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56화 (156/240)

보호의 이유로 라라와 루루를 별채로 아예 옮긴 뒤, 마법진이 그려진 방을 아도란의 마법으로 보호를 했다. 지정된 명령어를 모르면 들어 올 수 없는 구조. 그리고 곧바로 일행과 함께 지하로 이동을 했다.

“와아!! 여기가 진짜로 수도 지하에 있는 공간이 맞아요?”

“대단하군. 이야기로 들은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해.”

루루와 세이혼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 새로운 손님인가! 모두 모여~!”

“크하하! 반가워! 나는 람람이라고 하네!”

“나는 오돔이야!! 오돔! 반가워! 하하하하!!”

금세 주변으로 드워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차게 식힌 맥주를 다른 한 손에는 곡괭이를 들고 있었다. 방금까지 일 하다 왔는지 얼굴이 땀투성이다. 주변으로 빙 둘러서니 열기가 후끈했다.

“드, 드워프죠!? 드워프 맞죠!?”

“오오! 아가씨가 눈썰미 좀 있는데? 나처럼 다리 긴 드워프를 한 번에 알아보고.”

“크하하! 돼지 꼬리보다 다리가 짧은 놈이 무슨 헛소리냐!? 나 정도는 되어야 올해의 드워프 정도는 되지! 안 그런가?”

“둘 다 시끄러워! 꼬마 숙녀분이 당황스러워 하잖아!”

쾅쾅. 거리는 소리와 함께 너털웃음을 토해내던 드워프 둘의 고개가 숙여졌다. 한 뼘은 더 큰 여자 드워프가 둘을 제압한 것이다. 종족의 특성인데, 드워프들은 보통 여자가 더 힘이 세고 키가 컸다. 그리고 남자 드워프 보다는 조금 사고가 합리적이었다. 대신 손재주는 보통 남자 쪽이 우세했다.

“와악! 안 그래도 돼요. 반가워서 그런 걸요. 괜찮아요. 저도 드워프는 처음 보는데……와아! 진짜 놀라워요! 드워프를 직접 보게 되다니!”

“크핫핫핫핫!!! 아가씨가 뭘 좀 아는군! 우리도 아무한테나 이렇게 친한 척 안 한다고!”

“킁킁. 어? 그런데, 뭔가 익숙한 냄새 안 나?”

“뭐야? 술 먹다가 또 지린 거냐? 내가 속바지 차고 쳐 마시라고 했지?”

“개소리 말고. 이 아가씨 말이야. 뭔가 익숙한 냄새 안 나냐고.”

그러더니, 드워프 두엇이 루루의 주변을 빙빙 돌며 코를 벌름거렸다.

쿤이 말릴까 하다, 루루의 얼굴이 나쁘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녀는 잔뜩 들뜬 얼굴을 한 채 주변의 드워프들을 보기 바빴다. 워낙 신화나 전설을 좋아하는 성미인지라 직접 목도한 드워프가 마냥 신기한 모양이다.

‘드래곤을 보면 기절하겠네.’

쿤이 픽 웃고 말았다.

“오! 그래, 불 냄새!! 불 냄새가 나는군!!”

“어? 어어어! 진짜! 불 냄새야!! 어이, 어린 아가씨. 아가씨가 어떻게 불 냄새를 풍기는 거야?”

“불이요? 아, 이거 때문인가?”

루루가 손을 들어 올려서 불을 만들어냈다.

붉은 빛이 확 하고 퍼졌다. 정령의 힘. 주변에 있던 드워프들이 그 광경을 보더니 한 모습으로 입을 모아서는 감탄사를 토해냈다.

“오오오오! 정령사잖아! 세상에, 아직도 정령사가 남아 있었어!?”

“불의 정령이라니! 와! 이게 얼마만이야!”

“아가씨, 아가씨! 그 불로 우리를 좀 도와 줄 수 있겠어? 응? 내가 막 캐 올린 철광석 한 주머니 줄게. 응?”

