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70화 (170/240)

무장 병력이 달려왔다.

하지만 화기를 장착한 인원은 없었다. 현재의 공간. 배양실 자체가 그들에게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바. 이를 지키면서 나를 제압하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겨우 경비로? 우스운 수작이다.

……라고 단정해야 옳겠지만 그건 또 그렇지 않았다.

터텅!!!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몸이 반 치 쯤 떠올랐다.

사각형의 진압방패와 내 주먹이 충돌한 결과.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상대가 뒤로 밀려나야겠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힘의 상쇄. 장비의 이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상대의 힘이 범상치 않았다.

“너를 위해 준비를 해 두었다.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거다.”

“……강화 병사라 이거군.”

변이체와 인간의 중간.

정확하게 하자면 능숙한 병사와 괴인의 중간 정도 되는 느낌이었다. 능력 자체는 괴인보다 떨어지지만 사고 능력을 확실하게 잡아서 전투력은 오히려 올라갔다. 초월적인 힘으로 무장한 숙련된 병사.

그야말로 초인병단 아니겠는가.

“그아아아아!!”

50Cm정도의 흑색 단봉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맞았다면 갈비뼈 한둘로 끝나지 않을 위력. 게다가 이것은 단일 공격이 아닌 합공이다. 옆과 뒤에서 연격이 들어오고 도망 칠 수 있는 위치를 몸으로 좁혀 들어왔다.

키릭.

망령제어로 단봉의 중심을 앗아 간 뒤 얼굴을 후려쳤다.

부러진 이빨과 핏물이 솟고, 얻어맞은 볼링 핀마냥 몸뚱이가 후위에 있는 경비에 충돌했다. 쓰러진 건 하나. 나머지는 모두 몸을 날려 타 넘은 뒤 전투 현장에 뛰어들었다. 빠르고, 날렵하다. 게다가 노련하다.

손과 방패. 그리고 단봉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전신 근육이 요란하게 비명을 질렀다. 빠르게 신념의 증표를 걸고, 바닥에 신성대지의 축복을 깔았다. 흰 빛에 적들이 괴로워하는 것이 보였다.

“역시 네놈이구나!! 도망 칠 수 없다!!”

“하아. 뭐, 죽이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인 관계지.”

휘릭. 손바닥에서 아쿤을 돌렸다.

확실히 장내의 인물들을 제압하는 것은 무리다. 이득을 취하더라도 숫자는 좀 줄여야 한다. 호흡이 몸 안으로 깃들고 남은 망설임을 줄여 주었다.

“전장에서 억울함은 없겠지.”

서로 적이다.

사정 봐주며 싸울 이유는 없었다. 날숨과 동시에 초감각으로 전해지는 적의 공세 틈으로 파고들었다. 몇 번의 충돌로 상대의 흐름은 기억해 두었다. 치고 물러서고, 협력하는. 마치 잘 짜여진 태엽 같은 동작들.

하지만 그만큼 정형화돼 있다.

“커르륵……”

턱에서 후두부를 관통해 솟아오르는 아쿤.

비틀어 찢어 내린 뒤, 목을 통으로 베어냈다. 검은 짧지만 내 의념은 그렇지 않다. 의식이 검이 찬란한 빛과 함께 내 몸 주변으로 동조하기 시작했다.

“막아!! 더 이상 날뛰지 못하게 해라!!”

적의 공세가 더욱 거칠어졌다.

한여름 밤의 소나기처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 쏟아져 내렸다. 피할 곳 없는 거친 공격. 휘말려 몸을 피로 적시거나, 그대로 빗물에 녹아 나가는 것이 답 같았다.

하지만……

“뭐, 뭐야……”

“저런 게 가능하다고? 믿을 수 없어!!”

횡으로 그은 아쿤의 궤적 따라 달려들던 적의 목이 차례대로 분리되었다.

일수에 다섯. 그리고 다시 반대로 돌아 일수에 다섯. 열을 베는데 걸린 시간은 한 호흡도 되지 않았다. 벤다는 것에 집중한 의념은 그들이 착용한 방어구도, 사각 방패도. 특수 합금으로 보이는 단봉조차 막아내지를 못했다.

