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77화 (177/240)

상대의 주력 기마대는 세이혼이 견제하는 사이, 쿤은 엘프 등을 이끌고 무사히 전장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비약 제조를 통해서 만들어 둔 여러 가지 물약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적의 움직임을 견제하며 구릉을 넘어 미리 약속해 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지. 이곳에서 쉰다. 낙오한 인원은?”

“없습니다. 룩이 어깨에 화살 한 방 맞기는 했지만, 나머지는 무사합니다.”

“응급조치를 취해라. 무장은 해제하지 말고. 톤, 바리. 둘은 주변을 돌면서 적의 접근을 경계해라.”

“알겠습니다!”

쿤은 빠르게 무리를 정돈했다.

세이혼이 추격하는 무리를 무사히 떨쳐내고 온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전을 각오해야 한다. 적 2만 무리 중 기마는 약 1천. 그 대부분이 세이혼의 움직임에 맞서서 이동했다. 하푼의 전력이 일반 기마병에 비해서 우위에 있는 건 맞지만 숫자는 무시 할 수 없다. 대비하는 것이 좋았다.

[인간, 어째서 여기에 머무르는 것입니까?]

엘프, 라임이 물어왔다.

뒤에 선 일행들이 초조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합류해야 할 일행이 있습니다. 그리고 본대는 어차피 몸집이 커서 따라오기 힘듭니다. 걱정하지 말고 잠시 쉬고 있으세요.]

[허나……]

[라임, 그만하세요. 지금은 그의 말을 따르는 것이 현명합니다.]

요그문트가 나서서 중재를 했다.

라임이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났다. 조금 답답해 보이는 성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남의 말을 들을 줄은 알았다.

한 장소에 뭉쳐 주변을 경계하는 엘프 무리를 곁눈질로 훑어 본 뒤, 쿤이 시선을 돌렸다.

‘세이혼. 아직 멀었는가?’

부상당한 이를 치료하고, 준비해둔 비상식량을 씹으며 시간을 보냈다.

사방은 고요하고, 추격의 느낌은 없었다. 구릉 너머로 보이는 적의 군세는 일단은 쿤 일행과 마찬가지로 상황을 추스르는 것에 전념하는 모습.

두두두두……

그리고 그때, 기마를 유인해 달렸던 세이혼이 다시 돌아왔다.

몇 명이 보이지 않았다. 상처 입은 이들도 상당수. 아무래도 일전을 결룬 듯 보였다. 쿤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어찌 된 건가?”

“기마대에 합류한 인물 중에 마법사가 있었다. 불길이 우리를 가로막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일전을 벌여야 했네. 그 과정에서 몇 명이 당했다.”

“마법사라니……본대에서 모습이 안 보인다 했더니, 기마대에 합류했던 건가?”

“굉장히 능숙하더군. 그냥 책상 물림하던 마법사가 아니네. 말을 타면서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세이혼이 말에서 내렸다.

‘추격은?’ 쿤이 묻자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피해는 있었지만 적어도 적은 완전히 따돌리고 온 것이다. 쿤도 그제야 안심을 하며, 주변 경계를 위한 몇 명을 제외하고는 무장을 풀고 쉴 수 있게 명령을 내렸다.

“아쉽군. 훈련 시간이 조금만 더 길었어도 아무도 죽지 않게 할 수 있었는데.”

나직하게 세이혼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 해체되었던 집단이기 때문일까, 그는 하푼에 꽤나 애착을 보였다. 일백의 하푼 중 죽은 사람은 전부 열하나. 애초에 많지 않은 숫자이기 때문에 그 빈자리가 더욱 커 보였다.

“너무 상심하지는 말게나. 무리를 유도해준 덕분에 나머지는 무사하게 도망 칠 수 있었으니까.”

“알고 있네. 해야 하는 일 정도는. 다만……아쉬울 뿐이지. 돌아가거든, 죽은 이들의 보상이나 후하게 처리해 주게나. 죽은 이들에게 그런 게 의미가 있나 싶지만.”

쿤이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긴 말이 필요 없었다. 책임은 그도 느끼고 있었으니까. 이번 원정 자체가 직접 주도하여 거행한 일. 죽어가는 이들의 면면은 결국 책임감이라는 돌덩이로 다가온다. 수도로 돌아가 죽은 이들의 이름을 드높이고, 가족에게 보상을 후하게 하겠지만 결국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역시 책임자라는 위치는 쉽지가 않네.’

용병으로 있을 때야 자기 몸 하나만 건사하면 그만이었다.

동료가 죽어도 아쉬움. 단지 그 뿐.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따르는 이가 수백이요, 입만 바라보는 이들은 수만이다. 선택 하나하나에 많은 이들의 생가 사가 오고 갈 수 있다는 부담감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 요그문트가 그대를 부르고 있습니다.]

생각에 빠져있던 쿤을 라임이 불렀다.

엘프 등도 일단의 위험은 벗어났음을 인지했는지 조금 풀린 얼굴들로 모여 있었다. 쿤이 무리로 다가가 요그문트의 옆에 앉았다.

