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85화 (185/240)

아도란이 어떻게 이곳에?

의문이 머리를 스쳐갔다. 하지만 길지는 않았다. 지금은 왜? 보다, 그 도움 자체에 손을 벌리는 것이 필요했다. 쿤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세를 추슬렀다.

오리쥬가 이를 보더니 입가를 길게 찢으며 웃었다.

탄화되어 있던 피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회복되고 있었다. 시간은 쿤 등의 편이 아니었다.

“마법사. 또 마법사로군. 어리석다. 그 나약한 힘으로는 이 몸에게 대항 할 수 없음을 알 텐데?”

비웃음과 함께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손을 타고 검은 물결이 번져갔다. 은색 넝쿨들이 이에 물들어 갔다. 그리고는 하나 둘 서로 엉키기 시작하더니 마치 거인의 손처럼 형태를 바꿨다. 뚫린 숲의 하늘 위로 솟구쳐 그림자를 드리웠다.

“거인의 손. 하지만 아직 아니야.”

아도란이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고는 로브를 펄럭이며 허공을 걸었다.

손끝으로 녹색 빛이 어려 있었다. 낙서를 하듯, 빛이 궤적을 그려 문자를 완성했다. 마치 투명한 천을 하늘 위로 펼쳐 둔 것 같다.

길게 그려진 글자들이 형태를 띠더니 아도란의 머리 위로 날아가 겹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 불쑥 솟아올랐던 거인의 손이 그를 향해 떨어졌다. 크기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빠른 속도. 그림자가 짙어지고 풍압만으로 몸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아도란은 태연했다.

펄럭이는 로브 자락을 잡아 바람을 막은 뒤 낭랑하게 외쳤다.

“부서지는 꽃잎.”

시? 뒤에서 보던 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적의 공격이 다가오는데, 저게 무슨 소리인가. 마법으로 방어를 할 거라 기대를 하고 후속타를 준비하고 있던 터라 놀라움이 더 컸다.

하지만 그 직후.

아도란의 머리위로 뭉친 글자들이 작은 바람을 만들어 거인의 손에 닿자, 아도란이 말 한 것이 단순한 시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뭐?”

오리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대한 거인의 손이 바람에 닿는 순간 연기가 되어 흩어졌기 때문이다. 체적과 질량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 하지만 마법은 그런 한계를 초월하고 있었다. 종이로 뭉친 장난감이 바람에 흩어지듯, 넝쿨로 엮여있던 거인의 손은 잘게 부서지며 형태를 잃었다.

남은 건 산들바람 하나 뿐.

사방으로 흩어지는 넝쿨의 조각들은 마치 부서진 꽃잎과 같았다.

“마법사! 무슨 짓을 한 거냐!?”

오리쥬가 이해를 하지 못한 듯 크게 물었다.

그의 장악력은 이미 숲 구석구석에 이르고 있다. 샘을 타락시키고 숲 자체를 손에 넣은 것.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두 이해를 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아도란이 구현한 마법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마법. 고대 마법. 신을 죽이기 위한.”

“……신을 죽이기 위한 마법이라고?”

아도란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때마다 녹색 빛이 엉켜서 고리를 만들어냈다. 이는 눈으로 보이는 현상이었지만, 소리와도 같았고, 냄새와도 같았다. 오감을 모두 자극하며 순식간에 숲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쌓인 먼지 위로 바람을 부는 것과 같다 말 할까?

숲을 덮고 있던 어둠이 씻겨나가고, 주변 공기가 삽시간에 바뀌었다.

“너……! 어떻게!?”

오리쥬가 당황했다.

“숲이? 신성한 힘이여!!”

그리고 여왕이 반응했다.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더니 양 손을 치켜 올렸다. 그녀의 몸이 빛에 휩싸이더니 순식간에 성장을 했다. 본신의 모습. 강대한 힘이 집약되더니, 은색의 넝쿨이 솟아 그녀의 몸 주변을 감싸고돌았다.

