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로 전서구를 날린 뒤 쿤은 병력을 지휘해 숲으로 이동했다.
세이혼은 하푼 스물과 함께 적의 움직임을 정찰하기 위해 따로 분리해 나갔다. 비상용 전서구는 더 이상 없어, 둘 사이를 이어주는 대화의 창구는 토토가 맡았다. 발이 빠르고 쉼 없이 움직일 수 있었기에 서신만 말아서 맡겨 주면 냄새로 찾아 올 수 있었다.
“무리하지 말게.”
“그쪽이야 말로. 다쳐서 돌아가면 란이 운다고.”
덕담을 주고받고는 각자의 길로 움직였다.
쿤은 무리를 이끌어 숲으로 이동하며 상세한 내용을 전해 받았다. 여왕이 전한 바에 의하면 숲속에 살고 있는 몬스터의 숫자는 못 잡아도 수천. 그것도 이단의 영향을 받은 족속들만 대충 추려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만약, 프리실라의 봉인이 실패하고 다른 이들까지 이단의 종자로 돌아서면 몇 배로 불어날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
“혹시 그들을 조종하는 인물은 없습니까?”
“조종이라.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지난 몇 달 동안 적들의 공세가 지나칠 정도로 조직적으로 변했습니다. 누군가 적을 체계적으로 다룬다고 생각 할 수도 있겠네요.”
“생김새나 특징은? 아는 바가 없습니까?”
“검은 넝쿨로 몸을 감싸고 있어 확인 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숲지기의 일부일지도 모르겠군요.”
여왕이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숲지기라뇨? 그들도 이단에 종속당한 겁니까?”
“본디, 숲지기는 백여 명 가까이 됐습니다. 그리자에 타락할 것을 두려워 해 목숨을 끊거나 동족에 의해 살해당한 이들을 제외하고 겨우 이 정도만이 남았을 뿐이죠.”
“목숨을 끊다니……”
“숲지기에게는 숲을 지키는 것이 살아있는 이유입니다. 자신이 숲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가정은 너무나 치욕적이고 괴로운 것이지요. 그건 저로서도 말릴 수 없는 일입니다.”
쿤이 눈으로 숲지기의 숫자를 셈했다.
잘 해 봐야 스물 정도. 본래 무리의 팔 할이 이단과 싸우다 죽었다는 말이다. 그것이 자실이든, 동족 살해든 결국 이단에 의한 것. 남일에 불과하지만 입안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엘프는 어떻습니까? 이들은 본래부터 여왕님을 지키던 이들인가요?”
“숲의 엘프들은 숲지기와 비슷하나 조금 다른 점이 있죠. 그들은 숲을 지기는 숲지기와 달리 저를 지키기 위해서 산답니다. 숲과 여왕은 그릇과 물의 관계. 어느 한 쪽만 존재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고래부터 숲지기와 숲의 엘프들은 서로가 서로를 지키며 숲과 여왕이 영속 할 수 있게 노력을 해 왔습니다.”
“몬스터 들의 위협에서 말인가요?”
“후후. 아닙니다. 몬스터라 한들 그들은 그저 하나의 생물. 위협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죠. 제가 경계하고 위협을 받는 건 숲의 심장부에 틀어박힌 그리자. 타락을 부르는 그 저주받을 물건입니다.”
여왕의 얼굴이 표독해졌다.
고룡, 하카림 조차 견디지 못하고 타락한 이단의 힘이니 고충이 심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작은 여아의 모습으로 활보하는 것은 아마도 그 탓으로 유추되었다.
‘수도의 그리자는 괜찮겠지?’
출발 전 되는대로 정화를 하고 축복을 겹쳐서 깔아 두었다.
전체 그리자의 양에 비교하면 별 것 아닌 수준이지만 적어도 왕복하는 시간은 버텨 줄 거라 계산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맞서 싸우라고 아도란도 남기고 왔으니 최악의 경우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인간, 도착했습니다. 이곳부터가 요정의 숲. 우리의 고향입니다.]
쿤의 발걸음을 라임의 목소리가 잡아챘다.
그가 걸음을 세우고 고개를 들어 눈앞으로 펼쳐진 숲을 바라봤다. 멀리서 확인하던 것과는 또 느낌이 달랐다. 어찌 보면 신비로운 듯, 어찌 보면 음울한 듯 복잡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진입한다—!”
하지만 감상은 사치.
사방을 경계하며 숲속으로 진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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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은 고요했다.
들끓던 그리울의 모습이 거짓인 듯 침묵만이 이어졌다. 군의 발걸음 소리와 바람이 스치며 생겨나는 작은 소음만이 전부였다. 흔한 새소리도, 인기척에 놀라 도망치는 동물의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군.”
“숲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쿤의 감상에 요정이 답을 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잎사귀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끝이 갈라지고 색이 퍽퍽했다. 생동감이 넘쳐야 할 숲의 식물 치고는 확실히 모습이 좋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이단의……그리자의 영향입니까?”
