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58화 (158/240)

아노스대륙의 역사는 길고, 그 중에는 마왕과 용사. 대 전쟁의 이야기 역시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신의 힘. 혹은 그에 근접하는 존재들에 의해서 이야기에 꽃을 피우는 무구들이 등장을 하곤 했다.

신의 명령을 받은 대장장이.

드래곤을 무찌르기 위해 팔을 걷어 부친 드워프.

산속 정기를 받은 요정.

이렇게 탄생한 무구들은 주인을 고르고, 역사에서 활약하며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명예롭게. 혹은 악명으로. 여느 영웅들 못지않게 굵직한 이름으로 거론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무구들이 모두 그런 영광을 누린 것은 아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항상 성공만 있는 게 아니듯, 신의 대장장이나 노련한 드워프라 해도 아주 사소한 일로 실수가 발생하곤 했다. 역사의 뒤편. 사람들은 모르는 곳에서 그렇게 만들어진 실패작들이 여럿 존재했다.

[파하하하하하!! 잘 했어! 날 선택한 걸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지금, 쿤이 팔에 찬 팔찌 역시 그런 물건들 중 하나다.

***

옵티마 ― 아랑겔

불타는 산의 거인 옵티마가 정련한 유성으로 만들어진 물건. 갈색 바위 일족 드워프의 최고 대장장이인 아랑겔이 제작했다. 둘의 이름을 따서 옵티마 ― 아랑겔이라 지었다. 본래, 다른 이름이 내정되어 있었지만 완성품이 되지 못하여 이 상태로 그쳤다.

팔찌는 소유주의 모든 신체 능력을 증가시키며 주변의 에너지를 흡수한다. 본디 구상하던 바는 흡수하는 힘과 폭증시키는 능력이 완전한 순환 고리를 이루는 것. 하지만 이것은 실패하고 과도한 흡수율과 증폭률로 소유자를 해치는 물건이 되고 말았다.

팔찌에 깃든 자아 역시 완성되지 못하여 두 힘의 중심을 잡지 못한다. 광적으로 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전투에 들어서면 무작정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신체 능력을 상승시킨다. 한계 이상의 유동은 소유자를 죽이고 만다.

광포화 - 팔찌로 흡수한 에너지를 한 순간 개방시켜 폭발적인 능력을 얻는다. 이 경우 생명이 가지는 모든 자율경고체계가 정지하고, 생명력이 바닥나는 순간까지 전투에 임하게 된다.

자가회복 - 팔찌로 흡수하는 에너지를 치유력으로 치환한다.

마법해제 - 주변의 에너지를 흡수한다는 것은 구현된 마법의 마력도 흡수 가능하다는 말이다. 소유주와 팔찌의 자아가 제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마법을 해제 할 수 있다.

***

지금껏 봤던 장비 중 가장 긴 설명.

몇 가지 단점을 제외하면 분명 드래곤이 소지하고 있을 정도로 위력이 좋다. 주변 힘을 흡수하여 소유자를 강하게 한다. 완벽한 전사를 만들기 위한 장비였음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몇 가지 단점. 그것이 이 무구의 가치를 바닥까지 떨어뜨리는 추가 되고 말았다.

[그럼, 전투에 나서자고!! 적은 어디에 있지!? 이 몸의 힘을 보여주겠어!!!]

거기다 이 시끄러운 팔찌의 자아까지.

쿤이 팔찌에 손을 올린 뒤 망령제어를 강하게 운용해서, 자아를 닥치게 만들었다. 자아라는 것은 일종의 혼. 높은 수준의 자아인지라 보통은 불가능하겠지만, 이미 사전에 약속한 바가 있어 충분히 가능했다.

마법사인 프리실라가 공증하고, 자아의 본래 이름을 걸어 맹세를 맺은 것이다.

이름이라는 것은 생성자아의 경우에는 그 존재 자체와 같다. 이름을 말하지 못하게 봉인되어 있다지만, 그것을 걸고 약속하는 것은 가능했다. 본디, 이름을 막은 것은 누군가 그것을 알고 악용할까 틀어막은 것뿐이니까.

부르르……!

말을 못하니 팔찌가 요동치기만 했다.

“더 떠들면 떼어놓고 용암에다 집어 던질 줄 알아. 가만히 있어.”

그제야 조용해졌다.

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름이 마네코쉬(미치광이)라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은 거야.’

발음으로 하면 마네코쉬. 요락의 진언이 전해주는 의미는 미치광이였다.

팔찌를 만들 당시 투쟁을 염원하고, 전쟁의 승리를 갈망한 나머지 지나치게 극단적인 자아가 탄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에 이름을 미치광이라 붙여 버리니,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는 그 단어에 딱 맞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프리실리가 슬쩍 웃으며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

“후후. 다루기가 만만치 않을 거 같네.”

