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둥둥.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거리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젖먹이를 품에 안고, 마시다 만 맥주를 턱수염에 묻힌 채.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거리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시간 동안 내전의 영향으로 거리는 을씨년스러웠다. 괜히 안 좋은 오해를 살까. 흉흉한 경비에 꼬투리 잡혀 끌려갈까 두려워했었다.
그렇기에 누군가 길거리에서 북을 친다 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보통이라면. 하지만 이 북소리는 달랐다. 가슴을 들뜨게 하고 행복했던 기억을 되살렸다. 마치 축제가 한창 벌어지던 과거 어느 한 시점의 마음처럼. 주린 배 잡고 떡 진 머리로 거리 구석에서 고개박고 자던 주정뱅이조차 눈을 비비며 나오게 만들었다.
“엄마, 엄마! 저게 뭐에요?”
볼이 빨간 아이가 손을 잡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윗 단을 없앤 마차위로 나무를 깎아 만든 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 양옆으로 훤칠한 남녀가 서 있었다.
“써커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가 답을 했다.
아마 어릴 적 어디선가 보았을 광경. 북부 왕국의 유명한 써커스 단이 가끔 내려온다는 이야기도 기억났을 것이다. 그녀만이 아니다. 주변에 있는 이들도 비슷한 반응. ‘공왕께서 초대하신 건가?’ 몇 명은 이를 이렇게 평가했다.
둥—!!
그렇게 행렬이 도심의 광장에 도착했을 때.
큰 북소리가 울렸다. 여전히 가슴을 울리는 고동.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 주변을 메우고 있었다. 삼삼오오 손잡은 이들은 간만의 외출이 나쁘지 않은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반갑습니다.”
단상위의 남자, 쿤이 입을 떼었다.
작은 목소리이지만 거리에 상관없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사람들이 신기 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제 이름은 쿤 타이.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몇 몇이 아는 척을 해 왔다.
수도로 들어 올 당시 그의 얼굴이 외부로 공개되었기 때문에, 공주를 구해온 기사. 약간은 과장이 섞여서 세간으로 이야기가 전해 진 바 있다.
“공화국의 수도. 이야기로 많이 들었습니다. 드넓은 평원에 세워져,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전통과 문화를 꽃피운 도시. 하지만 실제로 이곳에 와서 본 모습은 그런 기대와는 조금 다르더군요.”
“이게 다 의회 놈들 때문이지!!”
군중 중 한 명이 외쳤다.
붉은 얼굴에 손에는 술병이 들려 있었다. 주정뱅이. 술 냄새가 지독한지 주변 사람들이 거리를 두고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말을 하는 거죠?”
“왜기는!! 그 놈들이 권력에 눈이 멀어서 공왕폐하를 몰아내려고 해서 전쟁이 난 거잖아! 그 빌어먹을 전쟁! 싸움이 없다고 우리가 모를 줄 아나? 사방에 놓인 군인들과, 하루가 멀다가하고 사라지는 사람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
“전쟁이라. 역시 그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군요.”
부드럽게 말 하는 쿤의 태도에 사방에서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는 꾹 눌러서 참고 있지만, 쿤이 자아내는 분위기에 그런 빗장이 풀려난 것이다. 거친 욕설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쿤이 잠시동안 그 목소리를 듣다 손을 들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목소리가 뚝 하고 끊겼다.
“이해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이렇게 나선 것입니다.”
“당신이 뭔데 나선다 만다 말 하는 겁니까?”
성급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쿤에게 물었다.
주변도 동조하는 분위기. 쿤이 답 대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리며 부숴 두었던 그리자를 몸 주변으로 띄웠다.
찬란한 빛을 발하며 알갱이들이 그의 몸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너무나 장엄하고 아름다운 광경. 한낮에 떠오른 빛 무리에 사람들의 눈이 황홀하게 풀려갔다.
“쿤 타이. 서 준경 교의 대사도이며, 전쟁으로 상처 입은 여러분께 도움이 되고자 나선 한 명의 이웃이기도 합니다.”
말이 빛과 빛 사이를 맴돌며 퍼져나갔다.
기적을 목도한 것처럼. 이미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방법을 머리로 생각 한 것은 아니었다. 마치 여러 번 해 본 경험이 있는 것 같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눈을 휘어잡고 선동의 말을 늘어놓을 수 있었다.
“서준경 교? 들어 본 적 있어?”
“처음 듣는데? 생소한 이름이야.”
물론, 이것으로 전부가 되는 건 아니다.
서준경이라는 이름은 생소하다. 특히, 일반 시민들의 경우 자잘한 민간신앙에 의지 할 뿐 대대적으로 무언가를 믿는 경우가 적었다. 전문직의 경우나 그에 인접한 신들. 방랑자, 전쟁, 수확 등에 관련된 신을 믿을 뿐이었다.
“전쟁은 어째서 일어납니까?”
쿤이 가장 가까이 있던 남자에게 물었다.
