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과의 일은 일단락 지었다.
그는 진실을 읽고, 정보를 탐하는 것에 특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굳이 복잡하게 설득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내 능력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단단한 아군으로 넣을 수 있었으니까.
그에게는 일단 정석한에 대한 뒷조사 의뢰를 넣어 놨다.
그가 말 한 대담 날짜가 겨우 이틀밖에 남지 않아,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탐정은 의외로 자신감을 드러내 보였다. 이틀이면 충분하다는 말. 지금 와서 다른 사람을 찾을 것도 아니니, 그에게 맡겨 두었다.
그리고 하나 더.
그가 말 한 다른 신도들의 정보. 믿는 신이 다르다 해도, 전부가 이단에 쫓겨 궁색하게 밀려났다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굳이 부활이다 뭐다 하면서 서로 엉겨 붙은 채 싸울 이유가 없다. 이단 몰아내고, 게이트를 닫든지, 아니면 쿤의 세계에서 아예 원천봉쇄를 하든지 방법을 강구하면 되는 일이다.
다만, 대뜸 앞에 나와서 ‘너, 내 동료가 되어라!’라고 하면 그다지 즐거운 면담이 될 거 같지는 않다. 탐정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포섭이 가능한 사람을 분류하고, 천천히 끌어들일 생각이다. 물론, 아직 찾지 못한 다른 신의 신도들도 찾아내야 한다. 아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상대가 거대한 만큼, 이쪽도 그에 걸맞게 크기를 키울 필요성이 있었다.
“삼촌, 이대로 회사로 돌아가요?”
그렇게 방문인사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서율이가 물었다.
살짝 표정이 들뜬 것이, 이왕 나온 김에 외유라도 돌고 싶은 얼굴이었다. 잠시 핸들에 손을 올리고 생각을 해 봤다.
창고에서 훔친 그리자는 현재 보관 중.
사업은 죠엘이 맡아서 진행 중이고, 회사는 현재 스케줄이 전체적으로 줄어서 할 일이 별로 없다. 미소도 학교에 가 있는 상황이니 일단은 약간의 여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온 김에 밥이나 먹고 들어갈까?”
“네! 안 그래도, 이 근처에 있는 초밥집 하나 알아놨어요. 소향 언니가 그러는데, 맛이 기가 막히데요.”
“흐음. 의외로 맛 집 탐방에 취미가 있나 보네.”
“소향 언니 남자친구가 그쪽으로 빠삭하데요.”
“남자친구? 남자친구가 있었어?”
“네. 얼마 전에 생겼다고 그랬어요.”
살짝 느낌이 그렇다.
나한테 호감이 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남자친구가 있다니. 내가 뭐 소향에게 어떻게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분위기라는 게 있었는데, 조금 뜬금없는 소식을 들은 느낌이다. 장터에서 본 떡을 살까말까 고민하는데, 누가 집어간 느낌.
“의외네. 소향 씨라면 커리어 하이 찍고 마흔에 남자를 만날 거 같았는데.”
“헤헤. 언니가 좀 그런 분위기죠. 근데, 들어보니까 최근에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도통 반응도 없고 그래서 그냥 마음 접었다고 해요. 그러다 울적해서 술 한 잔 하다가 지금 남자친구 만난 거래요. 역시 사람은 기댈 수 있는 곳에 마음이 가나 봐요.”
“하하. 뭐, 그런 거지.”
괜히 실없는 웃음만 나왔다.
반응 없어서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좋은 짝 만나서 잘 됐다고 해야 하는 걸까. 본래라면 이런 일에 딱히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나이지만, 쿤의 일도 있고 하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싱숭생숭했다.
사랑이라는 것도 때가 있는 걸까……
호감이라는 것은 거품과도 같아서 있다가도 사라지기 일쑤다. 그 감정이 커지고, 발전하는 건 노력 없이 되는 게 아니다. 그냥 그대로 흘려버리고 사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쿤과 같이 격렬한 감정에 몸을 맡겨보는 것이 좋을까.
대학 신입 때나 해 본 고민이 느닷없이 찾아왔다.
“삼촌, 저기요.”
“음……”
그렇게 오뉴월 너울바람에 실어 보낼 고민을 머리에 담고 있다 보니, 어느새 말 했던 식당 앞에 도착해 있었다. 구비 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내렸다. 꽤나 고급 식당인지 분위기가 정갈했다.