“그나마 이름을 걸고 약속해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시끄러워서 미쳐버렸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이 능력. 사용하기 조금 무서워지네요. 주변 에너지 흡수와 능력의 증폭이라. 줄타기를 못하면 몸이 그대로 터져나갈 거라는 얘기인데……”

“흠. 필요하다면 내가 조금 도와줄까? 이 정도 무구를 조작하는 건 나로서도 무리지만, 흡수율과 증폭율의 밸런스 정도는 표시 할 수 있어.”

“아……그렇게 해 주시면 고맙죠. 제어하는데 도움이 될 거 같네요.”

감각으로 확인 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다면 조율에 도움이 될 것이다. 쿤이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다시 팔찌로 시선을 돌렸다.

‘일단 기본은 흡수와 증폭이라 이거지.’

팔찌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팔찌의 자아를 복속시키고 시작해서 그런지 이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한 순간 주변 감각이 일렁이더니 밀물이 밀려오듯 주변 에너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음……!”

어째서 실패작이라 말 한 건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에너지라는 건, 같은 물줄기에서 나왔다 해도 여러 가지로 갈라지는 법이다.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 역시 마찬가지. 보석이 품고 있는 마력, 땅에 숨 쉬는 자연의 에너지. 허공에 맴도는 불의 에너지. 그리고 자잘한 수많은 에너지 들. 다른 형태로 갈라진 것들이 모조리 합쳐져서 쏟아져 들어왔다.

크기 문제 이전에, 이런 에너지들의 충돌이 관건이었다.

마치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쏟아지는 힘들이 부딪혔다. 충격이 온전히 몸으로 전달되었다. 작은 흔들림. 하지만 숫자가 이 정도쯤 되면 단순하게 말 할 수 없다.

드드드……!!

팔과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육체로 넘어가는 증폭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에 더했다. 마치 막힌 둑으로 물이 쏟아지는 것과 같다. 미련한 짓이지만, 일단은 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멈춰!’

쿤이 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팔찌에 명령을 내렸다.

덜컥. 덜컥. 힘의 유동이 거칠게 변하더니 천천히 줄어들었다. 팔찌의 자아도 일단은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후우……”

“생각보다 여파가 크네.”

깊게 한숨을 내쉬는 쿤 옆으로 프리실라가 다가왔다.

그녀의 이마에도 땀이 맺혀 있었다. 팔찌가 주변 에너지를 흡수한다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 역시 포함되는 것이다. 즉, 프리실라의 힘 역시 팔찌가 흡수를 시도했다. 물론, 마력 제어가 높은 그녀의 경우에는 전부 저항 해 낼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꽤나 지친 모습이 되었다.

“괜찮은 겁니까?”

“날 뭐로 보는 거야? 이 정도쯤은 문제없어. 그보다 제어는 어때? 얼굴이 엉망이던데.”

“흡수만 제어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네요. 에너지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각자가 다 충돌하고 있어요. 이를 전부 제어해서 하나로 통합하려면 어느 정도의 제어력이 있어야 할 지 가늠하기 어렵네요.”

“아하하. 그걸 전부? 그건 욕심이야. 차라리 흡수할 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따로 분류하는 게 나아. 대마법사라 해도, 모든 힘을 제어해서 받아들이지는 못할 걸?”

프리실라가 웃으며 말을 했다.

쿤이 따라 웃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분명, 무리가 있기는 했으나 아예 불가능하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수많은 종류의 에너지는 초감각이 하나하나를 느끼게 해 주었고, 망령제어로 익숙해진 제어는 이를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제어를 했다. 지금은 처음이라 힘이 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전부를 제어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하긴 신의 힘도 받아들였었는데, 이 정도는 별것도 아니지.’

생각해보면 그렇다.

이미 더한 것도 해봤는데, 이 정도가 문제일까.

쿤이 팔찌를 손으로 툭툭 두드려봤다.

부르르 떨었다. 정복할 재미가 있는 물건이다.

앞으로의 수련에 한 가지 항목이 더해 질 거 같았다.

#

지하 공사와 제단수립.

수련으로 시간을 바삐 보내고 있을 무렵. 상층부 일행이 머물고 있는 별관으로 손님이 찾아왔다. 평상시에도 오델백작이나, 여타의 유력인들이 찾아오곤 했으니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이번에는 찾아온 손님이 조금 의외였다.

“……지금 상황을 모르는 겁니까?”

흰 로브를 길게 늘여 입고, 머리에는 벽 나무를 꼬아 만든 관을 쓰고 있다.

쿤도 상대에 대해서 여러 번 조사를 했던 터라 이 복장이 가지는 의미를 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는 굴락의 고위사제. 데미안까지 죽고 난 지금에서는 거의 한 손에 꼽히는 최고 책임자인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직접 찾아 올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쿤이 몸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굴락의 고위 사제가 비밀리에 찾아왔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들어나 보도록 하죠.”

“이야기에 앞서 주변 사람을 물렸으면 합니다만.”

방 안에 있는 건 라라와 루루. 그리고 아도란.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신경 쓰지 말고 말 하세요.”

“……좋습니다.”

