. 물론, 아르톤이 이상한 짓을 하려 한다면 그대로 갈아 버리겠지만, 미리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젠장, 이 괴물들은 언제까지 쏟아지는 거야!?”
“조금만 더 참아라. 후속부대가 도착하고 있으니까.”
“빌어먹을. 저 거지같은 게이트는 어떻게 부술 수 없는 겁니까?”
“그게 가능했다면 벌써 해 봤겠지.”
영어 욕설을 직접 이해하는 건 오묘한 기분이다.
하늘을 발로 밟으며 병사들 위에서 천천히 낙하했다. 전장의 분위기라 해야 할까. 뜨겁고 거친 바람이 내 몸을 휘감고 돌았다.
“저, 저기! 사람이 내려옵니다!”
“……어? 이름 없는 자!! 세상에! 그가 나타나다!”
“당장, 본부로 무전을 넣어! 베타 팀은 저자가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라!”
선두에 선 병력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나를 조준했다.
개인의 나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과 상관없이 이 장소는 군이 지배하는 전장. 그들의 반응은 합리적인 것이었다.
허나, 이 존재로 발을 내민 나는 합리와는 조금 거리가 멀다.
“총을 거두어라.”
손짓으로 총구의 방향을 죄다 틀어버렸다.
그리고 군 중간에 내려서서는 천천히 걸었다. 벙찐 얼굴. 당황으로 일그러진 얼굴. 그리고 감복해서 눈물을 쏟아 낼 것 같은 얼굴 등이 나를 반겼다. 본부로 연락하라던 병사 역시 태연하게 내려선 나를 어찌해야 할 지 몰라 머뭇거리기만 했다.
“수고했다. 너희의 노고로 많은 이들이 무사 할 수 있었구나.”
축복을 펼쳤다.
바닥에 널리 깔리는 빛줄기에 상처 입었던 병사들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긴 시간의 사격에 지쳐있던 이들 역시 활력이 돌아 눈을 번쩍 떴다.
기적. 전쟁터 한 복판에 찾아온 이 빛은 기적이었다.
“오……신이시여.”
“신은 마음에 두고, 눈으로 현실을 보거라. 사특한 자의 힘이 벌써 이렇게나 퍼져, 마물을 우리 품 안에 들여 놓으니 전장에 선 너희의 용기는 마르지 않아야 한다.”
손을 뻗어 성천의 축복을 사용했다.
빛의 날개가 등 뒤로 솟아나고, 그 찬란한 빛 무리가 병사들을 휘감았다. 힘이 나고 용기가 샘솟을 것이다. 반짝거리는 눈빛에 존경과 신뢰. 사랑이 가득했다.
— 크아아아앙!!!!
— 크르르릉!!
물론, 아닌 것들도 있다.
내 신성력에 반발하여 바톤들이 달려들었다. 멍하니 있던 병사들이 황급히 총구를 들이밀고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는 의식의 검을 길게 그었다.
찬란한 궤적과 함께 무너지는 악마들.
마치 경전에 그려지는 성전의 한 장면과 같았다.
환호성은 없었다. 하지만 들끓는 기운과 찬탄의 마음은 내게 온전히 닿고 있었다. 일전에 느꼈던 그 황홀감이었다.
인간과 신의 경계선.
눈을 잠시 감았다 뜨며 이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시선을 그대로 둔 채 말을 했다.
“통로를 막기 위해서는 통로를 점유 할 필요가 있겠지. 길을 개척하는 자여. 힘을 빌려다오.”
반짝이는 빛과 함께 상황실에 서 있던 서율이가 두둥실 떠 내게로 날아왔다.
내 말투가 웃긴지 입 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다.
참아, 이것아.
연극은 분위기가 전부다.
※작가의 말
아도란. 만약 살아 있다면 그가 살아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분은 없었나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