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200화 (200/240)

특기와 스킬은 어떤 목표를 위한 발판과 같다.

단검을 다루는 능력이나, 은신하는 기술. 초감각을 도와주는 하푼식 수련법. 지금껏 얻고 다루었던 능력들은 쿤이 닿아야 할 어떤 경지로의 안내선이었다.

쿤은 최근 그 사실을 더욱 뚜렷하게 느끼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런 것.

“화살이다!”

섬전 같은 화살을 감각으로 느끼며, 손가락으로 옆을 튕겼다.

힘이 무너진 화살이 그대로 핑 돌아 바닥에 박혔다. 단검술의 요령을 손으로 펼쳐냈다. 다가오는 화살의 기척을 느낀 건 초감각과 하푼식 수련법의 영향. 두 가지 특기의 구별이 없이 하나로 묶어서 읽을 수 있었다.

“놓치지 마라!”

“죽여!”

이번에는 다발의 공격.

하객 중 일부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살을 날렸다. 끝이 검은 것이 전형적인 독화살이었다. 들어 올 때 몸수색을 했음에도 용케도 잘 숨겨 두었다. 뭐, 그렇게 하라고 어느 정도 느슨하게 풀어 두었던 것이니 놀랄 일은 아니다.

쿵. 발로 지면을 밟고 카펫의 일부를 잘라서 띄웠다.

망령제어가 이를 붙잡고 넓게 펼쳤다. 화살이 끝에 닿은 뒤 튕겨나갔다. 카펫으로 의식의 검을 사용하여 강도를 높인 것이다. 놀란 얼굴들이 시선에 잡혔다.

‘속삭임.’

초감각과 연동되는 청력이 주변의 속삭임을 잡았다.

은밀한 신호. 회랑 상부, 2층 테라스 부근이다. 외벽을 타고 접근하는 무리가 있었다. 코끝으로 매캐한 독의 냄새가 났다. 꽤 독한 독초를 쓴 모양이다. 약초꾼의 후각을 벗어 날 수는 없었다. 라라도 이를 간파했는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하객까지 한꺼번에 죽이겠다 이거군.’

암습을 계획함에 있어서 일차로 마무리 짓는 건 어리석다.

2차에 3차. 만약을 대비하여 점층적으로 계획을 구비해 두었을 것이다. 태반은 융을 통해 알아냈지만, 그조차 속이고 따로 암습을 계획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리고 지금의 이 시도가 아마 그 중 하나일 터.

“잠시.”

라라를 품에 안으며 프리실라의 마법 팔찌를 발동시켰다.

불꽃이 나선형으로 튀어나와 몸 주변을 휘감았다. 염동력과 의식의 검이 동시에 작용하여 불꽃을 제어했다. 순간의 열기가 주변의 대기를 밀어내고 밖으로 향하는 바람을 만들었다. 독을 준비하던 이들이 휘청거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타라.’

불꽃을 덩어리 지어 그대로 날려 보냈다.

검이 아닌 불꽃에도 의식의 투영이 가능했다. 이내 비명소리와 함께 테라스에 있던 암살자들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이익!! 기회를 놓치지 마라!!”

폭음과 함께 일단의 병력이 회랑 안쪽으로 진입을 했다.

예초 융과 계획을 짤 때 가장 염려했던 부분은 바로 상대의 전력을 이끌어 내는 부분이었다. 암살을 계획한다고 하지만 주력 인사가 손 놓고 물러나 외부에게 청탁만 넣는다면 적의 뿌리를 뽑기 어렵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적의 주력이 암살에 동원되게끔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융은 젝슨을 이용하여 수도 방위군의 일부를 암살자로 위장시켰고, 이를 미끼로 상대의 동조를 유도했다. 첫 암살이 실패 할 때 결혼식을 지키기 위해 비치된 병력 중 일부가 암살자다. 부족한 힘만 보충 할 수 있다면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이다. 수도로 합류한 세력들은 이에 동조하였고, 부족분의 병력을 자신들의 것으로 충당하였다.

젝슨이 쿤과 마찰했던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이 상황을 꾸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통령 대리를 보호하라!!”

