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의 질문과 세 번의 기회.
죄질을 심판하기 위한 신의 저울이 오리쥬의 머리위에 떠 있다. 저울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상대가 이단에 의해 타락. 본질을 저버리고 동료였던 사람을 살해했음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군. 이것이 네 힘인가?”
“답하라. 네 잘못을 시인하는가?”
쿤이 물러나지 않고 물었다.
농밀하게 뭉쳐있는 오리쥬의 기운이 그의 몸 주변으로 포말처럼 흩어졌다. 팽팽하게 맞서는 기운. 뚜렷하게 경계가 그려지고 있었다.
“샘을 더럽혔다. 이것이 나의 죄인가?”
“지켜야 할 것을 되레 더럽혔으니, 그 죄는 너무나 뚜렷한 바!”
“하하. 좋다. 이를 죄라 칭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뎅—!
종이 울리고 저울이 기울었다.
오리쥬가 입을 모으고는 ‘호오~’ 감탄사를 흘렸다. 긴장하는 기색은 없다. 마치 여흥처럼. 자신이 만든 인형으로 일행을 상대하던 그 모습 그대로 대응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묻는다. 네 죄를 시인하는가?”
“물을 때 마다 죄가 바뀌는군. 여왕을 속이고, 엘프를 배신한 것이 내 죄라. 굴레를 벗기 위한 내 노력을 전부 죄라 말 하는군. 이거 억울한데?”
“네 욕망을 위해 믿고 있던 모든 이들을 배신하지 않았던가? 입 발린 이상 따위는 집어치워. 어차피 네 속에 깃든 것은 너절하기 짝이 없는 욕망임을 알고 있다.”
“너절한 욕망이라. 그렇게 불러도 좋다. 허나, 우리 엘프가 묶여있던 굴레는 그보다 더 더럽고 치졸한 것이었어. 선대의 이름에 묶여, 숲에 속박 받은 존재. 자유도, 희망도, 꿈도 아무것도 없는 존재들. 오직 저 여왕이라는 존재 하나를 위해 살아가는 날벌레 같은 삶이지.”
다시 종이 울리고 저울이 기울어졌다.
남은 건 마지막 한 번. 쿤이 손으로 오리쥬를 가리키며 물었다. 상대의 말에 반박 할 생각은 없다.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뿐. 적극적으로 반발 할수록 죄는 커지고 심판의 위력을 증가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네 죄를 시인하고 변명 할 생각은 없는가!?”
“하하. 라임 그 멍청한 친구를 죽은 것이 내 죄라는 거군. 어차피 새로운 생각을 품지 못하는 어리석은 종자였을 뿐이다. 죽음으로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었다면 그것이 죄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군.”
“한 점의 가책조차 없다는 건가?”
“나는 이미 선 밖에 선 자. 무지한 존재의 법칙에 구애받지 않는다. 자, 말하라 인간. 나는 죄가 있는가?”
쿤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뒤 다시 떴다. 이런 놈이 적이라면 망설임은 없다. 부글거리는 속을 억지로 눌러 둔 채 씹어 뱉듯 말을 했다.
“극악무도한 죄다. 판결은 사형. 맞고 뒈져라.”
[신의 격노]
빛의 기둥인 소리를 먹으며 떨어졌다.
한 차례 땅이 울리고 뒤이어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오리쥬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빛에 휘감겼다. 신성력은 이단의 힘을 밀어내고 이에 반발하는 충경을 토해냈다. 새카맣게 밀려나오는 오리쥬의 연기 역시 그 증거 중 하나였다.
[통한 건가?]
[굉장한 힘……아무리 오리쥬가 그리자의 힘을 흡수했다고 해도 이건 견딜 수 없을 겁니다!]
낙관적인 기대.
망막을 채우던 빛기둥이 점차 줄어갔다. 그 안에 몸담고 있던 오리쥬의 모습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게 탄 몸과 끝없이 새어 나오는 연기. 척 봐도 극심한 타격을 입은 모습이었다.
“통했어! 역시, 신벌!”
“서 준경 신의 힘이라 이거지!”
