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53화 (153/240)

어느 정도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졌을 때, 반지를 사용해서 공간이동을 할 생각이었다.

따라오는 헬기도 없으니 이 정도면 충분 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굉장히 기묘한 감각이 나를 따라붙었다.

일종의 혐오감. 이단에 대한 반응인 것 같기도 한데, 그 안에 묘한 것이 섞여 있었다. 조금 변형됐다고 봐야 할까? 익숙하게 느끼던 이단의 그것과는 약간 차이점이 있었다.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판단을 내려 느낌이 전해지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반지를 작동해서 공간이동 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하카림의 동굴처럼 이를 방어 할 존재가 있는 것도 아니니 딱히 위험은 없었다.

“……”

그렇게 내가 내려선 것은 꽤 낙후된 동내의 뒷산이었다.

오래전에는 등산로로 쓰였는지 낡은 운동기구가 종종 보였다.

“모습을 드러내라.”

아무도 없는 숲.

하지만 느낌은 여전하다. 웅크린 채 나를 노려보는 포식자의 감각. 이단의 혐오와 뒤섞여서 매우 불쾌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흐……흐흐. 진짜로 왔네?”

부스럭.

잔가지가 떨어지고, 커다란 그림자가 내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2미터? 아니 그보다 훨씬 위다. 이마위로 내려오는 그림자는 현대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거구를 그려내 주었다.

노숙자나 쓸 법 한 거적 대기를 칭칭 동여맨 채, 양 팔을 축 늘이고는 나를 노려봤다. 산발 된 머리카락 덕분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고, 바지는 넝마에 신발은 신지도 않았다. 산에 사는 기인 정도로 정리 될 외모. 하지만 그렇게 단순화하기에는 몸에서 새어나오는 이단의 기운이 상당히 강력했다.

“흐. 흐흐흐……나 여기서 너 죽여도 돼.”

“죽인다. 나를?”

“으, 응. 그래도 된다고 했어. 처음으로. 허락해줬어.”

“누가 그런 걸 허락했다는 거지?”

“모, 몰라. 그냥 그렇게 허락했어. 흐. 흐흐. 그러니까……”

화악—!!!

거구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

당황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상대가 이곳에서 기운을 풍기고 있었던 것은 앞선 특공대와 마찬가지로 함정의 일종. 그 대상자가 조금 특이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생각지 못한 기습은 아니다.

초감각으로 전해지는 정보에 따라 몸을 돌렸다.

길게 자란 손톱이 야생 동물의 그것마냥 흉흉하게 가슴 앞섬을 스치고 지나갔다. 옷 끝이 살짝 찢겨졌다.

……경비대장? 아니, 그보다 조금 위겠네.

상당히 빠르다.

게다가 덩치가 크고 팔 다리가 길어서 공격의 범위가 넓었다. 감각으로 예지하고 몸을 움직인다고 해도, 지금의 스텟으로는 피하는 것도 아슬아슬하다. 이미 망령제어로 많은 체력을 소모한 상황. 길게 끌다가는 먼저 나가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신성 대지의 축복을 깔고, 아쿤을 손으로 불러와 횡으로 그었다.

예리한 궤적에 상대가 잠시 주춤거렸다.

“멈춰라!”

망령제어로 상대의 머리를 흔들었다.

혼의 흔들림. 상체가 잠시 들썩이고 커다란 틈이 생겼다. 아쿤을 역순으로 쥐고는 그대로 몸을 날려 위에서 아래로 내리 그었다.

푹……!

격한 저항감.

하지만 본래 원했던 대상에게는 아니었다. 괴인이 손을 들어 아쿤을 막은 것이다. 팔뚝 깊이 아쿤이 박혔다.

후웅—!

반대 손이 얼굴 앞으로 스쳐갔다.

아쿤을 회수하고는 어깨를 발로 차 몸을 뒤로 뒤집었다.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돈 뒤 거리를 벌렸다. 상대는 육체적 스펙도 대단하지만, 망령제어에 대한 방어력도 상당했다. 혼의 결집이 강한.

아니, 그보다는 마치 이런 일에 내성이 있는 듯 한 반응이었다.

“아파. 아파!! 아파아아아!!!”