그가 홀린 듯 고개를 들고 쿤을 바라봤다. 머뭇머뭇. 무언가 생각이 있지만 덥석 말하기에는 무언가 두려운 태도였다. ‘괜찮습니다. 말 하세요.’ 쿤이 다독이며 말을 했다. 부드러운 기운이 퍼지고 남자가 용기를 내더니 입을 열었다.
“욕심 때문에 일어납니다. 땅, 금, 여자. 더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이번 내전도 결국 자기 밥그릇을 더 챙기겠다는 생각 때문에 일어난 거죠.”
“그래, 말 잘했어!! 그 빌어먹을 밥그릇 싸움!”
“썩을! 어차피 잘 사는 놈들이 얼마나 더 해쳐먹으려고 그 지랄인지!”
불에 기름을 쏟은 것처럼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눌러 둔 감정들이다. 내전이 진행되면서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그 쌓인 감정이 쿤의 힘으로 풀려나오고 있었다.
“모든 것은 불균형에서 나옵니다.”
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조금은 소름끼치는 장면. 한 사람에 의해서 수백의 입이 조율당하고 있었다. 그를 따라서 행렬에 끼었던 프리실라 조차 얼굴빛이 무거워졌을 정도.
“하는 것 이상의 재물을 원하고, 일하지 않은 것을 탐하려 하는 마음 때문이죠. 누구나 욕망은 있습니다. 욕망은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더 나은 사람을 낳는 거름이 되기도 하죠. 하지만 균형에 맞지 않는 욕심이 생기면서 사람은 추악해 집니다. 남의 재물을 탐하고, 남의 여자를 탐하며, 남의 땅을 원하는!!!”
윙—!!
쿤의 움켜쥔 손 위로 알 수 있는 파동이 새어나갔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지만 민감한 몇 몇은 느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파동이었다.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힘없고, 기댈 곳 없는 서민들입니다. 바로 여러분이죠.”
“맞아! 항상 피해보는 건 우리들이지.”
“그러게. 전쟁을 우리가 일으켰나? 자기들 밥그릇 싸움에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거야?”
힘은 동조를 낳고, 동조는 목소리를 불러왔다.
왕왕 거리며 커지는 목소리에 다른 지역의 사람들까지 광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수도 경비와, 내전을 대비하여 심어 둔 병력도 섞여 있었다. 수군거리며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 조만간 이 상황을 보고받은 이들이 달려 올 것이다. 적어도 그 전에 할 말은 마쳐야 한다.
“서 준경 께서는 이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욕망을 경계하라. 죄악을 기피하라. 스스로를 다잡아라. 인간이 가지는 그릇된 욕심을 경계하고, 자신에게 맡는 삶. 참되고 바른 인간의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독려하셨습니다.”
“오……서준경이라는 신은 그런 존재였군. 좋네. 좋은 신이야.”
“전쟁의 신이나, 산과 들의 신 이런 것들보다 훨씬 낫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저런 신 아니겠나? 그래야 저 윗대가리들도 좀 생각을 달리하겠지.”
“그러게. 웬일로 자네가 맞을 말을 했어.”
말에 가감이 없다.
평상시라면 이 정도까지 자유롭게 말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금은 쿤이 장내를 주도하고 있다. 무엇도 가능하고,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는 분위기.
“이름을 부르고, 그분이 내리는 가르침을 따르세요. 삶은 복잡하나, 의외로 단순하기도 합니다.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주는. 세상에 내리워진 균형추를 보고, 그 마음에 따라 사는 겁니다.”
쿤이 손짓을 했다.
라라와 루루가 미리 준비해 둔 물통을 열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람들이 한 모금 마시고 펄쩍 뛰는 이들을 보고는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웃에게 전하세요. 그리고 그들과 나누세요. 당신들 곁에 있을 분이 이름을 나눠주기 위해 내려왔다고.”
“서……준경. 서준경. 똑똑히 기억했습니다.”
경험치 오르는 소리를 뒤로 한 채, 쿤은 계속해서 물통에 든 물을 나눠 주었다.
하카림의 그리자를 정화해 두었기 때문에 물에 섞을 그리자의 양은 넉넉하다. 모자란 것은 물약. 하지만 처음 몇 개만 라라산 물약으로 하고, 뒤의 것들은 그냥 물로 해도 충분하다. 딱히 별다른 효과가 없어도 입소문으로 퍼지는 내용이 알아서 효능을 만들어 줄 테니까.
쿤은 그렇게 그리자가 든 물을 나눠주며 도시를 계속 이동했다.
행렬이 거대하게 뭉쳐서는 그를 따라왔다. 광장에서 시작한 행렬은 도심을 중앙을 중심으로 둔 채 빙글빙글 돌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쿤은 샅샅이 뒤질 생각이었다.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리고 예상한 방해꾼들이 등장했다.
수도 방위군 총사령관 작센과 그의 호위군들이 기세를 돋우며 다가왔다. 무거운 분위기에 주변 사람들이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반면에 울컥하며 이에 맞서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공왕께서 약속하신 포교입니다. 잘못 된 거라도 있습니까?”
“이런 시기에 이런 방식이라니. 자칫하면 큰 일이 일어 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물러나 주십시오.”
