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63화 (163/240)

루드락과 오델은 도망도 치지 못한 채 쿤에게 끌려갔다.

바로 눈앞에서 신벌을 받아 죽은 사람이 있다. 아무리 둘의 담이 세다고 해도, 그런 상황에서 뻗댈 만큼은 되지 못했다.

폭음 등에 몰려나온 사람들 사이를 스쳐 대로로 나오자, 프리실라가 환영으로 꾸민 포교 행렬과 맞닥뜨렸다. 둘을 넘기고 일만 마무리 하면 끝. 하지만 일은 그렇게 생각만큼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다.

“멈춰라!!!”

앞서 마주쳤던 작센.

그가 무장한 병력을 대거 동원하여 행렬을 가로막았다. 완전무장 상태. 크로스 보우를 착용한 사수대가 건물 위층으로 배치되고, 후열에는 경갑을 씌운 기마대가 배회하고 있었다. 여차하며 중앙으로 난입하여 행렬을 도륙 할 수 있어 보였다.

“시민을 선동하는 것도 모자라, 루드락 공과 오델 백작을 헤치려 하다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끼어 들 시점을 정말 못 찾는군.”

쿤이 나포한 둘을 프리실라에게 건네고는 단상 위로 올라섰다.

환상이 사라지고, 그 위로 본래의 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병력과의 대치. 위기의 순간임에도 사람들은 쿤의 등장에 환호성을 보냈다. 그만큼 눌려온 시간이 많았다는 의미다.

쿤이 손을 흔들어 주변을 조용하게 만든 뒤 말했다.

“이 둘은 의회. 그리고 굴락의 일원이었던 오세론과 결탁하여 수도내의 자살 공작을 일으키려 했습니다. 다행이도 미리 막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몇이나 죽어갔을 지 상상하기 힘들군요.”

“……무슨 말 도 안되는 소리! 두 분이 어째서 그들과 결탁을 한다는 말인가!?”

“이득이 되는 쪽에 붙은 겁니다. 본래 강경일로의 공왕이었다면, 의회를 몰아내고 전국을 개혁. 그 요직에 둘을 앉혔으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불안해졌죠. 당신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으음……”

공왕의 상태는 곁에서 보좌하는 이들이라면 다 알고 있다.

내전에서 승리한다 하여도 결국 자리에 앉는 이들만 조금 바뀔 분 체제가 크게 변화 할 거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승자독식은 결국 그 권리를 부릴 때나 나올 수 있는 법. 떨어지는 이득이 적다면 노선을 갈아타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충심과는 거리가 멀지만, 셈하는 것으로만 따지면 굉장히 손 빠른 수였다.

“그러니 길을 터 주십시오. 공왕께 일을 보고하고, 남은 상황을 수습해야 합니다.”

“루드락 공! 오델 백작! 이자의 말이 정녕 사실입니까!?”

작센이 시선을 돌려 둘을 보며 물었다.

무어라 말을 할까. 쿤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둘과 눈이 마주쳤다. 화들짝 놀란 둘이 급히 고개를 숙이고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 했다.

“마, 맞는 말이외다. 우리가 그만 욕심에 눈이 멀어서.”

“죄, 죄는 모두 인정하니까 제발 그만 다그치게. 나, 나는 여기서 죽고 싶지 않네.”

신벌이 강력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어떤 대신관이라 해도 신의 힘을 직접 사역하여 사람을 처벌하지는 않는다. 아니, 못한다. 신을 숭배하지만 인간본위의 풍토가 깔리는 것은 결국 이 때문. 허나, 쿤은 판 밖의 힘을 선사했다. 악은 처벌받는다. 얼마나 살 떨리는 의미인가. 죄 지은 자는 이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법이다.

“그런……”

작센의 얼굴이 난감함으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주변의 분위기가 점차 흉흉해져갔다. 쿤은 가감 없이 말을 했다. 딱히 목소리를 낮추지도 않았다. 그 말인즉슨 지금 하는 말이 주변 시민들에게 전부 전달되었다는 의미. 앞뒤 내용을 모르지만, 루드락과 오델이 적과 내통하여 자신들을 해치려 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분기어린 얼굴로 둘을 쏘아보는데, 작은 불씨라도 있으면 당장 달려들어 분시 할 기세였다.

“모두 진정하세요.”

하지만 쿤이 손을 들어 올리며 작게 말 하자 분위기는 한 순간에 진정되었다.

소름끼칠 정도로 신비한 광경이었다. 무기를 들고 그를 경계하던 작센 조차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눈을 동그랗게 뜰 정도였다.

“무도한 자에게 무도한 것으로 갚는다면 결국 같은 죄를 품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말 하지 않았습니까!? 균형이 중요하다고! 저 둘이 죄를 지었다면 처벌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선 굵은 남자가 외쳤다.

대장장이인 듯 상의는 벗고 어깨에는 큼직한 망치를 올리고 있었다. 허락만 하면 단상 위로 올라가 루드락과 오델의 머리통을 깨 부실 분위기였다.