괴인이 아이처럼 울면서 달려들었다.

한 번 지면을 찰 때마다 흙이 뭉텅뭉텅 파였다. 그만큼의 추진력이 거구를 밀어내고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들짐승과 같은 몸놀림. 약동하는 근육의 움직임을 알 수 있는 나이기에 그 위력을 더욱 실감 할 수 있었다.

……이건 인간의 육체가 아니다.

단순하게 결론이 내려졌다.

인간이라면 본디 가져야 할 육체적인 한계가 있다. 헌데, 괴인에게서는 그 이상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단순히 힘의 강약이 아닌, 신체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가동률의 문제였다. 이건 마치 목이 360도 돌아가거나, 팔이 거꾸로 움직이는 것과 같다.

“크아아아!!”

괴성과 함께 쏟아지는 공격을 흘리며 생각했다.

어째서 이놈일까. 왜 적은 이런 존재를 내 앞에 놓고 함정을 판 것일까? 내 행적을 살피고 이단에 반응한다, 추론하는 건 이상하지 않다. 그렇기에 이단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놈을 내가 나타날 지역 주변에 배치 한 거겠지.

하지만 그럴 거면 더 치밀한 함정을 준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괴물 하나가 아니라.

“맞아! 맞아! 맞으라고! 난 죽이고 싶어! 죽어!”

“마치 아이 같군.”

손을 흘리고, 돌 하나를 망령제어로 들어 무릎을 후려쳤다.

거목에 솔방울 하나 던진 격이지만 잠시 움직임을 흐트러뜨릴 수는 있었다. 그 틈에 재빨리 손끝을 잡은 뒤 중심을 빼앗으며 몸을 대각선으로 뒤집었다.

합기도에서 사용하는 요령. 하지만 그 순간, 괴인의 팔이 기형적으로 돌아가더니 어긋나던 중심을 잡아냈다. 그리고는 그대로 머리를 흔들어 내 어깨를 찍어 눌렀다.

“어이없군.”

손을 풀고 몸을 낮추며, 발끝을 망령제어로 밀어서 거리를 벌렸다.

상대가 기형적으로 움직이는 만큼 나 역시 망령제어로 자유로운 신체 제어가 가능하다. 다만, 그만큼의 피로 누적은 피할 수 없다.

……변신을 풀까?

풀면 눈앞의 괴인을 잡는 건 금방이다.

힘으로 찍어 누리고 그냥 줘 패면 되니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걸리는 점이 많다. 굳이 이런 존재를 던져놓으며 나를 상대하게 한 점. 마치 실험실 안에 들어와 상대의 평가를 받는 기분이다.

“크아아아!!! 잡히라고! 잡혀!!”

“흠.”

허리를 숙여 공격을 피하고 품 안으로 파고들어, 목을 후려쳤다.

너무 단단해서 손끝이 다 아릴 정도. 제대로 된 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한 건 그 공격으로 인해서 반응하는 괴인의 움직임.

“크아아!!”

양 손을 들어 나를 잡기 위해 찍어 눌렀다.

예상했던 대로 딱 움직여 주니 얼마나 좋은가. 측면으로 돈 뒤 목 언저리 넝마를 잡아서 몸을 튕겨 올렸다. 자세로 보자면 내가 괴인의 목마를 탄 격.

쾅—!

관자놀이에 한 방.

흔들리는 머리통에 중심이 살짝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머리통에 관해서는 인간의 규격 안에 들어있는 듯 보였다. 양 손이 뒷머리로 올라오는 틈에 몸을 뒤집어 허리로 내려오며, 그 탄력으로 상대를 뒤집었다.

워낙 체구가 크고 체중이 무거워 쉽지 않았지만, 망령제어가 당기는 힘을 보조해 주어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목부터 그대로 지면에 처박히며 커다란 폭음을 쏟아냈다.

“후우.”

손을 털며 물러났다.

아무리 육체가 기행적으로 변이되었다고 해도, 이 정도 타격이면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아니, 그래야 정상이다.

“크르르르……”

흙먼지를 밀어내며 괴인이 몸을 일으켰다.

눈이 새빨갛고, 육체가 균열이 가며 예의 변이체들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제야 내게 익숙한 느낌이다. 섞인 쓰레기가, 악성의 것만 모여서 딱 정리된 느낌.