“타락의 힘은 숲. 아니, 정확하게는 제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끝없이 확장하고 생명을 집어삼키기 위한 탐욕. 이를 막기 위해서 저는 어쩔 수 없이 몸의 일부를 잘라서 봉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탓에 숲은 마르고 생기를 잃어가고 있죠.”
“……당신이 없으면 숲이 죽기 때문에.”
“네. 저는 숲, 그 자체. 아주 오래 전 땅을 받치던 신이 몸을 뉘이고 난 뒤 그 위에서 태어난 존재이죠.”
“신? 숲이 신의 잔재라 이건가요?”
여왕은 조금 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오래된 일이지요. 하지만 그런 과거 속에서 살아온 저 조차, 이 타락의 존재는 이해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타락의 존재. 어째서 세상에 이런 게 존재하는 걸까요?”
“……제가 답하기 힘든 문제입니다만.”
“프리실리가 말 해 주었습니다. 당신의 힘은 그 타락을 정화 할 수 있다고.”
“맞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 이유까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서준경 신의 힘이 대단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녀가 말 한 대로 서로 짝을 이루기 때문이지.”
“서준경이라. 그런 이름의 신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오래된. 잊힌 신이니까요.”
“그런가요?”
끝맺음이 잘 되지 않는 답 이후 침묵이 흘렀다.
사실 쿤도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 서준경 신이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어째서 이단과 적대하고, 세상 유일하게 그 힘을 정화 할 수 있는지. 신봉하고, 그 의지에 따르는 마음은 변하지 않지만 제 일 사도로서 그 진위를 알고 싶은 건 사실이다.
‘어쩌면 내 등급이 더 오르면 알게 될지도 모르겠지……’
신의 의지는 목적성이 있다.
어느 날 우연히 길 가던 거지에게 적선삼아 동전을 건네 줄 것이 아니다. 이단과 싸우기 위해서. 그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그리고 무언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쿤 자신은 선택을 받았고, 지금 이 순간도 싸우고 있는 것이다.
“……!”
그 순간, 쿤이 생각을 잘라내고 손을 들어 올렸다.
군이 정지하고, 앞서가던 여왕이 고개를 돌렸다. ‘적입니다.’ 쿤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 뒤, 감각을 넓게 확장시켰다. 거미줄처럼 뻗어간 감각이 주변의 지형을 지도처럼 생생하게 알려 주었다.
“400……아니, 500정도군요. 상당수의 몬스터가 저편에 있습니다.”
“프리실리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해요. 다른 길은 오염이 심하기 때문에 더 위험할 겁니다.”
“음. 저 지역을 지나, 프리실라가 있는 곳까지. 지금 속도면 얼마나 걸릴 거 같습니까?”
“이 속도로 계속 움직이면 이틀 정도면 도착 할 거 같네요.”
“이틀이라.”
생각보다 거리가 제법 있다.
그 정도면 난전을 벌인다 해도 프리실라가 있는 곳의 적들이 눈치 채지는 못할 터. 빠르게 적을 정리하고 나가는 것이 좋을 수도 있었다.
“모두, 무장을 들어라.”
쿤이 명령을 내리자, 병사들이 말에 묶어 둔 방패 등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숲은 그리 촘촘한 편은 아니었지만, 말을 타고 싸우기에는 지형이 좋지 않았다. 작은 원형 방패와 중간 길이의 검과 도끼. 어깨와 등을 맞대고 싸우기에 적합한 형태로 병력을 분산 배치했다.
[인간, 우리도 돕겠습니다. 우리는 숲의 마법을 사용 할 수 있습니다.]
병력이 배치되자 상황을 전해들은 요그문트 다른 엘프들과 다가왔다.
그와 라임. 그리고 두 명의 엘프 여자가 더 포함되어 있었다. 숲의 마법이라면 쿤도 앞서 본 적이 있다. 그리 대단하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도움 정도는 되겠지.’
쿤이 그들을 후방에 배치시켰다.
병력 중 일백 정도를 후위에 돌려 궁병처럼 사용하고 있으니, 그들도 그곳에 합류를 한 것이다. 그리고 남은 숲지기와 여왕은 활자형 방진 중간에 두어 확실하게 보호를 했다. 녹색 눈을 한 엘프와 신기한 차림새의 숲지기들이 저들끼리 막 뭉쳐서 떠드는 모양새에 병사들이 힐끔힐끔 눈치를 주기는 했으나 훈련받은 대로 쓸데없이 말을 걸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통령, 대리. 적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세이혼을 제외하고, 남은 무리에 각자 백인대장을 두었다.
그 중 하나가 숲 너머에 어른거리는 몬스터를 발견하고 신호를 보내왔다. 언뜻 살피니 앞서 싸웠던 그로울인 것 같았다. 이미 한 바탕 하면서 대충 위력은 경험해 두었으니 상대로 어렵지는 않다.
[신성 대지의 축복]
[성전의 축복]
사람 목숨이 달린 전투에 점수 아낄 생각은 없다.
