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202화 (202/240)

공권력의 개입 없이 사설 업체의 힘만으로 나를 상대하고자 한다.

이단에 영향 받지 않은 경비의 움직임은 아마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상대가 과연 힘을 분간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수단.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다 판단을 내렸을 때, 대외적으로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무기를 내밀었다.

합리적인 대응이다.

우리는 경고를 했고, 사유지로 들어온 침입자에게 제재를 가하였다. 이 모든 건 카메라로 담기고 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마 대응 프로토콜이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간의 전투로 내 능력에 대한 정보도 쌓였을 테니, 눈앞의 전사는 그 이상 가는 위력을 지니고 있을 터.

하지만 적이 나를 판단하는 것처럼, 나도 적을 판단한다.

내가 원하는 건 학살과 승리가 아니다. 세계의 눈은 의혹을 보이고 있다. 이단의 존재. 그리자에서 파생되는 괴이한 것들이 과연 사고일까 하는 의혹. 세계의 인구는 70억에 준하고, 이단에 현혹된 숫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의혹을 증폭시켜라.

합리적인 판단을 하게끔 적도의 얼굴을 드러내라.

내가 원하는 건 적당한 굿 한 판일 뿐이다.

그리고 경고다.

무엇을 해도 나를 피해 갈 수 없다는 공포. 지금까지는 실력을 감추고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에 주력을 다했다면, 전쟁의 판이 넓어지는 지금 상황에서는 행보가 조금 달라져야 한다.

“배제합니다.”

마모된 목소리와 함께 초속의 움직임으로 내게 달려오는 흑갑의 전사들.

허리춤에 차고 있던 탄소강 블레이드를 양수로 쥐고 순식간에 사면을 포위했다. 빠르고 자연스럽다. 대인전을 염두에 둔 훈련이 가미된 것이 분명했다.

어디 한 번 얼마나 하는지 보자.

아쿤도 없이 손을 벌리며 상대의 난입을 유도했다.

바람 밀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옆구리 아래쪽에서 올라왔다. 고무탄이 아닌, 실탄을 쓴 만큼 이 공격 역시 치명적이다. 나를 제압하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는 것보다 확실히 처리를 하고 언론을 방어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쁘지 않다.

그래야 나 역시 전력으로 상대 해 줄 수 있으니까.

측면의 검격을 반 보 회전으로 피한 뒤, 무릎을 후려쳤다.

중심이 무너지고 얼굴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내 바닥을 손으로 짚더니 몸을 돌려서 자세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내 얼굴로 쏘아붙인 은색 단검 하나. 회피와 반격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재미있구나. 하지만.”

단검을 손으로 잡은 뒤 그대로 부숴버렸다.

재질이 뭔지는 모르나, 의식의 검을 통한 파괴력을 견딜 수는 없다.

“웨폰 차지.”

“세컨드 웨이브를 기동합니다.”

그 순간, 키릭. 하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후위에 있던 전사 중 하나가 양 손을 벌리더니 새파란 레이저를 쏘아냈다. 열기? 아니, 냉기인가? 정확하기 구별하기 힘든 감각과 동시에 어깨 위가 단번에 녹아내렸다. 초감각으로 이를 읽고 피하지 않았다면 머리가 그 꼴이 될 뻔 했다.

이건……플라즈마인가?

아니면 다른 무기? 내 상식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굉장히 위험한 무기임은 분명했다. 게다가 이 정도의 출력을 별다른 준비동작조차 없이 쏘아내는 건 마치 SF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저거 위험하지 않아?”

“……설마. 신이라 했는데, 당하기야 하겠어?”

수군거리는 소리.

확실히 신이라 불리는 남자가 첨단 과학에 쩔쩔매는 건 모양새가 안 좋다. 불에 그슬린 어깨 부위를 손으로 뭉갰다. 흔적은 금세 사라졌다.

아무래도 상대가 나에 대한 준비를 보다 단단하게 취한 거 같다. 물리적 충돌을 포기하고 광학병기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결국 적에 대한 연구보다 주살이 목적이라는 의미였다. 아차하면 죽는 게 전장이다. 아무리 내가 강해졌어도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 아무래도 신 놀음에 조금 들떴던 거 같다.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끌어 올렸다.

“차지 완료. 사격.”

다시 푸른 섬광이 감각권 안에서 터져 나왔다.

육안으로 보고 파악하는 건 무리. 이를 느끼고 몸을 피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속도다. 헤르스의 미러는 투사체에 대해 영향을 발휘하는 장비. 광학무기를 막을 거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떨까?

통안으로 보이는 힘의 흐름을 의식의 검으로 잡았다.

그리고 잡아서 옆으로 흘렸다. 마치 하푼식 감각 수련법을 익힐 당시 처음으로 배운 기교와 흡사했다. 다만, 그때는 맞닿은 검의 힘을 흘렸다면 이번에는 통안으로 읽히는 힘 자체를 흘렸다.

점과 선을 넘어 면으로 영역을 넓혔다.

