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82화 (182/240)

큰 이빨에 늑대를 닮은 외형.

황소 이상 가는 덩치에 발이 빠르고 아구힘이 대단해서 숙련된 모험가라도 만날라치면 몸을 숙이기 바쁘다는 몬스터. ‘렉터’가 한 장소에 스무 마리가 넘게 모여 있다. 보통 2~3마리씩 뭉쳐다니며 사냥을 하는 그들의 습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 하지만 그 주변으로 늘어선 그로울, 텐더, 베그다. 같은 다양한 몬스터의 모습을 보자면 그리 특출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것은 군대.

몬스터로 이루어진 군대였다. 습성도, 생활 방식도, 사냥 루트도 다른 몬스터들이 한 곳에 모여서 잡음 없이 기다리는 건 통일된 지휘 체계가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 그리고 그것이 존재하고 있다면 이미 하나의 군대라 지칭 할 수 있다.

……크르릉?

무리 중간에 코를 박고 있던 렉터 한 마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코를 벌름거리며 주변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무언가의 냄새를 맡는 듯 한 시늉. 주변에 늘어서 있던 다른 렉터들도 비슷하게 고개를 들고는 주변을 살폈다.

그로울 몇 마리가 낑낑 거리며 다가와 주변을 맴돌았다.

이상한 렉터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다. 이에 렉터가 곁에 선 그로울을 머리를 밀어 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이 붉고 콧김이 거세어지고 있었다.

……크르르릉!

한 마리가 외치니, 곁에 선 다른 렉터도 외쳤다.

경계음. 아니, 늘어진 다른 몬스터들을 부르는 울음이라 해야 할까. 소리에 맞춰 하나 둘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묘한 침묵이 흘렀다.

렉터를 제외한 다른 몬스터들은 멀뚱한 눈으로 주변만 바라보고 있었다. 알지 못하는 눈치. 무리 중 이상한 기류를 읽고 경고를 보낸 건 렉터 뿐이 없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킁킁 거리며 주변을 살피지만 그 이상의 조치는 없었다.

그저 성난 코를 벌름거리며 못마땅한 눈빛으로 주변 그로울을 툭툭 치고 있을 뿐.

그리고 그런 시간이 길어지자, 몸을 일으켰던 몬스터들이 하나 둘 다시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잘못 된 신호구나. 렉터의 행동에 눈을 흘기고는 긴장했던 근육을 풀어갔다.

그리고 그때.

콰콰콰콰콰콰쾅!!!!!!!

폭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동쪽, 서쪽, 남쪽……아니 사방 전역이 터져 올랐다. 흙무더기가 폭포수처럼 솟아오르고, 부서진 파편은 화살마냥 쏘아져 나갔다. 이에 얻어맞은 몬스터들이 비명을 토하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크아아아아앙!!!!]

렉터가 울었다.

‘이거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신경을 거스르던 것. 이제야 눈앞에 나왔으니 당장이라도 찢어 죽이겠다는 듯 혈광을 뿜으며 달려 나갔다. 목표는 폭발이 일어났던 곳. 날카로운 발톱이 지면을 거칠게 밟아갔다.

끼이이익—!

하지만 아쉽게도 그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힘껏 달려 나가는 순간 갑자기 바닥이 미끄러워졌다. 발톱으로 밟은 지면이 길게 갈라지며 균형을 앗아갔다. 몸이 앞으로 쭉 미끄러져서는 근처 거목에 처박혔다. 모여 있는 몬스터들 중 가장 강력한 존재라 위엄을 뽐내던 것에 비해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 돌격!!!

그리고 이어지는 목소리.

렉터가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하얗게 빛나는 인간 하나를.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숲 속에서도 유별날 정도로 발광을 하며 달려들고 있었다. ‘크르릉.’ 렉터가 이를 드러냈다. 인간과 렉터의 차이는 분명하다. 아무리 잘 단련한 인간이라 하여도 렉터의 강력한 발톱 한 방이면 목이 달아나는 것이 진실.

— 크아아앙!!!

그렇기에 망설임 없이 달려 나갔다.

우아한 발톱이 허공을 수놓았다. 나약한 인간의 목을 베어내기 위해서.

하지만 그건……

“힘으로 맞서지 마라!! 방패를 활용하고 적의 미간을 공격해라!!”

아주 잠시 동안의 꿈이었을 뿐이다.

미간이 관통당한 렉터 하나가 쿤의 등 뒤로 넘어갔다. 섬전 같은 찌르기는 혼의 비명을 그대로 남길 정도로 빨랐다. 지금도 단발마의 비명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쿤이 핏물을 털어내고는 곁에 다가온 그리울의 목을 꿰뚫었다.