버선발로 달려온 직원이 ‘이랏샤이맛세!’라고 외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분위기는 좋았다. 일본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그들의 행적과 식문화는 관련이 없지 않은가. 특히, 초밥이나 회 쪽에 대해서는 전통 쪽이 풍미가 좋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회사 다닐 때에도 가끔 그쪽으로 회식을 갈 때면 꽤나 깐깐하게 장소를 고르곤 했으니까.
“어때요? 괜찮아 보이죠?”
서율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냥 나간 김에 밥 한 끼 때우자고 이런 식당을 찾은 거 같지는 않다. 설마, 내 취향을 고려해서 골라 둔 건가?
……아니, 김칫국이겠지.
“좋네. 분위기도 마음에 들고. 의외로 눈이 높은데?”
“훗훗. 여기가 미식가들 사이에서 유명하데요. 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아서. 다만, 사장님이 좀 게을러서 그런지 홍보가 없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맛 집은 입소문을 타는 거지. 그럼, 들어가 보자고.”
재잘거리는 서율이를 이끌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밖과 마찬가지로 안도 정갈한 형태였다. 옅은 목향과, 난향이 섞여서 코끝으로 스며 들어왔는데, 그 자체만으로 몸이 편하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점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역시 가끔은 이렇게 좋은 분위기의 식당을 찾아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도 좋아 보인다. 온갖 생각으로 복잡했던 머리가 은은한 향기에 말끔하게 정리되고 있었다.
“좋네. 네 덕에 좋은 집 하나 알아가겠어.”
“이렇게 하나씩 찾아가면서 서울 인근 맛 집 로드를 그리는 거예요.”
“아니 뭘 얼마나 먹으려고 그런 것까지 만드냐.”
“놉놉.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요. 스케줄 좀 빠졌을 때, 마음껏 먹어 둬야지 평소 같으면 몸매 관리 때문에 그러지도 못해요.”
밑반찬으로 나온 것들을 한 점씩 집어 먹으며 서율이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몸매관리라.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 도 체형이 변한 것을 보지 못했다. 그녀도 역시 관리를 하고 있는 걸까?
“억. 삼촌, 눈이 야해요.”
“뭘 또 야해. 야하긴. 몸매 얘기하기에 너도 관리하나 싶어서 본 거지.”
“에이, 당연히 관리하죠. 사람 몸매가 뭐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줄 아시나. 이게 다 피와 땀의 결정체라고요.”
“그래, 그래. 어련하겠냐.”
농담 삼아 대꾸를 했지만,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바쁜 스케줄을 처리하면서도 몸매를 유지한다는 건 안 보이는 곳에서 그만큼의 노력이 있었다는 얘기니까. 돈 그 정도 벌면 나도 하겠다, 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노력은 또 별개의 일이다. 인정 할 부분은 인정해 줘야 한다.
칭찬의 의미로 내 몫으로 남겨 두었던 계란말이를 밀어 주었다.
‘오~!’라고 입을 모으더니, 냉큼 집어넣고는 오물오물 씹었다. 꼭 다람쥐 같지 않은가. 이럴 때 보면 미소보다도 어린 거 같다.
“주문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종업원이 다가왔다.
추천 메뉴라고 정식을 하나 소개해 줬는데, 회와 초밥. 우동과 튀김이 함께 나오는 세트 메뉴였다. 가격도 양심적이고, 나름 괜찮을 거 같아서 그걸 시켰다. 서율이는 미간에 내천자를 그리며 고민하더니, 결국 나와 같은 걸 시켰다. 그럴 거면 고민은 왜 한 건지.
“그보다 아까 스케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쪽은 어때? 건너편.”
“아, 게이트 너머요? 우리야 뭐. 딱히 별 일 없어요. 매일같이 펜스 확장하고 지하 광물을 캐내고 있죠.”
“혹시 주변에 특정 지을 수 있는 지형은 없나? 내가 쿤 쪽의 지형을 모두 아는 건 아니지만, 익숙한 곳이 나온다면 찾아 갈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찾아가요? 과거에서?”
서율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물론, 당장 쿤이 이동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위치만 안다면 사람을 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잘라낸 비석에 ‘검은 돌을 조심하라.’이렇게 써 놓고 파묻으면, 현대의 사람이 발견했을 때 어떻게 생각할까?
일종의 경고문으로 생각 할 것이다.
이미 이단에 오염된 이들이야 무시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부류에서는 공통된 협의를 이끌어내는 무기로 사용 할 수도 있다.
