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81화 (181/240)

숲이 깊어지고, 공기가 무거워졌다.

쿤은 토토를 통해 세이혼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계속 안으로 이동했다. 서부 연맹군은 천천히 남하하여 병력을 넓게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숲을 우회하는 것일까, 아니면 포위를 위해 산개하는 것일까. 아직 판단을 내리기에는 정보가 부족했다.

숲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넓었다.

여왕은 이틀을 예견했지만, 무리가 커진 만큼 그보다는 더 걸렸다. 게다가 들어갈수록 이단에 영향 받은 몬스터들의 등장이 잦아졌다. 쉐이드가 악마의 권위를 이를 쫓아보려 했지만 영향력이 부족했다.

이틀 만에 일행 중 다섯이 더 죽었다.

쿤은 아쉬워했다. 모두를 지킬 수 없음은 안다. 하지만 아군이라 여기는 사람이 다치고 죽는 건 절대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공기 중을 타고 흐르는 마력이 느껴지는군요.”

“프리실라인 겁니까?”

“아마도 그럴 거라 예상합니다. 봉인이 성공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직 살아는 있군요.”

쿤은 병력을 스무 명 단위로 쪼갠 뒤, 빠르게 식사를 처리했다.

간이식량도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나마 여왕이 숲의 동물 들을 불러와 먹을 수 있게 처리해 줘서 다행이었다.

배가 두둑이 차고 체력이 회복된 후, 쿤은 병력을 전진시켰다.

쉐이드가 어둠 속을 헤매며 정찰을 겸했다. 엘프중 몸이 날랜 몇은 나무 위로 올라가 눈을 더했다. 인간, 악마, 엘프. 정찰은 이렇게 3개 연합으로 돌아갔다.

슥. 슥.

나무위에 올라간 엘프가 신호를 보냈다.

쿤이 연습시킨 신호다. 손가락은 숫자를 손바닥은 방향을 가리켰다. 주먹을 세 번 쥐었다 피는 것으로 봐서, 적은 백단위로 파악되었다.

쿤이 감각을 넓게 펼친 뒤, 쉐이드에게 손짓을 했다.

쉐이드는 그림자 파편을 길게 남기며 적이 있는 위치로 움직였다. 그림자에 서식하는 악마의 무서움은 그 특이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림자와 그림자 사이를 이동하며 등 뒤에서 불쑥 튀어나올 서 있는 존재. 그리고 이 특성은 정찰에서도 제법 유용했다.

“……400. 그리울을 비롯한 각종 몬스터들이 모여 있다.”

쉐이드가 흘리는 바람소리를 쿤이 읽었다.

생각보다 숫자가 적었다. 지금껏 보아온 백 단위의 몬스터들을 고려해 볼 때 400이라면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공화국에서 차출한 병사들도 이제는 확실하게 경험이 쌓여, 몬스터 일백 정도에는 당황하지 않았다.

“당장, 프리실라를 구하러 가죠.”

“잠시 만요.”

재촉하는 여왕을 쿤이 만류했다.

“왜 그러시죠? 그녀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습니다. 빨리 가서 구해야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이상하지 않나요? 만약 상대가 이단을 거느리는 존재라면 우리가 접근하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그 사람이 오리쥬라는 엘프 중 하나라면 더더욱 경계를 철저하게 하겠죠.”

“그 말은 함정이라는 건가요?”

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숲은 고요하다. 새의 울음소리도, 흔한 짐승의 발자국 소리도 없다. 중앙에 모여 있는 마력과 주변을 포위한 몬스터들 뿐. 마치 이곳이 종착지인 것 마냥 잘 꾸며져 있다.

“쉐이드. 악마의 능력으로는 주변에 누가 있는지를 파악 할 수 없나?”

“내 힘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정말로 누군가 숨어 있다면, 내 힘을 능가하는 것이겠지.”

돌아온 쉐이드에게 질문을 해 봤지만 마뜩치 않다.

쿤이 턱에 손을 대며 생각에 잠겼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함정 같다. 하지만 적의 위치를 점치기 어렵다면 방비하기 쉽지 않다.

“상대의 위치만 찾을 수 있으면 되는 겁니까?”

고민하는 쿤을 보며 여왕이 물어왔다.

방법이 있는 걸까? 쿤이 시선을 돌려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게 조금 있습니다.”

“듣고 있습니다.”

“여왕의 힘을 사용하면 숨은 이들을 찾아내는 건 쉬운 일. 하지만 제 진신은 프리실라와 함께 갇혀있기 때문에, 힘을 끌어 올 수가 없습니다. 앞서 당신은 주변의 힘을 흡수하여 사역하였지요. 그 방법으로 제게 주변의 힘을 끌어와 주세요.”

“……진신이 갇혀 있다고요? 아니, 그보다 힘을 끌어오면 당신이 사용 할 수는 있는 겁니까?”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숲에서는 가능합니다. 진신이 아닌지라 직접 운용을 불가능하지만, 누군가 그 역할을 대신해 준다면 작은 힘 정도는 사역 할 수 있겠죠.”

일종의 에너지 소스가 되라는 말이다.