“역시 좀 그렇군.”

생명을 앗아가는 기분은 달콤하지 않다.

설혹 그것이 이단에 오염된 이들이라 하여도. 아쿤에 묻은 피를 바닥에 털어내고는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분의 추종자. 이곳에서 썩은 싹을 자르겠다.”

“추, 추종자!?”

아직 ‘이름 없는 자’가 직접 움직인다고 알릴 필요는 없겠지.

적이 이를 적대한다면 개인이 아닌 무리로 상정하게 하는 것도 나름의 계책이 될 거 같다. 몸집을 부풀리는 것은 나약한 초식동물의 전유물은 아니니까.

“각오해라.”

“파, 파멸수를 풀어!!”

“하지만 그건……”

“풀어! 일단 저 새끼부터 잡는 게 우선이다!”

파멸수? 뭔가 만화틱한 이름이 나왔다.

후위에 남아있던 경비 중 하나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기기를 작동했다. 제임스가 서 있던 거대 수조 양 옆으로 증기가 빠져 나가더니 물이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오, 맙소사! 이게 대체 뭡니까!? 당신들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요!?”

제임스가 가장 먼저 이를 발견하고 소리를 높였다.

수조 안에 있던 것은 머리 셋 달린 개. 나 같으면 켈레로스라 이름 붙였을, 그런 짐승이다. 전신이 붉은 빛으로 도배되어 있고, 황소 이상의 체구를 가졌다. 수조에 들어있던 액체가 짐승을 잠재우던 역할 인 듯, 물이 모두 바닥나자 천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미스터 하퍼. 잘 지켜보시오. 이것이 우리의 성과입니다.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질병을 치유하고, 가지지 못했던 힘을 손에 넣는. 더 이상 인간은 질병을 두려워하고, 수명 앞에 벌벌 떨 필요가 없습니다.”

“저런 괴물을 앞에 두고 그런 말이 나온단 말입니까!?”

“과거의 짐승은 지금 보자면 괴물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과거의 생명이 지금의 생명체를 본다면 괴물이라 보겠죠. 생소함의 차이이고, 진화의 과정일 뿐입니다. 조금 흉측해 보인다 해도, 그건 과도기의 문제일 뿐. 본질은 인간보다 더욱 나은 생명체가 된다는 것에 있습니다.”

“미쳤군……”

제임스가 주춤주춤 물러났다.

이제야 상대가 가진 광기가 제대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를 따라 이곳까지 왔던 검은 양복의 경호원들이 총을 꺼내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물러나세요.”

“……접근하면 발포하겠습니다.”

“당신들로 처리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주변의 경비들을 죄다 무시 한 채 제임스에게 다가갔다.

일단 그는 살려서 돌아가야 한다. 정 안된다 싶으면 나 혼자 튀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제 일 보호대상이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파멸수라. 그게 너희가 생각한 수법인가?”

제임스의 물음을 무시 한 채, 남자에게 물었다.

그가 비릿한 웃음을 입가에 단 채 입을 열었다.

“우리들 사이에서 네놈의 이야기가 떠돌더군. 이름 없는 자. 아니, 그 추종자라고 해야 하나? 우리에게 적대하는 자가 있으니 그에 대비하라는 말을 들었다. 언젠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고 이리 준비를 해 두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와 줘서 조금은 기쁜데?”

“네 동료가 죽어갔는데도 말인가.”

“하. 하하. 재미있는 소리를 하네. 너도 힘을 가진 자라면 알 것 아닌가? 결국 살아남는 자가 위로 올라가는 거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이 들어서고, 세상의 법칙은 바뀌고 있어. 보다 원시적이고, 보다 단순한 것으로.”

광기의 물든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다.

지독할 정도로 삐뚤어진 욕망이다. 이단을 만나 그 어긋남이 커지니 지금에서는 상식으로 재단하기 힘든 정신세계가 되고 말았다. 저런 놈이 하나일까? 아니, 보다 많이 있을 것이다. 인간이 몇인가? 70억 인구 중 속삭임을 들을 수 있고, 정신세계가 삐뚤어진 인간이 소수라는 건 웃기는 이야기다.

