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33화 (133/240)

쿤이 부신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가 변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짚어내기는 힘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청동 거울 앞에 섰다. 며칠간 계속 누워 있었더니 수염이 길게 자라 있었다. 아쿤을 들어 서걱서걱 베어냈다.

“쿤, 오빠 일어났……꺄악! 뭐하는 거예요!?”

문을 열고 들어오던 라라가 기겁을 해서는 달려왔다.

쿤이 멀뚱히 보다가 다가오는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열은 없었다.

“뭐하냐?”

“카, 칼은 왜 꺼내들고 그래요. 깜짝 놀랐잖아요.”

“수염이 길게 자라서.”

“아이 참. 그런 거면 말을 하지 그랬어요. 잠시만 기다려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총총 걸음으로 나갔다.

무슨 생각일까? 멍한 기분 그대로 가만히 앉아 있자, 조금 지나 라라가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물 접시와 헝겊. 그리고 면도에서 쓸 법 한 칼을 들고 들어왔다.

“……설마 네가 직접 해 주려고?”

“후후. 정답. 자자, 믿고 누워 보세요.”

“암살자가 있다고 외치면 누가 안 도와주려나?”

“안 도와줘요.”

어쩔 수 없나.

쿤이 몸을 돌려서 라라에게 기대어 누웠다. 의자가 편한 것이 있으면 좋겠지만 마땅하지 않았다. 결국 어설프게 자리를 잡다보니 그녀의 허벅지를 베고 눕게 됐다. 살짝 묘한 자세. 다시 일어나 고쳐 누울까 하는데, 그녀가 이마를 손으로 눌렀다.

“괘, 괜찮으니까 가만히 있어요.”

따뜻하게 젖은 헝겊이 얼굴위에 올라왔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 밖에는 잡일을 위해 대기하는 하인들이 여럿 있다. 그들은 다 어쩌고 그녀가 직접 한다는 말인가. 물어볼까? 생각이 입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았다.

사악. 사악.

중구난방으로 자란 수염이 라라의 칼질에 따라 조금씩 잘려나갔다. 의외로 솜씨가 좋았다. 긴장하던 쿤도 이내 마음을 편히 먹고 몸을 기댈 수 있었다.

“예전에 아빠한테 면도를 해 준 적이 있어요.”

아빠가 통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테고, 아마 제국에 있는 루니 백작을 의미하는 것일 터. 누군가 들으면 꽤나 섭섭할 말이다. 쿤이 속으로 생각을 했다.

“매일같이 단련만 해서 덥수룩하게 자라기가 일쑤거든요. 나름 멋이라고 방치하는 거 같은데, 솔직히 너무 늙어 보였어요.”

루니 백작의 얼굴은 모르지만 대충 어떻게 생겼을지 짐작이 가는 쿤이었다.

서운 할 사람 하나 더 추가. 속으로 생각하며 라라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목소리가 좋아서 그런지 다 깼다고 생각한 잠이 솔솔 몰려왔다.

“그래서 때가 되면 제가 잘라드리곤 했는데, 지금은 어찌 지내고 계실지 모르겠네요. 또 귀찮다고 내버려두면 길게 자라서 더러워 보일 텐데. 그러고 갑옷 입으면 굉장히 없어 보이거든요. 맥주 거품이 묻기도 하고……”

말끝에 아련함이 묻어났다.

라라와 루루가 제국을 떠난 것이 언제더라? 벌써 몇 달이 훌쩍 지났다. 그간은 워낙 다급한 일정이라 생각을 못했는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없을 리 없다. 물론, 태어난 곳은 공화국이고,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이곳에 있는 게 맞다.

그래도 키운 정이 낳은 정보다 낫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양부인 루니 백작을 그리워하는 것에 타박을 할 수는 없다.

“자, 됐어요. 이제 매끄러워졌네요.”

툭 치는 손길에 쿤이 눈을 떴다.

바로 앞에 라라의 얼굴이 있었다. 열심히 면모를 해 준 탓인지 볼이 살짝 발그레했다. 쿤이 잠시 그 상태로 멍하니 바라봤다.

“쿤 오빠?”

“아, 음. 고맙다.”

