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던진 불씨는 금세 바람을 타고 퍼져나갔다.
언론을 통제하기에는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지방 언론부터 메이저 방송사까지. 그날의 일을 특집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름 없는 자’의 난입과, 볼튼 사의 대응. 그리고 마지막 기회를 준다는 말과 떠나는 내 뒷모습까지.
잘 짜여 진 연극처럼 만들어졌다.
내 행동에 반응한 볼튼사의 움직임은 여러 가지 말을 낳았다. 바로 실탄을 사용한 것, 검은 갑옷을 입은 용병들. 그리고 내가 사특한 집단이라 지칭한 이유까지. 무엇 하나 확실하게 증명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의혹을 심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때.
차남혁에 대한 내용이 한국에서 발표되었다. 그가 보통 사람을 대상으로 이단에 대한 실험을 했던 영상. 자금의 흐름과,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이 볼튼사의 사택이라는 것. 그가 말 한 그리자의 약품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행동이 모두 꿍꿍이가 있다는 의혹을 던졌다.
차남혁과 그룹은 대번에 반박기사를 내보냈다.
영상은 조작된 것이며, 그의 행적은 그저 사업적인 행보일 뿐이라고. 하지만 뚜렷하게 드러난 자금 흐름은 막을 수 없었다. 행적이 의심받는 볼튼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느냐. 성토 의사는 높아지고, 대국민 담화를 원하는 목소리도 늘어갔다.
지금까지는 일차 성명서를 내 놓고 침묵.
하지만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의혹이 늘어 가리란 것은 명백했다.
“어떻게 됐지?”
그런 시간 속에 하퍼의 연락을 받았다.
“유엔 산하 기관으로 출범이 될 거 같습니다. 강제력은 없지만, 이런 분위기에서라면 볼튼 사도 무시 할 수는 없겠죠.”
“개척자는?”
“중립적으로 활동 할 수 있는 이들을 유엔의 이름으로 선별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에도 한 명의 자리를 배정해 두었으니, 곧 공문이 넘어 갈 겁니다.”
선별 권한에 하퍼가 힘을 쓰고 있다면 아군 쪽에서 개척자를 집어넣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그 대상을 누구로 할 것인가. 일련의 상황이 볼튼사와 차남혁을 몰아가고 있는 바. 이번에 선출되는 개척자는 그들의 반감을 살 수 밖에 없다.
장기로 말하자면 졸을 적진으로 전진시키는 것과 같다.
과연 그 부담을 누구에게 지어야 할까. 솔직히 떠오르는 사람이 몇 있지만, 콕 집어서 하라고 말 하기는 힘들었다.
“발족 날짜가 정해지면 다시 연락을 넣도록 하죠.”
“음. 수고해라.”
근엄함을 꾸미며, 통화를 끊었다.
생각은 여전히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과연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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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진심이에요?”
“요즘 시국이 흉흉하잖아. 아빠 말 믿고 같이 다니렴.”
“하지만……”
고민을 반복하고 있던 와중, 하퍼에게 맡겨 두었던 경호 로봇의 시제품이 완성되었다. 얼굴에 가면을 씌우고 구동 관절 등을 신경 썼다. 나도 완성품의 성물과 혼의 결집. 반응 속도 등을 다시 검토하여 완성도를 높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W.K 1. White Knight 1이었다.
가장 먼저 이를 배치하고 싶은 건 미소였다.
하지만 큰 키에 이질적인 가면. 말 없는 W.K 1의 모습은 그녀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평범한 학생에게 무슨 경호원이란 말인가. 그녀의 반발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곁에서 아무런 방해도 안 할 거야. 그냥 따라다니게만 두면 돼. 신경 쓰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를걸?”
“어휴. 진짜 아빠는 걱정이 너무 많아서 탈이에요.”
“그런 아빠 걱정 좀 줄여 주겠니? 응?”
“알았어요. 하지만 불편하다고 생각되면 곧바로 말 할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그래야지. 우리 미소한테 불편하면 쓰나. 어이, 1호. 잘 하라고.”
괜히 대꾸도 안 할 W.K 1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흐응. 근데, 진짜로 아무 말이 없네요?”
“아, 내가 말을 안 했구나. 이 친구 말을 못 해. 필요한 게 있다면 아마 손짓이나 글로 표현할 거야.”
“아……벙어리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실례했어요.”
미소가 W.K 1에게 고개를 숙였다.
로봇에게 뭐하나 싶지만, 성물에 깃들어 있는 혼들은 한 때 살아있던 자들. 이런 관계를 취한다고 굳이 나쁠 거 같지는 않았다.
“아빠가 준 목걸이도 잊지 않고 하고 다니지?”
“어이구, 그걸 그렇게 자랑하고 싶었어요? 자요, 자. 매일같이 하고 다녀요. 아, 근데 애들이 예쁘다고 어디서 샀나고 자꾸 물어보던데. 뭐라고 말해요?”
정수를 왕창 쏟아서 만든 성물이다.
