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과의 싸움이다.
넝쿨로 다리를 묶고 마법으로 몸을 얼리고, 허공에서 시선을 빼앗아도 거인이라는 육체에서 나오는 강함은 무시 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오리쥬는 본디 엘프.
그 존재의 강함에 이단의 힘이 결부되었으니, 그 위력은 말 할 필요가 없다. 손 한 번 휘두르는 것에 광풍이 몰아쳐 병사들이 나자빠지고, 입김을 부는 것에 쉐이드의 형태가 무너졌다.
“버텨라!!! 우리는 신과 함께 한다!!”
“이길 수 있어! 물러나지 마라!”
하지만 거인과 싸우는 이들은.
특히 병사들은 한 점의 두려움도 없이 이에 맞섰다. 그들은 신을 받들어 싸우는 쿤을 모시고, 그 위업을 몸으로 느꼈다. 성전에 선봉에 선 전사는 그야말로 영광스러운 존재. 평소보다 더욱 강하고 맹렬한 기세로 거인과 싸워갔다.
[숲이여, 일어나라!!]
[대지여! 힘을!]
엘프와 숲지기들 역시 물러날 곳이 없음을 알고 힘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바닥에서 넝쿨이 치솟고 나무가 살아 움직여 거인을 휘감았다. 숲을 훼손하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는 이들이지만 거인이 승리하게 될 때의 결과는 예상하고 있었다. 금지하던 수법까지 전부 뽑아냈다.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검은 그림자가 유영했다.
마법을 배경으로 둔 악마, 쉐이드가 거칠게 움직인 탓이다. 몸이 부서지고 합쳐지기를 번갈아 하면서도 끝없이 거인의 눈을 희롱했다. 악마는 결코 선에 선 존재가 아닌 바. 허나, 이단은 그것에서 조차 어긋나 있었다.
“숲의 어둠은 우리의 것이다!”
쉐이드의 주변으로 동료들이 모여들었다.
어둠이 뭉쳐 거인을 공격했다. 검은 망치마냥 계속 머리를 두드린 것이다. 그때마다 거구의 육체가 흔들리고 땅이 울렸다.
‘보인다……’
쿤은 싸움에 참여하지 않은 채 적을 관조했다.
그의 힘이라면 지금의 싸움을 조금 더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겠지만, 필요 한 건 그게 아니었다. 필살의 한 방. 적을 주살하고 이 싸움을 끝내 줄 공격이 필요했다.
보고, 봤다.
적은 이단의 힘으로 인한 변형으로 거인이 되었다. 육체적 변이는 이단의 특성이니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거라면 왜 다른 이단의 종자들은 변형을 안 했는가? 거인의 형태가 훨씬 셀 텐데.
이유는 간단했다.
이러한 변형이 가능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말이다. 엘프이기 때문에? 아니다. 그들이 보통의 인간보다 강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거인이 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보다 강력한 것. 초월적인 어떤 요소에 이단의 힘이 작용한 것이다.
무엇이 있을까?
상황을 생각해 보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고신. 고신의 일부를 오리쥬가 품은 것이다. 신의 육체든, 유물이든 어떤 것을 품었고, 그것에 이단의 힘이 작용하여 거인으로 변형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답은 나와 있다.
쿤이 할 것은 고신의 일부를 파괴하는 것이다. 거대하게 변한 오리쥬의 육체에서 그 부분을 읽어내고 베어낸다. 싸움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그가 꼼짝도 안하고 적을 노려본 이유가 바로 그것에 있다.
[싸워!!! 싸우자고!! 적을 뜯고 피를 마시자! 카하하하하!!!]
아랑겔의 광소를 귓가로 흘리며 힘을 집약시켰다.
주변의 에너지가 천천히 스며들어왔다. 마치 모래전갈처럼 적의 발치로 함정을 팠다. 힘의 유동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오리쥬의 부풀어 오른 힘이라도 그것은 같을 터. 긴 함정 속에서 두드러진 흔적을 읽어서, 고신의 중추를 찾으려는 것이다.
‘어디냐. 나와라.’
조금씩이라고 말 하지만 범위가 넓어지고 힘이 증가하면서 쿤에게 부여되는 압박감이 점차 커져갔다. 몸이 떨리고 얼굴위로 핏줄이 올라왔다. 고통을 무시하고 모든 능력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발동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반동을 다 무시 할 수는 없었다.
[싸워!!! 싸우라고!!!]
한계는 곧 온다.
