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88화 (188/240)

쿤은 열심히 나아가고 있다.

공화국을 거의 손아귀에 넣고 주변 잡졸들을 처리해 가는 중이다. 공왕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이상, 쿤이 정권을 잡고 나라를 통째로 휘두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남은 건 그리자를 정화하고 숨어있는 적과 싸우는 일 뿐. 아직 연맹군 같은 문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가 좀 힘을 내 줄 필요가 있다.

게이트 입찰이 진행되기에 앞서서 자금을 마련하는 일은 순조롭다. 신성력을 담은 물건으로 이단에 대항하는 수법도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죠엘을 통해 부지를 구매하고 성물을 물에 녹여 작물을 대량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배경.

시스템을 갖춰도 안에서 굴러갈 사람이 없다면 힘싸움에서 밀릴 위험이 있다. 죠엘이 그렇고, 고무식이 그렇고 혜허 스님이 그렇다. 아노스 세계의 신들은 이단에 밀려 힘을 잃고 이곳으로 넘어와 부활을 원하고 있다. 이단을 몰아내야 하는 나하고는 이해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말.

공통된 적이 있다면 손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다른 신의 사도를 동맹으로 끌어 들이는 것은 그만큼의 리스크를 등에 업는 것과도 같다. 그룹이 커갈수록 제어하기는 어려운 법. 이점을 확실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결국 내부 배신자의 등장이나, 기밀 유출 등으로 내가 파멸 할 가능성이 있다.

“……하하.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당신 밑에 들어가라?”

이를 위해 고무식을 통해 파악된 신도들을 불러 모았다.

전부 세 명. 이미 아는 이들을 더하면 전부 여섯이다. 국내에만 이렇게 많은 숫자가 몰려있는 게 의아하지만 내 감각으로 살펴도 확실히 그들은 일반인이 아니었다.

지금 나를 쏘아보며 말 하는 여성은 하은주.

매거진 채널의 총괄 디렉터이자, CTN의 사장. 국내 방송가를 한 손에 잡고 있는 여제의 이름이다. 쉰이 넘는 나이까지 혼자 살며 일선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고자 하는 전형적인 워커 홀릭형 인간이다.

그런 사람에게 내 밑으로 들어오라 말을 했으니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

침착하게 그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권력. 힘. 돈. 세상을 구성하는 많은 힘들 중 상당수를 여러분들은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품고 있는 신. 그리고 그 신이 몸을 숨기고 도망칠 수밖에 없게 만든 이단의 존재. 지금껏 가진 힘으로는 그 존재에 대항 할 수 없습니다.”

“그럼, 당신은 가능하다는 건가?”

주름 가득한 얼굴과 맞지 않게 체구가 탄탄한 남성, 최민근.

퇴역 장군으로 현재는 국방부 산하 연구소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내가 말 한 현대에서 가질 수 있는 파워 중 하나를 매우 강력하게 틀어쥐고 있는 인물이다.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당신들을 부른 것이죠. 이미 그 정도 사실은 파악하고 있지 않습니까? 김윤선 양?”

“저, 저요!?”

고개를 돌리며 묻자, 앳돼 보이는 여성이 깜짝 놀라며 소리를 높였다.

김윤선. 최근 뜨고 있는 아이돌이다. 동글동글한 외모에 청아한 목소리로 두꺼운 팬 층을 거느리고 있다. 그녀가 모시는 존재는 음악의 신. 내 목소리를 통해 무언가를 읽어내고 있는 건 그녀의 힘이 분명했다.

“어차피 길게 이야기를 해 봐야 서로간의 불신만 생길 거 같군요. 각자의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가능한 방법으로 제 의중을 읽어 보세요. 제가 거짓을 말 하는 건지, 아니면 진실을 말 하는 건지.”

“으음. 윤선아, 어때? 뭔가 읽혀?”

“……네. 일단 거짓말 하는 건 아니에요. 전혀 떨림도 없고.”

“하지만 저자의 능력일수도 있지 않나? 자신의 신을 밝히지 않는데, 우리가 어찌 믿는단 말인가?”

내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한다는 것. 각 신은 저마다의 특징이 있고, 그에 합당한 물건을 남겨 두었다. 나를 제외한 여섯. 아니, 고무식까지 일곱은 모두 그 물건을 공유하고 서로의 힘을 확인하였다.

사정을 다 설명하였음에도 나를 불신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게다가 그 가면. 우리는 다 얼굴을 오픈하고 있는데 자네 혼자만 그렇게 감추고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러게요. 동감하는 바입니다. 지금이라도 그 가면을 벗는 게 어떨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굳이 제가 제 모습을 감추는 건 만약을 대비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이미 단적으로 말씀드렸지만, 이단을 상대 할 수 있는 건 오직 저밖에 없습니다. 일이 틀어지더라도 정체에 대해서는 발각되지 않고 넘어가야 최악을 피할 수 있겠죠.”