아군도 아니고, 적군도 아니라면 적어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을 이끌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름 없는 자가 초월적인 존재의 형상으로 그런 화두를 던졌다면, 현실적인 증거물이 덜컥 나온다면 불에 던지는 기름이 되어 줄 수 있다. 물론, 쌍방의 언어차이로 인한 해석 문제가 있겠지만 가능 한 방법이라는 점은 사실이다.
“글쎄요. 저는 딱히 주변을 눈여겨본 게 아니라. 소향 언니한테 부탁하면 지역 맵 정보는 받아 줄 수 있을 걸요? 그걸로 분석하면 안 되려나?”
“……흠. 주변에 드론도 날린다고 했지? 드론 기능 중에 프로그램으로 지형을 파악하는 것도 들어있나?”
“네. 그건 있다고 들었어요.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다른 개척자들과의 접점을 파악하기 위해서, 드로우를 한다고 했어요. 3D맵핑을 해서, 다른 게이트 지역과 교차 검증을 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전체 지형을 파악한다고 해요.”
이건 나도 들어본 내용이다.
현재 들어간 인원과 지역. 그리고 드론으로 확보 할 수 있는 지역 정도를 따져 봤을 때, 아무리 외진 곳에 있다고 해도 일정 영역은 쿤이 확보 할 수 있는 곳에 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 경우는 확보한 게이트 너머의 맵 정보를 전부 얻어내야 비교 할 수 있는 것.
“이번에 통합기구가 만들어진다고 했잖아요. 그쪽 간부면 전체 지형도 정도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아……하긴, 지형 문제로 통합기구가 생기는 거니까 그럴 수 있겠군.”
“진행되는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국내에서도 누군가 대표로 참석하겠죠.”
“음. 전문가도 포함되겠지?”
“실무자와 관련 종사자. 그리고 정치적 대표. 한 손에 꼽히지 않을까요?”
잡무를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정보를 건네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국가 당 두엇 정도. 그 안에 내가 아는 사람을 포함시키거나, 그 인물과 컨텍을 해서 정보를 받아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런 부분까지 탐정이 처리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려 해 볼 만 한 일이다. 아노스의 시간과 현대의 시간의 접점을 만들 수 있다면 조금 더 극적인 무기로 사용 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아!”
그러다, 한 가지를 깨닫고 낮게 탄성을 흘렸다.
“미안. 먹으러 와서까지 이런 이야기나 하고.”
“괜찮아요. 그렇게 집중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멋있는데요, 뭐.”
“이마에 주름이나 안 파였나 모르겠네.”
“전 그게 좋은데요? 뭔가 고뇌하는 남자의 멋이라고나 해야 할까. 살짝 파인 이마 주름과 눈가의 잔주름. 그게 매력이지 않아요?”
그냥 하는 말인가 싶었는데, 조금 몽롱해 진 얼굴을 보니 진심인 거 같다.
이 아가씨 취향이 그런 쪽이었나?
“그것도 다 외모가 돼야 멋이라고 하지. 그냥 푹 늙어서 고민하고 있으면 아무도 멋지다고 안 할 거 같은데.”
“어느 정도는……하지만, 순수하게 그런 쪽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어요. 삼촌, 회사에 있을 때 경리 언니들이 제일 괜찮은 사람으로 삼촌 뽑은 거 모르죠?”
“나를? 나를 왜 뽑았데? 내가 뭐 괜찮은 구석이 있었다고.”
“경리 언니들은 이 사람 저 사람 다 겪어봤잖아요. 외모 멋지고, 재력 넘치는 사람이라고 해서 멋진 게 아니라는 걸 잘 아는 거죠. 삼촌이 남 배려 잘 하고, 위아래 격식 없이 대해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랬나 싶지만, 과거의 기억 속에 내가 선망 받는 모습은 없다.
호감이라. 단순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과 연애하고 결혼하는 건 다른 이야기. 보기만 좋은 떡과 먹기에도 좋은 떡은 엄연히 다른 법이다.
서율이는 듣기 좋으라 이런 말을 하고 있지만, 경리들이 했던 말은 그저 착해빠진 호구 놈 하나에 대한 평가일 뿐이다.
일 좀 못해서 심한 소리 안 하고, 늦은 밤에 커피 챙겨주는 남자.
좋다. 호감 간다. 하지만 남자로, 애인으로? 꽝이다. 지난날의 나는 딱 그런 타입이다. 고약한 이사 비위 맞춰주며 남들 감싸주는 성격 좋은 상사이지만, 그렇다고 그 이상으로는 싫은. 꽤나 억울해 보이는 인물상이었다.
“저도 그래서 삼촌한테 의지 많이 했잖아요.”