푸들푸들 떠는 몸을 발로 걷어 차 떨쳐낸 뒤, 의식의 검으로 검을 횡으로 베었다.

피가 분수처럼 치솟으며 십 수 마리의 몬스터들이 절명했다. 압도적인 파괴력. 의식의 검을 막아 낼 수단이 없는 몬스터는 그의 일격조차 방어 할 수 없었다.

‘나와라!’

하지만 쿤은 이를 남용 할 수 없었다.

함정을 파훼하고, 적을 주살하는 중이다. 이를 계획하고, 적을 조종하는 자가 있다면 이제 모습을 드러내야 정상이다.

“통령 대리, 너무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뒤에서 백인장 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싸우는 모습을 여러 번 봤음에도 지휘관이 선두에 서서 파고드는 건 여전히 걱정인 모양이다. 쿤이 아쿤을 망령제어로 제어하여 사방으로 돌렸다. 다가서던 몬스터들이 그대로 관통되어 절명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끄응.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힘 빠진 목소리로 룩이 답을 해 왔다. 여유. 이런 것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땅에 숨은 몬스터를 매장하고, 그 위를 바짝 얼린 뒤 습격. 쿤이 계획했던 일은 너무나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대장만 찾으면 되는데……’

여왕과 힘을 사역하여 숲을 뒤질 때에도 적의 수뇌는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이단의 흔적을 읽을 수 없었다. 그리자야 프리실라의 봉인 때문에 그 흔적을 잡지 못했다 쳐도, 타락한 종자들은 보였어야 정상이다.

‘지금껏 몬스터를 잡았음에도 경험치나 정수가 안 올랐어.’

처음에는 미약한 영향이라 그런가 싶었는데, 봉인지 근처까지 왔음에도 반응이 없다는 것은 이상하다. 그렇다는 말은 몬스터들이 이단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붉은 눈과 무모한 공격. 종을 가리지 않은 군집체적 움직임 등은 일반적인 몬스터의 모습이 아니다. 무언가에 의해서 영향을 받은 모습.

‘이단의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그 힘은 나눠주지 않은 것.’

어쩌면 그리울이나 렉터 같은 단순한 몬스터에게는 이단의 영향력이 적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단의 힘이 직접 스며들지 않고, 누군가 영향력만 행사하는 것으로 봐서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 말은, 이를 움직이는 자가 남은 그리자의 힘을 모두 받아들였다는 말이 된다.

고룡, 하카림조차 타락시키게 만들었던 그리자의 힘을 받아들인 자라면 어느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을까. 아니, 예초에 그런 게 가능할까? 쿤 자신도 신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많은 공물을 바쳐 경험을 누적하지 않았던가.

이런 과정 없이 이단의 힘을 축척하여, 온전하게 사역 할 수 있는 자라면……

그건 쿤과 마찬가지로, 이단에 의해서 선택 받은 존재라고 밖에는 말 할 수 없다. 아니, 과정을 무시했으니 더욱 강력한 화신이라 해야겠지.

“아아. 역시 이런 걸로는 안 되나?”

“……!”

허공의 한 부분.

몬스터의 도륙이 모두 끝나고, 승리의 분위기가 공간을 잠식하고 있을 때. 은발의 남자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은발의 엘프.

다만 눈동자는 녹색이 아닌,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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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은 남자를 보는 순간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런 느낌은 하카림이나 여왕을 봤을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 받는 것이다. 손을 올려 군을 물리고 즉시 경계 태세를 취했다. 주변 몬스터는 모두 정리된 상황. 수백 대 일의 상황이지만 그것에서 여유를 찾을 수는 없었다.

“오리쥬……정말 너였단 말이냐?”

“여왕님. 오랜만에 뵙는군요.”

분에 찬 여왕의 말을 그가 느긋하게 받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땅에 내려와 주변을 훑어봤다. 은색 머리카락은 살아있는 것처럼 바람에 역행하며 흔들렸다. 마치 그 주변만 다른 법칙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오리쥬!! 네놈이 우리를 배신하다니!!]

순간, 라임이 지면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그의 검이 녹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하나의 궤적. 땅에 내려온 오리쥬의 목을 베어갔다.

챙—!

하지만 들려온 소리는 둔탁한 마찰음.

라임의 검이 오리쥬의 목을 베려는 순간, 바닥에서 은색으로 물든 넝쿨이 올라와 이를 막아냈다. 녹색으로 물든 라임의 검이 대단한 예기를 지녔음은 이미 앞서 확인 한 바. 허나, 이러한 파괴력조차 은색 넝쿨을 베어내지는 못했다.

[배신자!!! 네놈의 목을 베어 우리의 명예를 되찾겠다!!!]

[하하하. 라임, 이 어리석은 친구야. 아직도 명예 따위에 연연하고 있는 거냐?]