적? 아니다. 지금의 은색 넝쿨은 여왕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숲을 지배하던 오리쥬의 영향력이 씻겨나가고 본래 주인에게 다시 돌아간 것이다. 샘의 색도 본래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도란의 마법 하나가 전세를 역전시킨 것이다.

“이럴 리 없다!! 숲은 내 것이다!!”

오리쥬의 몸 주변으로 검은 기운이 뭉클뭉클 솟아났다.

삽시간에 주변을 집어삼키고 샘과 넝쿨을 향해 뻗어갔다. 하지만 아도란이 또 다시 녹색 기운을 뿌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놀랍게도 두 가지 힘은 극한의 상성을 지니고 있었다.

“어떻게!? 이건 불가능하다!!”

“가능. 고신의 힘. 제거.”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거냐!?”

“그건 나도 모름. 그냥 앎.”

태연하게 대꾸한 아도란이 포르륵 날아 쿤 앞에 안착했다.

쿤이 빠르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전혀 티를 안 내고 있지만 쿤은 알 수 있었다. 아도란은 연거푸 사용한 마법으로 지쳐 있었다.

쉽게 말 하는 것과는 달리, 힘을 해체하는 그의 마법이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고신……! 그렇군요. 오리쥬, 당신이 샘을 타락시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거군요!”

“크윽!”

“여왕, 무슨 일인지 알고 있습니까?”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이 숲은 고대의 신이 누워 태어났다고. 지금 오리쥬가 사용하는 힘은 바로 그 고대 신의 것입니다. 숲을 조종하고, 샘을 타락시킬 수 있는……본래 주인이 가진 힘을 사역하는 것이죠.”

신의 힘.

쿤이 눈을 깜빡였다.

‘그랬군!’

어쩐지 이상하다 생각했다.

경비대장부터 하카림의 일부까지. 많은 이들이 이단에 오염되었지만 지금처럼 막대한 힘을 사역 한 경우는 없었다. 힘이라는 것이 그냥 끌어다 쓰면 장땡인 것이 아닌지라, 과한 힘은 결국 몸을 해치는 독이 될 수밖에 없는 법. 오리쥬의 거대한 힘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현상에 고신이 있다면 이해 할 수 있다.

숲을 구성한 고신. 그 고신에 이단의 힘이 닿아 타락시켰다면 오리쥬가 사용하는 힘이 가능하다. 그가 흙으로 몬스터를 다른 것처럼, 그 자체도 결국에는 고신의 인형에 불과하니까.

‘아도란의 마법은 신을 죽이기 위한……특별한 종류의 능력인가 보군.’

아도란이 집어삼킴 마법서를 생각해 보면 가능 할 수 있다.

인간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에 항상 대응하고자 하였으니, 신을 죽이기 위한 연구 역시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이단과 상관없이, 그 신의 힘을 물리쳐 거둬낸다면 숲의 제어 권을 여왕에게 돌려 줄 수 있는 말.

아도란의 등장은 너무나 시기 적적한 것이었다.

“감히……날!! 날 막으려 한다는 거냐!!!”

그 순간, 오리쥬가 분노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이 몸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가더니, 육체를 움직였다. 피부가 쩍쩍 갈라지고 붉은 각질이 밖으로 새어나왔다. 전형적인 이단에 의한 변이. 하지만 지금까지 보았던 것과는 규모가 달랐다.

그그그그……!

몸이 점차 커져갔다.

팔과 다리가 늘어나고 체적이 부풀어 올랐다. 주변 나무와 넝쿨을 부수고, 숲을 몸으로 밀어냈다. 쿤이 황급히 명령을 내려 병력을 물리고, 그 자신은 요그문트와 함께 프리실라 등을 구출해냈다. 그녀들은 고신의 힘이 밀려나면서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 그오오오오오!!!

까마득히 커져버린 오리쥬가 괴성을 토해냈다.

울림이 숲을 타고 번졌다. 땅이 들썩이고 나무가 흔들렸다. 마치 태풍이 부는 것처럼 그 주변의 모든 것들에 영향을 미쳤다.

