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73화 (173/240)

“공격해라—!”

쿤이 통령 대리로 취임한지 한 달이 된 시점.

의회는 내분으로 갈라져, 힘을 잃었다. 프리실라를 통해서 알아낸 규합 시간에 세이혼을 필두로 한 하푼이 습격. 무리를 제압하여 남은 일당을 모두 소탕 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은 의회장이 그리자의 힘으로 변이를 시도했으나, 완전무장한 세이혼에 의해서 척살. 남아있던 위협마저 모두 처리하는데 성공했다.

쿤은 곧바로 대회의를 열어 의회의 반란 사실과 그 제압 과정을 공표하였다.

그리고 이에 관련된 가문들을 전부 소환하여 벌하였다. 병력, 물자, 장소. 모든 면에서 지원을 해 오던 가문들은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의회에 눌러앉아 착복했던 자금등이 가문 창고 등에서 쏟아져 나와 비어있던 창고를 채워갔다. 가뜩이나 지방 유력가들과의 대치로 세금 납부가 잘 되지 않아 우려하는 이들이 많았던지라, 이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쿤은 이렇게 회수한 돈을 과감하게 풀었다.

전면전은 없었지만 긴 내전으로 수도와 주변 지역이 상당히 피폐해져 있던 바. 이를 복원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이 사절에는 항상 서준경 교를 믿는 사람을 따라 보냈다. 능력으로 맺어진 신도는 아니지만, 제단을 세우고 뜻을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루루와 라라. 그리고 몇 명의 도움으로 완성한 경전도 같이 실려 보냈다.

서준경교는 금세 세를 넓혀갔다.

통령 대리가 사도로 있고, 기적을 알리는 종교. 민간 신앙이나 다른 신을 믿던 이들도 하나 둘 개종을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서준경교는 딱히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을 막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믿음과 이단에 대한 경계 뿐. 그 외에는 균형 지킨 삶에 대한 격언 정도가 전부였다. 어찌 보면 조금 심심할 정도로 종교가 가진 특징이 없었다.

“이걸로 벌써 제단이 열 개째군. 아, 그리고 라오스 마을은 일전에 홍수로 곡식이 부족하다고 하니까, 구휼미를 풀어서 지원해 주도록 해. 길 정비에 들어간 인력은 그대로 남아서 일마치고 복귀하라고 전해. 도른, 자세한 건 네가 사람을 뽑아서 진행하도록 하고.”

하지만 그렇기에 전파 속도가 빨랐다.

종교라는 것은 삶에 도움이 되고 믿음의 근간이 되면 그만이다. 찬란한 기적보다 작은 보살핌이 좋다.

제단을 세우고 종교를 전파한 곳에는 병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과 약을 제조하기 위한 약국. 그리고 이를 유통하기 위한 상회를 건설하였다. 전부를 묶어 하나로 운영하고, 벌어들인 점수로는 축복을 실은 성물을 내려 주었다. 약과 치료. 그리고 점차 양질의 상태로 변해가는 토양.

내전으로 인해 관료에 대해 불신을 갖던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금방이었다. 배부르고 등 따듯하면 그만이다. 통치자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그것이 가장 올바른 국가의 모습이다. 쿤은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일을 진행했다. 자금과 물자의 한계. 형평성의 문제 등이 계속 그를 괴롭혔지만 하나씩 풀어갔다. 처음에는 통령의 대리라고 너절한 용병 하나가 등장한 것에 불쾌하게 여기던 이들도 그 모습에 조금씩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특히 도른과 베인스가 많은 도움이 되어 주었다.

세금 납부가 되지 않고, 중앙의 통치가 거의 정지되었을 때 빠르게 주변을 수습한 것도 그들이었다. 사실상 재무대신이 있을 때도 수도의 실무를 담당하였던 것이 그들이니, 얼굴 따로 일하는 사람 따로 라는 말이 납득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의회를 해체하고 수도 주변부터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기를 벌써 3개월.

당장이라도 폭동이 일어나 나라가 쪼개질 것 같던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아니, 단순히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헤헤. 오빠, 방금 또 한곳에서 소식이 왔어요.”

