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38화 (138/240)

희미한 빛은 동굴의 벽 틈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쿤이 이를 따라가면서 주변을 살폈다. 벽은 열기로 적화되어 붉은 빛을 띠고 있었지만 드문드문 청색 빛 돌도 섞여 있었다. 성질이 다른 두 광물을 섞여 있거나, 본래 있던 동물 외벽 위로 다른 성질의 광물이 덥힌 것일 터.

빛을 따라서 걷던 쿤이 그 종착점에 도착해서는 아쿤으로 틈을 파기 시작했다.

“아! 안쪽에 뭔가 있어요!”

그렇게 팔뚝 깊이 정도의 흙을 덜어내고 나자, 청색의 단단한 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밖의 것들과는 재질이 달랐다. 손으로 만져보니 은은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 철과 흙의 중간이라고 해야 할까. 굉장히 독특한 성질의 광물이었다.

쾅—!! 쾅!!

쿤이 아쿤을 틀어박고는 벽을 계속 후려쳤다.

성질이 독특하지만 경도가 높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두드리고 나자 균열이 가더니 덩어리째 떨어지기 시작했다.

“……와.”

얼굴을 내밀어 안을 살핀 라라가 입을 쩍하고 벌렸다.

벽의 틈 안쪽으로 휘황찬란한 보석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황금과 사파이어. 루비 등. 알아 볼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켜켜이 쌓인 것들을 보자면 아마 다른 성질의 물건도 잔뜩 있는 거 같았다.

“잠깐 뒤로 비켜 봐.”

쿤이 라라를 옆으로 밀어낸 뒤 남은 잔해를 철거했다.

금세 사람 하나 들어 갈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졌다. 먼지를 털어내고는 라라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봤던 보석 등이 헛것은 아닌지 화려한 빛들이 둘을 반겼다.

“어마어마하군. 동굴 주인의 보물인가?”

“……”

“라라?”

“그, 그렇겠죠?”

취한 듯 바라보던 라라가 깜작 놀라 답을 했다.

금과 다이아몬드. 그녀에게 그리 생소한 물건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에, 생소한 보석들까지? 보석에 약한 건 나이를 불문하고 여자라면 공통적으로 타고나는 특성이다. 번쩍이는 빛에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무한의 주머니로는 얼마 못 가져 갈 거 같고……’

주머니의 단점이라면 개체수로 셈해지기 때문에 자잘한 보석은 많이 담을 수 없다.

배낭을 배우고 보석으로 채워야 할까. 쿤도 주변을 둘러보며 보석들의 향연을 만끽했다. 냉정한 사고로 흥분은 막아주고 있지만, 그라고 이런 보물 창고가 신나지 않을 수 없다. 예전 같았으면 아마 황금 더미에 뛰어 들어서 수영이라도 했을 것이다.

“와! 쿤, 오빠 이거 봐요!”

들뜬 라라의 목소리에 쿤이 발걸음을 돌렸다.

보석들이 깔린 바닥 끝에 작은 단상이 하나 있고, 오색으로 빛나는 팔찌 하나가 놓여 있었다. 척 보다 ‘나는 비싸다!!’ 라고 주장하는 거 같다.

쿤이 주변을 둘러보다 진실의 돋보기로 물건을 살폈다.

***

???(마법으로 가려져 있다.)

***

하지만 무언가의 보호를 받는 듯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 않았다.

“뭐로 만든 걸까요? 이렇게 예쁜 빛을 내는 건 생전 처음 봤어요.”

“그러게. 나도 이런 빛은 처음이다. 아마도 이름 모를 신비한 광석으로 만들었겠지.”

“한 번 껴 보면 안 되겠죠?”

“위험해. 이렇게 내 놓고 나 가져가라 말 하는 보물 중에 함정이 없는 건 없다고. 과욕은 항상 해를 불러오는 법이야.”

“으……아쉬워요.”

충고를 받아 들여서 손대지는 않지만 아쉬움을 떨치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건 쿤도 마찬가지였다. 화려하게 빛나는 팔찌는 척 봐도 보통의 물건이 아니었다. 아마도 마법 도구가 아닐까? 동굴의 주인이 신화적 존재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니 그 물건도 그에 준하는 것일 확률이 높았다.