“완전 거인이군.”

“아마도 저건 고신의 모습을 본뜬 거 같습니다.”

“영향력이 끊기니, 자신의 말에 힘을 모두 투영한 거군요.”

이단에 오염된 힘의 주체는 고신이지만 그 자체는 움직이지 못한다.

출구가 되는 건 오리쥬. 지금까지는 그 출구로 숲을 지배하고 힘의 영역을 넓혔지만, 아도란의 마법으로 그것이 끊긴 상황. 하나뿐인 출구에 힘을 모두 투영하여 자신을 현현한 것이다.

결국 오리쥬 자체도 고신에게 이용당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뭐……따지자면 이단 때문이지만.’

하카림조차 타락했는데, 고신이라고 버틸 수 있나 싶다.

다만 이번에는 그때와는 경우가 조금 다르다. 하카림은 이단의 힘을 어떻게든 제어하려 했기에 타락은 일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오리쥬를 통해서 나타나는 힘의 규모는 일부라 칭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다.

어쩌면 고신 자체의 바람이 들어가 있을지 모르는 규모.

‘집착이라 이건가.’

그렇기에 더욱 어렵다.

급류에 탄 이단의 힘은 고신의 모습조차 구현 할 정도로 강하다. 지금까지 만난 이단의 변이체들 중 이보다 강한 게 있을까? 아도란이 고신의 힘을 끊었다 해도 상황이 만만치 않은 건 여전하다.

— 숲의 아이들은 들어라!!!

‘여왕?’ 갑작스러운 그녀의 외침에 쿤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은색 넝쿨을 발판 삼아 몸을 세운 채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우아한 자태와 위엄 넘치는 눈빛. 이것이야 말로 숲의 여왕이 가진 진실 된 모습이었다.

— 우리의 터를 더럽히고, 해하려 하는 자가 있다. 우리는 물러나지 않는다. 이곳에 묻힌다 한들! 모든 걸 바쳐 숲을 지킬 것이다! 내 목소리를 듣는 자라면 일어나라! 그리고 싸워라!!

그우우웅.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동이 숲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는 마치 군의 운용을 위해 사용하는 봉화와 비슷했다. 숲 전역으로 전달되는 여왕의 목소리. 산새가 날아오르고, 짐승이 울었다.

그리고 곧이어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멧돼지, 그로울, 사슴, 그리베어 등 수많은 생명체들이 장내로 모여들었다.

짐승이나 몬스터의 구분이 없었다. 숲에 살고 있는 생명이라면 모두 여왕의 부름에 응해왔다. 그 중에는 쉐이드와 같은 존재도 있었다. 숲을 위한 여왕의 전력. 오리쥬를 포위하여 거대한 군진이 이루어졌다.

“하아……하아……쿤, 이 뒤는 그대에게 맡기겠어요.”

그리고 여왕이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었다.

쿤이 황급히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얼굴이 파리하고 전신이 땀 투성이었다. 제어권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단과 싸우며 힘을 소진했던 것은 사실. 지금과 같은 일은 무리였다.

[여왕님!]

달려오는 요그문트에게 그녀를 넘겨 준 뒤, 쿤이 고개를 들었다.

뒤를 맡긴다는 여왕의 말. 수많은 생명들이 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의식으로 명령권을 넘긴 것으로 보였다.

‘다 종족 연합군이라니……’

인간에 몬스터에 악마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건 어째 점차 규모가 커지는 거 같다. 부담감? 솔직히 어느 정도는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휩쓸릴 때가 아니지 않은가?

고신이건, 오리쥬건. 이단에 타락하여 개짓거리 하는 상대가 눈앞에 있으니까.

쓸 수 있는 수단은 죄다 쏟아내어 적을 처단한다. 이 단순하고 순수한 목적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성전의 축복]

시작의 봉화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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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거대한 거인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상대해 본 이단의 변이체들을 생각해 보면 그 육체적 능력이 빼어남은 당연한 이야기. 거대한 체적에 그 강함이 깃들어 있다면 육체만으로 이미 흉악한 무기라 할 수 있다.