“남부?”

“아뇨. 아쉽게도 북부에요. 북부 연맹에서 탈퇴 할 테니까, 식량 지원을 좀 해 달래요.”

“북부 이민족들이 제어가 안 되는 상황에서는 식량 수급이 어렵지. 조만간 북부는 완전히 정리가 될 거 같네.”

수도와 인근 지역이 정리되면서, 그 너머로 영향력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민중으로는 종교가 퍼졌다. 종교라는 건 구획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알음알음 퍼져간 것이 어느새 시민의 절반을 집어 삼키곤 했다. 그리고 이는 시민의 갈망으로 이어졌다. 조금 떨어진 도시에는 제단, 신전. 그리고 병원과 약국 등이 들어서고 있는데, 자신들은 여전히 주먹구구식의 민간요법에 의존하고 있으니까.

물론, 지역을 다스리는 유력가들도 이를 막거나, 따라하려는 시도는 해 봤다.

타 지역 땅에 심어 둔 성물을 훔치려고 도둑을 잠입시키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축복과 성물. 여러 가지 혜택은 모두 쿤을 통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사라진 성물은 얼마든지 다시 복귀시킬 수 있고, 축복은 해제가 가능하다. 결국 쿤의 도움 없이는 같은 수준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죠. 네크로맨시로 평원을 전부 갈아엎고, 망령제어로 띄운 판 위에서 성물과 생명수로 축복받은 물을 뿌려대고 있으니까요. 수확량 자체에서 상대가 안 돼요. 세금을 안내면 우리가 금방 고사 할 거라 생각한 모양이겠지만,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죠.”

라라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로이 필그람이 찾아 간 이후 남부 역시 등을 돌리고 세금 납부를 완전히 거부했다. 곡식, 가죽, 철광석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의 교류가 단절되며 수도와 그 인간의 삶은 순식간에 황폐해 졌다.

이게 바로 쿤이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고, 지방 유력가들이 믿었던 부분이다.

기세가 꺾인 중앙에서는 결국 지방에 손을 뻗고 은밀한 협약을 맺을 수밖에 없으니까. 나라를 전복할 것이 아닌 상황에서야 이런 시나리오밖에는 가능한 것이 없다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쿤은 그들의 상상을 완전히 초월하고 있었다.

철광석? 지하에서 미친 듯이 나왔다. 하카림이 모아 둔 보석과 광물. 그리고 각종 도구들은 못해도 십년은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게다가 지하 신전 공사를 진행하던 드워프들이 아예 눌러앉아서는 채광을 하기 시작했다. 하카림이라는 존재로 인해 주변은 마력이 깃드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주변 광물은 뛰어난 품질을 지니게 되었고 이는 드워프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환경이었다.

캐라, 그리고 일부를 내게 달라.

쿤은 드워프와 거래를 하였고 손쉽게 그들의 노동력을 빌려 올 수 있었다. 게다가 작정하고 찍어내는 제조술은 인간을 아득하게 초월했다. 지하를 통해서 생산되는 물건의 양에 쿤조차 입을 떡하니 벌렸을 정도.

물자의 부족은 전혀 없었다.

“남은 건 서부와 남부인가. 더 이상 끌지 않고 항복을 해 주었으면 하는데 말이야.”

“듣자하니 서로 의견이 갈리고 있다나 봐요. 조만간 일부가 투항하지 않을까요? 하나 둘 시작하다보면 와해되는 건 금방일거 같은데.”

“호오. 제법 잘 알고 있는데? 공부라도 한 거야?”

“틈틈이 하고 있어요. 아버지 병간호 하면서 시간 보낼 것도 필요해서 말이죠.”

라라가 살짝 어색하게 웃었다.

아버지. 공왕은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건강까지 악화되어 지금에는 아예 병석에 누워 버렸다. 라라와 루루.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돌아가며 간호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마음 여린 라라는 그를 동정하게 된 모양이다.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 어쩌면 그를 치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늘어진 라라의 뒷머리를 쿤이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부끄러운 듯 목덜미를 붉혔지만 라라도 피하지 않았다. 가만히 그 손길을 즐겼다. 3개월. 시간 속에서 변한 것은 주변의 정세만이 아니었다.