‘초감각으로 경계 한 채 빼내 볼까?’

멈칫멈칫. 생각이 여러 번 교차했다.

하지만 쿤은 끝내 고개를 저으며 물러났다. 이미 골렘으로 한 번 학을 떼지 않았던가. 어쩌면 데미안도 이런 유혹을 받아서 함정을 발동시켰을 수 있다. 조심 조심. 몇 번이고 돌아가는 태도가 중요했다.

“아, 이건 괜찮을 거 같아요?”

그렇게 쿤이 내적 자아와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라라가 바닥에서 가죽 재질의 암 가드를 들어 올렸다. 라운드 실드와 함께 사용한 물건으로 보였는데, 짝은 없어지고 이것만 남은 것이다. 쿤이 진실의 돋보기로 살폈다.

***

헤링턴의 암 가드

갈색 바위 일족 드워프 헤링턴이 만든 암 가드.

가볍고 단단하며 부식되지 않는다. 균열이나 작은 마모 상태가 자체적으로 회복된다. 본래 라운드 실드와 한 쌍이었으나 전투 중 소실되고, 암 가드만 남았다.

들끓는 체력 : 착용자의 체력을 끊임없이 회복시켜 준다.

단단한 방어 : 하루 일곱 번, 착용자를 보호하는 돌의 장막을 만들어 준다.

***

대수롭지 않게 떨어져 있었는데, 그게 드워프의 물건이었다.

드워프. 엘프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보기 힘든 신비의 종족. 그들의 손에 닿은 것들은 하나같이 예술품이었다고 불렸다.

암 가드의 설명도 확실히 그 명성을 증명했다.

투박해 보이는 가죽 제 암가드임에도 무려 두 가지 능력이 실려 있었다. 마법인지, 드워프 특유의 능력인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물건인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쿤이 암 가드를 죽죽 당겨보다 라라에게 건넸다.

그가 착용하기에는 사이즈가 너무 작았다.

“제가 써요?”

“착용자를 보호해 주는 능력이 있고, 체력을 재생시킨다고 쓰여 있네. 네가 쓰기에 적당 할 거 같다.”

“나중에 뺏기 없죠?”

“안 뺏어. 누굴 강도로 아나.”

장난삼아 머리를 쿡쿡 눌러주자, 라라가 배시시 웃었다.

장난을 칠 만큼 기분이 많이 좋아진 모양이다. 투박한 암 가드를 냉큼 팔뚝에 차고는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그래봐야 가죽 방어구 하나 덧댄 거에 불과한데, 그것으로 충분히 좋은가 보다. 웃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왕 온 김에 챙길 수 있는 건 전부 챙겨야겠군.’

돌아가는 상황이 그리 만만치 않다.

위험이 없을 때 준비를 단단하게 하는 게 필요했다. 쿤이 라라에게 위험해 보이는 건 만지지 말라고 충고를 한 뒤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쌓여있는 보석은 죄다 무시하고 장비 위주로 살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녹슬지 않은 채 남아있는 장비가 몇 개 있었다. 그리고 그런 물건은 모두 드워프제였다. 아마 다른 것들도 있었는데, 세월에 먹힌 것으로 생각되었다.

‘괜히 고문에 드워프의 손재주를 칭찬 한 게 아니군.’

한 바퀴 빙 돌고나니 쓸 만 한 장비를 두 개 더 구할 수 있었다.

***

오링의 허리띠

갈색 바위 일족 드워프 오링의 작품.

만년 된 이칼리우스 나무껍질로 만들었다. 검에도 잘 베이지 않으며 불에 타지 않는다. 착용자의 의지에 따라 최대 백 걸음까지 길이를 늘일 수 있다. 허리띠에 건 물건은 허리띠와 같은 종류의 힘에 의해서 보호를 받는다. 착용자가 해제하기 전 까지는 계속 유지된다.

거인 같은 힘 : 힘이 5 증가한다.

***

오링의 망토

갈색 바위 일족 드워프 오링의 작품.

만년 된 이칼리우스 나무껍질로 만들었다. 검에도 잘 베이지 않으며 불에 타지 않는다. 착용자의 의지에 따라서 열 사람이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크기를 늘릴 수 있다. 착용자의 몸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시켜 준다.