“맞습니다. 처벌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이렇게는 아닙니다. 당신의 마음에 들어찬 증오. 그것 역시 하나의 욕망일 뿐입니다. 욕망을 경계하세요.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지 판단하세요.”

“으음……”

“징벌이 필요하다면 정당한 절차와 논의를 거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한 때의 분노로 누군가를 죽인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 올 수 있음을 인지하세요.”

“하지만 무엇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의회가 제정한 법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들 입맛에 맞는 요리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쿤이 잠시 어지러움을 느꼈다.

공화정. 민주주의. 여러 가지 제도의 단점과 장점. 자신이 가지지 않은 지식들이 순간적으로 치고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아주 이상적이고 바른 것들이 입가에서 맴돌았지만, 일단은 씹어버렸다. 맞는 말은 맞는 상황에서 나와야 효력을 발휘할 뿐이다. 입가에 맴돈 말들 중 상당수는 지금의 상황과 맞지 않았다.

머릿속의 이야기들을 다시 곱씹고는 말문을 열었다.

“그렇게 목소리를 내세요. 주장하세요. 하나하나는 약하지만 뭉치면 강합니다. 의회에 권력을 주는 것도, 통령에게 권력을 주는 것도 바로 여러분입니다. 그 사실을 깨우치고 자신의 가치를 일깨우세요.”

공화국의 시민들은 투표의 권한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선민관이나 지방 행정가의 선출에서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다. 아직까지 통령이나 중앙 권력은 의회의 손을 거쳐 가는 게 기본. 왕정이 폐지되고 그 아래 귀족들이 권력을 나눌 당시 최소한의 힘을 보존하기 위해 마련한 장치였다.

하지만 쿤은 그보다 기본적인 권리.

보다 넓은 의미의 공화정을 부르짖고 있었다. 조금 더 직접적일 수 있는 단어와 말들이 떠올랐지만 그것은 참아내면서. 적어도 지금 주변에 있는 시민들이 체감 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만!!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작센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이 작은 연설이 얼마나 큰 효력을 가지게 될 것임을.

공왕이 있던 왕정도 아니다.

의회의 의해서 좌지우지되던 공화정도 아니다.

다른 의미의 제도를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뿌우우우우 — !!!!!

그 순간.

갑작스러운 고동 소리와 함께 행렬의 뒤편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쿤이 고개를 돌렸다. 구름처럼 모인 행렬이 좌우로 가라지고 일단의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현재 수도에서 밀집된 인파를 밀어내고 전진 할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공왕까지 오는군.”

“아, 아빠.”

쉔과 친위대를 이끌고 공왕이 직접 이곳으로 나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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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왕이 나타나고 정국은 새롭게 개편되었다.

작센이 병력을 수습해서 공왕의 곁으로 가고, 시민을 뒤에 둔 쿤과 양단으로 나뉘고 되었다. 어찌 보면 공왕을 위시로 한 권력자와 그에 맞서는 시민 반란군의 대치로도 생각 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어, 언니 어떻게 해요?”

“……일단 쿤 오빠를 믿자.”

아무리 그래도 공왕은 부친이다.

불안에 떠는 루루를 라라가 다독였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 갈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바. 한 걸음 떨어져 사태를 관망하는 프리실라 조차 낯빛이 가볍지 않았다.

쿤이 단상에서 내려와 공왕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그래, 하루를 더 기다리자 하였더니 그걸 못 참고 일을 벌였는가?”

“그 하루가 수백의 목숨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에 선 자는 신중을 기해야 하는 법이네. 자네처럼 쉬이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제가 대신 움직이지 않았습니까?”

공왕이 조금 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말 안 듣는 아이에 화 난 부모의 표정 같기도 하고, 졌다고 백기를 내 건 패장의 표정 같기도 했다.

‘아니, 그보다는……’

약간의 미묘함.

쿤이 미간을 좁히다 불쑥 물었다.

“혹시 이렇게 되기를 원한 겁니까?”

“……”

“하. 정말이군요. 그렇다면 둘이 다른 마음을 먹고 있음도 이미 간파하고 있었던 겁니까?”

설마해서 묻자, 공왕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초, 자살 공작을 알렸을 당시 보인 공왕의 미진한 태도. 그건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이런 일을 자극하기 위한 작위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나야 이제 의욕이 꺾여 힘없이 하루하루 보내는 늙은이에 불구하지만 곁에는 충언을 아끼지 않는 이들이 있으니까. 그들이 앞서 경고를 하더군. 둘의 태도가 이상하다고. 그리고 때마침 자네가 그런 의견을 들고 왔네. 딱 하고 생각이 미쳤네. 어쩌면 그 의혹을 확인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실패했다면 한 둘 죽는 걸로 끝나지 않았을 거란 걸아십니까?”

“자네를 믿었지. 신을 등에 업고 있는 인물이라면 무엇을 해도 확실하게 해 줄 거 같았으니까.”

허허롭게 웃는 공왕의 모습에 언뜻 과거의 얼굴이 비치는 것 같았다.