“변이 전이라……”

이 말은, 조금 전까지 싸우던 괴인이 이단에 의한 변이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도 인간 이상의 힘을 내었다. 특수하게 수련한 인물일까? 넝마에 광인처럼 말을 하는 괴인이? 아니다. 지금의 이 상황과, 상대의 모습은 마치 실험체를 던져두고 얼마나 하나 살펴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인간과 변이체의 중간.

“무기라는 건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차남혁은 미국과 손을 잡았다. 우리가 흔히 하는 미국에 대한 음모론이 뭐가 있는가? 바로 슈퍼 솔져에 대한 것이다. 이단의 힘은 인간을 변이시키고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이단의 힘이 많을수록, 베이스가 되는 인간의 힘이 강할수록 그 능력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만약,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시술을 하고 그것을 이단의 힘으로 버티게 했다면? 이단은 욕구를 증폭시키고 생명력을 초월적으로 늘려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인간이 견딜 수 없었던 실험 역시 견디게 해 줄 수 있다.

인간은 항상 불이 뜨거움을 알면서도 그것을 다루려 노력했다.

이단이 괴이하고 흉포한 힘임을 알지만서도 그것에 매료되었다면 이런 일도 충분히 일어 날 수 있다. 지치지 않고, 생명력이 질긴 슈퍼 병사. 너무나 매력적인 이야기 아니겠는가? 그 실험체 중 하나를 함정에 던져서 나와 상대하게 한다면 적의 전력을 파악하고 실험의 성과를 살피는 일석이조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이상한 느낌이 났던 거군.”

아마 이단에 의한 변이를 임시적이나마 조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낸 것일 거다. 인간과 변이체의 중간으로 상태를 설정하고 어느 정도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를 살피려 한 거겠지. 하지만 단언하건데, 이단의 힘은 그런 식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고룡, 하카림 조차 결국에는 타락하지 않았는가.

인간이 만든 방법은 잠시의 진척을 멈출 뿐, 결과를 바꿔놓지는 못한다.

“크르르르……”

지금의 이 생명체처럼.

“그쪽에는 애도를 보낸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군.”

아쿤을 가슴 앞으로 당긴 뒤, 자세를 취했다.

상황은 이해를 했다. 지금부터는 적의 말살을 위해 움직여야 할 때. 변신을 풀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크아아앙!!”

그래, 생각 할 시간을 안 주겠다는 거지.

멍청하던 상태보다는 이게 훨씬 낫네. 아쿤으로 손톱을 흘리고 몸을 돌리며 바닥에 놓인 돌멩이를 던졌다. 퍽 소리가 나고 부서진 파편 사이로 붉은 눈이 보였다.

지면을 끌고, 몸을 움직여 이차 공격을 피했다.

풍압으로 머리카락이 펄럭였다. 몇 가닥은 뽑혀나간 거 같다. 머리숱이 풍성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분노했을 것이다.

그대도 지면을 짚어 몸을 구르고는 아쿤을 허공으로 던졌다.

초감각이 전하는 정보에 의하면 적의 공세는 등 뒤로 떨어지는 앞발. 그리고 몸통으로 밀어붙이는 공격으로 이어진다. 이 공격은 1초 안에 이어지는 연격. 머릿속으로 모든 장면이 그려졌다.

[신념의 증표]

이 상황에서 싸움을 압도하는 건 불가능하다.

변신을 풀고 싶지만 주변에 눈이 있을 수 있으니 그것은 제외. 공간이동의 반지로 자리를 피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직 옵션에 넣을 단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방식이 가장 현명하다.

촤악……!

등 언저리가 발톱에 베였다.

꽤나 깊은 상처. 피 냄새가 물씬 풍겼다. 고통은 없지만 느낌은 있다. 아직 움직임에는 영향이 없을 수준. 충격으로 밀리는 힘껏 수습하며 빙글 돌렸다.

다음 공격은 바로 돌진.

쾅—!!

충격에 머리가 다 윙윙 울렸다.

하지만 온전하게 당하지 않았다. 충격이 닿는 순간 몸을 돌리면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막았기 때문. 대가로 내가 받아 온 건 상대의 목. 입고 있던 누더기를 손으로 말아 쥔 뒤 목을 졸랐다.