‘진신이 아니라니.’ 쿤이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여왕 치고 너무 별 볼일 없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다. 아무리 힘이 떨어져 아이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해도 오는 내내 손 하나 까딱하지 않던 건 이상했으니까.

‘하지만 괜찮을까?’

아랑겔을 통한 에너지의 흡수는 굉장히 난폭한 과정이다.

아직도 제어가 쉽지 않아, 애를 먹기가 일쑤다. 그것을 남에게 건네는 일까지 해야 한다면 난이도는 두 배. 아니, 그 이상. 약해진 몸으로 여왕이 견딜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그런 눈을 하지 마세요. 저는 이 숲의 여왕입니다. 힘을 끌어 올 수만 있다면 제어는 눈을 감았다 뜨는 것보다도 쉬워요.”

분위기를 읽었을까 여왕이 살짝 발끈한 얼굴로 쿤을 쏘아봤다.

그래봐야 볼이 통통한 것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외모지만. 쿤이 손사래를 쳐 미안함을 나타낸 뒤, 알았다고 의사를 표현했다. 여왕이나 되는 존재가 자신감을 보였다면 분명한 거겠지.

“전원, 뒤로 물러나 충격해 대비하도록 해라.”

쿤이 병력을 뒤로 물렸다.

잘게 나뉜 병력이 명령에 따라 조금 거리를 벌렸다. 라임 등도 여왕에게 와서 무언가를 이야기 하더니,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쉐이드는 이미 이야기를 듣고 저 멀리 그림자로 피신한지 오래.

“갑니다.”

쿤이 아랑겔의 자아를 깨우며 힘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웅. 웅. 거리며 바람 떠는 소리가 나고 주변의 힘들이 아랑겔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숲의 근원지. 그리고 마력이 충만한 셈의 지금거리라 그런지 앞선 경우보다 모이는 힘의 규모가 월등했다.

[캬아아아아아아!!!! 힘이다! 힘이야!!!]

마네코쉬가 해방감에 노래를 불렀다.

미친 자아에 재갈이라도 물리고 싶었지만 아랑겔을 전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아의 도움이 필요했다. 미친놈도 쓸모는 있다……라고 해야 할까. 괴성에 난리를 치며 날뛰는 마네코쉬를 무시 한 채 쿤이 정신을 집중했다.

‘모은다. 모으고 제어한다.’

큰 강에서 갈라져 나간 지류를 다시 모아 강으로 만든다.

이미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는 힘들이 하나로 모이고 있다. 충돌하고, 어긋나고, 반발을 한다. 그 충격은 오롯하게 쿤이 감당하는 바. 망령제어로 혼을 다루고, 의식의 검으로 혼을 방출하고, 히어로 메이커 모드로 모든 힘을 관조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 시도 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키이이이이잉—!!!

날 선 소리와 함께 힘이 아랑겔을 중심으로 뭉쳤다.

혼탁하기 그지없는 힘의 구체. 쿤이 일그러진 얼굴로 여왕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녀가 앙큼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냉큼 달려와 아랑겔에 손을 올렸다.

파앗—!!

힘이 물결처럼 퍼져갔다.

숲은 여왕의 것. 그건 단지 지배 구역에 대한 말이 아니었다. 말 자체 그대로의 뜻이다. 숲은 여왕 그 자체.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힘은 그녀의 제어를 받고 있었다. 끌어온 힘에 버둥거리던 쿤과 달리 여왕은 혼탁하게 합쳐진 힘을 매우 능숙하게 다루었다.

마치 성난 아이를 다독이는 어미와 같이.

날뛰던 힘이 금세 가라앉아 그녀의 의지를 따라 움직였다.

‘이렇게도 되는군.’

쿤은 그 신비한 감각에 나직이 감탄을 했다.

억지로 누르기만 했던 자신과는 달랐다. 여왕은 하나하나의 힘 모두를 다독였다. 세기도 힘든 숫자의 힘들을 모두 제어하고 하나로 뭉쳤다. 어긋난 부분을 맞추고, 충돌하는 부분을 조율한 것이다.

전율이 일어났다.

각기 다른 힘들이 해체되어 하나로 뭉치는 감각은 마치 신세계를 경험하는 것 같았다. 다른 세계. 지금껏 보지 못했던 또 다른 감각이 깨어나 날개를 펴는 기분이었다. 너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감각이지만, 그 화려했던 흔적은 깊이 남아 있었다.

“지금부터 합니다.”

“……아!”

쿤이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여왕의 모습. 더 이상 어린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그리고 무릎 꿇어 경배를 드리고 싶은 신성함까지. 정말로 ‘여왕’이라 부를 만 한 존재가 눈앞에 있었다.

“정신 차리세요. 유지하는 건 순간이니까.”

“음. 알겠습니다.”

여왕이 힘을 유도했다.

뭉쳐있던 힘이 한 순간 확장되더니 숲을 흔들었다. 거대한 유동은 내가 읽어내기 힘들 정도의 규모를 지니고 있었다. 지금껏 다루던 것이 냇물이었다면 이건 강. 엄청난 속도로 뻗어나갔다 다시 돌아오는 속도에 놀라야 했다.