혹시나 몰라서 미소한테는 목걸이 반지. 그리고 신발에 들어갈 액세서리 등으로 도배를 해 두었다. 죄다 핸드메이드니 어디서 샀다고 말 하기는 힘들다. 대충 외국에서 공수해 온 거라 잘 모른다 둘러 두었다. 그게 뭐냐고 미소가 입술을 비죽이기는 했으나, 그 이상 묻지는 않았다.
남들에게는 없는 자신만의 물건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띵동—!
그때, 누군가 벨을 눌렀다.
‘어, 누가 왔나 봐요?’ 미소가 종종 걸음으로 현관으로 걸어갔다. 그 뒤를 W.K 1이 쫓았다. 구동은 이상이 없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에 누가 찾아 온 거지?
“아빠, 서율 언니요.”
아, 서율이……
무슨 일로 찾아 온 거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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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왜 말하지 않았어요?”
단 둘이 얘기하자며 서재로 온 서율이가 꺼낸 첫 마디 말이다.
의미를 잡기 어려워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그녀가 입술을 잘근 씹더니, 허리에 손을 올리며 조금 더 커진 목소리로 말했다.
“국제 게이트 관리 기구. 출범이 얼마 안 남아, 이에 호응할 개척자들을 추리고 있다면서요. 삼촌이라면 먼저 알았을 건데, 왜 아직 말을 안 했어요?”
“아……그 건 말이구나. 아직 정해진 게 없어서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한국에 배정된 인원이 얼마 없으니, 하퍼에게 추천을 하더라도 신중을 기해야지.”
“그런 거면 당연히 제가 가야죠. 전후사정 다 알고, 삼촌한테 협조하기 가장 좋은 개척자는 저밖에 없잖아요.”
맞는 말이다.
내 사정을 모두 알고 전폭적으로 협조를 해 줄 사람이라면 서율이가 최선이다. 하지만 나는 망설일 수밖에 없다. 그녀를 보내는 건 자칫 위험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 물론, 누구를 보내든 그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망설여지는 건 사실이었다.
“삼촌. 설마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죠?”
“……딱히 그런 건 아니다.”
“그럼 왜 망설이는데요? 제가 갈게요. 하퍼 씨한테 말 해 주세요. 저를 뽑으라고. 현재, 국내의 개척자 중 저보다 인지도가 높은 사람도 거의 없으니 대표로 뽑힌다 해도 이상하지는 않을 거예요.”
“……”
그래, 그런 부분도 있다.
서율이는 대외적인 인지도도 높으니 대표로 뽑힌다 해도 군소리가 적을 것이다. 기구에서도 하퍼의 추천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내 망설임만 존재하지 않았다면 미리 그녀를 하퍼에게 추천해도 이상함은 없다.
“아, 또 망설이네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요?”
“딱히 그런 건……”
“아아! 지금 거짓말 하려고 했죠? 나도 삼촌이랑 같이 지낸지가 꽤 됐어요. 그 정도는 알아 볼 수 있다고요. 뭔데요? 뭐가 걸려서 자꾸 망설이는 건데요?”
“……휴.”
머리를 긁적였다.
괜스레 가슴이 답답하고 그랬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부터 누군가 직접 움직여야 하고 위험성을 안고가야 하는 부분이 있음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그 위험이 싫다고 망설이는 건 내 어리석음이다.
하지만……
그 어리석음을 부정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입술을 달싹이다 힘겹게 말을 했다.
“차남혁을 밀고하고, 볼튼사를 위협하는 동시에 국제기구가 창설되어 게이트를 점검한다. 누가 봐도 일련의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어. 그렇다면 기구를 창설하는 인물, 그에 호응하는 개척자. 그리고 배경에 선 이들까지. 우리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이를 파악하기 위해 힘을 쓸 거야. 그 과정에서 가장 울타리 없이 노출되는 건 소집되는 개척자. 지금 상황에서는 네가 되겠지.”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개척자들은 수없이 나오잖아요. 굳이 제가 위험 할 거라고는……”
“우연이 겹치면, 그건 우연이 아니야. 차남혁을 방해한 것은 한국 내부였지. 그리고 이런 공작도. 만약 내가 차남혁이라면 가장 먼저 국내의 세력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적을 찾고자 할 거야. 우리는 이미 차남혁과 한 번 충돌하기도 했었지. 그 세력에 포함된 네가 개척자로 뽑혀서 간다면 최우선 타깃이 될 공산이 커.”
차남혁은 이미 서율이한테 집착을 보인 바 있다.
내가 심리학을 전공 한 건 아니지만, 집착의 대상이 자신에게 위해로 다가온다면 차남혁 같은 정신이상자는 극렬한 반응을 보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런 반응은 내가 염두에 둔 상황 밖에서 나올 가능성이 있다. 로봇으로 보호를 해 주고, 성물로 예방을 하더라도 실패 할 수 있는 상황.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히는 거 같다.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도 다 똑같잖아요. 어차피 이 일을 하는데, 위험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할게요. 제가 가장 효율이 높잖아요.”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다만……”
“다만? 다른 이유가 있어요?”