“오빠가 그렇게 말 하면 믿어 볼게요.”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는데?”

쿤이 너스레를 떠니, 라라가 픽 웃었다.

하지만 장난스러운 말투와는 다르게 쿤은 진심을 말 한 것이었다. 상처 입은 공왕의 영혼. 어쩌면 치료 할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관건은 마네코쉬의 제어겠지.’

실패한 전설적 무구 마네코쉬의 능력은 에너지의 흡수. 이는 네크로맨시나 의식의 검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이는 히어로 메이커 모드 당시 이단을 갈랐던 감각과도 닿아있었다. 가는 방향을 달라도 도착하는 장소는 모두 같다고 해야 할까.

지난 3개월 동안 틈틈이 마네코쉬의 제어를 연습한 결과 지금에는 힘의 유동을 한곳으로 모아 넣는 게 거의 가능해졌다. 즉, 마네코쉬에 실린 회복 기능을 타인에게 사용 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렇게 운영하는 에너지가 혼의 상처를 치유 할 수 있게 되면 공왕의 상세를 회복시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다만 그 간격……’

이단과 함께 잘려나간 혼의 단면을 치유하기 위한 한 가지 스텝이 모자랐다.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신기루라 해야 할까. 조금만 더 가면 될 거 같은데 잡지 못하는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었다.

“그보다 다른 지역 통합까지 전부 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루루가 가끔 묻던데.”

“통합한 뒤에? 뭐가 궁금한데?”

“베인스 씨가 지방 유력가들의 죄목을 정리하고 있잖아요. 정리된 거 보니까 장난 아니던데. 그냥 다 받아들이고 넘어갈 생각이에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다는 무리겠지만……그래도 몇 명은 벌에 처해야 하지 않아요? 중앙 권력에서 멀리 있다는 이유로 악독한 짓을 잔뜩 저질렀던데.”

라라가 미간을 좁히며 말을 했다.

‘주름 생겨.’ 쿤이 미간을 툭툭 쳐 주며 가볍게 웃었다.

베인스가 정리한 보고서는 그 역시 읽었다. 공국에서 공화국으로 넘어갈 당시, 나라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 많은 것들이 넘어갔다. 개 중 몇은 의회를 지지하던 악독한 무리도 있었다. 상회, 용병길드, 바운티 헌터 등. 돈과 인맥으로 의회를 지지하여, 신분을 세탁하고 관료로 위치를 잡은 것이다. 그들이 현재, 의회에 의해 발탁된 감찰관과 지방 총독으로 나가있다.

현실적으로는 그들 모두를 쳐내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쿤은 이미 통령대리 직위를 맡고 난 뒤 각오 한 바 있다. 재무대신이나 오델 백작같은 인간들이 종횡하고 있다면 절대로 그만두지 않겠다고. 그리고 베인스가 조사해온 내용에 따르면 그런 이들이 상당히 많다.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굶주림을 참으며 몸을 웅크려야 할 때가 있는 법이야.”

쿤이 라라의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훑어 내리며 말을 했다.

낮고, 옅은. 하지만 무거운 기운이 실려 있는 목소리였다. 라라가 눈동자만 치켜 올린 채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자신들의 안전이 확보되었다 생각 할 때……확!!”

“……!”

쿤이 손으로 허공을 강하게 휘어잡았다.

그 앞에 만약 누군가 있었다면 목덜미가 뜯겨나갔을 것이다. 동그랗게 뜨여진 눈으로 라라가 마른 침을 꼴딱 삼켰다.

“기다리자고.”

“네.”

조금 더 고분고분해진 목소리로 라라가 답을 했다.

#

넓은 공터 위.

두 사람이 빠르게 주변을 오가며 손속을 나누고 있다. 한명은 단검을 양손에 나눠 쥔 쿤. 다른 한 명은 장검을 비스듬히 든 세이혼이었다.