“신의 사도가 함께 있는 이상 두려울 게 없다 이거야!”
병사들 사이에서도 기쁨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상식과 괴리되는 싸움에 긴장을 하고 있던 그들이니, 신벌로 적을 처치하는 쿤의 모습이 더 없이 든든했을 수밖에 없다. 성전을 치루는 신의 사도와 그 병사들. 어쩌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실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신의 격노를 사용한 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알람이 안 들려온다.’
상대가 이단의 힘을 사용하고 있다면 사망시 경험치와 정수가 들어와야 한다.
하지만 지금, 적이 완전히 정지했음에도 그런 알람은 없었다. 타격이 상대를 제거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는 말.
쿤이 아쿤을 다시 그러쥐고는 발끝을 튕겼다.
흙먼지가 피어나며 그의 몸이 웅크리고 있는 오리쥬에게 접근했다. 탄화 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적어도 웅크린 오리쥬의 모습은 거짓이 아니었다.
힘과 속도.
완벽하게 제어 된 동작으로 아쿤을 찔렀다. 아무리 대단한 존재라 해도 목이 떨어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 확신을 위해 추가 공격을 감행했다.
콰드득……!
하지만 그 순간 솟구친 넝쿨들.
아쿤을 감싸더니 그대로 쿤과 함께 옆으로 밀어냈다. 순간적인 힘이 너무 강했다. 쿤도 버티기를 포기하고 아쿤을 놓으며 몸을 반전시켰다. 그리고 다시 소환. 아쿤을 손으로 불러 온 뒤 염동력으로 몸을 앞으로 밀었다.
찌르고, 찌르고.
연거푸 검격을 날렸지만 그때마다 넝쿨이 올라와 이를 방어했다. 초인 수준의 반응속도. 쿤이 몸을 뒤집어 거리를 벌린 뒤 의식을 집중했다. 일반 공격이 안 된다면 의식의 검으로 통째로 베어 낼 생각이었다.
촤르르르륵……!!!
의식이 집중하는 찰나의 순간.
넝쿨은 그 사이를 비집고 수세를 공세로 전환하였다. 막을 수 없으니 공격 시도를 아예 방어하겠다는 심산. 이를 단순히 평가하자면 대단히 수준 높은 판단이라 할 수 있다. 쿤도 경기하지 못하고 집중된 의식의 힘으로 넝쿨을 베어내야 했다.
서걱. 서걱.
쉬이 잘리지만, 그만큼 접근 할 수 있는 시간은 사라져갔다.
[오리쥬를 공격해라!!]
[여왕님?]
[그는 더 이상 우리의 동포가 아니다. 숲을 위해. 그를 공격하라!]
조금 늦게. 쿤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여왕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일반 병사의 공격이나 화살이 먹힐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필요 한 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숲의 마법.
넝쿨이 솟구쳐 넝쿨과 엉켜들었다.
넝쿨로 만들어진 손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새.
‘이 틈에……’
유령과도 같이 쿤이 걸었다.
그리고 오리쥬 위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회에 맞춘 쉐이드의 합공. 따로 말 한 것은 없지만 놀랍게도 타이밍을 잘 맞추고 있었다.
‘엘프보다 낫군.’
쿤이 속으로 칭찬을 하며 집중 된 의식의 검을 내뻗었다.
넝쿨이 솟아 다시 앞을 막으려 했지만, 요그문트 등이 만들어 낸 넝쿨이 이를 견제했다. 막혔던 앞이 트이고, 쿤이 그 사이로 돌진했다. 옷이 찢어지고 생채기가 생겨났지만 무시했다. 지금 아니라면 기회를 잡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뚫는다!
하나로 집중된 의지가 아쿤을 통해 사출되었다.
섬전과도 같은 일격. 하얀 빛이 솟구친다 싶더니 오리쥬의 몸이 순간적으로 두 개로 나뉘어졌다. 몸통과 목 위로 연결된 머리.
‘아니야!’
쿤이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리고 황급히 아쿤을 횡으로 그으려 했다.