“그, 그래도 치사해요. 혼자만 가리고 있다니……”

날카로운 목소리에 부투퉁한 목소리까지.

역시 사람이 늘어나면 하나하나 설득하기 어렵다. 시간이 충분하고 여유가 있다면 진득하니 설득을 해 보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조금 대화 내용을 바꿔 보죠. 제가 한 제안을 물리치고 따로 떠난다 했을 때, 당신들은 무사 할 수 있을 거라 보십니까?”

“……지금 협박하는 건가?”

“사실을 말하는 겁니다. 게이트 공매에 대해서는 들었겠죠? 그곳을 통해 이단의 종자들이 들여오려는 것은 그리자. 즉, 당신들이 품은 신을 이곳으로 내쫓은 존재입니다. 정확하게는 그 안에 든 이단의 힘. 대항 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안다면 이쯤에서 협력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흥. 사실 그 말도 믿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네요. 과연 그 존재가 당신보다 더 위험하다, 어떻게 증명 할 수 있죠?”

그럴 줄 알고 준비해 둔 게 있다.

고무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종종 걸음으로 가더니 방구석에 달린 모니터로 무언가를 연결했다. 그리고 이내, 화면에 영상이 출력되기 시작했다.

“……음? 낮이 익은데?”

화면에는 몇 사람이 모여있다.

최민근이 눈매를 좁히며 그 중 한 사람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게요. 저도 낮이 익은데요?’ 하은주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보냈다.

그러다 김윤선이 손뼉을 짝 하고 치고는 말을 했다.

“저거 차남혁이잖아요!”

“아. 그렇군. 차남혁이야.”

“이건 무슨 영상이죠? 어째서 보여주는 겁니까?”

“조금 더 지켜보시죠.”

영상은 과거 차준혁이 빼돌린 차남혁의 이단 변이 실험이다.

본디, 차남혁을 공격 할 때 대외적인 수단으로 쓰려고 남겨 두었던 것을 오늘 증거로 사용하게 되었다.

“어, 어! 저거 뭐야!?”

“꺅!”

“변이체……”

영상에 빠져드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화면이 돌아가고, 모든 내용이 끝나 재생이 종료되었을 때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셋 다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생각에 빠져들어 있었다.

연결된 장치에서 USB를 빼 내어 흔들며 물었다.

“확인이 필요하신 분은 챙겨가도 좋습니다.”

“으음. 이 정도까지 말 하는 걸로 봐서는 확실 한 거 같군. 차남혁, 그 친구가 그런 일을 꾸미고 있었단 말인가.”

“건실한 총각이라 여겼는데, 의외군요.”

“저, 저는 같이 CF도 찍었단 말이에요. 꺅! 징그러워!”

이 정도면 대충 신뢰도는 확고 찍었겠지.

“차라리 그럴 거면 이 영상을 가지고 차남혁을 구속하면 되지 않을까요?”

비명을 멈춘 김윤선이 철없는 말을 했다.

하은주와 최민근이 동시에 고개를 흔들었다. 나라고 왜 그런 생각을 안 해 봤을까? 하지만 영상 하나로 차남혁을 찍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되레 역풍을 맞기 쉽다. 노골적인 공작으로 찍혀서 인민재판 당할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한다.

‘이름 없는 자’로 차남혁을 경고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 기반층에 있는 차남혁을 신뢰하는 자들이 상당수다. 즉, 사기를 치는 것이 내 쪽이고, 차남혁이 이에 대항하는 정의의 입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약이라는 것도 전부?”

“오래 전 청나라로 들어온 아편과 같다 보면 되겠죠. 당장은 효과가 있어 보일 겁니다. 그리자에 포함된 이단의 비율을 조절하여 그렇게 보이도록 했으니까. 하지만 중독이라는 것은……”

“된 후에는 늦는다 이 말이군.”

“맞습니다. 그리고 차남혁은 국내뿐만이 아니라 타국과의 연계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잠잠하지만 과학력을 바탕으로 이단의 종자들이 쏟아져 나온다면……그때는 무슨 수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셋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이 정도면 충분 할 거 같다. 눌러 두었던 기세를 한 번에 확장하면서 또렷하게 물었다. 만약, 이것도 거부하고 증명 따위를 나불거리면 이제부터는 힘으로 찍어 누를 셈이다.

“제 밑으로 들어오겠습니까?”

