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이 서부 지역으로 살포한 서신들은 다양한 루트로 전해졌다.
군의 집결로 불안에 떨던 지역 시민들은 즉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유력가들의 항쟁이 자칫 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 하지만 아쉽게도 그 힘은 그리 크지 못했다. 공화국 수립 이후, 제도적으로 그나마 정비가 된 수도 인근에 비해 지방은 여전히 왕정의 잔재가 진하게 남아 있었다. 불만을 품는 건 어쩔 수 없었으나, 군을 대동한 과거 귀족에게 격한 항의를 하지는 못했다.
2만의 군세는 진군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요정의 숲으로 계속 전진했고, 그 소식은 밀정을 통해 계속 쿤에게 전해졌다. 반란군으로 생각하겠다는 호언에도 개의치 않는 모습. 몇 번이나 서신을 직접 전달했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쿤은 의아해 했다.
이것에 기세싸움임은 알지만 그래도 반란군으로 낙인 찍혀서 2만의 군세가 이를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서부 연합은 말 그대로 서부만의 것. 공화국 전역을 손에 넣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은 얻는 것 없는 손해 보는 싸움. 차라리 이 시점에서 협상을 걸어오지 않을까 여겼는데, 상대는 묵묵부답이었다.
- 무시하고 진군해야 할 만큼 멍청하다. 혹은 진군해야 할 이유가 있다.
쿤은 연거푸 밀정을 보내 군의 움직임을 살피고 결단을 내렸다.
수도와 인근 지역 군벌은 이미 합류를 알리고 모이고 있는 상황. 수도 방위가 자체적으로 가능진다면 일단은 적의 의중을 확실하게 알 필요가 있었다. 도른과 예하 관리들에게 수도의 정비를 일임한 뒤 세이혼과 함께 출병을 준비를 했다.
숫자는 둘을 포함해서 400명.
하푼의 일원 1백과 그 동안 손수 뽑아 훈련시킨 정병 300이었다. 2만에 비교하면 조촐한 숫자였지만 쿤은 개의치 않았다. 군마를 단단히 장비하고 물약과 장비를 최고의 것으로 준비시켰다. 상대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힘을 보이고 빠지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오빠, 오빠가 꼭 직접 가야 해요?”
“걱정하지 마. 멀리서 화살이나 좀 날리다가 올 생각이니까.”
“그쪽이 쏠 수도 있잖아요.”
“그에 대한 대비도 충분히 해 두었으니까 걱정 마.”
울상인 라라의 머리를 쿤이 토닥였다.
그녀만 출병을 말린 것이 아니었다. 도른 및 문관들 역시 만류했다. 이제 겨우 안정을 찾고 있는 수도 실정에서 머리가 전투에 나서는 건 최선이 아니라는 말. 허나, 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렇기 위해서는 직접 전투에 참여하여 상대를 살필 필요성이 있었다.
‘게다가……’
접점이 될 것이라 생각되는 요정의 숲.
그냥 우연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운명의 부름이 신과 만나게 한 것처럼, 이 또한 거대한 흐름의 연속으로 느껴진다. 저항 할 수도, 흐름에 몸을 싣고 최선을 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쿤은 흐름 속에서 스스로가 주도하기를 선택했다.
“후우.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이거라도 가지고 가세요.”
라라가 푸른 색 띠를 내밀었다.
금색으로 띠의 겉면이 장식되어 있었다. 일종의 부적과 같은 것. 전쟁에 나서는 남편을 위해 아내들이 종종 이런 걸 달아 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쿤이 슬쩍 받아 그녀의 얼굴을 살피니, 터질 듯 붉어져 있었다.
‘예쁘네……’
입 끝에서 맴도는 말이 속에서 넘치듯 흘러나왔다.
받아 든 끈을 손목에 단단히 묶어 두었다. 흰색으로 차려입은 쿤의 옷과도 잘 어울렸다. 손을 들어 살펴 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깨끗하게 가지고 돌아올게.”
