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93화 (193/240)

“미궁?”

싸움이 끝나고 난 뒤.

아르톤을 굴복시키고, 정보를 취득 할 수 있었다. 굴욕적인 표정을 짓지만 낙인을 거부하지는 못했다. 악마를 품 아래 둔 용사라니. 이거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렇다. 게이트 너머에 존재하는 미궁을 탐사하기 위해 인력을 모은다고.”

“흐음.”

차남혁이 미국으로 이동하는 건, 미네소타주에 있는 게이트를 사용하기 위함이다.

암암리에 모이는 개척자의 숫자가 네 자리에 달하고 있다. 그 정도의 인간이 동시에 게이트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바로 미궁이라는 것을 탐험하기 위해서.

“미궁에 대한 정보는 더 없는 건가?”

“흥! 그걸 알아보려 했는데, 네가 부른 것 아닌가?”

“이런, 일 잘하는 사원을 그만 불러오고 말았군. 하지만 그 사원이 거짓말로 보고서를 올리면 내가 그냥 둬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 땅에 묻은 채 시멘트를 부어야 할까?”

“……솔직히 말해라. 네놈도 어딘가의 악마왕이지?”

“하하. 어쩌면. 잡소리는 됐고, 그만 가서 남은 정보나 더 알아봐라.”

아르톤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쏘아봤다.

하지만 낙인은 악마왕의 권위보다 훨씬 윗줄에 있다. 이내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의 한 부분으로 사라져갔다.

“그럼……”

미궁이라.

나도 따로 정보를 취합해 볼 필요가 있을 거 같다.

#

고무식을 비롯하여 각계에 퍼져있는 타 신의 신도들.

그리고 하퍼를 비롯하여 내게 협조를 해 주는 인사들.

가용 할 수 있는 인력은 총 동원해서 정보를 모았다.

특히, 하퍼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가 가진 미국 내 정보력은 굉장한 수준이 아니었다. 이단에 대한 내용을 흘리고, 대비를 위한 협조를 요구했더니 전력을 동원해서 정보를 빼내왔다.

취합과 분류. 그리고 사실 확인은 고무식의 일이었다.

그는 정보를 담당하는 신의 사도. 전체 정보량이 부족해서 하퍼에 밀린 것이 조금은 분했던 모양이다. 난잡하게 들어온 정보를 죄다 모아서 알짜들을 추려내고, 현재 돌아가는 정세와 비교하여 신뢰도 높은 것들을 정리했다.

“황릉? 진시황릉 같은 거?”

“거의 99% 확실해. 비공식 루트로 게이트 물자가 국방성으로 들어갔거든. 지금껏 출토되던 것들과는 형태가 달라. 세월에 삭혀져 있지만 그래도 형태가 온전한 예술품 등이 나왔거든.”

“지적생명체가 존재했다는 증거인가?”

“그렇지. 그리고 주변의 환경을 고려하며 이렇게 견론을 내리고 있더군. 누군가 문명을 보존하기 위해 지하에 피신처를 세웠다. 하지만 나가지 못하고, 이는 무덤이 되고 말았다.”

황릉이 있는 지역 넓은 영역에서는 광물과 흙. 지적 생명체가 살았다는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에 숨겨진 릉에서는 증거가 출토되었다. 이는 어떤 재난을 피해서 지하로 대피했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이를 이단과 결부해서 생각해 보면 대충 이야기가 완성된다.

릉의 주인은 이단의 오염을 예측. 미리 지하 토굴을 파 문명을 보존하려고 한 것이다. 비록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 지금에서는 무덤이라 불리게 되었지만, 그 행동 자체만은 훌륭하다 할 수 있다.

누굴까?

고무식이 황릉이라 말 할 만큼, 출토된 물건의 면면이 대단하다. 게다가 형태나 규모 등이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영역의 것. 즉, 강대한 권력자가 이를 주도하여 처리했다는 말이 된다.

몇 명 짚이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다.

“황릉에서 대체 뭘 하려는 걸까?”

“글쎄. 정말로 그곳이라면 보물찾기를 하려는 걸지도 모르겠군.”

“보물이라. 우리가 생각하는 보물이라면 이미 밖에 널려 있는데 말이야.”

“……아마도 그 이상.”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미국으로 집결 될 만큼.

매우 중요한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말이겠지.

#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조사팀의 팀장을 맡게 된 베이먼이라 합니다.]

며칠 후, 조사팀이 모였다.

나는 죠엘의 보조로 팀에 합류했다. 각국에서 모인 게이트 전문가들이 가득했다. 게이트 관련 이상 현상이 속속들이 보고되고 있는 바 어설픈 사람을 보내지는 않았다. 이 중에서 출신이 가장 어설픈 사람을 뽑자면 아마도 나겠지.

