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94화 (194/240)

황제의 미궁

며칠간을 머무르며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쳤다.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타진했다. 국가 별 기술이 총동원되어 지역을 분석했다. 경계선이 그려지고 등고선 및 해안선이 정립되었다. 전날보다 금일이 선명하고, 내일은 조금 더 분명한. 시간이 지날수록 지도는 상세해져갔다.

“게이트로 링크 된 위치가 어느 정도 일치성을 띄는군요.”

“확실히. 지역적으로 구획화 되어 게이트가 분산되어 있어. 이건 아무리 봐도 랜덤이 아니야.”

인접한 게이트들은 연결된 지역도 인접해 있다.

바로 옆, 하루 이틀 걸어서 찾아 갈 정도는 아니지만 분명 지역적 분류는 확실해 보였다. 전체 축적을 고려하여 그 분포를 그려내는 것만으로도 아노스의 전체 크기를 가늠하는 것이 가능했다.

“랜덤이 아니면 게이트 분포에 목적성이 있다는 말인가요?”

“만약 다른 나라와 가교를 연결한다면 어떤 점을 고려하겠어?”

“지리적 편리성. 문화적 유사성. 그리고 유통에 대한 이득 고려? 이 정도가 될 거 같네요.”

“얼추 내 생각도 비슷하다. 아노스와 우리 세계를 연결하는 게이트라면 그 구멍을 뚫는 것이 쉬워야 할 테고, 연결이 위험하지 않아야 하며, 개척자들의 유동이 손쉬워야 하지. 하지만 나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라. 으음. 저는 잘 모르겠네요.”

“비약일수도 있지만, 어쩌면 밸런스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

“밸런스?”

뜻밖의 단어에 죠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밸런스. 말 대로 균형을 의미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일전에 머리를 스쳐간 기판과 전류에 대한 단상 때문이다. 두 세계를 기판으로 두고, 게이트를 전선으로 본다면 그 사이를 유동하는 개척자들은 전류가 된다. 만약 게이트가 한 곳에 밀집되어 있거나 균형에 안 맞게 배치되어 있다면 전류의 흐름은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균형을 맞춰 전류의 흐름을 조정하는 것이 기판을 잘 관리하는 방법.

조금 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큰 교각을 지탱하는 다리와 같다.

골고루 퍼져서 배치되어야 다리를 온전히 버틸 수 있는 것. 한 쪽에 쏠려있는 기둥으로는 교각의 하중을 버티지 못해서 무너지고 만다.

“게이트가 있는 지역을 모아서 표시를 해 봐. 이 넓은 곳에 퍼져있음에도 특별히 군집되어 있다고 할 만 한 곳이 없어. 적당한 수준으로 나눠서 배치한 것이라고 봐.”

“……누가요?”

“글쎄. 그걸 안다면 우리가 왜 이런 걸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겠지.”

시선을 다시 돌려서 화면을 살폈다.

미네소타 주에 나타난 게이트 지역의 상세 정보가 나오고 있었다. 주변의 지형. 기점으로 삼을 수 있는 특이한 장소 등을 눈에 담아 두었다. 대충의 위치는 이미 파악한 바. 자세한 정보를 얻어내는 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역할이었다.

……쿤. 교대다.

#

희미한 빛이 눈두덩이 위로 떨어지고, 솔잎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바람인가? 시원한 감각에 손끝이 가볍게 움직였다. ‘이제 좀 정신이 드세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 익숙한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머리가 좀 먹먹한 것이 오랫동안 잠을 잔 것 같았다.

힘겹게 눈꺼풀을 밀어내며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정신이 들어요?”

“……여왕.”

“휴. 다행이군요. 치료가 됐다고는 하지만 인간에게 사용하는 건 처음이라 걱정을 많이 했어요.”

무슨 소리인가 싶어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다시 한 번 바라봤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샘의 한 가운데, 둥둥 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전신을 감싸고 있는 차디찬 샘의 물. 허나 묘하게도 이질감이 전혀 없었다. 마치 봄바람 불어오는 들판 위에 한적하게 누워있는 것 같았다.

“일어났군. 걱정했네.”

“세이혼. 자네가 어떻게 이곳에?”

“자네가 주시하라던 서부 연맹군 말일세. 어쩐 일인지 갑자기 내분이 일어나더니, 말머리를 돌려버렸네. 혹시 기만책이지 않을까 싶어 유심히 살폈는데, 확실히 이쪽을 노리는 움직임은 아니었네. 날랜 애들을 뽑아 척후로 보내 두었으니, 이상이 있다면 따로 보고를 전해 올 거야.”

서부 연맹군.

