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29화 (129/240)

나는 걸었다.

주변으로 인파가 따라왔다. 정혜진이라 소개한 리포터가 인터뷰를 위해 안내한 것은 노상에 위치한 카페였다. 공개된 장소. 대화를 사람들이 듣고, 주변 반응을 담아내기 적당한 장소였다.

그녀가 먼저 앉고, 내가 맞은편에 착석했다.

주변으로는 구름 같은 관중이 몰려들었다. 저마다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다. 찍어라, 열심히. 그것이 원하는 바를 퍼뜨리는 도구가 될지니.

“일단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그리 할 필요 없다. 나는 세상을 이해하고 있으니. 그대와 같은 자를 통해 내 의지가 전파됨을 알기에, 이것이 수고롭다 여기지 않는다.”

“그……렇군요.”

너무 장황했나?

어색하게 웃는 얼굴이 조금은 미안하다. 손을 뻗어 직원이 가지고 오는 물을 내 손으로 당겨왔다. 허공을 떠올라 내 손에 안착하는 순간.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떤 트릭도, 어떤 속임수도 없다. 순수한 이적에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저, 정말이군요. 소식을 듣고 달려오기는 했지만……”

“이상한 자가 나타났다는 것 말인가?”

“으음. 대충 뭐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까 더욱 대단하군요. 그건 속임수가 아닌 거지요?”

“속임수라. 믿지 못하는 것들을 설득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허나, 지금은 때가 다르지. 나는 무엇으로도 너희의 말에 응할 것이다. 의심이 된다면 무엇이든 내게 말을 해 보거라.”

사이비의 가장 중점 포인트는 자신만만한 자세다.

있는 척은, 실제로 없다 해도 있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마술사들의 연기력이 바로 그 밑바탕이다. 나는 마술사가 아니지만, 그보다 더욱 당당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내 수준은 종교적 지도가 아닌, 윗선에 놓여야 할 테니까.

“그렇 군요……그럼 일단 당신의 소개부터 해 주시는 게 어떨까요? 아직 이름도 모르고 있는데요.”

“나는 이름 없는 자다. 오래전부터 있었고, 오랫동안 존재할 사람이다. 본디, 세상에는 관여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나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 없는 자……그럼 그렇게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전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났다고 하던데, 그건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그렇다. 다른 세상과의 문이 열리고 혼탁한 것이 세상으로 넘어왔다. 이에 이득을 챙기고자, 발 빠른 걸음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존재도 보이고 있으니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어 이렇게 나오게 됐다.”

“그건 차남혁을 말하는 건가요!?”

뒤에선 사람 중 하나가 큰 목소리로 물었다.

정혜진이 살짝 당황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만나는 순간에 묻던 것이 바로 그 질문이니 미리 듣고 넘어 갈 생각인가 보다.

“이야기는 들었다. G입자라. 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이더냐.”

“그럼 그 사람의 말이 틀렸다는 건가요?”

“아주 잘못 된 방향으로 보고 있다.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존재는 질병 같은 것이 아니다. 약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가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약으로 그로우가 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했는데요?”

“명백하게 거짓이다.”

웅성웅성—!

단호한 내 말에 소란이 커졌다.

몇 몇은 ‘저거 사기꾼이네.’ 라며 혀를 찼지만 거리부터 쫓아온 이들. 특히 신성 대지의 축복의 영향을 받았던 이들은 믿는 기색을 띠었다.

정혜진이 주변에 신호를 보내 진성시키더니 다시 물었다.

인터뷰 자체는 내가 계획하고, 죠엘이 꾸민 일이지만 당사자인 그녀는 내막을 모른다. 단지, 거리에서 일어난 일에 취재 컨펌을 받고 바로 달려온 것에 불과하니까.

“거짓이라는 증거라도 있나요?”

“간단하다. 그가 약이라 전파하는 것들은 내게 반발하고 있으니까.”

“……네?”

“신성하지 못한 것들은 내게 반발한다. 그 약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지. 어리석은 이들은 이것을 치료제라 생각하는 듯 하지만 잘못 된 생각이다. 독을 독으로 다스리는 격이야. 결국 그 작은 이득이 몸을 해치게 되겠지.”