“어……도움이요? 제 불이 도움이 되나요?”

한 번도 생각 해 본 적 없는 일이라 루루가 의아해 하며 물었다.

쿤과 세이혼을 통해서 수련하면서도 공격적인 방법만을 연구했을 뿐, 그 외로는 시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

“그럼! 정령이 만들어 낸 불은 그 자체로 힘이 있어. 제련을 할 때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 준다고!!”

“불의 정령은 우리 드워프들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지. 세상의 정령들이 한 번에 사라진 일이 있기 전 까지는 적어도 우리 중 두셋 정도는 정령을 사용하곤 했으니까.”

“아……! 그렇군요. 쿤, 오빠. 제가 가서 좀 도와줘도 될까요?”

쿤이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루루도 좋아하는 분위기고, 드워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관계 개선에도 이득이다.

허락이 떨어지자 루루가 환하게 웃고는 드워프들과 한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최근에 봤던 것 중 가장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괜찮을까요? 루루 혼자 보내도.”

“걱정 할 필요 없어. 드워프들은 자신을 좋아해 주는 상대에게는 그 몇 배나 되는 호의를 돌려주는 종족이니까.”

“아, 프리실라.”

이야기가 길었을까.

프리실리가 일행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보라색 원피스를 길게 늘여 입은 채,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닥이 온통 흙인데도 용케 옷이 더러워 지지 않았다.

“이야기는 들었어. 칠일이라고? 그 이후에 내가 맡으면 되는 건가?”

“위에서 있던 일을 벌써 들었습니까?”

“마법사는 귀가 밝아야 하는 법이지. 그보다 그쪽이 세이혼?”

“처음 뵙겠습니다, 마법사 프리실라 양. 세이혼이라 합니다.”

“흐음. 얼굴은 조금 모자라지만 몸은 탄탄해 보이네.”

“딸도 있습니다만.”

“……쳇.”

혀 차는 소리가 낮게 들렸다.

어쨌든 그렇게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은 일행은 장소를 옮겼다. 앞서 쿤이 공물을 바쳤던 그 방. 제단의 중심이 될 곳으로 따로 이야기하기에는 적합한 장소였다.

“알아서들 앉으라고.”

의자 몇 개가 방 안에 놓인 가구의 전부였다.

제단도 임시라 그런지 조금 빈약했다. ‘안을 채워야 하는데.’ 쿤이 낮게 중얼거렸다.

대충 일행이 자리에 앉고 나자, 프리실리가 대뜸 입을 열었다.

“대충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나는 그리자를 정화하기 위해 쿤과 협력을 하고 있어. 멍청한 아도란과 여기 없는 몇 명도 마찬가지지. 아직 이야기를 못 전했지만, 여왕이 있는 곳의 작자들도 협력을 거부하지는 않을 거야.”

“쿤에게 듣기로는 하늘에서 그리자가 떨어졌다고 하던데. 혹시, 그 원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까? 적의 본류를 안다면 공략하기가 더 쉬울 것 같은데.”

“우리가 그 정도 생각도 없었을까봐. 모든 마법사. 요정. 엘프. 숲지기들. 많은 이들이 노력을 해 봤지만 누구도 그 시작을 찾지 못했어. 적어도 우리가 알 수 있는 영역의 이야기가 아니야.”

짧게는 공화국에 대한 것이 문제지만 길게는 결국 그리자로 통한다. 정확하게는 이단. 이에 대한 해결이 없이는 정국을 안정시킨다 해도 일시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이단은 늘어나고 세를 불려 더욱 심한 상황을 만들 게 뻔 하니까.

“그렇다면 신은 어때요? 다른 신들에게 이 일을 물어 볼 수는 없나요?”

그때, 라라가 입을 열었다.

“신관에게 말이냐?”

“고위급 신관중에는 신과 소통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 않아요?”

“혹시 최근에 대신관을 만나 본 적 있어?”