“방진을 짜라!!”

세이혼이 병력을 수습하고, 쉔이 루루를 비롯한 요인들을 보호했다.

중앙에 큰 방진이 구축되고, 남은 이들. 즉, 젝슨을 비롯한 암살자 무리가 거리를 두고 이를 포위했다. 숫자는 척 봐도 쿤 쪽이 열세. 지금껏 사건을 관망하던 각 지역 유력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를 보였다.

“후……후후후. 도망 갈 수 없다.”

“이렇게 일이 잘 풀리다니. 어찌 한 두 번은 피했지만, 이 숫자에는 어쩔 수 없겠지.”

“필그람 공. 선친께서도 함께 나와 있군요.”

“이런 일에 손을 놓고 방관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항복했다 알려진 북부부터 시작해서 남부. 그리고 서부까지.

무리를 이끈다 싶은 이들이 대거 모였다. 차라리 암살에 동조하지 않은 이를 뽑는 것이 더 빠를 지경이었다. 그 동안 의회를 통한 유착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작센 경. 그대의 도움에 감사를 표하는 바이오. 이 정도 숫자면 저놈이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도망가지 못할 테니.”

“……”

“후후. 가책을 느끼는 것이오? 뭐, 이해는 하지만 다들 동의하는 부분이 있지 않소. 뭐하다 온 건지도 모를 저런 놈팡이한테 공화국을 넘겨주면 안 된다는 생각.”

서부의 수장격인 티셀 라온이었다.

최근에 입수한 첩보에 의하면 젠킨스를 해치우고, 그가 다른 무리를 흡수했다고 알려져 있다. 즉, 서부는 그의 주도하에 집중되어 있다는 의미다.

“언제까지 수다만 떨 건가? 저자를 끌어내고 공화국의 기치를 바로 세우게나.”

“군터 필그람. 우리와 함께 하기로 확실히 마음을 정한 거요?”

“흥. 그렇지 않다면 이곳에 나올 이유가 없겠지. 서민을 살핀다 하며 이상한 정책이나 펼치는 저 애송이 보다는 탐욕어린 그쪽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탐욕이라. 듣기 좋은 소리군요. 후후. 북부의 파킨스. 꼬리를 내리고 숨어있더니, 기회를 잡을 생각은 용케 한 모양이군.”

“시끄러워. 우리라고 좋아서 꼬리를 내린 게 아니라고. 저 빌어먹을 놈의 머리를 쳐서, 그간의 굴욕을 갚아 주겠다.”

겉으로 항복했던 북부의 파킨스까지.

계획대로 반란에 몸 담은 이들은 장내에 모두 모였다. 엉덩이가 무거운 이들이 직접 이곳에 참가 할 만큼 이번 일의 유혹이 컸다는 의미다. 공왕 직을 맡고 있는 인물을 쳐내고, 그 위치를 차지하는 일. 직접 오지 않으면 아무래도 무게감이 떨어진다.

‘무대는 완성이 됐군.’

쿤이 품에 안긴 라라를 다독이며 눈을 빛냈다.

자리는 마련되었다. 남은 건 소탕뿐. 턱짓으로 신호를 보내고, 라라의 이마에 짧게 입맞춤을 했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올려다봤다.

“끝을 내자.”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라라.

쿤이 그녀를 놓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하하. 그래도 뒤로 숨지는 않는군. 그 배짱 하나만큼은 인정해 줘야겠어.”

“시끄러워 쥐새끼.”

“……뭐?”

쿤이 양 손을 마주했다.

흰 빛이 새어나와 그의 몸을 뒤덮었다. 날개와 같은 빛 무리가 등 뒤로 솟구치고 찬란한 빛의 문양이 바닥으로 퍼져갔다. 축복을 다루는 것은 굳이 말로 할 필요도 없다. 이단에 타락한 몇 몇이 거부 반응을 보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 숫자는 대략 10% 정도.

대부분이 무리를 이끌고 있는 위치였다.