“하지만 그 약이 변이된 사람을 되돌린 건 맞는데요?”

“정말 영구적으로 혼탁한 힘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물론,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차남혁이 공개방송을 하고, 약이라는 것이 검증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시간이 지나 약이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의식이 박히기 전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라 해도 생각이 내리게 되면, 천천히 전파 할 수 있으니까.

“야아~! 완전히 사기꾼이네! 척 보니, 차남혁이가 약으로 돈 좀 버니까 슬쩍 끼어서 유명세를 타려나 본데?”

“요즘은 저런 사이비 새끼한테도 인터뷰를 해 주나? 시팔, 나도 교주나 할 걸 그랬어. 응?”

“푸하하하! 네가 교주를? 그냥 개새끼 하나 앉혀놓고 교주라고 그러지?”

뒤늦게 합류한 군중 중 일부에서 나온 이들이다.

말은 과격하지만 이에 동조하는 기색도 제법 있다. 만약 입장이 반대라서 내가 군중에 속해 있었다면 어떻게든 사기임을 밝혀내려고 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이리 오너라.”

“어, 어어!”

남자를 망령제어로 당겨왔다.

그리고 유심히 봤다. 제어하는 망령들 중에 유독 두드러지게 강하게 반응하는 존재가 있었다. 망자와의 대화를 사용하여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미 한참이나 부서져 그 형태가 거의 무너져 있었지만 몇 마디는 엿들을 수 있었다.

“태곡? 윤서면? 김치국수? 이게 너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어, 어어? 그걸 어떻게……?”

“네 주변에 있는 오래된 영이 말을 하고 있다. 거의 무너져 흔적밖에 남지 않았지만 꽤나 깊은 감정인듯 하군.”

“아……이럴 수가. 그건 돌아가신 할머니 주소라고. 김치국수는 내가 가면 항상 해 주던 음식이고. 그걸 네가 어떻게 안 거냐!?”

“말했지 않느냐. 네 주변에 남아있는 희미한 영이 말을 했다고. 꽤나 네놈이 걱정된 모양이다. 이 모양이 될 때 까지 곁에 붙어있는 걸 보니.”

자신을 잃고 ‘영’자체만 남아서 돌아다니는 것들이 태반인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영은 확실히 남자에게 가지는 감정이 강했던 모양이다. 거의 다 부서진 상황에서도 남아있으니까. 남자가 부들부들 떨며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쏘아봤다.

“미, 미리 다 조사 한 거지!! 다 짜고 하는 거지, 이 사기꾼아!”

“어리석구나. 믿음을 저버리고 하는 것이 고작 그런 유치한 부정이란 말인가? 나는 네게……음? 흐음.”

꾸짖으려는 순간, 희미한 영이 빛을 내며 내게 무언가를 부탁했다.

쿤으로 몇 번 망령의 부탁을 들어 준 적은 있지만, 내가 하는 건 처음이었다. 잠시 남자를 보다 망령제어를 사용해서 그의 몸을 거꾸로 뒤집었다.

“어억!! 뭐하는 거냐!?”

“걱정하는군. 네놈의 다리를.”

“어, 어떻게?”

바지를 걷어 올리니, 오래된 흉터가 보였다.

망령이 말하기를 고향집에서 다친 것이라 한다. 그 탓에 군인이 되려던 꿈도 포기하고, 여러 가지 좌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내게 그 상처를 치유해 주기를 부탁했다.

될까? 솔직히 모르겠다.

너무 오래 된 상처니까. 하지만 여기서 안 된다고 발을 빼는 것도 이상하다.

미리 축성지를 깔고, 중급 상처치유의 축복을 사용했다.

오래된 흉터 위로 힘이 스며들어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상처라는 개념은 꽤나 모호한 구석이 있어서 사실 과거의 흉터가 그 안에 포함되는지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다만, 이럴 때는 믿고 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치료해라. 네가 이단과 싸우고자 하면 지금 이 상처를 치료해라.