“……다치지나 말아요.”
불안과 걱정 끝에 라라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였다.
쿤이 슬쩍 웃고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려 주었다. 그리고 이마를 살짝 젖혀 입을 맞췄다. 손가락만 맞추며 숙이고 있던 그녀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갔다 올게.”
오링의 망토를 크게 흔들며 쿤이 몸을 돌렸다.
400의 군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을 들어 올리고, 준비해 둔 전마에 몸을 올렸다. 단단한 안장의 감촉이 풀어진 마음을 바짝 당겨 주었다.
“출발—!!”
이윽고, 천둥과 같은 말발굽 소리가 평원을 가득 메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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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자는 것을 최소한으로 하며 말을 달려 요정의 숲으로 이동했다.
아도란이 마법으로 공간이동을 시켜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기간 내에 그의 머리에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달리고 달려 거리를 단축시키는 것이 최선이었다.
먼지가 어깨위로 뽀얗게 내려오고 쌩쌩하던 얼굴들이 푸석하게 말라갈 무렵이 되어서 일행은 요정이 숲이 시야에 들어오는 곳까지 도착 할 수 있었다.
“세이혼, 정찰을. 나머지는 야숙 준비를 해라.”
“알겠습니다!”
이미 며칠이고 해 온 일이라 어색함은 없었다.
능숙하게 땔감을 찾고, 식량을 손질하며 야숙 지를 꾸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세이혼은 정찰을 위해 발이 날랜 하푼의 일원 열을 뽑아갔다.
“키이이~!”
쿤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토토가 폴짝 뛰어내려서는 주변을 빙빙 돌았다.
코로 냄새를 킁킁 맡고, 귀를 쫑긋거리며 주변의 소리를 탐지했다. 꽤나 별난 모습이지만 이미 한동안 겪은 일이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토토는 하카림이 지하 창고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키메라.
내부에 있는 보물과 장비를 기억하는 것만이 모든 능력이 아니었다. 토토는 몇 가지 도구에 관해서는 인간에 가깝게 사용 할 수 있으며,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는 것에서는 인간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쿤은 이를 알아채고 나서는 토토를 훈련시켰다.
냄새를 구별하고 적아를 판단하고 몇 가지 작은 도구에 대해서 다룰 수 있도록 만들었다. 토토는 이제 말보다 빠른 걸음으로 정찰을 나갈 수도, 주변에 적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첨병의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놀랍도록 예민한 후각이었다.
“키이이~!!”
“오, 티푸락 잎이군. 어디서 찾았지?”
“키! 키!”
토토는 야숙지를 세우는 곳 주변 풀과 꽃. 동물의 냄새 등을 분간하여 쿤에게 알려왔다. 그 중 어떤 것은 쉽게 찾기 힘든 물건이었다. 덕분에 비약제조에 실린 약물 중 아직까지 한 번 도 만들어 보지 못했던 것을 시도하기도 했다. 게다가 토토는 매우 적은 양의 곡식 낱알과 물 몇 모금이면 하루를 움직여도 거뜬했다. 쿤이 가끔 기특함에 고기를 툭툭 잘라 먹이로 주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먹이 대비 효율이 매우 뛰어난 부하였다.
“키~!! 키!!”
그렇게 찾아온 약초를 사용해, 병사들이 끓이는 식사에 첨가제로 사용하고 있자 정찰 나갔던 세이혼이 돌아왔다.
“수고했어. 상황은 어때?”
“조금 묘하다. 숲 인접 지역에 넓게 포진하고 있는데, 기세가 상당해. 여유를 부리거나 숲을 관통하기 위한 모습이 아니야.”
“일전을 대비하고 있다는 건가?”
“그 편이 가장 적합한 설명이겠지. 조금 더 깊숙이 다가가 보려고 했는데, 무리 중 마법사가 있는 듯해서 포기하고 돌아왔다.”
“마법사?”
“멀리서 봐도 알아 볼 수 있는 복장이더군. 아마 조금 더 가까이 접근을 했다면 들켰을 거다.”