마음이 꺾여 무언가를 개척 할 의욕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여전했다. 필요 할 때 도전에 가깝게 누군가를 던져보는 모험수까지. 결국 상황은 공왕이 바라는 대로 흘러가게 됐다. 배신자 둘은 처리했고, 굴락의 중요 인물은 사망했다.

“원하는 대로 되었으니, 이젠 저도 찍어 낼 생각입니까?”

보통이라면.

권력자의 개는 소양이 다했을 때 버려지는 법이다.

“설마 그럴 리야 있겠나. 오면서 자네가 한 연설을 들었네. 여차하면 시민 봉기라도 일으킬 판이더군.”

“신의 사도로 있다 보니, 민중의 위대함을 알겠더군요. 세상을 이끄는 것이 소수의 지도자라면 그것을 받쳐주는 건 민중입니다. 그 강력함을 알지 못하면 결국 나라는 쳇바퀴 돌 뿐입니다. 권력을 잡는 누군가만 바뀔 뿐이죠.”

“맞네. 다만,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울 뿐.”

쿤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공왕이 너무 쉽게 인정을 해서 놀란 것이다. 그는 욕망에 불 탈 때는 의회를 밀어내고 왕정을 부활시키려고 했다. 누구보다 권력 집중적인 제도를 지지했던 인물이 민중에 대한 가치를 인정한다?

“방법은 다르나, 자네와 나는 같은 걸 생각하고 있는 거네. 나는 의회라는 이름의 권력이 결국 부패를 낳는 악습의 고리라 생각했지. 의회에 의한 선출과 추천. 그리고 그 의회조차 대물림 되어 낳게 되는 현재의 제도가 옳지 못하다 여긴 거야. 그래서 왕정으로 복귀를 해, 절대 권력으로 이를 파훼하고자 한 거지. 그렇게 된다면 민중이 가지던 권리를 다시 분배 할 수 있으니까. 허나……”

“그걸 추진 할 힘이 없다 이거군요.”

“꺾여버린 마음은 도무지 어쩔 도리가 없더군. 지금도 머리로는 생각을 하지만 마음이 안 따라줘. 어찌 보면 슬프기까지 하네. 내 비록 선택에 실수는 있었다 한들, 그 마음은 진짜였는데. 결과가 이렇게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공왕의 주름이 깊어졌다.

깊은 회한. 말투에서 묻어나는 감정은 모두 진실이었다. 어찌 보면 너무 단순하게 권력다툼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본디, 공왕이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것은 부드러운 성품과 넉넉한 통치 방식 때문. 전쟁의 실패로 제도가 엎어지고 실 권력에서 밀려나게 된 이후,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왕의 마음이라……’

항상 낮은 곳에서 살아온 쿤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왕이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지식들 중에서도 그것을 옹호하는 내용이 있다. 물론, 후대에 대한 문제가 발목을 잡기는 했지만.

“쉔.”

“네, 통령.”

그때, 공왕이 한 걸음 나서며 쉔을 불렀다.

그가 그림자처럼 다가와 옆으로 섰다.

“내 말을 주변으로 좀 전혀 주게나.”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공왕이 마련해 둔 단상으로 걸어 올라갔다.

쿤을 비롯한 일행과 주변의 시민들. 하물며 포박되어 쓰러져 있던 루드락과 오델까지 그의 모습에 집중을 했다.

“우리는 갈등의 기로에 서 있다.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위에 선 자와 아래서 선 자.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공왕이라는 이름으로 이 나라를 다스리지만, 갈등의 골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고 있다.”

그의 목소리를 쉔이 사방으로 퍼뜨렸다.

쿤이 사용하던 기교와 흡사했다. 크지 않은 목소리임에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나는 노력했다.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보다 많은 이들의 삶을 위해서. 하지만 혼자서 버둥거리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정말로 누군가를 위해 나라를 바꾸고자 한다면 그만큼의 의지와 깨어있는 마음이 있는 자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왕이 가슴에 손을 올리고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바라던 것을 더 이상 추구하지 못하는 자의 아픔이었다. 이단에 의해서 찢겨져 나간 마음은 소망하는 욕구조차 같이 뜯어버렸다. 회복되지 않는 공허한 구멍. 어쩌면 이단이 가지는 무서움은 이런 면에 있는 걸지도 몰랐다. 하얗게 타오르고 재가 남아버린 사람. 껍질만 남은 인간에게 과연 살아있을 희망이 있을까.

“그러니 이곳에서 천명한다.”

공왕이 말을 이었다.

그의 시선은 쿤에게 닿아 있었다.

손을 올리고 모든 사람이 보는 곳에서 크게 외쳤다.

“쿤. 그를 내 대리인으로 임명하는 바이다.”

그리고 정적이 내렸다.

※작가의 말

종결 편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준경의 편으로 이어집니다.

현재 공화국은 왕정 기반에서 공화정으로 탈바뀜 한. 어떻게 보자면 반반 섞인 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시민 개혁의 방안은 열려있지만 그 정도는 미약하죠. 그나마 수도의 사람들이라 쿤의 행보에 이렇게 호응 할 수 있었던 겁니다.

* 앞으로 쿤의 위치는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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