[컨퍼런스 룸에서 1차 브리핑이 있을 예정입니다. 배정된 방에 짐을 푸시고 난 뒤, 3시까지 모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각자 배정된 방으로 흩어졌다.

내 방은 죠엘이 사용하는 방 바로 옆. 그리고 나란히 한국의 사람들이 방 3개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번 조사팀에 포함된 한국인은 전부 다섯. 그 중 둘이 나와 죠엘이다.

“그러니까 황릉 주변의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이거죠?”

“주목적은. 차남혁이 그곳을 탐사하려고 한다면 무언가 중요한 게 있다는 얘기야. 내가 그 위치를 미리 알아 낼 수 있다면 쿤을 통해서 선점이 가능하겠지.”

“으음. 하지만 아노스의 측량법은 그리 발달되어 있지 않잖아요. 우리가 지형을 파악해도 그쪽이랑 맞출 수 있겠어요?”

“하는 대로 해보는 수밖에. 만약 정 소득이 없다면, 아예 그쪽 게이트를 노려야지. 게이트에 접촉하고 있을 때라면 무방비 상태가 될 테니까.”

“……그러면 테러범으로 찍힐 텐데요?”

“그러니 이번에 소득을 챙겨야지.”

저격총을 구해서 공중 저격을 해보는 것도 답일 수 있다.

하지만 차남혁이 게이트에 접촉을 한다고 해서 다른 이들까지 전부 무방비에 빠지라는 법은 없다. 더군다나, 그가 언급한 ‘그분’이라는 존재. 예상하지 못한 적과 조우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

위치를 찾고, 쿤으로 선점을 하여 적이 노리는 것이 뭔지를 알아내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이번 조사팀 활동이 중요하다.

쾅쾅쾅.

“어이, 아직 멀었나? 다른 이들은 다 내려가고 있다고.”

“에잉. 이래서 우리 애들 중에 하나 뽑아 오자고 했는데 말이야.”

보조팀 일원으로 죠엘을 따라 온 나를 사람들이 고깝게 보더라도.

챙길 건 챙겨야 한다.

#

조사팀은 각국에서 수집한 게이트 너머의 맵 정보를 공유했다.

시간별로 탐사한 영역은 방대한 양이었고, 이를 전부 취합하여 전체 지도를 만드는 것도 꽤나 긴 시간이 요구되었다. 그 사이, 관련 인사들은 개인적인 정보를 주고받았다. 주로 게이트 너머의 환경과 대응책. 발견되는 물건들의 종류와 그 환경에 대한 고찰 등이었다.

나는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았다.

일단은 위치가 보조니까. 다만, 죠엘 뒤를 쫓아다니며 주고받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죠엘은 연구팀의 일원으로 꽤나 명성이 높았다. 그녀는 각 지역 출토품들의 환경 분석과 문명화에 대한 논문으로 이목을 끈 적도 있었다. 각 명사들과 이야기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모여 있는 이들 중 이단에 노출된 사람이 제법 있다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400명 가량의 조사팀 일원 중 40여명 정도의 이단의 냄새를 풍겼다. 꽁꽁 싸매고 있는 이들이 있을 수 있으니,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이들의 목적이야 정확하게 모르지만 눈여겨 볼 필요는 있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움직이는 건 안 된다. 이곳에 참여한 건 죠엘과 나. 연류된 건 하퍼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이 고리 전체가 걸릴 위험성이 있었다.

“준경 씨. 맵이 완성됐다고 하네요.”

죠엘의 부름에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대한 지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중간중간 정보가 없는 지역은 검게 표시되고 외곽지역. 경계가 불분명한 구역은 안개처럼 흐리게 표시를 했다. 하지만 이렇게 놓고 보니 한 세계의 진도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으로만 판단하자면 지구의 10%정도 되는 크기군요.]

[하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위치가 있으니, 커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어요.]

[흠. 그걸 포함한다고 해도 절반 이상은 넘지 않을 거 같습니다.]

[그건 동의합니다. 그럼 이곳에서 변화 된 위치를 표시해 보도록 하죠.]

띡띡. 기계음과 함께 화면에 붉은 색 빗금이 처지기 시작했다.

기존 정보 대비 지형 변화가 나타난 장소들이다. 하나 둘 빗금이 쳐지더니 꽤나 많은 지역에 표시가 되었다. 산이 나타났다는 큰 이야기 말고도 소소한 변화가 상당히 많았던 것이다.