설명을 전해들은 쿤이 상대의 조합을 되짚었다.
마법사. 물론, 서부 지역에 마법사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군과 엮일 정도의 사람이 있나 하면 그건 또 의문이다.
‘혹시, 이단에 오염된 마법사들이 이쪽에 합류를 했나?’
본래 프리실라와 싸우던 무리가 있다.
추적 끝에 위치를 파악하고 합류했다고 보면 그것 또한 말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2만 병력도 그것을 위한 수?
‘아니, 그건 좀 과하지. 아무리 그래도 2만을 움직이려면 유력가 전부가 찬동을 해야 해. 이를 통일시켜서 몰고 왔다고 보는 건 무르겠지.’
지금의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쿤이 일단은 생각을 정리했다. 쿤과 정찰 나갔던 인원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한 뒤, 준비해둔 음식을 배급했다. 비약 제조를 통해서 체력을 회복 할 수 있는 물약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먹고 한 시간 정도 쉬면 바로 또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자, 아끼지 말고 다 쑤셔 넣어. 푹 쉬고 난 뒤에 다시 움직인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이.
깜짝 만남을 가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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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 일행은 요정의 숲 북반으로 돌아, 2만의 군세를 남으로 둔 상황이었다.
요정의 숲 북쪽으로는 옅은 구릉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가면 험악한 산지가 등장한다. 쿤은 그 경계를 타고 말을 달린 뒤, 적을 눈 아래로 둔 것이다.
“자네 말대로군. 기세가 강맹해.”
쿤이 평원 전체에 펼쳐져 있는 2만의 군세를 보며 품평했다.
야숙지를 펼치고 몸을 쉬게 하는 거라면 이런 분위기가 나올 수 없다. 이건 칼을 손에 쥔 채 엉덩이를 깔고 앉은 모양새다. 적이 등장하면 바로 칼을 앞으로 내밀 태세였다.
“어찌 할 생각인가? 자네의 힘이 대단한 건 알지만 저 군대 앞으로 그냥 들이댈 것은 아닐 테고.”
“처음에는 일단 모습을 드러내 상대를 동요시킬 생각이었는데……분위기가 묘하군. 일단은 지켜보는 것이 좋겠어.”
“저들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글쎄. 우리를 예상한 거였다면 첨병이 분산해야 정찰을 옳겠지. 지금의 형태는 응집해서 적을 맞이하는 자세야. 어쩌면 단순하게도 숲의 몬스터를 상대하려는 건지도 모르겠군.”
“2만의 대군으로 말인가?”
“……음.”
아무리 몬스터의 세력이 강대해도 2만의 대군이다.
바위로 지렁이를 잡는 겪이다. 쿤이 말을 하고도 이상한지라 침음 성을 흘렸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과연 숲 앞에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단 말일까?
“음? 쿤, 저길 보게.”
그렇게 상대를 눈 아래에 두고 대치하기를 얼마나 흘렀을까.
부대 앞쪽으로 작은 소요가 일기 시작했다. 세이혼이 앞서 발견하고 쿤의 어깨를 두드렸다.
“저자는……”
쿤이 허리춤에서 작은 망원경 하나를 꺼내 들었다.
드워프 제작품. 배율을 자유자재로 조절 할 수 있고, 휴대가 간편하다. 흐릿하게 보이던 상대의 모습이 뚜렷하게 다가왔다.
“티셀 라온이군. 라온가의 인물이야. 이번 일을 주도한 사람 중 하나겠군.”
“그 옆에는 젠킨스로 보인다. 젠킨스 상회의 주인이자, 의회에 의해서 지방 총독으로 배정받은 인물이지. 티셀 라온과 마찬가지로 주도자 중 하나. 그렇다면 저기 모여 있는 인물들이 모두 이 2만 군세의 주인이라 할 수 있겠군.”
세이혼이 동일한 망원경을 눈에 댄 채 부연설명을 이어갔다.