“커르르르!!”

힘의 차이가 심해서 몸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이대로 둔다면 아마 그대로 떨어지겠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피해를 감수하며 움직인 것이 아니다.

목을 조른 옷자락을 당기며 몸을 옆으로 돌렸다.

옆구리 쪽. 어깨너머로 엉킨 누더기를 꼬아둔 채 체중으로 당긴 것이다. 컥.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옆으로 기울고, 그 틈에 그네를 타듯, 몸을 흔들어 반대편으로 튕겼다. 마치 원숭이가 나무를 타고 놀듯이, 나는 괴인의 몸 주변을 돈 것이다.

왜? 그래야 내가 아쿤으로 머리통을 딸 수 있으니까.

푸욱—!!

양 손이 묶인 괴인의 머리통에 아쿤을 찔러 넣었다.

아무리 괴력을 지닌 존재라 해도 힘을 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몸을 타며 누더기로 양 팔을 묶어 둔 것은 그 힘을 잠시나마 봉쇄하기 위함.

파들파들 떨리던 몸이 바닥으로 축 늘어졌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정수를 획득했습니다.]

익숙한 알림음.

그리고 동시에 감각을 전력으로 확장시켰다. 특공대를 장악했던 것만큼.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힘을 쥐어짰다. 지금 이 싸움이 테스트를 겸한 함정이었다면 상대는 분명 주변에 있다.

어디냐……

수풀의 흔들림. 바람 소리. 무너진 흙무더기의 작은 마찰음. 주변의 모든 소리와 움직임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팠다. 신념의 증표가 고통 자체는 막아주고 있지만 육체가 무너지고 있음은 느낄 수 있었다.

나와라……

초감각과 망령제어가 뒤섞여서 움직였다.

산 자의 기운과 그렇지 못한 것의 기운이 나뉘었다. 흙 속에 숨 쉬는 생명들이 마치 물에 풀어놓은 물감처럼 다가왔다. 해상도가 확 올라간 느낌. 아직 CPU를 비롯한 내부 기기들은 그대로인데, 그래픽 카드만 혼자서 최신으로 바뀐 것 같다.

후욱……

검은 색 죽어있는 색 속에서, 산 자의 호흡이 튀어나왔다.

주변의 것들이 함께 일어나더니 마치 무지개처럼 번졌다.

찾았다.

“커억……!!”

서른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위장복을 입고 있는 남자 하나가 끌려왔다.

순간적으로 이단에 대한 혐오감이 밀려왔다. 그 역시 괴인과 마찬가지로 이단의 힘을 품고 있었다. 다만, 형태가 달랐다. 앞선 괴인이 광인에 괴력을 사용하는 모습이었다면 이자는 숨는 것에 특화되어 있었다.

만약 감각을 총동원하지 않았다면 나조차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서걱—!

망설이지 않고 아쿤으로 목을 베었다.

경험치와 정수가 수급되었다. 괜히 어설프게 도발했다가 변이해 버리면 곤란하다. 지금 처리하는 것이 현명했다.

“카메라와 무전기라.”

그가 숨어있던 위치에 초소형 카메라와 무전기가 나왔다.

아마 상황이 정리되면 보고를 하거나, 다른 인원에게 연락을 하려 한 거겠지. 어쩌면 이 산 주변으로 다른 병력이 대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대처 강도가 높군.”

공권력과 변이된 존재를 사용한 공격은 예상했다.

하지만 괴인과 지금 처리한 인물은 단순 변이체라기 보다는 일종의 특수 병사. 실험과 나포를 동시에 시도하려 한 것이다. 함정을 파고 죽이자! 라고 외치는 건 쉽지만, 이런 순차적 계획을 짜는 건 이미 체계가 잡혀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생각보다 상대의 세력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

“목숨 걸고 연극을 해야겠네.”

이단에 대항하는 신을 연기하는 것.

앞으로의 일정이 녹록하지는 않을 거 같다.

※작가의 말

안 올릴까 하다가 지금은 또 서버가 괜찮은 거 같아 올립니다.

아프지마 서버야 ㅡ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