대련. 주변 정세가 아무리 바쁘게 돌아가고, 하카림의 그리자를 정화하는 일이 얼마나 고되든 대련은 절대로 빼먹지 않았다. 힘이라는 것은 초월적인 영역에서 내려오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을 다루는 일은 결국 노력의 산물이었다. 초감각과 초상력의 수련. 하푼식 감각 수련법의 더욱 깊은 경지. 쿤이 나아갈 곳은 아직도 많이 있었다.

“머뭇거리면 손이 베일지도 모른다.”

“하하. 그대로 되돌려 주고 싶군.”

“오늘은 나도 쉽게 물러 날 수가 없어서.”

“이해는 합니다만—!”

쿤이 말을 끊고 달려들었다.

양 손에 들린 단검이 춤을 추듯 움직였다. 마치 비단을 하늘에 풀어 놓은 듯 너울거리며 움직이는 검세에 세이혼의 장검이 엇박자로 말려 들어갔다.

“아빠, 힘내요~!”

연무장 주변, 작게 마련된 티 테이블에서 나이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란. 레스터 요새에서 아이린과 함께 머물고 있던 그녀가 수도로 돌아온 것이다. 내전이 종식되고 쿤이 통령의 대리에 앉으며 세이혼의 과거 행적은 전부 지워졌다. 그건 그가 머무르던 지역까지 전해졌고, 서신을 받은 아이린은 란과 함께 수도로 왔다.

세이혼과 아이린. 그리고 란 사이에 묵혀 둔 비밀 이야기는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지만, 단란하게 모인 채 응원하는 모습은 분명 가족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세이혼은 더없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우오오오오!!!”

세이혼이 거력으로 쿤의 단검을 밀어냈다.

수치 상 그의 힘은 쿤을 넘지 못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딸 앞에 선 아버지는 괴력을 발휘하는 법. 쿤의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하아압!!”

번개 같은 검격이 검격이 쏟아졌다.

‘이 인간이 정말 나를 죽이려는 건가?’라고 쿤이 순간이나마 생각했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황급히 중심을 잡고 단검으로 면을 때려 궤적을 빗겨낸 뒤 반격에 나섰다.

“오빠, 힘내요~!”

티 테이블에는 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연분홍색 드레스에 상큼한 리본으로 멋을 낸 라라가 손을 흔들고 응원을 하고 있었다. 딸 앞에 선 아빠만큼이나, 사랑하는 여자 앞에 선 남자 역시 괴력을 발휘하는 법이었다.

채채챙—!! 챙!!

검과 검이 화려하게 충돌했다.

둘 사이에는 의식의 검도, 망령제어도, 다른 장비의 도움도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 순수한 육체의 다툼. 땀방울이 몸을 타고 흐르고, 격렬해지는 흐름만큼 머리 위로 연기마저 피어올랐다.

챙—!!

대련의 격렬함이 절정에 이른 순간, 쌍 단검과 장검이 한 점에서 충돌하여 양편으로 튕겨나갔다. 연무장 흙바닥에 꽂히는 검들. 쿤과 세이혼이 땀으로 범벅 된 몸을 한 채 양 손을 마주 잡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이대로 싸움을 더 이어 갈 심산이었다.

“그만. 그만.”

하지만 그때, 그들 사이로 흰 로브 차림의 아도란이 끼어들었다.

허공에서 빙빙 돌아 내려오더니 둘의 맞잡은 손 위에 착 하고 내렸다. 무게감이 안 느껴지는 신비한 몸. 쿤과 세이혼이 동시에 손을 놓고 물러났다.

“아도란, 무슨 짓이야.”

“중간에 끼어드는 건 위험하다. 무슨 생각인 거냐?”

“손님. 손님.”

살짝 욱한 얼굴로 둘이 물었지만 아도란은 신경 쓰지 않았다.

빙글 돌아 로브를 펄럭이고는 연무장 입구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얼마 안지나 쿤과 세이혼 역시 그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통령 대리!!! 큰일 났습니다!!”

도른이 거친 숨을 내쉬며 뛰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일단 두편을...

문제 없이 볼 수 있어야 할 텐데용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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