하지만 검게 물든 손 하나가 불쑥 올라와 이를 막아섰다. 오리쥬의 팔. 쿤이 내지른 아쿤은 그의 목을 완전하게 관통하지 못했다. 타격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의 몸이 살짝 옆으로 이동했고, 목은 절반만 베어진 채 위태로운 상태로 유지되었다.
“……위험했군.”
짓물러진 얼굴로 오리쥬가 입가를 말아 올렸다.
쿤은 섬뜩함을 느꼈다. 아찔한 혐오감이 몸을 두드렸다. 이간 농밀한 수준이 아니었다. 이단이라 부르는 힘의 주인이 현현하여 모습을 드러낸다면 바로 이러할까. 한때나마 상상했던 바로 그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젠장—!’
망설일 때가 아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폭발시켰다. 칭호를 스위칭하고, 이단에 대한 심판도 걸었다. 확률 문제였지만 상대의 강함에 대한 반응인지 곧바로 발동되었다. 모든 능력이 삽시간에 증가하고, 목에 박힌 아쿤에 의식을 집중하여 폭발시켰다.
콰르르르릉—!!!
오리쥬와 쿤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튕겨나갔다.
충격파에 지면이 파여 원형으로 밀려나갔다. 충격에 샘의 표면이 잘게 떨렸다. 붉은 피가 쿤의 입가에서 튀어나갔다. 충격으로 내장이 뒤틀린 모양이다.
손으로 땅을 짚어 자세를 바로잡았다.
“καύσωνας”
“……!”
곧이어 들려오는 목소리.
쿤이 이를 악다물고는 몸을 옆으로 돌렸다. 붉은 화염이 그가 서 있던 위치로 작렬했다. 마법. 멍하니 있던 프리실라가 마법을 구동하여 그를 공격한 것이다.
“통령 대리를 구해라!!”
“쏴라!! 적을 막아라!!”
명령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 중 백인장들이 신호를 보냈다.
쿤이 위험하다면 명령보다 우선시 되는 상황이다. 즉시 방패를 내밀며 돌진했다. 새롭게 장전한 볼트들이 비처럼 머리위를 장식했다.
— αντιστροφή
— σκηνή
프리실라와 함께 샘으로 온 최후의 문 마법사들.
뿌연 장막이 볼트를 잡아채고 거꾸로 쏘아 보냈다. 전진하던 병사들 방패에 볼트가 가시마냥 틀어박혔다. 몇 몇은 이를 피하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물러나지 마라!!!”
[디–오! 숲을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당신들도 도우세요!]
[알겠습니다, 여왕]
전신하는 병사들 몸 주변으로 녹색의 장막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디-오를 비롯한 숲지기들이 그들의 능력을 병사들에게 건 것이다. 추가적으로 튕겨 나오던 볼트들이 막에 막혀서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젠장……!”
쿤이 입가에 묻은 핏물을 슥 닦아냈다.
피해가 속출하는 중이다. 하지만 멈추라 말할 수 없었다. 병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마법사들의 공격에 노출되었을 터. 오리쥬를 상대해야 하는 시점에서 그것까지 처리하는 건 무리였다.
‘신이시여, 제게 힘을!’
의지가 신앙이 되어 빛 무리처럼 흩날렸다.
쿤의 몸이 새하얗게 발광하기 시작했다. 의식의 검과 이단에 대한 정벌로 인한 신성력이 혼합되기 시작한 것이다.
‘벤다.’라는 의지처럼 이단을 징치하기 위한 쿤의 의지가 다른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것. 마치 히어로 메이커 모드에 들어간 것처럼 힘의 흐름이 잡혔다. 어쩌면 이런 경지의 발전된 형태가 히어로 메이커인지도 모르겠다.
‘잡는다.’
쿤이 호흡을 정리하며 뛰었다.
오리쥬는 여전히 흙먼지에 휩싸여 정지 한 상태. 하지만 이단의 기운과 살을 애일 듯한 살기는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타격이 남아있는 지금 상대하지 못한다면 후일은 장담하기 어렵다.
부러진 나뭇가지가 이마에 맞고 튀었다.