‘……아.’

그리고 여왕과 함께 도드라진 힘의 흔적을 잡을 수 있었다.

봉인지로 예상되는 영역의 바로 아래. 적들이 숨어있는 곳은 바로 지하였다.

“크으……!”

쿤이 미간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났다.

뭉쳐있던 힘이 아랑겔을 통해 번개처럼 튀다 몸 안으로 흡수되어 충격을 전달했다. 이를 악물고 남은 여파를 제어 한 뒤, 아랑겔을 다시 침묵시켰다.

몸을 타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통령, 대리! 괜찮습니까?”

[여왕님!]

뒤로 물렸던 병사들 중 선임 몇이 황급히 다가왔다.

라임과 요그문트 역시 자신들의 여왕을 살피기 위해 접근했다.

“괜찮다. 여왕. 여왕도 괜찮은 겁니까?”

“……조금 지치긴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아요.”

“모습이 다시 돌아왔군요.”

“진신이 아닌 상황에서는 이 상태가 가장 효율이 좋아요. 여왕으로서의 위엄이 안 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귀여운 맛은 있지 않습니까?”

경직된 분위기를 풀고자 쿤이 농담을 건넸다.

여왕이 보조개를 파며 잘게 웃고는 라임의 부축을 받아 바로 섰다. 딱히 이상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쿤이 저릿한 손을 쥐었다 피고는 선임 병사들에게 입을 열었다.

“준비시켜라.”

“……준비 말입니까? 무슨?”

“땅 판다.”

전쟁 중 공병의 활약은 고래부터 이어지는 것이니.

핼쑥한 얼굴을 한 채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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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 숨은 적을 어떻게 상대하는 게 가장 좋을까?

삽으로 땅을 파 호를 구축 한 것이 아니라면 몬스터 특유의 능력으로 숨어 들어갔다는 이야기일 텐데. 지상의 적을 건드려서 적을 유도하는 것이 좋을까? 하지만 쿤 일행이 봉인지에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아쉬운 건 적이 아니다. 그렇다면 멀리서 공격을 가해 볼까? 몬스터라고 원거리 공격 능력이 없는 건 아니다. 게다가 일차적으로 위치를 드러낸 후라면 땅속의 적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하기 어렵다.

“매몰을 시키자는 건가요?”

“가장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그래서 나온 게 매몰.

적이 땅속에 숨어 있다면, 그 땅을 통째로 묻어 버리는 게 가장 효율 좋은 방법이다. 숲에 숨은 자는 숲을 태워 제거하고, 물속에 숨은 적은 독을 타 처리하는 법이다. 땅에 숨었다면 땅을 매몰시켜 싸움 없이 승리를 취할 수 있다.

“그게 쉬울까요? 몬스터 중에는 땅을 물처럼 오가는 이들도 있다 들었습니다.”

“허나, 그것도 자유로운 공간이 있어야 가능한 거죠. 적이 있을 거라 예상되는 지역 주변으로 땅을 판 뒤 일제히 폭파시킬 겁니다. 그리고 그 위로 서리 물약을 투척해서 지면을 굳히면 끝. 적은 나와 보지도 못한 채 전멸하고 말 겁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는군요. 자칫 사전에 걸리면 공격을 받지 않을까 하는데……”

“어차피 전투에 있어서 모험은 필수입니다. 지하의 적을 처리하고 난 뒤는 곧바로 지상의 적을 공격 할 테니, 여왕께서는 라임과 함께 이곳에 대기해 주세요. 신호가 가면 일제히 공격에 들어 갈 생각입니다.”

승부는 빠르고 간결하게 내는 것이 좋다.

지지부진 전투를 길게 가져봐야 좋을 건 없다. 기세를 죽이고 정비를 잘 한 뒤 폭풍같이 몰아친다. 그것이 승리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음. 어디서 들은 거지?’

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 용병 일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들은 거겠지. 대수롭지 않게 여긴 뒤 뒤를 돌아봤다.

지질을 조사하기 위해 시범삼아 땅을 판 병사들이 핼쑥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 조금 측은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역시 전쟁을 위해 병사가 참고 수행해야 하는 일인 것을. 필요하다면 산이라도 하나 삽으로 파 옮길 패기가 있어야 한다.

“예상 지점까지 가능하겠나?”

“네. 파 들어가기 좋은 상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폭발 물약은 한 번 개봉하면 다시 돌리기 어려워. 취급에 유의를 하도록.”

“알겠습니다.”

선출한 병사 오십이 각 열병씩 다섯 개 조로 흩어졌다.

필요한 것은 은밀한 준비와 적절한 타이밍. 흩어진 병사들이 지하에 폭발물약을 설치한다면, 이를 작동시키는 것은 쿤의 몫.

‘나머지는 폭풍 같은 공격 뿐.’

준비는 갖춰지고 있었다.

※작가의 말

폭풍저그 쿤진호가 간다!

아...뭔가 드립이 안 신나요.

문피아는 상태가 안 좋고, 날은 덥고 습해서 축축 처지고. 분량도 생각만큼 안 나오고.

뭔가 다같이 즐거울 만 한 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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