통안을 익히고, 의식의 검으로 다루는 영역이 넓어지면 가능해진 방법이다. 타격과 제어에 사용하기도 해 봤지만, 이렇게 화경의 묘리로 돌려보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안 될 거라는 불안은 없었다.

파치직—!!

푸른 빛줄기가 옆으로 스쳐가 지면에 틀어박혔다.

흑갑을 입은 전사들이 잠시 동작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분위기였다. 이단의 힘을 받아들이고, 과학적 시술로 몸을 개조했다고는 해도 결국 근본은 인간일 터. 상식의 범위를 빗겨나는 일에는 당황 할 수밖에 없다.

자, 그럼……

손끝으로 느껴지는 흐름을 타고 몸을 움직였다.

마치 언제고 한 번 타본 후룸라이드 같다. 힘은 저마다의 특성이 있고, 그 고저 또한 존재한다. 바람이 밀도차이에 의해서 생기는 것처럼 다른 힘을 역시 비슷한 방향성을 취하고 있다. 이를 과학적으로 표현하면 벡터니 뭐니 하면서 어렵게 하겠지. 하지만 내가 보는 건 아주 단순하다. 무지갯빛의 놀이기구라 해야 할까. 감각적으로 전해지는 이 흐름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없이도 이해 할 수 있었다.

마치 바람을 밟아서 뛰는 것처럼.

옛 무협 영화의 경공이 이러할까.

내 몸은 어느새 후위에 있던 흑갑의 전사. 바로 그 뒤에 도착해 있었다. 사람이 낼 수 있는 순간 속도를 초월했다. 몸에 가해지는 마찰을 무시하고, 힘의 흐름을 타니 가능해진 일이다.

이건……꽤나 독특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그 동안 특기로 쌓아 둔 모든 능력들이 하나로 엮여 나를 지탱해주는 그런 기분. 모든 능력들이 히어로 메이커. 어쩌면 그 이상을 위한 발판이라 생각했던 것이 굳이 틀린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뒤에 있다!”

“사격을 해라!”

나를 돕는 신은 어째서 나 하나를 중심으로 힘을 사역할까?

이단처럼 그 힘을 뿌려 세력간의 다툼을 해도 좋고, 정당한 신의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내도 좋다. 하지만 나와 쿤이라는 독특한 관계를 통해서 이를 타계하고자 한다. 한계가 있어서? 어쩌면. 허나, 그게 아니라면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음이 분명하다.

“어디냐!? 어디로 갔어!?”

“여, 옆에! 쏴!!”

무엇일까?

나라는 대리자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설마 무대 뒤에서 인형을 좋아하는 변태적인 성미를 가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에 드러나기 싫어하는 부끄럼쟁이 같은 성격? 혹시 이단과 형제 같은 사이라서 직접 처리하기 불편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의도가 아니다.

의도라 한다면……

“신의 대리자. 아니, 정말로 신이 되기를 원하는 건가.”

손에 잡힌 총을 가루로 만들며 중얼거렸다.

사고와 전투는 병행되었고, 나를 포위하던 흑갑의 전사들은 모조리 쓰러졌다. 이단을 자극시켜 변이를 일으키고 싶었는데, 조율하는 장치가 따로 존재하고 있는 거 같았다.

“와, 와아아아아!!! 봤어? 봤냐고!?”

“세상에. 저런 게 가능해?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은 정말로 신인 거야?”

“오, 주여. 아니……이제 누구를 믿어야 하는 겁니까?”

경험치와 정수.

그런 건 사소한 부가물일 뿐이다. 사람들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존경과 신뢰의 기운. 경외어린 그 시선 속에서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고무식이 그러했다. 신은 인간의 섬김을 받지 못하면 존재하지 못한다고.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달콤함이 신으로 느낄 수 있는 숭배의 환희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걸까?

잘 모르겠다.

내가 신의 힘을 조금 더 능숙하게 쓰게 됐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인간과 멀어지는 느낌은 조금 탐탁지 않다. 나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서 복락을 느끼고 싶은 거지, 신선놀음하면서 달나라에서 떡방아를 찧고 싶은 건 아니다.

“생각보다 훨씬 강해. 우리가 너무 얕잡아 본 듯 하군.”

“……음.”

그 순간, 생각의 틈을 자르며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190cm는 돼 보이는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짧게 친 금발이 도드라져 보이는 백인 남성이 본사 건물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 정장 차림의 경호원 몇이 동행하기는 했으나,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강하다.

흐름을 읽어내면서 보다 적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내 앞에 나타난 인물은 매우 강했다. 마치 쿤으로 융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과 흡사했다. 답답하고 벽 같은 존재. 능력의 특성은 둘째 치고, 순수한 힘의 규모가 지금껏 만났던 이들 중 최고였다.

“혹시나 하고 대비를 했는데, 아주 보기 좋게 부숴버렸어. 나름대로 신경 쓴 병사들인데 전혀 상대가 안 되더군. 대체 그런 힘을 어디에서 얻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야.”