제어 할 수 없는 힘을 몸 안에서 폭주 할 것이고, 결국 자신을 터뜨리게 된다. 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필요 한 것은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목표를 찾는 것. 외줄타기 하는 마음으로 힘을 제어해 나갔다.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흘러들어오는 힘을 통해 주변의 에너지들이 읽히기 시작했다. 이는 히어로 메이커 모드를 구현 할 당시 힘을 보았던 것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각양각색의 힘들. 세계를 구축하는 모든 에너지들이 감각으로 전달되었다.
과하다.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코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실핏줄이 터져 눈이 붉어졌다. 육체가, 정신이 견딜 수 없는 정신에 타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아니다.’
적의 중추는 아직 찾지 못했다.
너무 거대한 육체에 힘의 흐름을 전부 읽지 못한 탓이다. 몸이 붕괴하는 것이 먼저일까, 적의 중추를 찾아내는 것이 먼저일까. 외줄타기의 난이도가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 무사히 돌아와요.
라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팔목에 달아 둔 띠가 험한 전투에 이리저리 찢겨서 너덜너덜해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먼지 하나 안 묻히고 돌아가겠다, 약속했는데.
꾸욱.
이런 곳에서 죽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삶의 목표를 찾고, 이제야 사람다운 것을 배우고 있다. 사랑.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것도 가슴에서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고대의 신이건, 욕망에 불타버린 옛 마왕이든 그런 것들에 의해서 삶이 막혀 줄 이유는 없다.
“아랑겔……집중해라.”
갈라진 목소리로 요구했다.
광소를 토해내던 아랑겔이 웃음을 그치고 가라앉았다. 고장 난 용사의 무구라 해도 결의를 읽고, 그 발걸음에 보조를 맞출 정도의 이성은 있었다. 어쩌면 최초 명공이 만들고자 했던 무구의 자아 역시 이런 것일지 모르겠다.
‘한 순간에 읽는다.’
덜덜 떨리는 손과 발을 힘으로 멈춘 뒤, 팽창하는 에너지를 한 순간 붙잡았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고 모든 의식을 집중하여 한 번에 확장시켰다. 주변 공간. 거인을 포함한 공터의 전부가 쿤의 의식하에 들어갔다.
그리고 쏠려오는 에너지들.
생명, 마력, 이단의 힘 등……
모든 것들이 한 번에 흔들려 자신의 위치를 드러냈다. 토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해일이 몰려왔다. 머리에서 폭죽이 터지고 이를 견디지 못한 신체의 일부가 부서져 나갔다.
— 찾았다!
하지만 그 대가로 적의 중추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오른쪽 가슴 위쪽. 깊이 박힌 살점 아래로 작은 손톱 하나가 느껴졌다. 지금 존재하는 그 어떤 힘과도 느낌이 다른 존재.
덜컥.
무릎이 삐걱거리며 굽혀졌다.
뼈나 연골. 아니면 근육이든 뭐든 무언가 망가진 모양이다. 쿤이 즉시 자가회복을 몸에 걸었다. 흡수되는 힘의 일부가 신체를 재생시켰다.
하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조치일 뿐이다.
한 가지 제어보다 두 가지 제어가 힘든 건 당연한 일. 자가회복을 사용한 덕분에 아랑겔로 흡수되는 힘의 제어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당장이라도 폭발 할 듯 몸이 당겨왔다.
‘한 번 뿐이다!’
쿤이 상태를 무시 한 채 몸을 날렸다.
오리쥬는 쉐이드와의 다툼으로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아무런 방해 없이 허공을 박차 그의 가슴 언저리까지 도달했다.
“쏟아 부어!! 절대로 못 움직이게 해라!!”
“마력이 바닥났다고!!”
“시끄러워! 쥐어 짜! 쪽팔리지 않으려면 여기서 뭐라도 해야 한다고!”
“이 악마!!”
프리실라의 지휘하에 마법사들이 마력을 쥐어짜 오리쥬의 행동을 강제하기 시작했다.
새파란 냉기의 돌풍이 몰아쳤다. 다리부터 허리까지가 얼어붙고 반응이 굼떠졌다. 안색이 파리해진 마법사들이 하나 둘 바닥으로 고꾸라졌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 했다.
“우리도 질 수 없다!! 힘을 내라!”
“통령 대리에게 우리의 결의를 보여주자!! 당겨!!”
“힘 내!! 애 낳던 힘까지 쓰라고!!”
지상에서 넝쿨을 감아 오리쥬를 묶어두던 병사들 역시 기회를 읽고 전력을 쏟아냈다.