프리실라의 질문에 라라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여력이 안 된 것도 있지만, 제국에 있을 때에도 그런 경험은 없었다. 아니, 대신관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거의 없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럴 수밖에. 신들과의 소통이 점차 힘들어 지고 있으니까. 나도 너와 같은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야. 우리 마법사들은 신관과 사이가 안 좋지만 당시에는 워낙 급박했던지라 처지 가릴 게 없었지. 그래서 안면이 있던 대신관을 찾아갔어.”

“그런데요?”

“신성력을 모두 잃은 채 말라죽어 있더군.”

“……세상에.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거죠?”

프리실라가 손가락을 튕겼다.

허공으로 네모난 판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일종의 보드. 손끝으로 그 위를 슥슥 그니, 금세 그림 하나가 완성되었다.

“신은 우리의 세계에 속해있지만, 본질은 다른 차원에 두고 있어. 이건 정령계와도 비슷한 형태이지만, 설명하자면 복잡하니까 넘어가자고. 하여튼 이런 신들이 이곳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해. 일단은 신도. 산 자의 의념이 없으면 신은 소통이 불가능해. 그리고 필요한 것이 입구야.”

“입구?”

“우리 쪽으로 설명하자면, 존재에 따른 세계 축에 대항하는 비틀림 상수……이런 건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크기가 커서라고 할 수 있지. 신은 그 존재와 신도에 따른 힘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덩치를 키워가. 그런 존재가 현실에 직접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열린 창구가 필요하지. 그걸 바로 입구라고 말 하는 거야.”

문 앞에 선 거인.

프리실라가 그림을 바꾸었다. 이해하기 쉬웠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입구가 좁아지기 시작했어. 티 나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줄어든 거라 신들 조차 알지 못했다고 보는 게 정설이야.”

“이유는? 이유는 모르는 건가요?”

“여러 가지 추측은 해 볼 수 있지만 확실한 건 없어. 어쩌면 하늘에서 떨어진 그리자가 입구를 지탱하던 존재였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것도 역시 근거 없는 추측일 뿐이야. 지금 알 수 있는 건 입구가 너무 작아져 대다수의 신들은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힘이 축소됐다는 것이지.”

열려있던 문이 딱 닫히고 거인이 안 보이게 됐다.

“잠깐만. 방금 정령계도 비슷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럼 루루의 힘은 어떻게 된 겁니까?”

“뭐, 입구가 완전히 닫힌 건 아니니까. 희미하게 힘을 받아서……아니, 아니야. 그 아이가 정령의 힘을 어떻게 얻었지?”

“쿠알라푸름의 붉은 눈을 통해서 얻었습니다.”

“불의 정수가 담긴 보석이군. 게다가 제국 황가의 혈통. 확실히 조건은 갖춰져 있어. 하지만 그래도 불쑥 정령사의 자질을 개화시킨다? 이건 우연이라 보기 힘드네.”

프리실리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무언가를 납득했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쿤을 가리켰다.

“너. 우리가 일전에 말 한 적 있지. 네가 모시는 신의 힘이 어쩌면 그리자에 깃든 존재와 한 몸일지도 모른다고.”

“아……신의 힘을 키워서 닫혀있는 문을 열었다는 건가요?”

“그러면 대충 앞뒤가 맞지 않나? 통하지도 않는 입구를 비집고 정령계의 힘이 들어와 각성을 했다고 보는 것보다는.”

“확실히. 그럼 제 힘이 늘어날수록 그 입구가 더욱 확장된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럼 다른 신의 힘도 더욱 늘어나는 거고.”

“확실하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은 있겠지. 하지만 알아 둘 게 있어. 네 힘이 늘어나도 다른 곳에서 그리자의 힘이 퍼지는 속도가 더 빠를 지도 몰라. 어쩌면 네 곁에 있었기 때문에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는 거니까.”

추측에 추측이 더해지는 이야기지만 어느 정도 가닥을 맞춰가는 기분이었다.

쿤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보를 정리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군요. 아……그래서 본래 하려던 말이 뭐였죠?”

