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61화 (161/240)

너무나 당연한 얘기인데, 무언가 공작을 하기 위해서는 이를 총괄하는 인물. 혹은 부서가 있어야 한다. 자살 공작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 무작정 난장을 피우는 것은 매우 효율이 떨어진다. 적재적소에 시간과 장소를 맞춰서 거행을 하는 것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침. 그렇다면 굴락이 자살 공작을 하고자 한다면 수도 어딘가에 이를 총괄하는 지역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소통을 할까?

한낮 대로변에서 만나 지령을 받고 흩어질까? 아니, 적어도 다급한 순간. 의사를 타진 할 수단 정도는 지니고 있는 것이 정상이다.

자살 공작을 위해 수도에 퍼져있던 이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쿤이 등장하고 포교를 진행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흰 새 몇 마리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처음에는 우연 인 듯. 하지만 반복적으로 동일한 일이 일어난다면 더 이상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새들의 행선지가 모두 같다면 더더욱.

“프리실라, 환영 마법을 부탁해요.”

“이렇게 일 시킨 대가는 받아 낼 거야.”

“할 수 있는 한도 내라면요.”

프리실라의 도움을 받아, 쿤은 행렬에서 빠져나왔다.

누군가 행렬의 의도를 의심하여, 긴급 전문을 날렸다면 그 모습이 사라지지 않은 한에서야 의심을 풀 것이다. 그 사이에 본거지를 타격하면 승기를 가져 올 수 있다.

‘익숙하군.’

쿤이 도심을 가로지르며 생각했다.

공왕 집무실을 벗어나고 난 뒤, 바로 떠오른 생각 치고는 꽤나 치밀하다. 잡다한 귀계 정도야 용병일 하면서 잔뜩 꾸며 보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이렇게 생각이 팍 하고 진행되는 건 조금 신기할 정도.

‘능력이 올랐기 때문인가? 역시, 신께서는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계셨군.’

단순한 인사에 불과했는데, 능력이 과하게 올랐다 싶었다.

미리 대비하고 안배해 주신 거다. 쿤이 속으로 그 은총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한 건물 위로 올라섰다.

이 아래. 인적이 없어 보이는 폐건물이 새들이 날아온 위치다.

‘셋……아니, 넷이군. 하나는 굉장히 희미하군.’

안의 기척이 느껴졌다.

건물 위쪽 턱을 잡아 몸을 늘인 뒤, 벽에 귀를 대었다.

안쪽의 대화가 벽을 통해서 전해졌다.

“그, 빌어먹을 놈. 끝까지 말썽이군.”

“쯧. 이렇게 되면 계획을 전부 수정해야 하는 것 아니오?”

“그럴 필요 까지는 없소. 어차피 숨죽이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낼 방법은 거의 없고, 그냥 시위삼아 하는 거겠지. 그런다고 공왕이 움직일거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실수니까.”

“얼마 전 같았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었을 텐데, 마음이 깎여나갔다는 게 정말인가 보군요.”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

쿤이 기억을 더듬었다. 대화를 나누는 셋 중 둘의 목소리를 어디선가 들어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최근. 몇 시간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아! 루드락과 오델 백작이잖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들이라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이 어째서 이곳에? 자살 공작을 주도하는 이들이라면 굴락. 그 연락책이라 생각되는 장소라면 관련자들이 있어야 정상이다. 공왕파의 요인 중 가장 중요한 둘이 아니라.

“그럼 일단 몸을 낮추고 행동을 금하라 지시를 해 두겠소. 쿤, 그 작자가 시위하는 것도 하루나 이틀 정도 일 터. 그냥 무시하고 있다가 때 맞춰 일을 거행하는 것이 났겠지.”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괜히 서두르다가는 뭣도 아닌 일이 되어 버릴 터. 신중하게 하는 것이 좋겠죠.”

“흐음. 그보다, 그 거래 건은 확실하게 하는 거겠죠?”

루드락의 목소리가 은근해졌다.