두 당 일만.

나도 손해 보는 장사라 이거야.

#

***

이름 : 한 세주(Lv2) 종족 : 인간

세력 : 친화(100%)

힘 : 7 민첩성 : 9

체력 : 8 지능 : 12

***

아군을 포섭했다면, 이제는 게이트에 들어갈 인원이 필요했다.

공매가 이제 곧 시작된다. 자금력은 상대가 가능한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만 절대적인 개척자 숫자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간단하다. 만들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미 세주의 일로 반쪽짜리 개척자를 개화시킨 경험이 있다. 이미 포섭한 이들에게는 신성력이 담긴 물건을 선물하며 친화력을 올렸다. 위치를 점하고, 세력을 나누는 것이 싸움을 위한 준비 과정. 내 행보도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대충 2%정도 인가……”

그렇게 개척자의 확보와 친화도 작업으로 열을 올리고 난 지 보름 정도가 흘렀을 무렵, 대충의 숫자를 셈 할 수 있었다. 알려진 개척자 중 내가 보유한. 그리고 보유하게 될 숫자는 전부 2% 남짓이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전부 적의 세력인가?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중립이겠지. 남은 이들이 전부 이단에 의해 타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이미 차남혁의 회사에 소속되어 그의 영향을 받는 이들은 어렵다고 보는 것이 옳다.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사람이라면 어지간히 의지가 굳지 않은 이상 버티기 어렵다. 내가 생산하는 음식이나 물 등을 마신다 해도 그건 마찬가지.

“후.”

머리를 꾹꾹 누르며 의자에 등을 깊이 묻었다.

앞일을 생각 할 때면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후퍼와 함께 지인을 보호 할 로봇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고, 농산물을 비롯한 사업 계획도 이제는 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숫자가 늘어나 있다. 어떤 때는 다 감당하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이 많아졌다.

“스트레스 받으면 머리 빠진다고 하던데.”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스스로에게 농담을 걸었다.

의자를 뒤로 크게 밀어 몸을 완전히 누인 뒤 천장을 바라봤다. 이럴 때 마다 매번 지켜보던 거라 무늬를 다 셀 수 있을 거 같다.

“……흠.”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하나 들었다.

이단은 아노스의 세계를 집어삼키고 이곳 역시 먹기 위해서 왔다. 신성력은 이를 제거하기 위한 상반된 힘. 굳이 말하자면 선과 악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헌데……그렇다면 어째서 개척자가 존재하는 걸까?

게이트가 신이 넘기 위한 가교라 한다면 인간의 이동이 필요하지는 않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숫자는 더더욱.

설마 그리자의 이동을 위해서?

아니, 그렇다면 게이트가 작동하는 힘의 원리도 이상하다. 게이트는 분명 신성력에 반응하였고, 내가 얻은 정수로 개척자의 힘을 부여 할 수도 있었다. 이단에 의해 탄생한 거라면 이건 말이 안 된다.

“그러고 보면 차남혁도 잘만 넘어 다녔잖아?”

신성력만이 아닌 이단의 힘도 게이트에 작용한다는 말일까?

중립적인 존재? 그렇다면 다시 질문이 돌아온다. 대체 왜 게이트와 개척자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세력 싸움을 위해 편 가르기까지 들어갔다면 아무런 이유 없이 존재 할리는 없다.

……개척자는 힘에 민감한 존재.

아노스의 경우로 판단하자면 마법사나 정령사. 혹은 검사의 재능이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런 이들만 개척자의 반응이 나타났다는 건 결국 무작위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필요에 의해서 선택된 자들.

“필요라. 누구를 위해서? 나? 아니면 이단?”

아노스와 현실.

두 가지 세계를 이어주는 건 게이트. 그리고 그 다리를 건너는 것은 개척자라는 이들이다. 커다란 다리들과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 아니……힘. 개척자로 개화 된 것은 결국 힘이니, 이들은 특정 에너지를 품은 공급자라고도 생각 할 수가 있다.

“힘. 에너지. 공급. 이건……마치 기판간에 흐르는 전류와도 같지 않은가?”

두 세계를 기판, 게이트를 전선. 오가는 사람들을 전자라 생각하면 얼추 맞아 떨어진다.

즉, 개척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두 세계를 잇는 커다란 회로의 구동을 위해.

……그렇다면 이 회로가 구동되어야 하는 이유는 뭐지?

우우우웅!!!

그 순간, 상념을 깨는 진동음이 들려왔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폰을 바라봤다.

[차준혁]

이름 석 자가 떠올라 있었다.

※작가의 말

개척자는? 게이트는?

슬슬 종착지가 보이는 기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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