쿤은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연맹군을 맞이하여 출병하였다, 숲의 여왕이 위기에 빠진 걸 알고 난입. 그 과정에서 오리쥬와 타락한 고신의 일부를 맞이하여 싸우고 난 뒤 징벌의 여파로 기절했던 것이다.

‘굉장히 긴 시간이 지난 거 같군.’

몸을 바로해서 샘에 발을 대고 섰다.

깊지 않아 물은 가슴팍에서 찰랑거렸다. 그러고 보니 이 샘을 두고 여왕은 생명을 늘려주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샘에 통째로 들어와 목욕을 하고 있다. ‘치료를 위해 나를 이곳에 두었군.’ 생각이 미치니 고마운 감정이 생겼다. 신성시 하는 샘이라면 아무래도 개방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테니까.

“여왕, 신세를 졌군요.”

“아니에요. 당신 덕분에 숲은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숲에 사는 모든 존재를 대표해서 제가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여왕이 샘 위에 발을 올리고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찰랑이는 물이 그녀를 감싸고 은은한 빛을 흘렸다. 신비하고 아름답다. 힘이 회복되지 않아 아직 아이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여왕의 위엄은 확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보다, 은인이시여. 그대에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탁?”

이제 와서 또 무슨 부탁이 있을까?

샘 안을 걸어 밖으로 나왔다. 물기가 뚝뚝 떨어졌지만 힘을 운용하자 금세 날아갔다. 전투의 후유증은 딱히 남아있지 않았다.

“이들에 대한 겁니다.”

여왕이 손짓을 하자, 나무 넝쿨들이 주르륵 밀려나더니 숨겨져 있던 공터를 드러냈다.

그 안에는 그로울을 비롯한 몬스터들과 앞서 함께 싸웠던 쉐이드가 숨을 죽인 채 있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그들을 묶고 있는 듯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이들을 어째서 잡아두고 있는 겁니까?”

“숲의 지배력이 떨어지고 난 뒤 다시 본능으로 돌아가는 것을 억지로 막았을 뿐입니다. 사악한 몬스터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함께 싸운 공이 있으니, 함부로 처리하지도 못하고 이대로 묶어만 두었습니다.”

“제가 이들을 처리해 주기를 바라는 겁니까?”

“네. 그대라면 할 수 잇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녀뿐이 아니다.

요그문트를 비롯한 엘프들과, 디-오와 같은 숲지기들도 하나같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고 있다. 지난 싸움의 결과로 그들은 쿤을 마치 신의 사자와 같이 보고 있다. 특별히 틀린 말도 아니니 이 시선을 받아내기가 난감하다.

쿤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망령제어로 다루는 건 무리겠지? 그냥 이대로 잡아다가 다른 곳에 풀면 되려나?’

어차피 몬스터와 악마 무리니 풀어두면 알아서 본성대로 움직이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결국 또 숲 안에서 엘프나 숲지기들과 충돌을 하고 만다. 어차피 그렇게 사는 게 자연의 섭리임은 알지만 힘 모아 싸운 정이 있는지라 그렇게 두기에는 조금 아쉬운 감이 있었다.

‘아……’

그러다, 쿤이 머리를 툭 치고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문양을 두드려 창을 열었다. 신은 항상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도 예견하셨을 터. 분명 무언가 도움을 주셨음이 분명하다.

‘역시!’

***

테이밍

소유자의 지적수준보다 낮은 생명체를 테이밍한다.

성공확률은 지능의 차이, 위압정도, 정신 상태에 의거한다. 실패 시 대상 생명체는 광포화 하며 소유주를 공격한다.

***

과거 제국에 테이머라는 직업이 유행 한 적 있었다.

야생동물이나 몬스터를 조련해서 무기처럼 사용하는 이들이었다. 성공하면 경험 많은 용병보다 나은 전투력을 보이기 때문에 각광을 받은 적이 있으나, 워낙 성공률이 낮고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한 차례의 유행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설명대로 확률이 조정되는 거라면 쿤에게는 큰 위험이 없다.

그리고 신이 내려주신 스킬이라면 이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

그가 손짓으로 여왕을 물리고는 공터로 걸어가 몬스터들 앞에 섰다.

“테이밍.”

능력이 발휘되고 미묘한 기운이 뻗어나가 눈앞의 몬스터에 안착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통안의 능력 덕분인지 분간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망령제어랑 비슷한 계통이라 차이는 미미했다.

하나의 가닥을 여럿으로 나누어 주변 몬스터들 전부에게 전달했다.

순식간에 장내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과 연결되었다. 그들의 본능이 뚜렷하게 전달되었다. 못해서 이백은 되는 숫자니 만만치 않은 양이겠지만 어쩐 일인지 그리 부담은 되지 않았다. 워낙 큰 것들과 싸운 터인지 대수롭지 않았다.

‘엎드려라.’