의아한 듯 묻는 라라의 목소리에 뒤늦게 답을 하고는 일어났다.

마른 헝겊으로 턱을 슥슥 닦고는 손으로 만져 봤다. 매끄러운 것이 꽤나 잘 깎은 듯싶었다. 고맙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럼 세이혼 삼촌한데 오빠 일어났다고 말 할게요.”

“아, 잠시만. 그 전에 물어 볼 게 있다.”

“음? 어떤 거요?”

쿤이 나가려는 라라를 잡았다.

지난 며칠간 병석에 누워서 생각한 것의 연장선일지도 모르겠다. 입술을 혀로 핥고는 천천히 말문을 떼었다.

“이후의 일 말이다. 아직 주변 상황이 복잡하지만, 이걸 다 처리하고 나면 어떻게 할 지 알고 싶다. 본래 공화국으로 온 것은 네 이모를 만나기 위함이지. 그 목적을 달성했으면 다시 돌아가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아……하긴. 그렇군요. 가벼운 마음으로 이모를 보기 위해서 온 거였지. 생각도 못 하고 있었어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어서.”

“이해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살면서 한 번 경험하기 힘든 것들을 연달아 겪었지. 지금까지 군소리 없이 잘 지내준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헤. 웬일로 칭찬을 하세요?”

“잘 한 건 잘 한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꽤나 기특하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을 소녀가 굳은 일을 다 겪으면서 큰 사고 없이 버텨주었으니까. 아니, 그뿐이겠는가? 중간부터는 약초도 캐고 물약도 만들면서 자기 앞가림을 했다.

잘 했다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그렇게 보면 부끄러워요. 그냥 뭐 오빠가 하라는 대로 쭉 따라온 것뿐인데요, 뭐.”

“그 정도도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니 자부심 가져도 좋다.”

“그럴까요? 헤헤. 면도도 가끔 해 주고 그래야겠어요. 오빠 입에서 좋은 소리만 나오고.”

“……그래서 대답은? 어떻게 할 지 생각해 봤어?”

자꾸 피하는 것 같아, 쿤이 직접적으로 물었다.

헤실헤실 웃던 라라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눈꼬리가 조금 떨리는 거 같다.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를 고민하는 거 같더니 눈동자를 올려 보며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어요. 제국에는 루루와 제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죠. 돌아가도 안전할지 모르는데, 선뜻 선택하기 어려워요. 그렇다고 공화국에 남아 있자니 처지가 애매해요. 통령의 딸이라는 위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 거 같기도 하고……”

“루루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네. 오빠랑 떨어져 있을 때, 이야기를 나눠 봤어요. 이모와 만난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건 우리뿐이었나 봐요.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이 안 잡혀요.”

“그렇군……”

둘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자신들이 선택 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으니까. 제국도 공화국도 완전히 안전하다 말 할 수 없다.

‘게다가 지금까지 제국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잖아.’

줄곧 이상하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황녀 둘이 실종됐으면 대대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융 등의 배신자들만 모습을 보일 뿐 라라와 루루를 찾기 위한 제국의 특사는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마치 둘을 일부로 풀어 놓기라도 한듯이.

‘설마. 그건 너무 간 거겠지……’

쿤이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비정한 것들만 본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혈육을 그렇게 사용할까. 축 늘어진 라라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다독였다.

“그래. 고민을 해 보자. 너도 나도.”

“오빠도요……?”

“걱정하지 마라. 적어도 덩그러니 버리고 가지는 않을 테니까.”

“약속하는 거죠?”

아이처럼 달라붙는 라라의 모습에 쿤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새끼손가락을 잡아서 고리처럼 걸었다. 어디서 본 건 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렇게 하면 약속을 하는 의미라고 한다.

“약속.”

그제야 라라가 입가를 말아 웃음을 그려 보였다.

#

자리를 털고 일어난 쿤은 공왕의 부름을 받고 그의 거처로 이동을 했다.

중간에 세이혼과 루루도 합류를 했다. 둘은 지금껏 수련을 하다 온 건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공왕 집무실에서 따로 분리된 방 안으로 들어가자 처음 보는 사람 몇이 미리 와 대기를 하고 있었다. 쉔이 입구에서 안내를 한 뒤 문을 닫고는 그 앞을 막아섰다. 그를 돌파하지 않고는 방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품 넓은 소파위에 앉아있던 공왕이 쿤 일행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어서 오게. 갑자기 불러서 놀랐을 거라 생각하네.”