“당연한 말씀을. 약속만 지켜 주신다면 그 건은 확실하게 보상 할 겁니다. 솔직히 이런 대치 상황이 길어져서 좋을 게 하나 없죠. 서로 얻을 부분만 딱 얻고 물러나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맞는 말이오. 사실 우리가 입장이 달라서 그렇지 마음은 다 똑같지 않소이까? 나라를 위하는 마음. 왕정이다, 공화정이다 패 갈라져서 싸워봐야 결국 주변국 배불리는 일밖에 안 되지요. 빨리 일을 마무리 짖고 정상화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하하. 오델 백작이 역시 배우신 분 답게, 말이 아주 유려하십니다.”

껄껄 거리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오델과 루드락을 제외한 한 명은 쿤도 모르는 인물. 하지만 대화의 내용을 볼 때 굴락의 일원이거나, 의회를 대표해서 나온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공왕을 끌어 내리려고 하는구나.’

공왕의 마음이 꺾이기 전까지는 전쟁이라도 불사 할 정도로 전의가 넘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우두머리가 축 늘어진 상황. 결국 손과 발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상황을 주도하기를 포기하고 상대와 손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그냥 있어도 공왕파가 유리한 상황이었는데, 어째서 손을 잡은 거지?’

배신은 이득이 클 때나 하는 일이다.

가만히 있어도 공왕파가 득세하고 이득이 굴러 올 텐데, 왜 굳이 번거로운 일을 했는지 의문이었다.

“일이 진행되어 자연스레 공왕을 자리에서 끌어내린다면, 그 다음은 쿤. 그 인간입니다. 두 공주와 그 인간의 관계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워요.”

“게다가 신관이라는 직위까지 있으니, 대중적인 지지도도 상당 하겠죠. 지금 보다시피 선동하는 능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그냥 둔다면 아마 공왕을 회유하여 왕위를 이어받으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공주를 아내로 두고 섭정. 후대가 나올 때 까지라는 명목이라면 충분히 외국인이라 하여도 일이 진행 될 수 있습니다.”

“흥! 그렇게는 둘 수 없지. 우리가 만들어 올린 나라인데, 어디서 온지도 모를 놈한테 전부 넘겨 줄까봐!”

친절하게 뒷말로 설명을 다 해 주었다.

쿤이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지금 이 사단을 벌이는 것이 그 자신 때문이라는 이야기? 내전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공왕이 약한 상황에서는 결국 후대 문제가 대두 될 수밖에 없는 노릇. 그렇다면 두 공주와 친분이 있고 대중적으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입장 자체가 부담된다는 말이다.

‘미친 놈들……’

아무리 그렇다 해도, 판을 엎다니?

그것도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아마 수도내의 공작이 일어나고 재판장이 엎어진다면 내전의 행방은 모호해 질 터. 그때 극적 타결로 공왕이 물러나는 조건으로 평화협정을 걸오 온다면 무시하기 어렵다. 사람이 죽어간다면 공왕이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니까.

‘그리고 미리 협약한 내용대로 권력을 나눠갔겠다?’

정말 이런 머리는 고속으로 돌아간다 싶다.

쿤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역시 이들은 자신과 같은 부류가 아니다. 이득을 위해 독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는 아니다.

챙그랑—!!

쿤이 유리창을 부수며 안으로 난입했다.

“누구냐!?”

가장 가까이 있던 오델이 벼락같이 소리쳤다.

은색 장검이 이미 반쯤 뽑혀 나오고 있었다. 그래도 왕년에 검 좀 썼다 인건가. 반응이 상당했다.

“멈춰.”

하지만 그것 뿐.

쿤이 뽑혀 나오는 검의 손잡이를 발로 밟은 뒤, 그대로 오델의 턱을 후려갈겼다.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그의 몸이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피가 좀 튀어 바짓단에 묻었다.

“쿠, 쿤! 네가 왜 여기에!?”