크르르르르……!

그와 동시에 수조에 잠들어 있던 파멸수가 깨어났다.

세 머리에 달린 세 쌍의 눈. 핏빛으로 물든 눈동자가 나를 쏘아봤다. 강력한 생물의 기운이 몸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 역시 마찬가지. 장내에 있는 존재 중 자신에게 가장 위협이 될 만 한 상대를 찾아 적의를 드러냈다.

쿵!

거대한 동체가 수조를 넘어 내 앞에 내려섰다.

황소? 아니, 코뿔소 이상 가는 덩치. 근육위로 힘줄이 툭툭 튀어나와 있는데, 보는 것만으로 오금이 지를 정도의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묘하군.”

이단은 기본적으로 이성적 사고가 가능한 존재에게만 영향력을 발휘했다.

인간. 리자드맨. 이유는 잘 모르나, 욕구의 취사선택이 가능한 존재라야 그 힘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존재는? 아무리 잘 봐 줘도 짐승이다. 개나 황소 등을 붙였다고 해도 그 상태가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눈앞의 괴물은 이단의 힘을 수용했는가?

“……설마 인간을 융합한 건가?”

“호오! 바로 알아보는군. 역시 우리가 모르는 특별한 힘이라도 있는 건가?”

“이거 참.”

입맛을 다셨다.

혹시나 했는데, 진짜로 인간이라니. 진화고 나발이고 적어도 인간이면 인간답게 살다 갈 권리가 있다. 자기 욕구에 미쳐서 짐승과 하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심장이 빨리 뛰고 손가락 마디에 힘이 들어간다.

“너희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그따위인 거냐? 욕구, 욕망.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표출 할 수 있을 텐데.”

“큭. 큭큭. 어째서 그래야 하는 거지? 우리는 시대의 선각자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우민의 앞에선 선봉이다. 굳이 돌아 갈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선각자라. 누가 너희에게 그런 지위를 내려 주었는가. 어느 날 우연히 떨어진 다른 세계의 돌멩이인가? 타인의 생명을 저울질 하면서 아무런 가책이 없군.”

“멍청한 소리. 생명의 무게는 다 다르다. 나은 존재를 위해 죽어갔다면 의미 없는 목숨에도 그나마 가치가 있는 거겠지.”

“……너는 본래부터 쓰레기였구나.”

입을 닫았다.

욕구를 증폭시키는 이단의 힘 때문에 사람이 극단으로 몰리기는 하지만, 대해보면 본래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토록 삐뚤어진 사상과 생각은 본질적으로 이 인간이 썩어빠진 부류임을 증명한다.

“생각이 바뀌었다.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무사히 도망치려고 했는데……네놈과 이 시설. 통째로 박살나 줘야겠어.”

“큭큭큭. 지금 처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군. 네놈이 파멸수 앞에서 살아 날 수 있으리라 보는 건가?”

“네놈이야 말로 처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군.”

아쿤을 가슴언저리로 모았다.

발치에 흐르는 축복이 몸으로 타올랐다. 성전을 알리는 신의 격노가 터져 나왔다. 찬란한 빛이 마치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처럼 터졌다. 남아있던 경비들이 두 눈을 가리며 물러났다. 신성력은 이단에 반발하는 것. 급이 안 맞는 졸병들은 여파에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파멸수라 부르는 네 똥개가 왜 아직도 내게 덤벼들지 않는지를 모르는 건가?”

“……뭐?”

“단순한 짐승의 본능으로 욕구가 뻗었다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거겠지.”

하얀 빛이 아쿤 위로 중첩되기 시작했다.

의식의 검. 지금 정도라면 무엇도 베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덤벼서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빛의 검이 아득하게 뻗어나갔다.

#

붉고 붉다.

사방이 피로 점철되어 있다. 잘린 육편과 내장이 주인을 잃은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목 없는 시체들이 장식품마냥 널려 있었다. 참혹한 현장. 그리고 이 모든 건 내가 만들어 낸 것이다.

욕지기가 올라온다.