‘역시 한 번에 뿌리 뽑기로 한 것이 좋은 선택이었군.;

유화정책으로 이들을 받아 들였다면 결국 이단을 공화국 내부에 심어 두는 것과 바를 바 없다. 부작용이 클지라도 한 번에 뽑아내는 것이 가장 좋다.

“본인은 통령의 인가로 직위를 대행하고 있던 바. 통령의 사망이후 그 직위를 양도함이 없었으니, 아직 그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옳다. 그런 본인에게 검을 들이밀고 겁박하려 병력을 몰고 왔다는 건 그대들이 반란을 획책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지?”

“하……하하. 이 미친놈이 높은 자리에 잠시 앉더니 머리가 어떻게 됐구나. 들어라, 이 버러지 같은 놈아. 통령의 위치는 공화국 시민들의 투표로 선출되는 곳이다. 너 따위가 함부로 들어가 앉아도 되는 것이 아니야.”

“그리해서 너희는 검을 들고 나를 쫓으려 한 건가? 그것이 시민의 뜻이라 이건가?”

“큭큭. 우습군. 어차피 무슨 상관인가. 아랫것들의 의지는 우리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인데. 네놈의 목을 잘라내고, 공왕의 자식이었던 계집 중 하나를 취해 적당한 선전만 보태면 어차피 우민들은 좋다고 박수칠 것이다. 어리석은 이들은 그저 이끄는 데로 따라올 뿐이니까.”

반란도 무리 중 이에 동요하는 이는 없다.

결국 이 생각이 그들의 보편적인 상식. 한때는 귀족으로. 지금은 지방 권력과 결탁한 특권 무리로. 형태만 바뀌었을 뿐, 전반적인 사고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고 있었다.

“뭐,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한 번도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은 것들이 삶을 이해 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흥. 죽기 전 마지막 말이냐?”

“아니. 너희의 모습을 거울로 삼아, 내 앞일을 바르게 하고자 한다. 그러니 구시대의 산물이자, 병폐. 악취 나는 쓰레기들은 오늘 이곳에서 모두 죽어라. 그 원한은 내가 짊어지고 가 주마.”

“무슨 개……”

서걱—!! 푸욱!!

쿤의 신호와 동시에 젝슨이 움직였다.

병사들을 휘몰아쳐 주변 이들을 공격한 것이다. 축복의 영향을 받고 있는 그들은 평소보다도 강력한 바. 기습의 묘리를 취한 상황에서 받아 낼 적은 없었다.

“무, 무슨 짓이냐!?”

“나는 공화국을 위해 사는 자. 옳은 곳을 위해 검을 쓰겠다!”

“젠장!! 막아! 그리고 저 빌어먹을 놈을 죽여!!”

전투가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젝슨이 이끌고 있는 수도 방위군과, 세이혼의 하푼. 그리고 쉔을 비롯한 검수 몇 명과 쿤 일행. 이 정도가 아군이라 부를 수 있는 전부였다.

반면 상대는 각 지역 정규군과 이단의 영향을 받은 병사. 그리고 암살을 위해 특별하게 차출한 전력이 있었다. 숫자로 봐서는 쿤 쪽이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쿤은 걱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접근을 전부 허용한 것이 이런 상황을 유도한 것이니까.

“일어나라.”

하카림의 둥지에서 구해온 광물과 골렘 제작 기술. 그리고 번쩍이는 광물 하나에 좋다고 껄껄 거리는 드워프들이 만났다. 결혼식이 있는 그 날까지 이들이 대체 뭘 하고 있었겠는가? 바로 부족한 병력의 충원이었다.

드드드드—!!!

결혼식이 열리는 왕성 주변 지면이 통째로 갈라지며 백색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과거 만들어 두었던 것을 더욱 개량한 버전이다. 빠르고 강하며 재생력이 뛰어나다. 게다가 성물에 혼의 집결을 시도하여 높은 자율성을 부여. 쿤이 가진 기술과 세이혼의 기술. 심지어 쉔의 기술까지 어느 정도 흡수를 하여 사용 할 수 있었다.

“으아악! 이, 이건 뭐야!?”

“젠장!! 검이 안 들어가!!”