안 보이는 신적 존재를 협박하며 힘에 집중했다.

“오, 오오오오!!”

“세상에!! 저거 보여!? 응? 지금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건 아니지?”

“와! 시팔, 흉터가 사라지고 있잖아!?”

주변의 반응이 말 해 주고 있다.

남자의 상처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망령제어를 다시 사용해서 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바닥을 탁탁 치며 발을 확인해 보더니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을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털썩 주저앉아서는 고개를 조아렸다.

“죄, 죄송했습니다!! 제가 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됐다. 네게 남아있던 영의 부탁을 들어준 것 뿐이니까.”

“아……”

힘을 써 그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다시 정혜진을 바라봤다.

“내가 무엇을 더 증명하면 될까?”

그녀는 붕어라도 된 것 마냥 입을 뻐끔거렸다.

#

인터뷰를 하고 힘의 일부를 사역했다.

치료의 기적을 본 이들이 자신도 치료해 달라고 달라붙었다. 전부는 안 된다. 기적은 기적으로 남아야 하니까. 이단에 넘어가지 않은 자. 진실을 말 하는 자. 그리고 내 마음에 드는 자. 선별하며 다섯 명을 치료했다.

오래된 상처부터 천형처럼 지니고 있던 질병도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모조리 치료 할 수 있었다. 놀라워하고, 기뻐하고, 눈물을 보였다. 기적이 행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장소가 되었다.

각자의 종교가 다 있다.

하지만 이적을 눈앞에서 보고 따르지 않을 만 한 사람은 얼마 없다. 특히나 요즘과 같이 세상이 뒤숭숭한 상태에서는.

내 말을 듣는 이들은 금세 수백, 수천으로 늘어났다.

노상 카페가 부족하여 걸음을 돌려 거리로 나섰고, 뒤를 쫓는 무리가 그 안을 가득 메웠다. 때 아닌 행렬에 무언가 싶어 뒤따라온 이들이 계속 달라붙고, 이 신비한 모습에 소식을 듣고 달려온 촬영 팀들이 사방에서 끼어들었다.

길거리의 성자.

이름 없는 신.

현대의 기적.

온갖 묘사어구들이 실시간 검색어를 차지했다.

생방송으로 내 행보가 나가고, 불어난 인파에 저지하기 위한 경찰 병력까지 동원되었다. 내 연설과 걸음은 해가 저물 때 까지 이어졌다.

많은 것을 말 하지 않았다.

혼탁함을 대비하라. 사이한 술수를 경계하라. 가족에게 충실하고, 자비를 베풀며 마음을 바르게 하라.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나 바른 말들 뿐이 없었다. 난 신학을 공부 한 적도 없고,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

그냥 단순하고 당연한 것이면 충분하다.

그 단순하고 당연한 것들을 못하기 때문에 사회가 척박한 것이었으니까. 내 말은 깊은 울림을 가지고 퍼져나갔다.

[경험치가 상승했습니다.]

하루 종일 들려오는 알람이다.

한 구석으로 처박아 두었다. 등급이 올랐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지금은 확인 할 타이밍이 아니다. 가득 메운 인파를 두고 ‘나’라는 인물이 사라질 시점이었으니까.

“해가 지고 밤이 오듯, 밤이 가면 다시 해가 뜨는 법이다. 지금의 혼탁함은 후세의 밝음을 위한 잠시의 고난일 뿐. 마음의 풍요를 포기하지 말고, 밝음을 쫓고 부정을 멀리하라. 나는 오늘 하루가 아닌, 긴 시간 속에서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니.”

“아, 아아……이름 없는 분이시여. 우리가 어찌해야 하는 겁니까?”

“나아갈 길을 알려 주십시오!”

여기가 어디더라?

넓은 공터에 수천의 사람이 모여 있다.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이야기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듣고 있겠지. 불법 집회나 사이비 행동으로 경찰이 나를 잡아가지 않는 건 그들 역시 감화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죠엘이 수를 부려서?

어느 쪽이든 이렇게 자리를 마련 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다.