각종 짐승과 몬스터들까지 전부 다 모여서 이를 도왔다. 땅이 덜덜 떨리고 묶어 둔 나무가 뿌리까지 뽑혀서 튕겨 나왔지만 아주 잠시의 시간은 벌 수 있었다.
— 놓아라!!! 나는 이 숲의 왕이다!!
천둥과 같은 목소리로 오리쥬가 외쳤다.
몸을 속박하던 얼음 덩어리들이 떨어져 우박처럼 내렸다. 넝쿨을 잡고 있던 병사들이 우수수 쓸려가고, 발끝에 짓이겨진 짐승들은 그대로 피떡이 되었다.
말 그대로 시간벌이.
쿤이 지상에서 오리쥬의 가슴팍 앞에 도달하기까지.
바로 그 시간을 벌어 준 것이다.
[광포화]
쿤이 최후까지 남겨 두었던 수법을 꺼내 들었다.
아랑겔을 통해서 흡수한 모든 에너지가 한 순간 개방되었다. 육체가 부서질 듯 떨리며 한계 이상의 위력을 내기 시작했다. 이를 지탱하는 건 쿤 자체가 가진 생명력. 넘치는 힘을 견디지 못하면 그 자체가 부서지는 완벽한 도박수였다.
‘어차피 적을 제거하면 이단에 대한 심판으로 모든 능력을 해제된다.’
성공을 하면 광폭하는 해제되고, 쿤은 기절상태에 빠진다.
한 번에 죽이고 편히 쉬거나, 실패하고 몸이 터지거나. 둘 중 하나의 결과밖에는 남지 않는 수법이었다.
‘신이시여, 제가 힘을!!’
최후의 일격을 위해 염동력으로 허공을 밟고 뛰었다.
아쿤에 집중된 힘이 극도로 팽창하여 거대한 검을 만들었다. 하얗게 그려지는 궤적은 허공을 갈라 그대로 오리쥬의 가슴에 충돌했다.
키이이이이잉—!!!
육체가 갈라지고 이단의 힘이 통재로 정화되면서 흩날렸다.
하지만 아직 얕다. 검극이 노리는 것은 고신의 중추. 그가 남기고 간 작은 손톱 하나였다. 막아서는 모든 방해물을 해체하고 전진.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중추에 검이 닿았다.
— 세계를 위해.
— 시작의 샘 위에 몸을 뉘이면……
— 먼 훗날. 내 끝이 보인다. 그대는……
— 신의 시대는 끝이 난다. 어긋남과 균형이 맞물려 사라지는 그 때.
목소리. 아니, 의지라 말 할 수 있는 것들이 쿤의 뇌리를 강타했다.
소리와 그림. 여러 가지 감정이 순식간에 스쳐갔다. 주체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의지의 편린들은 고신의 것이다.
하늘을 이불로 하고 땅에 몸을 뉘인 거대한 신.
아득해 보이는 우주 끝에 손을 내밀고 자신의 몸을 시간에 가두어 버렸다. 그가 보는 것은 현재가 아닌 먼 미래.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자신의 최후.
—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이 길을 가라.
마지막 단말마의 의지가 연기처럼 흩어지고 쿤의 몸이 뒤로 튕겨 나왔다.
아쿤은 잘게 부서져 빛 무리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쿤이 무너지는 의식의 끝자락을 잡아서 오리쥬의 모습을 살폈다.
가슴 언저리가 깊게 파여 있었다.
사이로 발광하는 고신의 손톱이 보였다. 실금이 그어지고 경계가 허물어졌다. 부서짐. 쿤은 안도를 했다. 적어도 고신의 중추를 부수는 것에는 성공을 한 것이다.
그오오오오—!!!
오리쥬가 비명을 지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승리인가. 단말마의 비명 속에 쿤의 의식 역시 함께 무너져갔다.
[경험치를 대량으로 획득했습니다.]
[정수를 대량으로 획득했습니다.]
[단계가 올랐습니다.]
[단계가 올랐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6상승합니다.]
[축복이 개방되었습니다.]
[징벌이 개방되었습니다.]
[고신의 파편을 획득했습니다.]
[초상력이 20 증가했습니다.]
[특기. 통안(通眼)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둠 블레이드(Doom Blade)를 획득했습니다.]
뒤이어 들려오는 알람 소리를 자장가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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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무겁고 몸이 뻐근했다.
사방을 훑어봐도 뿌연 안개밖에는 안 보였다. 꿈인가. 아니면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걸까. 평소 잘만 돌아가던 머리도 지금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유 없이 걸었다.
안개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감에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말로 안개인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확인 할 만큼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마치 죽어있는 채 저승으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 왔는가.