[닥쳐!!! 명예를 잃은 네놈의 말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

연거푸 검격이 쏟아졌다.

녹색 궤적인 은색 넝쿨에 연이어 충돌했다. 불꽃이 튀고 잘린 파편이 옆으로 날아갔다. 쾌속한 검은 망설임이 없고, 하나하나에 힘이 충만했다. 하지만 그 뿐. 그의 강격은 넝쿨 하나를 베어내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무르기만 했다.

[크으윽!! 네놈 명예를 팔고 얻은 게 이 힘이냐!?]

[하하하. 겨우 이것으로 만족 할 것 같으냐? 내가 바라는 건 겨우 그 정도가 아니다. 오랫동안 묵혀 있었던 소망. 어리석은 선대의 충성이 가지고 온 썩은 내 나는 지위의 종말이다.]

[뭐……?]

답 대신, 오리쥬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몸 주변으로 은색 넝쿨이 마구잡이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숫자. 순식간에 너른 공터 위가 은색으로 물들어 버렸다.

“이, 이건 불가능해.”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여왕이었다.

그녀의 표정은 지금까지 중 가장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쿤이 옆으로 가 몸을 부축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이건. 이 넝쿨들은 샘을 지키는 ‘신의 거목 - 라이셀’의 뿌리입니다. 어떻게 그가 이 뿌리를 사용 할 수 있단 말이지……?”

“신의 거목?”

하늘 위로 치솟은 은색의 넝쿨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엉겨 붙어 오리쥬를 받치는 권좌를 만들었다. 계단이 드리워지고 양옆으로 기둥이 솟아올랐다. 그는 그 위 가장 높은 상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일행을 바라봤다.

오만하다. 하지만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보십시오, 여왕. 아직도 당신이 이 숲의 주인이라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까?]

[오리쥬! 무슨 짓을 한 거냐!?]

[숲의 심장을 먹어 치웠습니다. 샘은 타락하고, 그 곁을 지키는 거목조차 내게 무릎을 꿇었죠. 이제 더 이상 여왕은 없습니다. 오직, 나. 숲의 왕만이 존재 할 뿐.]

[와, 왕이라고?]

오리쥬가 입가를 말아 올리고는 손을 뻗었다.

넝쿨이 바닥에서 올라와 손처럼 변해, 여왕을 잡아채려 했다. ‘뒤로!’ 쿤이 황급히 중간에 끼어들며 의식의 검으로 이를 베어냈다. 라임의 검으로도 걷어 낼 수 없던 넝쿨이지만 의식은 검은 이를 가능케 했다.

처음으로 오리쥬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인간, 방해하지 마라.]

[시끄러워. 프리실라를 어떻게 한 거냐?]

샘을 타락시켰다면, 그 주변에 있다 말 한 프리실라는 어찌 된 건가.

아직까지 마력의 흔적이 분명하게 남아 있는데 샘을 건드렸다는 건 납득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인간 마법사를 말 하는 건가? 겨우 그 정도 힘으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 한 건 아니겠지? 나는 무엇도 초월 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엘프에게 내려진 지독한 굴레를 잘라버리고, 내가 새로운 시대의 왕이 될 것이다.]

[이 새끼도, 머리가 어떻게 됐군. 네놈 한풀이 들어 줄 생각은 없어!]

쿤이 넝쿨을 밟아서 뛰어 올랐다.

의문은 제압 한 뒤에 풀면 그만이다. 상대가 무언가 굉장한 힘을 사용하는 건 맞지만 의식이 검이 넝쿨을 베어냄은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상대 할 수 있다는 의미. 망설임은 없었다.

[내가 분명 왕이라고 말을 했을 텐데?]

순간, 바닥이 일렁이더니 검게 물든 식물의 뿌리가 치솟았다.

쿤이 초감각으로 이를 읽고, 바닥을 짚으며 검을 뿌렸다. 뿌리가 베어지고 검은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숫자는 많지만 위력적이지 않다. 겨우 이것으로 왕이라 자신하는가? 쿤이 잠시나마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그 뒤……

괜한 생각을 한 거라 스스로를 자책 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 체액이 떨어진 바닥에서 몬스터들이 꾸역꾸역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진흙에서 기어오르는 짐승과 같이. 그 숫자는 셈으로 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았다. 은색 넝쿨로 만들어진 왕궁 안에 흙색의 근위병이 태어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바드라도 하나 데리고 오는 건데.”

완전히 악과 싸우는 성전이 아닌가.

아군에 악마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쿤이 입술을 잘근 씹고는 아쿤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 싸워라!!! 승리하라!!! 신은 우리 곁에 있으니!!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

점검이라니!!

끝나서 이제나마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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