쿤의 단적인 태도에 그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었다.

꽤나 나이가 있어 보이는 얼굴. 쿤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굴락을 구해 주십시오.”

“……네?”

“말 그대로 입니다. 부디, 굴락을 구해 주십시오. 이대로 가다가는 굴락이라는 종교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 버릴 지경입니다.”

쿵. 그리고는 머리를 바닥에 대며 읍소를 했다.

굴락의 고위 사제이며, 연배로도 쿤보다 윗선인 사람이 이런 자세를 취한다. 일단 농담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쿤이 그의 어깨를 잡아 올리며 진지하게 물었다.

“자세히 한 번 말을 해 보세요. 굴락을 구해 달리니, 무슨 의미입니까?”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만, 현재 굴락은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어 있습니다. 특히, 대신관이었던 도미닉과 기사단장이었던 데미안. 둘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에 의한 변질이 심했죠.”

“그럼,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는 겁니까?”

“당연합니다! 본래 굴락은 안과 밖을 평안히 하자는 자연 숭배적인 종교일 뿐입니다. 저희가 모시는 굴락은 신이자, 신이 아닌 존재. 인간이 스스로를 갈고 닦으면 굴락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파생된 존재입니다. 지금처럼 광신의 대상이 아닙니다.”

열변을 토하는 남자의 얼굴에는 굵은 핏대가 서 있었다.

심장 박동, 호흡. 그리고 동공의 움직임.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잠시 생각하다 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굴락이 이단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해도 전부가 넘어갔다 생각하는 건 성급한 판단이었다.

“허면, 지금까지는 어떻게 버틴 겁니까? 변질된 굴락이라면 따르지 않는 신도들을 그냥 두었을 리가 없을 텐데요. 분명, 같은 신앙으로 회유를 했을 텐데요?”

“……그 돌. 검은 돌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 이들은 하나같이 변질되었죠. 다만 저를 비롯한 소수의 인원은 남들보다 그 영향이 적었습니다. 그 틈에 연기를 하고, 남들과 같이 변질된 것처럼 보이도록 노력을 했죠.”

“검은 돌. 그리자를 말 하는군요.”

“그 검은 돌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겁니까?”

어찌 말 할까 하다가, 일단은 가볍게 설명을 해 두었다.

그리자 안에 있는 힘이 사람을 타락시킨다. 변질된 이들 역시 그 영향을 받은 것. 단편적으로 이어지는 설명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납득하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 그랬군요.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변질된다 해도, 그렇게 단시간에 변하는 건 있을 수 없으니까요.”

쿤이 그 사이, 남자의 몸을 살폈다.

이단의 기운이 희미하게 남아 있기는 하지만 타락했다고 볼 수준은 아니었다. 그의 말 대로 그리자에 노출되기는 했으나, 시간이 짧아 영향이 적었던 거 같다. 아니면, 본래 신앙에 대한 믿음이 강하여 남들보다 잘 버틴 거든지.

어느 쪽이든 그가 본래 굴락이라는 종교를 지키기 위해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좋은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뭘 도와주면 되는 겁니까?”

“재판에서, 굴락의 명맥만 끊어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굴락의? 그건 좀 어렵지 않을까요? 재판의 결과는 저희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번 일을 허투루 대할 수는 없는 바. 현재 드러난 굴락의 죄악을 증명하는 것에서는 물러 날 수 없습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변질된 굴락의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분리해 달라는 말입니다. 당신이라면……할 수 있지 않습니까?”

아마 도미닉을 상대하는 순간의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거 같다.

그래. 아마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쿤밖에는 가능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단의 힘을 증명하고, 굴락을 둘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그런 일을 해 줄 의리는 없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 일을 해 준다면 당신은 제게 무엇을 제공 할 수 있습니까?”

“……지금 굴락을 이끌고 있는 자는 오세론이라 불리는 인물입니다. 도미닉, 데미안 형제들보다도 극단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죠. 이번 재판. 아예 열리지 못하게 할 생각입니다. 그것을 위한 작업이 지금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미 그 대비는 되어 있습니다.”

세이혼이 하푼을 데리고 재판장을 보호하고 있다.

아무리 굴락이 수를 쓴다고 해도, 그 방어를 뚫고 타격을 입히기는 어려운 바. 대대적으로 의회파와 협력해서 공격을 하지 않는 이상에야 문제 될 것이 없다.

“허면, 이것도 대비하고 있습니까?”

남자가 이를 바득 갈고는 말을 이었다.

무언가 두려워하는 듯. 증오하는 듯. 격렬한 감정의 요동이 느껴졌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보통의 것은 아니다. 쿤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수도 전역에서 자살공작이 일어날 겁니다.”

“……뭐!?”

탕. 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작가의 말

으아 덥네요, 더워.

이제 슬슬 굴락과의 인연을 끝내고, 내전도 종식시킬 때가 됐네요.

오늘 자정에 한 편 더 갑니다.

더운 여름. 다들 건강에 유의하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