명령을 내리자 몬스터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허공에 둥둥 뜬 쉐이드는 명령에 저항하며 쿤을 쏘아봤다. ‘악마라 그런 건가.’ 쿤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내게 복속되기를 거부하는 건가?”

“……악마로서의 자존심이 있다. 위기에 손을 잡았다 한들, 인간 아래에 들어간다면 그것 또한 치욕이겠지.”

“흐음. 그렇다면 인간 이상이라면 어떠한가? 이미 보고 경험하지 않았나?”

“그렇다 해도 네가 인간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나를 풀어 주어라. 숲의 그림자로 돌아가 본래의 삶을 영유하겠다.”

“뭐, 그래도 좋겠다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힘을 틀어 쉐이드를 옭아맸다.

그리고 망령제어로 그를 제압했다. 더불어 의식의 검을 운용하여 내 의지를 그에게 투사하였다. 빛 무리가 쉐이드의 몸을 감싸고돌았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악마의 본성을 거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오리쥬와 고신의 일부를 처단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이 숲에는 그리자가 남아 있어. 타락하기 쉬운 몬스터들을 그냥 풀어 둔다면 여왕과 엘프 들이 고생하겠지.”

“이들을 방해하지 않겠다! 악마의 이름으로 약속을 하마!”

“나는 믿어. 그런데, 왜인지 믿지 말라는 충고가 귓가를 감도네.”

“그게 무슨 헛소리……”

쿤도 잘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대화는 이것이면 충분하다. 무한의 주머니를 열어 백기사를 뽑아 올렸다. 결집된 혼을 꺼내, 풀어낸 뒤 그 안에 쉐이드를 집어넣었다. 쉐이드는 혼과는 다르고 일반 몬스터와도 다르다. 그렇기에 둘을 같이 사용하면 제어가 가능했다.

“이제부터 네게 이 지역 몬스터들을 관리하는 권한을 내리도록 하마.”

“……무슨 생각이냐, 인간!?”

“어허. 주인이라 불러야지.”

“무슨 개……소리를 하십니까, 주인. 젠장! 내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완벽하게 제압된 존재에게는 이런 식의 간섭도 가능하군.”

쿤이 픽 웃고는 힘을 정리했다.

기본은 혼의 결집과 같다. 다만, 부가적으로 테이밍 스킬과, 망령제어 스킬이 들어간 것이다. 골렘 대신 백기사의 몸에 쉐이드가 안착했으니, 이름을 흑기사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걸 이렇게 하면……”

이번에는 테이밍 스킬로 연결되어 있는 힘의 고리를 쉐이드로 건넸다.

몬스터의 지배력이 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버틸 수 있나 싶었는데 박아 둔 성물의 영향인지 나름대로 잘 견뎌 주었다.

“이건……”

“감이 오나? 이제부터는 네가 이 숲의 몬스터들을 좌우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 남은 놈들이 더 있겠지만 정신체인 악마라면 응용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

“으음……인간이 이런 게 가능하다니. 대체 네놈은 뭐하는 놈이냐?”

“글쎄.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쿤이 고개를 돌려 여왕을 바라봤다.

그녀는 굉장히 놀란 얼굴로 보고 있었다. 마치 장난하듯 몬스터를 제어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능력. 사실 쿤조차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 흐름에 놀라고 있는 중이다. 마치 몇 번이나 연습을 해 보고 온 거 같으니까.

‘신의 은복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결론이 참 쉽고 간단하다.

생각을 굴려서 정리를 하고는 여왕을 향해서 말을 했다.

“그럼 뒤처리를 해 볼까요?”

여왕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

일단 병력을 취합하여 부상자를 치료하고 사망자를 수습했다.

전투는 격렬했고, 아무리 잘 맞아 싸웠다 해도 피해를 전혀 안 받는 건 무리였다. 끌고 온 병력 중 40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 중 대부분은 여왕의 도움으로 상처를 치료 할 수 있었지만, 아예 소생이 불가능한 상처를 입어 유언 몇 자락을 남긴 채 죽어간 이들도 있었다.

슬펐다. 누군가의 죽음은 누군가의 상실로 찾아온다.

원정은 쿤이 요구한 것이었고, 숲에서의 싸움은 결국 그 자신의 목적을 위함이었다. 비록 이단을 상대하는 것이 대륙 전체의 평화를 위해서라 하더라도, 내용은 바뀌지 않는다. 죽음과 상처. 고통과 아픔은 결국 선두에 선 자가 지고 가야 할 숙명이었다.

쿤은 여왕의 허락을 받아 추모의 제단을 마련했다.

죽은 이들을 기리고 그들의 용기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슬픔은 술 한 잔에 희석시키고, 용기를 칭송하는 것으로 속을 달랬다.