“그……런가? 딱히 접점은 없지 않았어?”
“피. 기억 못하시는구나? 신입 환영회 한다고, 술이 떡 된 강부장이 달라붙을 때 삼촌이 떼어내 줬잖아요. 취해서 그런 거라고, 너무 놀라지 말라고 커피까지 하나 사서 쥐어줬으면서.”
“아……! 아아! 이제야 기억난다. 그때, 강부장 그놈 뒤처리 하냐고 워낙 정신이 없었어야지. 그때, 커피사주고 돌려보낸 애가 너였구나.”
“킥. 거봐요. 삼촌이 은근히 사람 잘 챙긴다니까요?”
서율이 정도의 미인을 도왔다면 당연히 기억해야 정상이겠지만, 그날은 정말로 경황이 없었다. 술에 만취해서 고성방가에 바지를 벗어 재낀 터라 말리는데 온 정신을 쏟았으니까. 그 와중에 커피 하나 챙겨줬다면 꽤 잘 한 일 같지만,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아직까지 기억을 하고 있나 싶기도 하다.
“삼촌은 아직도 여자를 잘 모르네요.”
“……아니 내가 뭐 어쨌다고?”
“표정 보면 알아요. 그깟 커피가 뭐 대수라고. 이런 생각 했죠?”
“무슨 독심술이라도 익힌 거냐?”
서율이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아니, 진짜로. 내 얼굴이 그렇게 티가 났나?
“여자들은 그렇게 작은 거 하나에 감동하는 법이에요.”
“어딘가의 광고문구 같은데?”
“뭐, 요즘은 조건보고 사랑과 연애. 결혼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거 같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이 있다는 건 사실이죠.”
“넌 후자고?”
“그럼요. 적어도 결혼은 사랑하는 남자와 하고 싶다는 게 지론이랍니다. 조건도 환경도 아닌 마음 끌리는 사람과. 3년이면 식는 게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 3년도 없이 남은 세월은 어떻게 버틸까 싶어요.”
살짝 발그레한 얼굴로 서율이가 말을 했다.
사랑과 결혼이라. 나도 예전에 결혼했을 때는 분명 그 사람이 하나뿐인 사랑이라 철썩 같이 믿었다. 하지만 지금 내 꼴을 봐라. 한 순간의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시간 따라, 환경 따라 변하는 게 사람이니까.
다만……
그 사람과 만나지 않았다면 내 금쪽같은 딸도 태어나지 않았을 거란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미소를 얻기 위해 아픈 상처를 남긴 걸지도 모르겠다. 뭐, 이것도 다 지나고 난 뒤에야 떠드는 이야기지만.
“그리고 솔직히 저 정도면 조건이 뭐가 됐든 다 극복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자신감이 철철 넘치는데?”
“그렇잖아요. 남자가 꼭 돈을 잘 벌 필요도 없고. 제가 잘 벌고 있으니까요. 그냥 와서 집안일만 해 줘도 딱 좋을 거 같은데. 일 끝나고 돌아왔을 때 진심으로 반겨주기만 해도 행복 할 거 같아요.”
“이야. 그 말 프린트해서 걸어놔 봐라. 구혼자가 천만은 모일 거다.”
“헤헤. 조건이 있잖아요. 사랑하는 사람.”
꽃받침을 한 채 웃는 서율이의 모습은 지금껏 봤던 얼굴 중, 가장 예뻐 보였다.
사랑하면 예뻐진다고 하던가? 상상하는 소녀와 같은 얼굴은 확실히 평상시와 다른 생기가 감돌고 있었다.
왠지 나도 가슴이 거칠게 뛰는 거 같다.
주책이다, 가슴아. 진정해라.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아……! 음식, 나왔네요.”
잠시의 침묵 사이로, 종업원이 끼어들었다.
테이블 위로 음식이 차곡차곡 쌓이고, 이어지던 화제도 물밑으로 스며들어갔다. 왜인지 가슴 한쪽이 간질간질하다.
조카뻘 아이에 대한 호감과 이성적 끌림 사이.
부정하려고 해도 이런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쩌면 몸이 젊어져서인지도 모르겠고, 쿤의 영향으로 그 마음이 번진 건지도 모르겠다.
“먹자. 맛있겠네.”
이 나이에 이런 고민이라니.
누군가 듣는다면 손가락질을 하지나 않을까 모르겠다.
입 안으로 들어가는 회의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작가의 말
조금 쉬어가는 타임.
으으...어려워요. 어려워.
나는 안될꺼야...털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