그렇게 안개를 해매기를 얼마나 되었을까.
나무로 만든 좌판 앞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이 앉아, 손짓을 했다. 어릴 적 문방구 앞 아이스크림 나눠주던 할아버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생각 없이 그 앞에 앉아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 억지로 부른 탓에 상태가 엉망이구나. 이것이면 잠시는 괜찮을 거다.
툭. 그가 손톱으로 내 이마를 두드렸다.
그곳을 중심으로 묘한 감각이 퍼져갔다. 마치 찬 물에 얼굴을 담구는 것 같다. 뿌옇던 머리가 맑아지고, 멈춰있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눈을 깜빡.
그리고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는……어디죠?”
바보 같은 질문에 노인이 가볍게 웃었다.
자글자글 이어지는 주름이 어쩐지 푸근했다. 언젠가 본 적이 있을까? 기억을 더듬지만 떠오르는 바는 없다.
“당황하지 말거라. 이곳은 내 의식 속. 부서지는 의지의 포말에 불과하니.”
“의식……그럼 당신이 고신이군요.”
“그래. 지금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구나. 그냥 고신으로 불리는 것만이 나를 정의 할 뿐. 세월을 두고 어찌 슬프다 말하겠다만, 잊히는 존재의 필연성은 조금 아쉽구나.”
눈가가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이름도 잊힌 채 고신으로 불리며, 긴 세월 속에 잠들어 있던 존재. 이단에 타락하여 타인에 의해 그 최후를 맞이했다.
그 감정의 일부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째서 나를 이곳에 부른 겁니까?”
“네게 한 가지 부탁을 하기 위함이란다.”
“부탁?”
사라지는 고신이 부탁 할 만 한 게 있단 말인가?
“나를. 내 이름을 세상에 남겨 다오.”
“무슨 의미입니까? 죽은 당신의 이름을 기려 달라는 건가요?”
“너를 돕는 존재의 힘이라면 내게 이름 한 자락 허락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돕는 존재? 어떤 신인지 알고 있는 겁니까?”
오래된 신이라면 다른 이들이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존재가 내게 이런 힘을 내렸고, 이단과 싸우게끔 하였는지. 의문을 풀 수 있다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쿠르르르……
그러자 갑자기 주변 안개의 색이 짙어지며 천둥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노인의 모습을 한 고신이 고개를 들어 이를 보더니 낮게 혀를 찾다. 그리고는 고개를 흔들며 내게 조심스레 말을 했다.
“그분은 네가 그 사실을 알지 않기를 바라는 모양이구나.”
“어째서……?”
“글쎄. 그것까지는 내가 말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네가 정 궁금하다면 한 가지 조언을 해 주마. 별의 탑을 찾아가거라. 이 세계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기록해 둔 곳이다.”
“별의 탑……”
“인간이 찾을 수 없는 장소이기는 하지만……그분의 도움을 받고 있는 너라면 가능 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별의 탑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깨어나면 찾아야 할 것이 생겼다. 산재한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이 또한 매우 중요하다. 내게 힘을 주는 신이 어떤 존재임을 알게 된다면 상대하는 이단에 대해서도 보다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쿠르르릉……!
그 순간, 안개가 더욱 짙어지며 천둥소리가 거칠어졌다.
공간이 삐걱거리는 느낌. 고신의 의식이 점차 흐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신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전할 말은 모두 전했다. 들어주고 안 들어주고는 네 마음에 달린 거겠지. 하지만 나는 적어도 이름만큼이라도 세상에 남기고 싶구나. 추악한 집착이라 할 수 있지만, 하나를 위해 남은 모든 걸 포기했던 미약한 존재로서의 마지막 소망이니……”
“하지만 그걸 어지 해야 할지……”
“원하면 나타나게 될 거다. 필요한 것은 네 허락 뿐.”
고신의 모습이 흐려지고 주변의 흔들림이 거칠어져갔다.
끝이 가까이 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신. 그에게 이름을 주어야 할까? 아니면 무시해야 할까?
생각의 갈래에서 망설이는 순간 공간이 무너지며 고신의 모습이 눈앞에서 멀어져갔다.
그의 눈동자가 시야에 잠시 잡히다 사라졌다. 안개가 검게 변하고 의식이 그 중앙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 곧 깨어나게 될 것이다.
나. 아니, 쿤은.
……잠깐만.
지금 나는 누구지?
쿤인가, 아니면 서준경인가?
그 의문을 끝으로 의식이 사라졌다.
※작가의 말
후. 역시 막타가 최고야.
* 전쟁 파트가 종료됩니다.
격돌 파트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