“음.”
“뭔데요? 제대로 말을 해 주세요.”
“너! 네가 걱정돼서 그렇다. 혹시라도 네가 무슨 일을 당할까 생각하니, 쉽게 결정이 되지 않아.”
토해내듯 말을 하니, 서율이가 깜짝 놀라며 나를 봤다.
그리고는 두 손을 마주잡고는 눈을 깜빡였다. ‘미쳤지……’ 난 후회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주책이지 대체 무슨 말을 한 건가 싶다. 지금 이 이건 마치 애인에게 하는 말 같지 않은가. 조카를 보는 삼촌의 격언으로는 안 보인다.
왠지 가슴 한 쪽이 답답했다.
무언가 말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명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걱정되는 마음은 분명하지만 그 이유를 찾고자 하니 뿌연 안개와 같았다. 오래된 인연부터, 깨어나고 난 뒤에 나를 도와준 인연까지. 단지 그 시간에 찾아오는 정 때문일까?
“아빠, 안에 무슨 일 있어요?”
“아……!”
그때, 미소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서율이가 화들짝 놀라더니, 열린 문틈으로 도망쳤다. 머리가 띵했다. 뭔가 죄다 헝클어진 느낌이었다.
“그……방금 서율 언니 울던데. 아빠, 무슨 일이에요?”
“하……”
할 말이 딱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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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율이가 나가고 난 뒤 미소와 단둘이 앉았다.
딸아이한테 이런 일들을 얘기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무슨 일이냐고 따박따박 물어오는 딸아이를 무시하는 건 더 힘들다. 한참을 고민하다 일을 각색해서 대충 알려 주었다. 서율이가 힘든 일로 발령을 가야 하는데, 내가 걱정되어 만류했다. 그랬더니 서율이 반응이 저렇더라. 빠진 곳이 많지만, 대충의 분위기를 설명 할 수는 있었다.
“어휴, 아빠도 진짜 답답하다.”
그랬더니, 미소가 대뜸 하는 말이 이렇다.
“서율 언니는 아빠를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그야 그렇지.”
“그런데 아빠가 자꾸 미지근한 태도를 취하니까, 언니가 답답해 한 거지. 평소에는 맺고 끊음이 확실한 사람이 왜 이번에는 그랬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겠니? 사람 대하는 건 무릇……”
“복잡하다고? 나도 그 정도는 이해 할 수 있는 나이라고요. 사실 아빠도 대충 알고 있잖아요. 서율 언니가 왜 그러고 나갔는지.”
목이 탔다.
찬 물이 냉장고에 있던가?
“그리고 아빠가 망설이는 이유도 알아요.”
“아니, 네가 뭘 안다고……”
“떽. 아빠, 딸이 아빠를 모르면 누가 안다고 그래요? 고생했잖아요. 힘든 일도 겪었고. 이제는 자기 마음대로 해도 충분한데, 자꾸 망설이고 그래요. 솔직히 요즘 세상에 돈 있고 능력 있으면 몇 살이건 어린 여자 만나도 뭐라고 안 해요.”
“미소야. 그런 얘기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아이 참. 예로 들자니 그런 거잖아요. 돈으로 산다는 게 아니라, 서로 마음에 두고 있다면 부가적인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죠.”
여전히 목이 탄다.
지금 미소가 하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이해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쿤이 아니다. 딸도 있고, 이혼해 정신병원에 갇혀있는 전처도 있다. 주변의 시선이나 내 환경.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누군가를 마음에 두는 건……
마음에 두는 건?
“어휴. 세주랑 얘기 해 본 적 있어요. 만약 나이 차 얼마 안 나는 여자가 새엄마로 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솔직히 불편해요.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잘 가늠도 안 되고. 하지만 만약이라도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는지는 생각 해 본 적 있어요.”
“……”
“실수를 했으면 책임지고자 하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솔직한 사람이었으면 해요. 같은 취미, 같은 생각. 친구처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그래서 내가 그렇게 망설였던 건가?
언제부터일까? 내가 그런 마음을 품게 된 것은. 아마 오래전 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럴 수 없다는 생각으로 콱 닫아 두었을 뿐. 쿤이 라라와 맺어지고, 그 행복이 내게 전달되었을 때, 빗장이 벗겨진 거 같다.
참……그렇다.
이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큰일을 앞두고 이런 감정에 골머리 썩는 것이. 하지만 사람이라면.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것에서 벗어 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기에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하고, 아프고, 후회하며. 다시 사랑하는.
피고 지는 꽃처럼, 인간의 아름다움은 이것에 있지 않을까.
“나는, 언니랑 아빠를 응원해요. 그러니까 바보처럼 그러고 있지 마요.”
덜컹. 의자를 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 좀 나갔다 올게.”
미소가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작가의 말
아 머리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