“마, 마법사! 좀 막아 보라고!!”

외곽 병사들이 단번에 쓸려나갔다.

마법사들이 장막을 펼치고 불의 길을 불러보지만 소용없었다. 백기사의 항마력은 대단한 수준이라 지속형 능력으로 이를 제지 할 수 없었다.

“젠장!! 발동시켜!!”

그 순간, 반란도의 무리 중 일부가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포기를 위한 자살? 아니다. 이단의 힘을 생존본능으로 발동. 그 위력을 증폭시키는 방법이다. 쿤은 일전에도 한 번 상대해 본 경험이 있다. 단 한구였음에도 위력이 굉장했는데 지금은 숫자가 대략 50에 달하고 있다.

‘보인다.’

쿤이 한 걸음 더 나섰다.

통안을 통해 요동치는 힘이 보이고 있었다. 도화지 위로 물감을 마구잡이로 뿌린 것 같다. 붉은 색, 푸른 색, 검은 색. 색색이 넘치고 화려하게 소용돌이 쳐, 그 본류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그 가운데서 이단의 변이를 정확하게 읽어냈다.

뚜렷하게 솟구치는 칠흑의 기둥. 음습하고 눅눅하며 농밀한 기운이다. 그만큼 강력하여 뚜렷하게 통안에 잡혔다.

그리고 곧이어 다른 색들이 지워졌다.

무색의 배경위로 이단의 기운만이 남았다. 너무 뚜렷하여 주변의 것들이 전부 사라진 것 같았다. 예리하게 선 감각은 미세한 떨림과 흔들림. 힘의 방향까지 전부 읽어 주었다. 이것은 히어로 메이커 모드 당시 느끼던 감각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아니, 그보다는 조금 낮은 수준인가?’

모드의 발동도 없이 그 경지에 발을 들이밀고 있었다.

마치 신이 된 것 같은. 세상 모든 것을 손으로 쥐락펴락 할 수 있을 것 같은 감각. 몸이 붕 뜨고 우주 어디론가 날아 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희미하게 느껴지는 다른 감각에 한 걸음 물러날 수 있었다.

돌아보지 않아도 그것이 누구의 기운인지는 알고 있다. 이제 막 결혼했는데, 남편이 자기 좋다고 저 멀리 날아가 버리면 꼴이 참 우습다. 신의 경지도, 초월의 감각도 사랑스러운 신부보다 나을 것이 없다.

세상살이 순간이고, 시간 앞에 부질없다 하지만 그 찰나를 누리는 것이 인간이다.

초월의 세계는 다시 현세로 돌아오고, 감각은 조금 더 무디어진 상태로 복구되었다. 아쉬움은 없다. 이것이 선택이니까.

“남의 결혼식에 이런 행패라니. 대가는 목으로 받아내 주마.”

움켜쥔 아쿤을 통해 의식이 전달되었다.

빛이 폭발하여 성검으로 현현하고, 아랑겔을 통해 빨아들인 힘이 세계를 양단하는 권능으로 발현되었다.

굳이 초월적인 세계에 몸담지 않아도, 지금의 이 순간.

쿤은 충분히 신과 같았다.

백광이 장내를 가득 메워갔다.

#

***

아노스력 614년.

공왕파와 의회파의 대립으로 시작되었던 공화국의 내전은 그 날의 빛을 기점으로 완전히 종식되었다.

내무대신과 시민들의 절대적 지지 하에 통령 자리에 오른 것은 쿤 타이라는 남자.

그리고 그의 아내는 라라. 전대 공왕의 딸이자 제국 황제의 손녀였다.

그 동안 형식적으로 이어지던 공화정은 그의 주도하에 개혁이 시작.

찬란한 빛이 공화국 앞에 펼쳐져 있을 거라 사람들은 기대하였다.

하지만 내전의 종식을 알리고 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

제국의 사절단으로 떠난 쿤 통령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제국에서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제국을 뒤덮고, 세상을 검게 물들인 그 이름조차 없는 존재의 등장과 함께.

***

탁. 죠엘이 경전을 덮었다.

“……이게 정말이야?”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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