“뭐……일단은 그렇죠. 몸은 좀 어떠신가요?”

“많이 나아졌네. 예전과 같은 힘은 느낄 수 없지만, 그래도 살아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공왕이 허허롭게 웃으며 대꾸를 했다.

이단으로 키운 욕망이 사라진 뒤 그는 10년은 훌쩍 넘게 늙어 버렸다. 자신이 저지른 일들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진 것도 있지만, 욕구 자체가 죽어버렸다. 삶의 의욕도, 무언가를 고쳐나가자 하는 욕구도 거의 없었다.

그나마 본디 가진 통령으로의 책임감이 있어 간신히 신변을 수습할 뿐이었다.

“그래서 어쩐 일로 우리를 다 부르셨습니까? 분위기를 보아하니 티타임을 가지자는 거 같지는 않고.”

“티타임도 좋겠지만, 지금은 그보다 급한 일이 있지 않겠나.”

“흠. 의회가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까?”

“굴락의 무리도 같이. 대집회를 열고, 사라진 도미닉에 대해서 성토회를 열 계획이라고 하네. 알다시피 굴락은 민중의 종교라기보다는 지도층의 조언자적 역할이 강했네. 세력 간의 투쟁에 엮여있지 않던 지방의 선민관들도 이에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통령의 이름으로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까?”

쿤이 물었지만, 공왕은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의회는 힘을 모으고 굴락의 무리가 보태는 형국이네. 거리를 재던 이들이 내 말을 따라 줄 이유가 없지. 게다가 이에 맞서야 하는 우리 쪽 병력은……사실상 토막이 났네. 본래라면 굴락이 우리 쪽에 붙어서 균형을 맞췄어야 하는 거니까.”

“의미 없는 가정입니다. 그랬다면 전쟁만 길어지고 죽어가는 사람들만 늘어났을 테니까요.”

“알고 있네. 알고 있어.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결국 우리는 적들의 세력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 거야. 그건 자네도 바라는 바가 아니지 않나?”

“어째서죠? 차라리 이 경우라면 통령께서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일을 해결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설마 아직도 자리보전에 대한 욕망이 남아 있는 겁니까?”

“무엄하다!!”

“어디 함부로 입을……!”

방 안에 있던 이들 중 두엇이 이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공왕이 손을 들어 만류하자 짐짓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세를 취하더니 물러났다. 똥개들 같으니. 주변에 남은 이들이 저런 종자들이라면 사실상 공왕에게 승산은 없다. 쿤은 대놓고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물러나고 의회가 기득권을 가진다면 결국 그들 입맛에 맞는 통령을 자리에 앉혀 둘 뿐이네. 내 비록 잘못된 선택으로 실수를 하기는 했으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네. 적어도 최악은 피해야 하지 않겠나.”

“……흠.”

쿤이 팔짱을 낀 채 공왕을 바라봤다.

굳이 돋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그가 거짓을 말 하고 있지 않음은 알 수 있다. 다만, 지금 생각하는 것은 셈이다. 그의 말을 듣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그리고 라라에게 한 약속과 자신의 다짐. 가장 합리적이고 이득이 될 수 있는 방향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빚이 있고, 신의 위업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사람이 공왕이야. 아무래도 그를 돕는 것이 무언가를 요구하는 데는 편하겠지.’

어차피 라라와 루루의 부친이니 그냥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의회 쪽은 전력을 보탠다고 해서 무언가를 요구하기 힘든 상황. 공왕을 돕고 얻을 수 있는 걸 얻는 게 좋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어떤 걸 얻어내는가.

공왕과 일개 용병의 관계는 깨어졌다. 사실, 생명을 구했으며 이단의 유혹을 잘라내어 준데다가 길게 보면 공화국의 전화를 사전에 제압해 준 은인이다. 어설프게 금덩이 몇 개 받은 걸로 끝내기에는 해 준 것이 많다.

쿤이 속으로 셈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생각하고 있는 바가 있다면 먼저 말을 해 보시죠.”