[너무 늦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건 아닐지 모르겠군요.]

요그문트가 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가슴에 손을 댄 채. 고마움을 표하는 모습은 인간과 크게 바를 바 없었다. 쿤이 고개를 흔들어 이에 응한 뒤 입을 떼었다.

[상황이 급박하여 감에 의존하여 움직였을 뿐입니다. 당신들이 누구인지 소개를 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렇군요. 아직 소개도 안 했군요. 저희는 요정의 숲에 머물고 있는 푸른 잎사귀 일족. 그리고 이쪽은 오래전부터 숲을 지켜오던 숲지기 무리입니다.]

[디-오라 한다, 인간.]

요그문트의 소개에 넝쿨로 몸을 감싼 숲지기가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가 굉장히 특이했다. 동굴에서 울리는 소리라고 해야 할까. 외모만큼이나 독특한 목소리였다.

[어째서 저들이 당신들을 공격한 겁니까?]

[그건 우리야 말로 알고 싶은 일입니다. 숲의 악마들을 피해 간신히 몸을 숨겼다 생각했는데, 느닷없는 인간의 공격이라니. 이래서야 두고 온 친구들을 찾으러 갈 수도 없습니다.]

[친구? 그러고 보니 숲에 누군가를 두고 왔다고 했지요. 숲속에 엘프가 남아 있는 겁니까?]

[오, 아닙니다. 그녀는 인간. 마법사죠. 보통 인간이라면 알기 어렵겠지만 최후의 문의 일원으로 우리를 돕기 위해……]

[프리실라?]

쿤이 반사적으로 말을 하자, 요그문트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 분위기도 갑작스럽게 경직되었다.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알다마다요. 얼마 전까지는 같이 생활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럼 당신들이 숲의 여왕과 관계있는 사람들입니까?]

[……! 그, 그것까지 알고 있습니까?]

깜짝 놀라는 모양새가 조금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순진하다고 해야 할까. 속마음을 전혀 숨기지 못하고 있다. 쿤이 고개를 끄덕이며 프리실라와 관계된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놀란 얼굴로 듣던 요그문트가 크게 납득하며 일행을 안심시켰다.

[그리 된 일이군요. 그녀가 말 한 아까운 남자가 바로 당신이었어요.]

[그건 좀 부끄러운 말이군요. 그보다 그녀가 숲 안쪽에 남았다는 건 역시 그리자에 의한 이단의 영향력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됐다는 건가요?]

[그리자. 그녀도 그렇게 부르더군요. 전에는 간신히 막아 낼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얼마 전부터 숲의 악마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프리실라도, 여왕께서도 도저히 이를 막아 낼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고 말았죠.]

[그렇다면 여왕도 숲에 남아있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뒷말은 요그문트의 것이 아니었다.

갈색 로브를 뒤집어 쓴 소녀. 엘프 무리 속에 숨어 있어, 어린 엘프라 여겼던 아이다. 손으로 로브 끝자락을 잡아서 뒤로 넘겼다.

“음……”

쿤이 미간을 좁히며 한 걸음 물러났다.

소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굉장한 이질감이 몸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이건 이단의 것과는 성질이 전혀 달랐다. 같은 세계의 생물이 아닌 것 같은 존재. 너무나 이질적이라 그 간극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웅……

이때, 이질적인 존재의 힘에서 쿤을 보호해 준 건 신성력이었다.

별다른 특기나 스킬의 도움도 없이 자체적으로 일어나 이질적인 힘에 대항을 했다. 금세 어지러움이 사라지고 정신이 또렷해졌다.

“그녀가 말 하던 인물이 맞군요.”

“……당신이 숲의 여왕입니까?”

또렷하게 전해지는 소녀의 목소리에 쿤이 마른 침을 삼키며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다른 엘프들과 달리 공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네. 여러 가지 이름이 있지만 당신에게는 숲의 여왕이라는 명칭이 받아들이기 쉽겠군요.”

“놀랍군요. 숲의 여왕이 이런……”

“어린아이 모습이라고요? 후후. 아쉽지만 모습이라는 것은 제게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지금은 힘이 많이 부족해진 바. 이 모습이 유지하기 편할 뿐이죠.”

그녀가 잰 걸음으로 다가와 쿤의 앞에 섰다.

확실히 아이의 모습이다. 가슴팍에도 안 오는 키와 동글동글한 얼굴. 젖살도 다 안 빠져서 부모 손잡고 잠들 나이의 아이로 보였다. 하지만 감각이 말 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아이는 완전한 별세계의 존재라고.

“너무 긴장 할 필요는 없어요. 그대는 이미 고룡, 하카림과도 조우하지 않았나요? 너무 그렇게 뻣뻣하게 있으면 제가 서운해집니다.”

“음……그 하카림과 비교하니까 더 어려워지는 기분입니다만.”

“하긴 못생긴 하카림에 비해서 제가 낫기는 하죠.”