쿤이 곧바로 축복을 사용 한 뒤 손을 흔들며 명령을 내렸다. 드워프제 크로스 보우에서 수백발의 쿼럴이 쏟아져 나갔다. 워낙 장력이 높고, 명인의 손으로 제작된 물건이기 때문에 속도가 굉장했다.
순식간에 숲 너머로 사라졌다.
— 케에에엑!!
비명과 함께 그로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구리를 닮은 눈동자를 빙글빙글 돌리더니, 일행을 발견하고는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역시나 눈가가 붉고 기세가 굉장히 흉포했다.
“실드—!”
쿤이 외쳤다.
선두에 나선 병력들이 즉시 방패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휴대하기 편한 라운드 실드지만, 이 역시 드워프의 손을 거쳐서 나온 물건이다. 가볍지만 단단하다. 이인 일조로 등을 받치며 상대 돌격을 대비하는 자세를 취했다.
“2선. 발사!!”
크로스 보우를 내려놓고 방패를 든 선두를 제외한 후위.
능숙하게 등자를 밟아 쿼럴을 먹인 뒤 재차 목표를 조준하고 있었다. 마상에서야 장전해 둔 것들을 연발로 쏘고 나면 쓸 수 없는 크로스 보우지만 지상전에서는 다르다. 전열만 정비된다면 얼마든지 연발이 가능했다.
슈슈슈슛—!!
쿼럴이 다시 한 번 숲 안을 수놓았다.
선두의 그로울들이 몸에 쿼럴을 박은 채 고꾸라졌다. 달려드는 기세가 강한 만큼 튕겨나가는 힘도 강했다. 켕! 켕! 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몸뚱이가 튕겨나갔다.
[묶어라!!]
라임을 비롯한 엘프 마법사들도 합류했다.
녹색 기운이 허공에 서리더니, 달려드는 그로울들의 발을 묶어냈다. 넝쿨. 그륵그륵 거리며 자라나서는 범위에 있는 적들을 전부 잡아챘다. 힘 좋은 그로울들이 손으로 이를 떼어내고 다시 움직였지만, 그때는 재장전 된 쿼럴이 머리를 쪼개고 있을 때였다.
— 크아아아앙!!
하지만 그럼에도 공세를 뚫고 접근하는 무리는 있었다.
이윽고 큰 충돌음과 함께 선두 방패병들과 그로울이 부딪혔다. 달려드는 힘, 강력한 몬스터의 각력을 생각하면 충격은 녹록치 않다.
“버텨!!”
“밀리지 마라!”
허나, 선두 전열은 한 점의 물러남도 없었다.
선두를 후위가 받쳐주어 전열을 방어하는 형태였다. 그리고 일단 적의 돌진이 멈추면, 이는 즉시 공격진형으로 변형이 가능했다.
— 케에에엑!!
— 크르르륵!!
방패를 든 병사가 그로울을 밀고, 뒤에서 받치고 있던 병사가 검을 뽑아 목을 쑤셨다.
단순하지만 그만큼 효과적이다. 순식간에 수십의 그로울이 나가 떨어졌다. 몇 몇 허우적거리는 병사들은 쿤이 움직이며 도움을 주었다. 망령제어로 잡아 둔 백기사들 역시 힘이 달리는 지역에 손을 보탰다.
“푸시—!”
쿤이 기회를 보다 크게 외쳤다.
적의 기세가 죽고, 반격의 기회를 잡았을 때 사용하는 명령. 방패병들이 힘으로 적을 밀어내고, 비스듬히 집어넣어 두었던 검을 뽑아서 돌진에 나섰다. 이때는 후위의 병사들 역시 크로스 보우를 놓고 전열에 합류했다. 난전일 때는 화살 공격이 되레 위험하기 때문에 적의 후위를 감싸는 형태로 공격하는 것이 훨씬 유리했다.
“좋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빠르게 정리해라!!”
“예써—!”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사격으로 이백. 난전에서 삼백. 달려들던 그로울의 무리는 짚단처럼 베어졌다. 보통이라면 단련된 병사라 해도 이렇게 피해 없이 싸우는 것은 무리. 이는 쿤이 사전에 설치해 둔 축복 덕분이다. 모든 능력이 올라가고 용기가 치솟아 몬스터의 돌진에도 물러남이 없게 되는 것이다.
전투는 몸으로 하지만, 전쟁은 기세로 한다.
마음이 꺾인 병사는 짚단만 못하지만, 용기가 가득 찬 소년병은 역전의 용사 부럽지 않은 것이다. 쿤의 축복은 이런 면에서 있어서는 확실하게 사기적인 면모를 보였다.
[위험하다—!]
하지만 그 순간, 라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쿤의 귀를 후비고 들어왔다.
경고의 목소리. 하지만 아직 감각에 들어서는 적의 움직임은 없다. 쿤이 라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까맣게 물려오는 그림자 무리를.
[그림자 마물! 쉐이드!!]
일차전이 끝나고 이차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작가의 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며!!
더욱 좋은 글로 보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