이런 적에게 정면으로 돌진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쿤의 머릿속으로 옛 동화 하나가 스쳐갔다. 거인을 잡은 어린 아이의 이야기. 분명 동화에서는 이렇게 설명했었다.

— 마을에 있는 옷들을 모두 모아 하나로 엮어, 거인의 발을 묶었습니다. 거인은 넘어져 일어나지 못했지요. 소년은……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그 전략이 틀린 건 아니다.

상대가 크고 높다면 그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동화 속에서는 이를 마을 사람들의 옷으로 엮은 줄로 했다.

현실에서는?

주구장창 뽑아 분 신목의 뿌리가 있다. 이왕이면 쓰러지기 전에 여왕이 제어하여 거인을 묶었으면 좋았겠지만, 힘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다.

— 병사들은 두개조로 나눠 넝쿨을 이어 잡아라! 네 발 달린 짐승은 거인이 발을 묶는 거다! 하늘을 날 수 있는 것들은 거인의 눈을 어지럽혀라! 시간을 벌어야 한다!

내용은 조금 부실했지만, 경험 많은 백인장들은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괴물에 이어서 거인까지. 쉽게 진정 될 상황은 아니지만 축복이 용기를 부여해 주고 있었다. 방패를 등 뒤로 돌려 매고는 힘껏 달려 여왕이 뽑아 올렸던 넝쿨들을 손에 쥐었다. 강하고 질기다. 그리고 길다. 수십씩 매달려서 당겨내니 금세 길게 딸려 올라와 거인을 감쌀 정도의 규모가 되었다.

크릉! 크릉!!

멧돼지와 그로울. 그리베어 같은 것들이 넝쿨을 입과 몸에 감고는 지시대로 뛰기 시작했다. 한가득 올라온 넝쿨들이 거인의 발을 중심으로 빙빙 돌았다. 일반 병사들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 나무와 나무 사위를 날다람쥐처럼 뛰며 이를 수행했다.

— 내 앞을 막지 마라!!!

— 사라져라, 어긋난 존재! 숲은 네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는 쉐이드가 날것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는 비룡처럼 날개를 펼친 채 거인, 오리쥬의 시선을 빼앗았다. 게다가 한 치의 물러남도 없이 쏟아내는 자극적인 말. 오리쥬는 시뻘겋게 변한 얼굴로 손을 휘저어 그와 날것들을 잡으려 했다.

그그그—!

하지만 그럼에도 동작을 완전히 제압 할 수는 없었다.

다리에 엉킨 넝쿨들이 늘어나고 잡고 있는 짐승과 병사들이 마구 넘어졌다. 순수한 질량의 위력이 숫자를 상회하고 있었다.

“ψύξη!!”

그 순간, 찬바람과 함께 오리쥬의 다리가 얼어붙었다.

4~5초 정도. 금세 얼음이 부서지고 다시 움직임이 재개되었지만 그 사이에 병사들과 짐승들이 정비를 마칠 수 있었다. 넝쿨을 주변 나무에 돌려 묶고는 힘껏 당겼다.

“프리실라!”

“끙. 못난 모습을 보여 버렸네. 기억에서 지워주겠지?”

“하하. 도와만 준다면.”

“그래야지. 흥! 과년한 처녀의 성질을 건드린 대가가 뭔지 보여주겠어!”

정신을 차린 마법사들이 합류했다.

시린 냉기가 숲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오리쥬의 동작이 느려지고 발에 묶은 넝쿨이 힘을 발휘했다. 큰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이제 필요한 건……’

적의 숨통을 끊어 낼 일격 뿐.

쿤이 오른손에 달린 아랑겔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캬하하하하하하하!!!! 싸움이다!! 싸움이야!!]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작가의 말

다음 편에 전쟁 편이 끝납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곤혹스럽네요.

재미있게 읽으시고, 더운 여름 건강 조심하세요.

* 땀에 절은 마지막한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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