농담인가 싶어, 쿤이 잠시 말을 아끼자 그녀가 웃었다.

이질적인 존재인건 맞지만 겉으로 보이는 성격 자체는 조금 가벼워 보였다. 어쩌면 외형에 맞춰서 성격이 변하는 걸지도.

쿤이 셔츠자락을 당겨서 숨을 편하게 하고는 다시 물었다.

“여왕께서 이곳에 있다는 말은 숲 안에서 이단과 싸우는 게 프리실라 혼자라는 건가요?”

“그녀를 비롯한 동료 마법사 몇 명이 봉인 마법을 사용하고 있어요. 시간을 멈춰서 그리자의 힘이 전파하는 것을 막는 거죠.”

“시간을 멈추다니……그런 게 가능한 겁니까?”

“마법사의 비전이라고 하더군요. 다만, 그런 이적에는 큰 대가가 따르는 법. 성공한다고 해도 무사할 거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여왕의 눈 꼬리가 내려갔다.

프리실라와 그녀의 동료를 숲 안에 두고 온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새다. 쿤이 무심결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멈췄다. 이질적인 느낌만큼이나 외모는 보호본능을 자극하고 있었다. 힘이 없을 때를 대비한 외모라면 확실히 효과가 만점이었다.

“실패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리자의 힘에 영향 받은 숲의 마물들이 밖으로 뛰쳐나오겠죠. 이미 일부가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 뒤를 쫓아왔을 정도니 그리 긴 시간은 필요 없을 겁니다.”

“난장판이 되겠군요.”

“과거에 있었던 악마들과의 싸움……어쩌면 그 이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쿤이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이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인간끼리 싸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단에 오염된 몬스터들이 숲 밖으로 뛰어 나온다면 그건 말 그대로 재앙. 숲의 규모를 생각해 볼 때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의 숫자가 예상된다.

‘잠깐만. 그렇다면 혹시……’

프리실라가 봉인을 위해 움직이고 있을 무렵, 딱 맞춰서 2만의 군대가 숲으로 진군했다. 그리고 도망치는 엘프 무리를 기다렸다는 듯 공격을 했다. 마치 누군가의 부름을 받아 병력을 운영하는 모습.

“마법사. 세이혼, 말에 타 쫓아왔다는 마법사 말이야. 혹시 이상한 점은 못 느꼈나?”

“이상한 점?”

“이질감이나, 혐오감. 특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었어?”

“흠. 그러고 보니, 우리를 쫓아오며 마법을 사용 할 때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적의라고 보기에는 조금 이상한……아마 네가 설명한 그 느낌이겠지.”

쿤의 부름에 세이혼이 설명을 늘어놨다.

기마로 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적의 기척을 간파 할 정도로 그의 수련 수준은 높았다. 그렇다면 이 말은 의심 할 여지가 없는 사실.

“몬스터 사냥이나, 우리에게 압박을 넣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어. 2만의 군세는 숲에 있는 그리자를 보호하기 위한 거야.”

“그 말은 서부 연맹을 이끌고 있는 이들 중에 이단의 종자가 있다는 건가?”

“아마도. 그것도 무리를 이끄는 이들 중에 포함되어 있겠지.”

그렇다면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상대가 이단의 부림을 받고 있다면 무력시위로 물러나게 할 수 없다. 신의 이적을 보이고 덤벼든다면 더욱 거칠게 나올 것이 뻔하다. 어쩌면 위협으로 느끼고, 숲속의 그리자를 공략하려는 시도가 더욱 치밀해지겠지.

‘문제는 욕망의 방향인데……’

지금껏 많은 이단의 종자들을 만났지만 통일 된 의지로 조종 받는 경우는 없었다. 저마다의 욕망에 휘둘려 손을 잡거나 멀어지거나 했을 뿐. 하지만 2만의 군세를 이끌고 숲의 그리자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였다면 이건 양 측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있다는 말과 같다.

“지금은 고민 할 때가 아닌 거 같군요.”

그때, 여왕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구릉 너머를 가리켰다. 육안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묘한 불온함이 그곳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쿤이 황급히 망원경을 빼어 들고 그 위치를 살폈다.

“……젠장.”

뿌옇게 피어오르는 먼지 사이로 오만 종류의 몬스터들이 보인다.

방향을 고려해 보면, 도망치기 직전에 느꼈던 몬스터들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위치라면 2만의 군세 역시 있었을 터. 그것을 무시 한 채 일행에게 달려든다는 것은 역시 일반적인 경우와 동떨어져 있다.

‘명분으로 삼은 성전이 진짜가 될 수도 있겠군.’

숲에 잠들어 있는 그리자와, 이에 영향 받은 이단.

단순히 무력시위를 위해 나선 이번 출병. 어쩌면 조금 더 길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쿤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 무기를 들어라!!!

어쨌든 지금은 전투를 대비해야 할 때.

위엄 가득한 쿤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작가의 말

합법 로...읍읍읍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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