선제시.

공왕이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다 말을 이었다.

“의회는 둘째 치더라도 굴락은 막아야 하네. 자네가 그날 보여주었던 힘. 그것을 바탕으로 종교재판에서 승리해 주게.”

“……뭐라고 했습니까?”

“종교재판 말이네. 본디, 공화국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이나 사람을 현혹시키고, 타락한 신관들에 한해서는 지도자 3인의 재가를 받아 종교 재판에 회부 할 수 있네.”

“3인? 한 명은 통령. 다른 한 명은 의회장이겠군요. 그럼 다른 한 명은 누구입니까?”

“고서장, 율트락입니다.”

뒷말은 방 안의 무리 중 고루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한 것이었다.

낡고 냄새 나 보이는 로브를 질질 끌고 앞으로 나와서는 쿤을 쏘아봤다. 꽤나 인상이 고약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깐깐하다고 해야 할까? 쿡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은 얼굴이었다.

“소개하지. 공국이전부터 현재의 공화국까지. 이 나라의 모든 역사와 사건을 기록하는 블랙 북스(Black Books)의 일원인 윤카람이네.”

꼬장꼬장한 인상의 남자가 공왕의 소개에 머리를 미미하게 숙였다.

뭔가 굉장히 고압적인 태도. 하지만 공왕도 앞서 쿤을 지적했던 무리도 그 남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권한입니다. 블랙 북스의 수장은 왕과 같은 의결 권한을 지닌다. 지금은 통령과 의회장으로 그 권한이 갈라졌으나 블랙 북스 수장이 지닌 권한은 유효합니다. 특정 종교에 거는 재판은 이렇게 셋 중 둘의 표를 얻어야 진행 할 수 있습니다.”

“공왕이야 당연히 우리 표. 의회장이야 굴락의 표. 그렇다면 남은 한 표에 의해서 가결이 정해지겠군요.”

“맞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이 재판을 신청하고 싶다면 저를 따라서 블랙 북스의 도서관에 가야 합니다. 우리가 기록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야 하니……”

즉, 이들은 일종의 서기관이었다.

다만 일반적인 서기관과는 다르게 매우 높은 수준의 권한을 인가받은. 어떤 면에서는 치외법권적인 존재로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자들이었다.

“그럼 당신들의 도움을 받으면 재판을 바로 열 수 있는 겁니까?”

“도움이 아닙니다.”

“음?”

“우리는 본 것을 기록하는 자들. 선대부터 권한을 받은 것은 맞지만, 그것은 누군가를 돕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고서장을 설득하고 못하고는 오직 당신의 재량에 달린 것이겠죠.”

“……통령. 이 말이 사실입니까?”

쿤이 미심쩍어 묻자, 공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태도가 고약하더니.’ 쿤이 낮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말인즉슨 일단 너를 데려가기는 하겠으나 도움을 줄지는 모른다. 이 뜻이다.

“허락을 받으면, 재판은 확실하게 진행 할 수 있는 겁니까?”

“확실하네. 이 판에 끼어들지 않고 관망하는 이들도 선대부터 전해지는 규칙은 존중하고 있으니까. 이를 굴락이 거부한다면 어차피 우리에게는 더 좋은 결과라고 할 수 있네.”

“흐음.”

재판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나, 일단 그런 형태로 묶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이단을 싹 다 끌어다가 한곳에서 불태워 버릴 수 있는 것이니까. 다만, 이건 해 줘야 하는 일이지, 일의 대가로 얻는 게 아니다.

쿤이 고개를 들고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요. 하지만 공짜로 일 할 수는 없습니다.”

“용병의 자세라 이건가. 좋네. 들어 보겠네.”

어차피 받아들일 마음이었다는 거겠지.

공왕이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하지만 이래도 덤덤할 수 있을까?’

속으로 깊게 웃은 뒤 쿤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작가의 말

쿤(36, 무직) : 4대 보험도 되는 거죠?

공왕(58, 탈덕한 통령) : 숙식제공

라라(20?, 쿤 빠순이) : 평생직장도 있어요.

마지막한자(3x, 컴퓨터지박령) :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안 돼!

휘이익! 철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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