루드락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주름 진 얼굴에 박힌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머리로 먹고사는 사람은 예상이 틀어졌을 때 남보다 크게 당황하는 법이다. 쿤이 낮게 코웃음 치고는 그대로 다가가 멱살을 잡아서 오델에게로 던져버렸다.

“이런 곳에서 다들 역적모의를 하고 있었군.”

“넌 아직 거리에 있을 텐데!?”

“마법이라는 거다, 멍청이. 그렇게 안 돌아가는 머리로 잘도 재무를 담당하고 있군.”

“감히!! 누구한테 그런 망발이냐!”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 모양이군. 호위도 없이 비밀 회동을 하다 걸렸으면, 그 목부터 조심해야지.”

쿤이 푸른 색 단검을 꺼내 들었다.

아쿤은 세이혼에게 건네주었기 때문에 임시로 사용 할 물건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카림의 창고에 있던 것 중 그럴싸해 보이는 무기를 하나를 들고 왔다. [푸른 비늘]이라는 독특한 이름이었는데, 놀랍게도 재료가 드래곤의 비늘이었다. 다만, 이걸 만든 대장장이의 한계 탓인지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 무지막지하게 단단한 단검. 딱 그것뿐이었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루드락이 입을 닫고는 바닥을 기어 뒤로 물러났다.

“쿤. 지겹도록 들리던 이름의 주인을 이렇게 만나는군.”

그때, 미동도 않고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흰색 로브는 굴락의 일원 같아 보였으나, 가까이서 느낀 기도가 조금 남달랐다. 적어도 일반 사제는 아니었다.

“나는 그쪽의 이름을 알고 싶지 않은데? 일단 쳐 맞고 나와 함께 가자고.”

“이런, 의외로 성미가 급하군.”

쿤이 측면으로 돌아가며 푸른 비늘을 휘둘렀다.

궤적은 정확하게 어깨를 스쳐가게끔 조준했다. 하지만 상대는 매우 여유롭게 그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는 되레 깊게 휜 곡도를 뽑아서 반격을 가해왔다. 빠르고 강하다. 기도만큼이나 실력 역시 출중한 인물이었다.

반걸음. 앞으로 다가가며 쿤이 오른손에 찬 팔찌로 검을 막았다.

불꽃이 튀며 팔찌가 거칠게 진동했다. 마네코쉬가 반응한 것이다. 끝나고 입을 풀어주고 한 마디 해야 할 거 같다.

“듣던 것보다 더욱 강하군!”

“시끄러워. 품평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쿤이 발을 앞으로 차 놓고는 품 안으로 파고 들어가 복부에 강격을 날렸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의 로브가 터져나갔다. 공중에 붕 뜬 느낌. 제대로 적중하지 않았다.

푸른 비늘을 손바닥 안으로 돌리고는 몸이 도는 방향에 따라 상대의 목 언저리를 찔렀다. 역수로 들어가는 공격. 허나, 이미 상대는 이미 그 궤적에서 물러난 후였다. 초감각으로 전해지는 상대의 반응과, 실제 나타나는 모습은 거의 촌각조차 차이가 없었다. 이 말은 상대가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이거나……

‘비슷한 능력을 쓰고 있다.’

같은 초감각이 충돌하면, 결국 정지 된 상태에서 가상의 공격을 주고받을 뿐이다. 지금의 것은 그보다는 조금 아래 수준. 미약한 차이로 쿤이 공세의 우위를 점하고는 있지만 상대방의 능력 역시 크게 뒤쳐지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정확한 타격을 넣지 못하고 있다.

‘귀찮게 구는군.’

단순 박투로 승부가 안 난다면, 다른 수를 쓰는 것이 현명하다.

망령제어가 상대의 장비를 장악했다. 신발과 옷자락. 물체에 스며든 망자의 기운이 즉시, 저지력으로 작동해 상대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타앙—!

하지만 그 순간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

팽팽하게 당긴 고무줄이 끊어지듯 망령제어의 연결이 끊어졌다. 그리고 그 반발력이 쿤의 몸을 흔들었다. 순간적으로 속이 뒤집히고 머리가 울렸다.