“그리자를 상대하기 위한 방법. 일차적으로 이곳의 그리자를 정화하겠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야. 타락한 우리 형제들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까. 게다가 숲의 여왕도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고. 되도록 빨리 연합을 맺고, 이에 대응 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옳아.”

“따로 생각해 두신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요?”

“고대 종족인 얀(Yann)에게 도움을 청할까 해.”

“얀?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프리실라가 다리를 꼬고 앉았다.

허공에 떠 있던 그림들이 지워졌다. 그리고 대신 희뿌연 안개 형태의 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이 얀?’ 라라가 대표로 의문을 표했다.

“고대 종족 중 아직까지 살아있는 몇 안 남은 이들이지. 정신체의 일종으로 감각과 기억을 공유하는 특이한 성질을 지니고 있어. 그리고 서로를 연결하여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세상을 옮겨 다닐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전령처럼 쓰겠다 이거군요.”

“당장은 너를 제외하고는 확실한 정화 수단이 없으니까. 급할때 빼 가서 불부터 끄려면 그에 걸맞은 수단이 필요해. 공간이동 마법은 제약이 너무 심하거든. 그들의 힘을 빌리면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어.”

“그럼 망설일 게 있나요? 당장 도움을 청해 보죠.”

“하지만 그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어.”

프리실라가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두드렸다.

“그들은 정신체이기 때문에 무언가 자신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지 못한다면 움직이지 않아. 생소한 문물이나 문화. 또는 특정 지식들. 먹이로 줄 만 한 것이 없다면 자신들의 거처에 박혀서 꼼짝도 안 하지.”

“마법으로는 불가능 한 건가요?”

“그들의 정신체계는 마법보다 강력한 부분이 있어. 속임수로 거짓 정보를 꾸밀 수는 없지. 정말로 알고 있는 독특한 지식이 없다면 설득하기 어려워.”

“흠. 어쩌면 그 부분에서는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 같군요.”

쿤이 턱에 손을 올리며 답을 했다.

새로운 지식. 지금에는 전부 사라졌지만 히어로 메이커 모드 당시 신들이 사는 세계의 일면을 엿보았다. 정신체라면 사라진 기억도 되살려서 얻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그것이 아니라도……

“내가 바랐던 부분이 딱 그거야. 네가 모시는 신. 그거라면 얀들도 생소한 거겠지.”

이런 부분이 있다.

“불러올 방법은 있나요?”

“오래된 마법 중에 소환 의식이 있어. 재판이 열리는 것은 일주일 후니, 그 전까지 준비를 하면 가능 할 거 같아.”

“일주일이라. 결국 그 시점에서 많은 것이 결정되겠네요.”

멀리는 얀이라는 고대 종족의 만남과 이단에 대항하는 연맹.

가까이로는 굴락에 대한 재판과, 의회파에 대한 공격. 일들이 진행되면 체제의 전복도 그 뒤를 따를지 모른다. 그렇다면 공왕파 측근으로 있는 이들의 세력 싸움도 이어지겠지. 후계 다툼을 위해 라라나 루루에게 흑심을 보이는 인물이 나올 것이고. 머릿속에 다음에 벌어질 일들이 착착 정리 되었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겠네.’

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로 내려온 것은 프리실라와 앞일을 계획하기 위함도 있지만, 다른 목적도 있었다. 특히 굴락을 대비하여 재판장을 보호하러 갈 세이혼에게 줄 물건이 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필요한 것들을 챙기러 가 보자.”

“……음?”

“세이혼. 교단의 대표 성기사인데, 언제까지 싸구려 무기만 쓸 건가.”

창고 대 방출.

장비 풀 셋팅을 할 시간이었다.

※작가의 말

모두 모여~!!!

오늘하고 내일 자정에는 글을 못 올릴 거 같습니다.

스토리가 주 궤도에 오르면서 다룰 이야기가 많아져서 좀 가다듬을 필요가 있을 거 같네요. 그냥 두면 중구난방으로 뻗어나갈 거 같아서용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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