펄럭이기 : 펄럭인다.

***

둘 다 나름대로 좋은 물건이었다.

허리띠와 망토 모두 쿤의 전투 방식에 도움이 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본래 착용하고 있던 장비를 벗고는 갈아입었다. 전체적인 사이즈가 조금 작았지만 장비의 특성 상 손으로 죽죽 잡아당기자 딱 정당한 크기로 늘어났다.

‘괜찮군.’

착용감도 좋고, 부가 효과로 힘이 상승하는 것이 느껴졌다.

망토에 달린 특수한 능력은 조금 이상했지만, 하나 이상하다고 큰 문제는 없었다. 익숙해지기 위해 몸을 좀 움직여 봤다.

“쿤, 오빠~!”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라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한 것은 아니다. 쿤이 남은 짐들을 챙긴 뒤 소리가 들린 곳으로 걸어갔다. 라라가 커더란 선반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저기요, 저거!”

쿤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었다.

돌로 만들어진 선반 위로 커다란 귀의 쥐 한 마리가 꼬리를 살살 흔들고 있었다. ‘쥐가 무서운 건가?’ 라고 순간 생각하다, 돌이켜 보니 지금 이 지역에 쥐가 산다는 것이 이상했다.

“저기에서 보석을 뒤지고 있는데, 갑자기 나와서 들고 있는 걸 채 갔어요.”

“보석을?”

“네. 그리고는 쪼르륵 도망가서는 저 위에 숨어있지 뭐에요. 불러도 안 오고. 이런 곳에 그냥 쥐가 있을 리 없잖아요. 뭔가 있는 거겠죠?”

“아마도……”

쿤이 답을 하며 진실의 돋보기로 상대를 살폈다.

***

???(마법으로 가려져 있다.)

***

이번에도 무언가 특별한 힘이 돋보기를 방해하고 있다.

쥐 한 마리가 앞서 보았던 화려한 팔찌와 같은 취급이다? 쿤이 고개를 갸웃했다. 애완동물을 사랑해서 그렇게 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누가? 이 동굴의 주인이나 하카림. 둘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생각 해 볼 때 눈앞의 존재는 본래 동굴의 주인이 기르던 생명이라 보는 것이 옳다.

“……우리는 하카림과 적이다. 겁먹지 마라.”

쿤이 슬쩍 운을 띄워 봤다.

마법적 보호가 있는 생명체라면 단순하지는 않을 터. 의사소통이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살랑. 목소리에 반응하듯 꼬리가 가볍게 흔들렸다.

큼지막한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리며 쿤을 살폈다. 라라가 입술을 꼭 깨물며 주먹을 모아 쥐었다.

“내 말을 이해 할 수 있나?”

“키……”

쥐를 닮은 생명체가 조금 더 앞으로 나왔다.

루비를 박아 넣은 듯 한 눈동자가 쿤을 응시했다. 마치 감별하는 것처럼. ‘이럴 때는 요락의 진언인가 하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군.’ 쿤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자 쥐와 닮은 생명체가 갑자기 풀쩍 뛰더니 한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 어! 어디가니!?”

라라가 깜짝 놀라서 뒤를 쫓아갔다.

그냥 둬도 좋을 텐데. 쿤이 중얼거리며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따라갔다. 돌로 된 선반과 선반. 몇 군데를 붕붕 건너뛰더니 구석, 아직 살피지 못한 장소에 도착했다. 마찬가지로 돌로 된 선반이 놓여 있었는데 놀랍게도 멀쩡히 남아있는 책들이 있었다.

지금까지 봤던 선반들이 텅 비어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책들은 조금 특별한 취급을 받았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있었다. 마법적 보호. 아마도 그럴 터. 쿤이 그 중 하나를 손으로 집어 들었다.

***

요락의 서

세상 만물의 언어를 이해한, 요락의 저술.

모든 언어를 이해, 해석 할 수 있다. 자신의 말을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독 할 시, 습득이 가능하다.

***

“내 생각을 읽고 이 책을 찾아준 거니?”

“키이……!”

쿤이 묻자, 쥐가 고개를 끄덕였다.