“어림없다. 성물의 힘이 있는 이상, 다른 것들은 침범하지 못할 테니까.”

“……크윽. 성물?”

“굴락께서 내리신 물건이다. 신의 위업을 방해하는 적도를 상대하라 친히 그 힘을 내려주셨지. 네놈의 방해는 바다위에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와 같다. 내가 왜 네 모습을 봤으면서도 당황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겠지?”

“모르겠는데?”

쿤이 혀를 깨물어 정신을 맑게 한 뒤 앞으로 튀어나갔다.

청색 궤적이 눈앞으로 스쳐갔다. 몸을 숙여 이를 피하고는 그대로 연격을 날렸다. 챙챙. 불꽃이 튀어 올랐다. 검극이 날에 연달아 부딪힌 것이다. 힘과 힘. 육체의 능력이 순간의 대치로 들어갔다.

‘망령제어가 안 된다면……’

다른 힘이 있다.

신념의 증표를 걸고, 분노를 활성화 시키며 달렸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전의 축복을 사용했다. 남은 포인트는 700가량. 사용하면 바닥이 나겠지만, 지금으로는 어쩔 수 없다. 환한 빛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거대한 울림이 공간을 장악했다.

“이건!”

“안 막아지나 보지?”

상대가 언급한 성물이 이단에 의한 거라면, 다른 힘에 우위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치 등을 댄 것과 같은 신의 힘에 대해서는? 결국 순도와 총량의 문제일 뿐, 우위에 서지는 못한다. 빛이 조금씩 사그라질 무렵, 쿤의 몸이 상대와의 거리를 제거하고 다가서 있었다.

“큭!!”

곡도의 궤적이 사선으로 다가왔지만 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검면에 푸른 비늘을 대고 힘을 흘렸다. 세이혼에게 배운 가장 첫 요령이다. 검이 허우적거리며 옆으로 넘어갔다. 비틀린 자세. 그렇다면 제대로 된 방어가 될 리 없다. 텅 빈 옆구리를 향해서 무릎을 차 올렸다.

우드득……!!

갈빗대 여럿 나가는 소리.

상대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입으로 튀어나오는 핏물 색이 승리를 장식하는 꽃잎과 같았다.

“후우.”

쿤이 손을 털며 한 걸음 물러났다.

반쯤 부서진 옆구리는 잘 해 봐야 불구. 일단은 제압했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감지했던 것처럼 방 안에 있는 건 전부 네 명. 싸움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남은 한 명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니까 도미닉도, 데미안도 당한 거겠지.”

게다가 그 순간 옆구리가 함몰 된 남자가 기형적인 자세로 일어나며 말을 했다. 변이도 아니고, 너덜너덜한 몸뚱이 그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네크로맨시로 시체를 잡아 움직이는 것과 비슷했다.

이단의 혐오감이 찐득하게 쿤의 몸을 괴롭혔다.

“모든 것은 굴락을 위하여!!”

“굴락을 위하여.”

선창을 남자가 하자, 후창을 지금껏 말없이 서 있던 인물이 따라했다.

기습? 마법? 굴락의 신성력? 쿤이 감각을 바짝 조이며 다음 공격을 대비했다.

하지만……

다음으로 본 것은 심장에 단검을 꼽는 굴락 신도의 모습이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동작. 깊숙이 박힌 단검의 날을 타고 붉은 핏물이 흘렀다. 뚝. 핏물 떨어지는 소리가 기이할 정도로 크게 들려왔다.

기이잉—!!

그리고 그 순간.

초감각과 이단에 대한 혐오가 동시에 경고를 보내왔다.

적은 아직 죽지 않았다—라고.

※작가의 말

으아우어. 이 파트는 쓰기가 꽤나 힘들어요.

머리아픔.

*그나저나 오늘 서버 상태 완전 개판이네요.

*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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