“내가 답을 하면 그쪽도 알려 줄 생각이 있나?”

“하하. 저 많은 카메라 앞에서 커밍아웃을 하라고? 부끄러움이 많은 성미라 그건 좀 곤란하군. 어떤가? 긴히 할 말이 있다면 안쪽에 와서 하는 것이.”

죽어라 싸우고 난 뒤에 초대를 한다?

카메라를 신경 써서 나를 초대하는 척 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무언가 할 말이 있어서 부르는 걸까?

“난……”

한 걸음.

대화를 위해 조금 더 앞으로 다가가는 순간, 무언가 아찔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초감각으로 전해지는 위기감이다. 하지만 정확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내 감각의 영역 밖. 알 수 없는 영역에서 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즉시 발을 뒤로 빼고 남자를 노려봤다.

“호오. 그걸 느꼈다는 건가? 신기하군. 대체 어디서 그런 힘을 얻은 거지?”

“함정이라도 파 놓은 건가?”

“글쎄. 알고 싶다면 직접 와서 확인을 하라고.”

가능할까?

가늠하기 어렵다. 일전에 차남혁을 보며 느낀 것도 그렇고, 무언가 상대는 내가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 힘을 비축해 둔 거 같다. 힘의 정체를 제대로 알기 전까지 이 이상의 모험은 무리다.

“이름이 뭐지?”

“빅터 이고르.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되지? 설마 이름 없는 자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건 아니겠지?”

“……흠. 너희는 내 이름을 알 자격이 없다.”

한 걸음을 다시 물러났다.

그리고 망령제어를 사역해서 쓰러져 있던 흑갑의 전사들을 일으켰다. 흐느적거리는 모양새가 마치 좀비와 같았다. ‘저, 저게 뭐야!?’ 비명이 뒤에서 터져 나왔다. 겉으로만 보는 사람들의 눈에 누가 이런 짓을 벌이는지는 확인 하는 건 불가능하다.

“잔재주를……”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다!!”

“……뭐?”

뜬금없는 외침에, 빅터가 인상을 구겼다.

중요인원이 나오면 내가 분노해서 달려 들 거라 생각한 건가? 아니면 설마 조폭 영화처럼 차 하나를 가운데 두고 이야기라도 할까봐?

아쉽지만 나는 둘 모두 관심이 없다.

“이것은 경고다. 볼튼사가 사특한 힘을 맹신하고 있음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너희의 어리석음은 인간이 가진 원죄. 지금이라도 그 죄를 뉘우치고 숨겨두었던 비밀을 대중에게 공개한다면 더 이상 벌은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런 하찮은 수를……!”

암갈색 사슬이 바닥을 뚫고 올라와 내 목을 노렸다.

아찔할 정도의 속도. 하지만 눈에 보이고 초감각으로 감지되는 수준이라면 내가 피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흐름을 밟고 그 틈으로 몸을 뽑았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목 언저리에서 불꽃이 튀었다.

“일주일의 시간을 주겠다. 그 사이에 죄를 밝히고, 구원을 받아라. 그렇지 않다면 너희에게 찾아올 것은 오직 하늘의 심판뿐일 테니까.”

성전의 축복을 걸었다.

화려한 휘광이 부지 전역을 휘감고 찬란한 날개를 등 뒤로 만들어 주었다. 신의 강림. 사방 카메라가 나를 담고, 셔터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신과 신에 대적하는 무리.

그 대상이 군수업체이고, 무언가 납득하기 힘든 것들을 사역하고 있다면 의혹은 압도적으로 증폭 될 수밖에 없다. 이미 데모를 위해 몰려온 사람의 숫자가 천을 넘고 있다. 지역 방송 및 메이저 신문사의 인력이 투입되었으니, 그 규모는 몇 배로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때, 하퍼 가문이 정치적 공작을 해서 이들을 흔든다면?

아무리 볼튼사가 단단한 입지를 가지고 있어도 이 정도의 언론 포화를 견디기는 힘들다. 적어도 자신들의 결백을 보이기 위한 감사라도 치러야 할 것이다.

이에 게이트 관련 국제기구가 난입을 하여 탐사 지역을 선점한다.

차남혁을 걸고 넘어져, 볼튼사와의 관계로 공작을 벌이는 것은 양념. 동시 다발적인 공격을 버티지 못한다면 적어도 한 순간, 우리가 게이트를 선점 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

어떻게 해서든 쿤이 죽게 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접촉을 미루고 계획을 상정하기를 벌써 한 달.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명심해라!! 하늘의 눈은 항상 너희를 주시하고 있으니!”

첫 단추는 꿰어졌다.

※작가의 말

음~ 뭔가 챕터 분류를 잘못 한 느낌이...

일단 남의 집 대문에 흙 뿌리기 성공!

* 의식의 검은, 초상력의 세분화된 방법 중 하나라고 보는 게 좋죠. 검을 통해서 의식을 표출하는 것이 더 쉬웠던 겁니다. 준경은 그 단계를 이미 넘었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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