꼬리가 그때마다 살랑살랑 흔들렸다. ‘꺄, 꺄악!!’ 뒤에서는 왠지 모를 라라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쿤이 책을 툭툭 치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생명체는 동굴의 주인이 기르던 애완동물이자 서기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군. 주인과 적대하는 하카림과 싸운 뒤 이 장소에 갇혀 지냈던……’

물론, 이 가정이 전부 확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가 어느 정도 착착 맞아 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본래 율트락이 찾고자 했던 석판. 그것도 이 장소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쿤이 품 안에 넣어 두었던 석판 조각을 내밀었다.

“키이이!!”

그러자, 쥐가 겁먹은 눈으로 선반 뒤로 도망쳤다.

고개를 처박고 꼬리를 내렸다. 두려움의 표시. 적이라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걸까? 아니면 단지 주인이었던 자가 무서웠기 때문?

알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이 필요 할 거 같다.

“일단 여기서 잠시 쉬자. 다 읽어봐야 할 거 같네.”

“쥐야, 이리 온. 밥 먹자. 응?”

“……”

라라는 듣고 있지 않았다.

#

최대한 빠르게 책을 정독하고 특기를 습득했다.

[요락의 전언]. 말 그대로 모든 언어를 이해하고, 해석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소모된 신성 점수는 무려 1500. 지금까지 책으로든 뭐로든 익혔던 능력 중에 가장 소모 점수가 높았다. 그만큼 좋은 능력이라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래, 네 이름이 토토라고?]

[응. 토토. 토토 여길 지켜. 주인님. 명령.]

쥐의 이름은 토토였다.

요락의 진언은 쥐의 찍찍거리는 소리를 인간의 언어처럼 이해하게 해 주었다. 굉장히 독특한 느낌이었는데, 마치 멀리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는 것과 흡사했다. 그냥 넘겨들으면 쥐의 찍찍거림. 집중하면 의미가 해석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당장 이 능력을 얻으면 묘한 감각에 혼동이 찾아오겠지만, 쿤은 익힌 것이 많았다. 하푼식 감각 수련도 그렇고, 각종 사고 관련 특기. 그리고 초감각까지. 이 정도의 차이는 금세 적응 할 수 있었다.

“오빠, 이름이 토토래요?”

“응. 이곳을 지키라고 주인에게 명령을 받았다고 하네.”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라라에게 설명을 해 주며, 계속 토토와 대화를 나누었다.

토토 주인의 이름은 알 수 없었다. 그냥 주인. 이 자체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석판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다.

[네 주인이 남긴 석판이 맞다고?]

[응. 석판. 주인이 남겼어. 무서운 얼굴로. 토토, 무서워서 도망쳤어. 주인이 창고로 가라고 했어. 그래서 들어왔어. 근데, 문이 사라졌어. 토토 나갈 수 없었어. 그래서 계속 여기에 있었어.]

툭툭 끊기는 말투지만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아도란 어 특기생인 쿤에게 이 정도는 쉬웠다.

‘창고를 봉인하기 전, 주인의 얼굴이 무서웠다라. 누군가와 대적하기 전에 남겨 둔 걸까?’

그렇다면 대충 앞뒤가 맞다.

창고는 열화 된 벽으로 가려져 있었고, 석판도 상이한 힘에 의해서 방해를 받고 있었으니. 그렇다면 남은 의문은 두 가지 정도.

‘동굴의 주인이 누구인가. 그리고……’

어째서 둘은 싸웠는가.

‘아니, 하나 더……’

싸움은 족히 천년도 넘은 시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공화국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보다 길면 길었지 짧지는 않다. 역사로 남은 싸움. 그리고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과연……

“아직도 그 존재가 살아 있느냐.”

그것이 의문.

콰콰콰쾅—!!!!

그리고 그 의문에 답이라도 하듯,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다.

위치는 지근거리. 폴짝 뛰어 안기는 토토를 라라에게 집어 던지고는 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고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작가의 말

글자수가 6666.

사이트가 요상하니까, 글자수도 저주를 ㄷㄷㄷ

그나저나 오늘 새벽에도 점검이네요.

어휴...뭐라고 말도 못하고.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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