이것은 시작이 될 것이고, 세상에 남기는 깊은 뿌리가 될 것이다.

그럼 이제 중요한 것은 마무리.

“이제는 갈 시간이다.”

“아, 아아……! 어디를 말씀이십니까?”

“나는 본디 세속에 관여하지 않는 자. 혼탁함이 심하여 걸음을 내딛었으나, 그 시간은 한정적이다. 이제는 다시 돌아가 먼발치에서 세상을 돌아봐야겠지.”

“다, 다시 오실 수 있습니까?”

“걱정 말거라. 너희를 긍휼이 여겨 내 안락함을 버리고자 하였으니.”

부드럽게 웃으며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 중 가까이 선 이들은 정말로 내게 감화된 자들. 기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그 신성함을 받아들인 인물들이다. 나머지는 단지 분위기에 취해서 떠 몰린 인물들. 아마 내가 사라지면 한 날의 축제처럼 그냥 기억에만 남기고 말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이단과 맞서서 표현에 던지는 가장 큰 돌이니까. 시간이 흐르고 무겁게 가라앉은 돌이 바닥에 내려섰을 때, 그때서야 제대로 된 효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손으로 진정시킨 뒤 천천히 몸을 허공으로 띄웠다.

사람이 눈앞에서 떠오르고 있다.

비명과 환희. 온갖 소리들이 다 터져 나왔다.

방송 차 왔던 기자들이 연신 카메라맨을 독려하며 내 모습을 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뒷줄에 서서 따라오던 이들은 저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내 모습을 담기 바쁘다. 터지는 플래시와 사람들의 소음 사이로 나는 점차 멀어져 갔다.

예상했던 것 이상의 결과를 냈다.

본래는 신적 존재의 등장으로 이단의 위험성을 알리고 차남혁을 견제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획에 없던 행진을 하고, 많은 말들을 전하면서 무언가 본래 이상의 것들을 토해낸 기분이 들었다.

마치 진짜로 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을 전하고, 그릇된 것을 지적하고 상처 입은 이를 치료해 주었다. 감복해 하는 눈빛, 따르는 자의 목소리, 구원을 염원하는 손길.

어째서 사이비 교주가 한 번 발을 들이면 못 벗어나는지도 알 것 같았다.

사람이 모여서 내뿜는 에너지는 말 그대로 거대하다.

나라는 존재가 신격화 되며, 거대한 흐름에 휩싸여 마치 하늘 저편으로 날아 갈 것 같았으니까.

아……

지금은 정말로 날아가고 있다.

“이 정도면 되겠지.”

먼발치로 군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반짝이는 것이 마치 불빛 같다. 나도 저 안의 한 사람이었는데, 이리 떨어져서 보니 마치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한 걸음만 떨어져도 세상이 달리 보인다고 하더니.

……너무 무리를 했나보다. 별 이상한 생각이 다 들고.

***

공간 이동의 반지

위치를 지정하여 하루에 한 번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

거리에 제한이 있고, 그 밖으로 나갔을 때 반지의 알이 검은 색으로 변한다. 이동에는 체력이 소모되며 거리가 멀수록 그 정도가 심해진다.

***

손에 끼고 있는 반지를 바라봤다.

아직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다. 쿤에게서 깨어나 이번 계획을 만들며 가장 먼저 구입한 물건이다. 덕분에 정수가 꽤나 줄어들었지만 그만큼의 가치는 있다.

나와 ‘이름 없는 존재’.

둘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니까.

투두두두두……!!!

아, 헬기가 다가온다.

이제는 정말로 가야 할 때인가 보다.

망령제어로 체력이 잔뜩 빠져있는데, 공간이동까지 한다면 며칠은 앓아누울 거 같다.

미소가 걱정하겠지?

약간의 미안함을 품은 채.

반지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밤하늘의 전경이 오래된 티비의 화면처럼 일그러지더니……

사라졌다.

※작가의 말

경험치(1)가 상승했습니다 * 99999 ?

준경(사기꾼)이 이름 없는 자(사이비)로 전직하셨습니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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