[일단 표시 된 지형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내 빗금 친 지역의 세부 정보가 화면으로 출력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눈에 불을 키고는 화면을 살폈다. 지형이라는 것은 사실 특징이 없는 하에는 그게 그거다. 산이면 산이고, 들이면 들. 그 작은 차이점을 읽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지금 이 지형이라는 것은 쿤이 있는 시대부터 훨씬 먼 훗날의 모습. 그 사이에 변화된 점도 무시 할 수 없다.

……낮은 구릉. 넓게 퍼진 호수와 들판.

화면이 넘어가면서 익숙한 것들이 조금 있었다.

자기엘카 항구를 넘어오면서 확인했던 부분. 검게 물든 지역이 해수면과 닿아 있으니, 아마 그쪽이 제국에서 넘어 온 바다 지역으로 생각되었다. 즉, 반대쪽으로 빙 돌아 그려지는 대륙이 제국이라는 말.

이렇게 보니까 대충 구성이 그려졌다.

북부 왕국과 소수 민족의 지역. 그리고 아직 한 번 도 가보지 못한 서방 왕국들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큰 그림은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이 최근, 산이 솟아오른 장소입니다.]

하카림을 구하고 난 뒤 되살아난 산.

위치를 딱 보는 순간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공화국 수도와 예전 건국기념일 행사로 사람들이 모이던 구릉지역. 그 중간에 있는 산지다. 봉우리가 손가락처럼 이어지고 있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어디인지 알겠어요?”

“대충은. 저 산지 북쪽으로 이동하면 소수민족이 거주하던 지역의 완충지가 나타나. 그리고 조금 더 구석으로 가면 레스터 요새가 나오지.”

“공화국 경계군요. 그럼 왼쪽에 있는 저 지역이 수도?”

“맞는 거 같아. 하지만 아무것도 안 남아 있다니……”

산의 위치를 파악하며 공화국의 위치도 대충 어림짐작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위치로 파악되는 장소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폐허나 공화국의 잔재조차 없었다. 흙과 돌. 무성하게 솟아오른 수풀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전부 다 쓸렸다는 건가.

이단에 의해서.

그렇게 노력을 했음에도 아직 결과는 변한 것이 없다. 아노스는 결국 이단에 의해서 쓸리고 우리는 여전히 위협을 당하고 있다. 산이 솟고 지형이 조금 변한 것 정도로는 결과를 바꾸지 못한 것이다. 입맛이 조금 썼다.

“근데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왜, 아무것도 없을까요?”

“……음.”

죠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줄곧 가지고 있던 의문이다. 왜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까? 문명이 파괴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흔적까지 전부 지워지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이단에 타락한 자들이 하나하나 전부 부숴 버린다? 납득이 안 가는 일이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 전부 제거를 한 걸까요?”

“이유라. 굳이 문명의 흔적을 지울 필요가 있을까?”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추측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굳이 그럴 이유가 있나? 어차피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는 부분이고. 게다가 이단의 존재들이 확인된 마당에 흔적을 지우는 게 의미가 있을 거라고는……”

말을 하다가 멈칫했다.

굳이 할 이유가 없다.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다. 이단은 욕망에 잠식당하고 종국에는 변이를 통한 괴물이 되고 만다. 그런데, 그 종착역에 기존의 문명을 지워가는 어떤 당위성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마치 종말의 사자처럼.”

“……네?”

“아니야. 만약 그렇다면 굳이 그 사자들이 살아있을 이유가 없어.”

죠엘의 물임에 대답하지 않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태고의 마왕이라는 것이 만약 한 문명의 끝을 알리기 위한 존재라, 그 수단으로 어긋난 탐욕과 변이를 이용하는 거라면 모든 문명이 끝났을 때 사라져야 옳다. 유성으로 공룡의 시대가 멸망했다고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도구로 하나의 일이 끝났다면 쓰임이 다한 도구도 사라져야 옳다.

그래야 다음 시대로의 진전이 가능 할 테니까.

헌데, 그것이 아니라 아직 도구가 세상에 남아있다.

그 말은 쓰임이 끝이 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즉, 이단의 힘으로 처리해야 할 대상들이 더 있다는 것.

덜컹—!

나도 모르게 의자를 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 번에 내게 쏠렸다. 발표를 하던 인물도 말을 멈추고 나를 봤다. 당황스럽다. 하지만 쏠린 시선 때문이 아니다. 내가 한 가정 때문.

이단이 목적을 가지고 아직 살아 있다면 그것은 문명의 제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으로 추정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가정이 옳다는 기반 하에, 이를 거꾸로 말하자면……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

— 라는 결론이 된다.

※작가의 말

과연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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