검을 들고 전장에 나서는 자는 항상 알고 있다.

그 최후와, 마지막에 보는 하늘의 풍경을. 누군가 이렇게나마 뒷일을 챙겨준다는 것은 피 흘린 눈망울 속에서 기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추모의 제를 마친 뒤, 쿤은 병사들을 쉬게 하고 여왕을 쫓아 셈의 후편으로 이동했다.

숲에서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리자다. 예초 서부 연맹의 진군 역시 그리자를 탈취하여 자신들이 가지려는 목적이었던 바. 커멘더인 오리쥬가 죽고 난 뒤, 사분오열하여 흩어졌지만 중요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이곳입니다.”

셈의 뒤쪽. 작게 솟은 암벽 안쪽으로 숨겨진 통로가 있었다.

그 안으로 계단이 연결되어 지하 암실로 이어져 있었는데, 그 규모가 상당했다. 여왕이 설명하기로 이곳은 숲을 위해 목숨 바친 엘프와 숲지기 들이 영면에 드는 장소라 하였다. 즉, 무덤이라는 말.

“쿤. 쿤. 힘이 느껴져.”

“나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 무덤의 주인들이 그리자를 지키고 있었다.

쿤이 아도란 등과 지하로 내려가 가장 처음 본 장면은 회백색 안개가 거대한 돌의 첨탑을 휘감고 있는 모습. 돌이 그리자임을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았고, 회백색의 연기가 이를 견제하고 있음을 눈치 채는 것도 그리 긴 시간을 요구하지 않았다.

“저 혼자 지킬 수 없어, 무덤의 영령들을 불러와 이곳을 봉인했습니다. 허나, 그것도 완벽하지 않아 균열이 생겨갈 즈음, 프리실라 양이 시간의 봉인을 요구하였고 우리는 그것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알다시피……”

“내부의 배신으로 실패를 했군요.”

“네. 지금은 일단 오리쥬가 죽고, 고신의 일부가 사라져 그리자의 움직임이 줄었다고는 하나 영원할거라 생각하기는 힘들군요. 은인이시여, 당신에게 무슨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방법이라.’ 쿤이 작게 중얼거리며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엘프와 숲지기들의 영령들은 쿤을 알아 본 건지 좌우로 나뉘며 길을 열어 주었다. 흐리게 보이던 그리자가 선명해지고, 이단 특유의 혐오감이 쿤을 흔들었다.

‘하카림의 둥지 역시 지속적인 정화를 해야 하는데, 내가 여기서 계속 머무를 수는 없어. 축성지만 깔고 물러나도 될까? 하지만 그러다가 다른 타락자가 생겨나면 곤란한데……’

생각이 복잡해졌다.

하카림의 둥지 하나만 있을 때야 지속적인 정화 작업을 하면서 이단의 영향력을 컨트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둘이다. 여왕과 영령의 힘으로 방어를 한다고는 하지만 오리쥬의 경우처럼 내부에서 타락자가 또 다시 생겨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둘 다를 관리 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다.

‘아도란까지 이곳에 남겨서 마법사들의 힘으로 방어를 시켜야 하려나? 하지만 서부 연맹의 문제도 있고, 이들만으로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사분오열하여 물러난 서부 연맹이지만, 그 지도자들에 타락한 이들이 있다는 것은 이미 사실로 밝혀졌다. 그들 중 일부만이라도 다시 숲으로 움직이면 상황이 또 개판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는 바. 어느 것을 고려해도 상황을 쉽게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날 부르게.

“응?”

그 순간.

묘한 목소리가 쿤의 귓가를 때렸다. 설마, 신의 부름일까 싶어 집중해 보았지만 기런 기색은 없었다. 이건 조금 다른 형태의 목소리.

……내 이름을 불러주게.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리고 쿤이 손뼉을 치며 깨달았다. 이 목소리의 주인.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사라지기 시작한 옛 신의 유언.

‘이름을 정하라 이거지.’

이름을 불리니, 생명을 받는다.

이름이나마 남기고 싶다던 고신의 유언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직접 목소리를 건넬 수 있는 건 신의 도움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지금은 그의 마지막 유언을 들어주는 것이 좋을 거 같다.

쉐이드를 끌고 격전지로 이동했던 그 순간처럼.

지금의 이 결정 하나가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플루톤. 그대의 이름은 플루톤이다.”

어릴 적 어디선가 들었던 이름.

쿤의 입에서 불쑥 그 이름이 튀어나왔다.

※작가의 말

* 집에서 키우는 개가 변비로 고생을 하더니, 이번에는 장염이 걸려서 고생입니다.

힘이 없어서 축 늘어졌는데, 밥도 안 먹고 걱정입니다 ㅡㅜ

날도 더운데 크게 탈이날까 걱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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