군세의 주도자들이 한 군데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말인즉슨 무언가 일어난다는 의미였다. 쿤이 병력에 명령을 내려 전투를 준비시켰다.
“……”
기다리고 기다리고.
설마하니, 군의 중심 일원들이 그냥 모여서 티타임이나 가지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
“왔다.”
숲 안쪽에서 일단의 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굉장히 희미했던 기척이 한 순간에 폭발하며 감각을 두드렸다. 마치 막혀있던 장막 밖으로 송곳이 튀어나온 기분이었다.
“……쿤!”
“나도 보고 있어.”
숲에서 튀어나온 것은 풀잎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숲지기와, 녹색 눈동자로 사방을 어지러이 살피는 엘프였다. 쿤도 소문과 이야기로만 들어 본 것이지 실제로 이 두 종족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 쏴라!!!
그 순간, 대기하고 있던 서부 연맹의 병사들이 숲 밖으로 나오는 무리를 향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팽팽해져있던 긴장감이 폭발하고 화살이 하늘을 빼곡히 메워갔다. 피할 곳이라고는 없다. 쿤 조차 순간적으로 그리 생각을 했을 정도로 공격은 너무나 시기적절했다.
“Φως οθόνης!!!”
하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 숲에서 나온 무리에서도 대응책이 나왔다.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새하얀 빛의 장막이 무리를 감싸고 돈 것이다. 장막은 햇빛을 반사해 화려하게 번쩍였고, 첫 사격 이후 두 번째 시위를 먹이던 사수의 눈을 교란했다.
타타타타탕!!!
화살은 연이어 장막에 충돌하며 튕겨나갔다.
그때마다 막은 거칠게 출렁거렸다. 수천의 화살. 일차 공격은 막았지만, 장막의 한계는 그것이었다. 새하얀 섬광을 남긴 채 장막이 해체되었다.
— 돌격하라!! 적을 주살해라!!
화살 공세가 끝나는 순간에 맞춰서 장비를 챙겨 입은 서부 연맹군이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군마에 올라탄 수백의 기마대가 차징을 위한 랜스를 든 채 후방으로 우회를 하고 있었다. 지축을 울리는 군마의 발걸음 소리가 무시무시하게 퍼져갔다.
“O δάσος!!”
녹색 눈동자에 녹색 머리카락.
양 갈래로 머리를 딴 엘프 소녀가 풀잎 하나를 손으로 찢으며 외쳤다.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우회하던 기마대의 길 앞으로 넝쿨 더미를 솟아올랐다. 이는 마치 살아있는 것 마냥 전마의 다리로 엉겨 붙었다. 펄쩍펄쩍 뛰고 요령껏 피해보지만, 넝쿨은 집요했다. 달려가던 기마의 절반가량을 그 자리에서 정지시켰다.
— 불을 사용해라!! 숲 째로 적을 죽여 버려!
후방 사수들이 화살촉에 기름 먹인 헝겊을 달기 시작했다.
금세 피어오르는 불꽃. 다리를 숙이고 시위를 치켜 올리는 모양새에, 엘프와 숲지기 들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 멈춰라!!!
그 순간.
전혀 뜻밖의 곳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살을 시위에 먹이던 사수들과 말을 독려하여 달리던 기마병들도 한 순간이나마 그 목소리에 주의를 빼앗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목소리에는 혼을 잡아채는 강력한 힘이 서려 있었다.
“공화국 통령 대리이자, 서 준경 교단 사도의 이름으로 말 한다.”
새하얀 후광이 쿤의 등 뒤를 휘감고 올라왔다.
찬란하게 빛나는 빛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전사와 같은 모습을 자아냈다. 망토는 바람을 맞아 휘날리고 햇빛은 그를 위해 존재하는 듯 열렬하게 내리쬈다.
“당장 싸움을 멈춰라.”
단 한 명의 등장에 장내는 정적에 휩싸였다.
※작가의 말
잘 보이나요?
요즘은 말미에 이거 꼭 물어보게 되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