넝쿨 하나가 바닥에서 올라와 발목을 감싸려 했지만 몸 주변에 넘실거리는 신성력이 이를 태웠다. 새카맣게 피어오르는 연기. 두 번의 발돋움으로 크게 뒤로 밀려 사라졌다. 거리가 삭제되고 오리쥬의 모습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καύσωνας”
다시 프리실라의 마법.
화염을 이루기 위한 마법이 집중되는 순간, 쿤이 아랑겔의 능력 ‘마법해제’를 사용했다. 에너지가 흡수되며 마력의 결집을 방해. 붉은 빛은 작은 그림자 하나를 남긴 채 흩어졌다. 깨어난 마네코쉬가 경박하게 웃었지만 날카롭게 정련 된 정신은 이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한 번. 한 번에 적을 말소한다.’
의지는 즉시 힘과 반응하여 쿤의 몸 주변으로 결집되기 시작했다.
아쿤의 검신을 따라 하얀 색 빛이 길게 뻗어 올랐다. 성전에 선 용사의 검처럼. 빛 무리는 어둠을 밀어내고 찬란한 휘광을 사방으로 뿌렸다. 상처 입은 아군은 회복되고, 이단에 의해 일어난 존재들은 연기를 내뿜으며 괴로워했다.
수많은 스킬. 수많은 특기.
결국 모든 것들은 이런 힘의 사역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힘을 쓰는 법을 모르는 아이에게 내려준 장난감. 배우고 익혀, 스스로 설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제야 신의 힘을 쓴다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야 걸음마를 하고 있구나.’
그 사실을 깨닫자 아쿤으로 모여든 신성력이 더욱 또렷하게 잡혔다.
이단을 베어내고, 그릇된 욕망을 바로잡는 신의 힘. 길게 늘어진 의식은 눈 한 번 깜빡하는 시간 속에서 수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고가 끝나는 순간.
하얗게 백열하는 쿤의 검이 오리쥬의 목을 베어가고 있었다. 한 점의 의심도 없었다. 이것은 성공한다. 이정도로 뚜렷하게 집중된 힘이라면 베지 못할 것이 없으니까.
하지만……
“크하아아아!!!”
오리쥬의 눈이 번쩍 뜨여지는 순간.
검은 물결이 빛의 검을 집어삼켰다.
“크, 크으으윽!!”
쿤의 몸이 덜컥 정치하더니, 물결에 쓸려 뒤로 밀려났다. 백열하는 검은 세상 모든 것을 베어 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물결을 전부 베어내지는 못했다. 쿤은 이를 악물고 밀어냈다. 고양된 감각은 신의 위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데, 현실은 그와 같지 않았다.
“이 몸을!! 이 몸을 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냐!?”
토할 것 같은 이단의 힘이 사방으로 줄기줄기 쏟아져 나왔다.
검은 물결은 이단의 힘 그 자체였다. 쿤이 의식의 검으로 신의 힘을 쓰듯, 오리쥬 역시 자신의 방법으로 이단의 힘을 사역하고 있었다. 다만, 그 총량의 차이가 아득할 정도로 컸다. 끝없이 밀려오는 이단의 힘에 쿤은 달려갔던 길 그대로 밀려나 고목에 부딪치고 말았다.
“하하. 하하하하.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인간?”
오리쥬의 몸 주변으로 새카만 기운이 올라왔다.
쿤이 만든 빛의 장막과 정확하게 같은 형태다. 다른 점이라고는 힘의 성질 뿐. 사위를 찍어 누르고 본능의 욕구를 들끓게 하는 이단의 기운이었다.
“……”
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솔직히 막막했다. 어떤 위기가 와도 신의 힘이 있다면 이겨 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지금껏 그러했고. 하지만 이건……답이 안 보인다. 신과 대적하기 위한 악마가 더욱 강한 힘으로 눈앞에 현현한 것 같으니까.
가슴 절절이 새겨 둔 기도 조차 이 앞에서는 무의미해 보였다.
“쿤. 쿤. 도와줘?”
“……!!”
그 순간.
전혀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쿤의 귓가를 울렸다.
펄럭이는 보자기.
아니, 아도란이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작가의 말
위기의 순간 등장하는 아도란!
* 지나치게 강한 오리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