아니……솔직히 그렇지는 않다. 놀랍도록 침착했다. 주변의 경비를 베어내는 것도, 파멸수의 머리를 뜯고 그 내장을 뽑아내는 순간에도. 마지막 남은 남자의 주변 호위들을 전부 처리하는 순간까지 나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 모습이 싫다.

나라는 사람이 멀어지는 거 같아서. 하지만 필요함을 절감하고 있다. 인간을 벗어나 인간 외의 행위를 저지르는 이들이 상대로 있다면 나도 그만큼의 독심이 필요할지 모르니까. 괴물을 상대하는 자는 괴물이 된다.

심연을 본 자는 심연이 바라보는 것도 감수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괴, 괴물……”

“네게 듣고 싶은 말은 아니다.”

얼굴에 묻은 육편을 떼어내고, 남자의 앞에 섰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모른다. 아니, 굳이 알 필요는 없겠지.

“말해. 무슨 속셈으로 제임스에게 접근을 한 거지?”

“내가 말을 할 것 같으냐?”

“아니, 굳이 필요도 없겠지. 어차피 너희가 생각하는 것 따위는 눈에 훤하니까. 넌 그대로 죽어라.”

“자, 잠깐!!! 나는 아주 중요한 비밀을 알고 있다고!! 나를 죽이면 그 비밀을 영원히 알지 못할 거다!!”

급해서 지어내는 말인가 싶지만 놀랍게도 읽히는 건 진실이었다.

아주 중요한 비밀이라. 혹시 같은 처지의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있는 걸까? 차춘혁을 통해서 차남혁의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한 차례 성공 이후 제자리걸음에 놓여 버렸다. 이번 기회에 인명부를 획득 할 수 있다면 선제공격을 위한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말 해. 내게 쓸모 있는 정보라 한다면 네 목숨은 살려 주도록 하지.”

“정말인가? 정말 날 살려 줄 생각인가?”

“네 목숨보다 가치가 높다면.”

“매, 맹세를 해라! 네가 가진 힘이 뭐든, 그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해!!”

“귀찮게 구는군. 싫다면 난 이 자리에서 네 목을 잘라버리면 그만이다. 선택을 해라.”

아쿤을 목 언저리로 들이밀었다.

굴락을 수습했던 오세론과 같은 놈이다. 선각자다 뭐다 떠들면서 정작 자신은 변이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목숨이 우선이고, 자신이 가장 먼저인 놈. 이런 작자를 위해 싸우다 죽어간 이들만 안타까울 뿐이다.

“조, 좋아. 말하겠어. 말한다고!”

“난 인내심이 적다. 당장 말 해.”

“이 프로젝트는 내가 시작한 게 아니야. 총괄 책임자는 따로 있다고.”

프로젝트가 ALS에 대한 치료약만을 말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변이체를 통제하는 슈퍼 솔져에 대한 계획 전체. 확실히 누군가 거대한 세력이 개입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어딘가. 미국? 러시아? 아니면 중국?

“차남혁이다! 차남혁이야! 어때, 놀랐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그가 이런 일의 배후자라는 사실을!”

“차남혁이라고?”

“그래. 그가 일을 주도하고 있어. 어디서 들여왔는지 모를 자본을 쏟아 부으며 프로젝트를 진행했지. 세상 사람들은 그에게 깜빡 속고 있는 거야!”

“휴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거 뭐 돌아 돌아 원점이다. 차남혁이라니. 감시하기 좋게 남겨 두었던 말이 생각 외로 큰일을 획책하고 있다. 단순한 폰이 아니라, 나이트 정도는 된다는 걸까?

“나는 말을 했어! 이제 약속을 지키라고.”

“……약속이라. 뭐, 좋아.”

“하, 하하. 그래. 약속을 지키는군. 어, 어? 근데 머리에 있는 이건 뭐야? 어억!! 갑자기 떠오르는 이 기억들은 뭐냐고!?”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윗선이 차남혁이라면 더 이상 볼 일 없다.

지금은 다른 손님과 이야기해야 할 때.

“미스터 하퍼.”

떨어지는 빛기둥을 배경으로 말을 걸었다.

※작가의 말

한편 더! 다음 편으로!

잠깐! 그 전에 추천은 하고 가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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