“큰일이라. 무엇을 말 하는지 도통 모르겠군요. 곁에 설 신의 이름을 알리고, 그 축복의 일부를 맛보는 것뿐이거늘, 어찌하여 그게 잘못이라 말 하는 겁니까?”
“군중에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피폐해지는 현실이 모두 지배층의 잘못인 것처럼 말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찌 그런 식으로 거짓 선동을 하는 겁니까?”
“거짓이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당신은 어찌하여 공왕의 곁에 있습니까? 수도방위군은 외적으로부터 수도를 막는 것이지, 안의 적을 색출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한 쪽의 손을 들어, 그 영광을 누리려 하는 거 아닙니까?”
“무슨……! 나는 본디 권한을 가진 통령께 충성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울컥한 작센이 반박했다.
“충성이라. 의회에 대항하여 병력을 모으고, 만일의 경우 전투에 돌입 할 수 있는 그 명령 말이군요. 언제부터 통령의 권한이 그렇게까지 확장 된 겁니까? 의회의 가결조차 없이.”
“그, 그건……”
“당신이나, 루드락. 그리고 오델 백작까지. 어떤 생각으로 공왕의 곁에 남아있는지는 뻔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니다 변명하지 말기를.”
쿤이 손을 휘저으며 작센의 말을 잘랐다.
물론, 어느 정도는 공왕에 대한 충심이 작용하고 있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은 그의 말을 들어 줄 시간이 없으니까.
“큭! 이유가 어찌하든 더 이상 수도치안을 흐트러뜨리는 것은 묵과 할 수 없소! 당장 시민 선동을 그만두고 돌아가시오!!”
작센의 외침에 따라 후방의 병력들이 무기를 내밀며 다가왔다.
정예. 수도의 치안을 꾸리는 이들 중 작센이 직접 끌고 온 이들이니 하나같이 정예다. 기도, 눈빛, 자세. 어느 것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하지만……
“물러나세요.”
쿤이 망령제어를 사용해서 병사들의 어깨를 찍어 눌렀다.
갑작스러운 압력에 몸을 크게 휘청거린 병사들이 한꺼번에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간혹 선임 중 강단이 있는 이들이 버텨냈지만, 힘을 더 주자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작센이 얼빠진 얼굴을 한 채 쿤을 바라봤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신의 권능입니다. 내, 분명 공왕에게 약속받기를 자유로운 포교가 가능하다 하였습니다. 헌데, 그것을 물리고 이렇게 강압적으로 나온다면 나도 더 이상 그대들에게 협력 할 이유가 없소이다.”
“큭! 반란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거요!?”
“반란? 우스운 소리군. 나는 그대들에게 협력을 했을 뿐, 수하로 들어 간 적은 없습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대하려 한다면 크게 다칠 뿐.”
우우웅.
강력한 힘의 유동과 함께, 병사들이 들고 온 무기들이 한꺼번에 허공으로 치솟았다.
망령제어는 조금 치사한 면이 있어서, 일반 병사들로는 도무지 대항 할 방법이 없다. 쿤의 경지에서 순수한 물리력으로 장악 할 수 있는 숫자는 백여명. 그 절반도 안 되는 이들 정도는 얼마든지 요리 할 수 있었다.
“오, 오오……!!”
“신의 기적이다!! 병사들이 꼼짝도 못하고 있어!”
“으하하! 꼴좋다! 매일같이 윽박지르기만 하더니!!”
내전으로 인한 치안을 결국 강압으로 잡는 수밖에 없다.
그동안 강경일로를 걸어온 수도 방위군에게 시민들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리 없는 것이다. 무기마저 빼앗긴 채 버둥거리는 병사들을 보며 사람들이 비웃음을 날렸다.
작센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이 일에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자신하는 겁니까? 당신과 나. 공왕이 과연 어느 편을 들까요?”
“이런 짓을 해 놓고, 공왕께서 보호 할 거라 보십니까!?”
“보호라. 내게 그런 것이 필요하다 보는 겁니까?”
쿤이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작센을 쏘아봤다.
그의 등 뒤로 시민의 행렬이 길게 이어져 기세를 더했다. 수백. 아니, 간 보는 사람까지 하면 수천에 이를 수 있는 숫자. 그 전체를 눈에 담은 작센이 침을 꼴깍 삼켰다.
이건 여차하면 정말로 시민 봉기로 이어 질 수도 있는 규모였다.
내전으로 병력이 갈려져 있는 지금, 쿤이 작심을 하고 달려들면 정말로 뒤엎어 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확 그렇게 해 볼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쿤이 곁눈질로 라라와 루루를 살폈다.
그래도 공왕은 둘의 부친이다. 그런 모습으로 상황을 꾸미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쉔과 대적하는 것도 내키지 않고.
지잉……
그 순간, 하늘에 띄워 둔 ‘눈’을 통해서 예상하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쿤이 병사들을 잡고 있던 힘을 풀고는 입을 열었다.
“물러나세요.”
나는 할 일이 있으니까.
뒷말은 필요 없었다.
※작가의 말
쿤의 수단과 준경의 배경 지식이면 사실 민중 봉기는 쉽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예약연재. 잘 올라갔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