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니, 쿤은.
무어라 말하기 힘든 상태에서 우리는 상황을 인지했다. 이건 마치 그리자를 통한 강림과 흡사했다. 하지만 그때가 쿤이라는 인격에 내가 투영되어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조금 더 농밀한 단계다.
쿤과 나는 서로를 인지하고 있다.
이건 쿤이면서 나이기도 하다. 최초로 서로를 동시에 인식하고 있는 상태다. 보는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을 느끼고 있다. 둘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지만 둘이다.
설명은 어렵지만 상황은 간단하다.
쿤과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하나의 존재처럼 엉키고 있는 것이다.
[히어로 메이커 모드에서는 모습을 취사하여 선택 할 수 있습니다.]
[히어로 메이커 모드에서는 모든 능력을 페널티 없이 사용 할 수 있습니다.]
[히어로 메이커 모드에서는 모든 능력의 신성 점수 소모가 0으로 고정됩니다.]
[히어로 메이커 모드에서 사용한 부가 능력은 모드 해제 시 모두 사라집니다.]
[히어로 메이커 모드에서는 모든 능력이 2배로 증가합니다.]
[히어로 메이커 모드는 남은 신성점수에 비례하여 유지시간이 정해지고, 모두 소모하면 해제됩니다.]
[히어로 메이커 모드는 영웅의 마음이라는 특수 항목을 충족시켜야 발동이 가능합니다.]
수많은 알람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래, 이건 마치 필살기 같다. 아니, 마리오가 별을 먹은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아, 이해가 잘 안 가나? 마리오 라는 건……아니다. 설명하려면 너무 길다.
쿤이 수긍하고, 내가 이해를 했다.
묘한 감각이다. 쿤과 나의 경계가 흐려져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 의식은 하나로 모아지고, 사고는 절충되어 의견을 도출했다.
수많은 것들이 교차했다.
기억이 감정이. 그리고 많은 정보가. 이해를 위한 당황보다 판단이 우선시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할 것들을 떠올렸다.
지금은 이렇게 하는 게 좋겠지?
내가 묻고 쿤이 긍정했다. 사고의 교차는 시간의 제약조차 없이 일어났다. 판단은 내려지고 선택 할 것이 결정되었다.
모습을 바꾸자.
적과 싸우기는 어떤 모습이 나을까.
지금은 나라를 마음대로 움직이려는 미친 왕을 타도하려는 자리다. 적이 사이한 힘에 휩싸였다면 나는 그와 반대되는 휘광을 두르는 것이 낫겠지. 왕은 힘 자체를 긍정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지만 그보다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서 징치된다면 따를 사람은 몇 없다.
간단하게 말해서 선전 효과다.
사람은 겉보기에 휘둘리기 쉽다.
같은 사람이라도 옷 입는 것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는 실험도 있지 않았던가.
예를 들어 이런 것.
화려하게 빛나는 순백의 갑옷과 찬란한 투구. 하늘을 걸을 것 같은 부츠.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치 어릴 적 만화에서나 볼 법 한 영웅의 모습을 그려냈다. 요즘 이런 모습으로 나가면 유치하다고 돌팔매질을 당하겠지만, 내 때는 이게 최고였다. 그리고 사실 유치한 것이 극적인 장면에서는 더욱 잘 먹히는 법이다.
그리고 검은……
미안하지만 단검은 이 자리에서는 잠시 양보하는 것이 좋겠다.
단검의 효용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장면의 특성상 멋지고 화려한 장검이 도움이 된다. 화려하게 빛나면 더 좋겠지. 광선검도 고려해 보지만 그건 좀 시대상과 안 맞는 거 같다.
그럼 대충 내 모습이 완성되었나?
내 기준에는 아주 멋있지만 과연 다른 이들의 눈에도 그리 보일지가 의문이다. 뭐, 열심히 싸우다 보면 다 알아서 넘어 오겠지만.
끼익……
아. 조금씩 깨어지는 거 같네.
정지시켜둔 게임이 다시 구동되듯 멈춰있던 세계가 다시금 돌아기 시작했다. 굳어버린 생명들이 깨어나고, 멈춰있던 숨이 돌아왔다.
콰우우우우—!!!
떨어진 빛 덩이의 여파로 먼지가 사방으로 퍼져갔다.
둥그런 파문이 나를 중심으로 중첩해서 나타났다. 영웅의 등장의 배경으로 삼기에는 나름대로 괜찮은 연출이다.
“뭐, 뭐야!?”
“하늘에서 빛이 떨어졌어.”
“오, 신이시여.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입니까?”
심약한 병사 몇은 이미 무릎을 꿇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초월적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늘에서 떨어진 빛기둥과 그 가운데서 모습을 드러낸 백색 광휘의 존재.
태연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뭐냐? 대체 무슨 짓이냐!?”
공왕이 역정을 내며 물었다.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그의 몸 주변으로 맴도는 희미한 기운을 읽을 수 있었다. 이단의 힘. 그뿐만이 아니라 주변을 맴도는 기운들 역시 모조리 읽을 수 있었다. 모드의 특성인지, 아니면 둘의 능력이 합쳐지면서 생긴 특수한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푼을 끌고 왔던 중년 남성.
대신관 도미닉. 공왕. 그리고 주변에 퍼져있는 몇 몇. 이단의 영향을 받아 그 일부를 몸에 담은 자들이 모두 선별되었다. 그 동안은 상징을 숨기기만 해도 알아채지 못했는데, 이 모드에서는 전부 확인이 가능했다.
이렇게 보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단의 영향을 받았는지 알 거 같다.
나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이단을 밀어내고 있다.
힘에 노출된 사람들. 그 중 이단에 미약하게 영향을 받은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힘의 탈력을 경험하고 있다. 반발하는 건 공왕이나 하푼을 이끈 남자. 그리고 몸을 추스른 도미닉 정도였다.
“젠장!! 쉔!! 당장 저 놈을 제압해라!”
“……알겠습니다.”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함을 깨닫고 공왕이 명령을 내렸다.
빛의 파동으로 밀려났던 쉔이 다시 다가왔다.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부정한다.”
쉔의 검과 내 검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거대한 의지들이 형상을 갖추며 상대를 노렸다. 실바람 같은 것이 마구 엉키며 주변의 것들을 베어냈다. 바닥이 부서지고, 돌이 갈라졌다. 기껏 잘 만들어 두었던 갑옷도 쩍쩍 쪼개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붙어서 본래의 모습을 회복했다.
모든 능력이 두 배가 됐다는 것은 힘, 민첩성, 초상력 뿐만이 아니라 회복, 재생 등의 능력도 두 배가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지금 내 몸을 두르고 있는 광휘의 갑옷은 신성력 그 자체. 베어낸다 하여도 주체인 내가 회복하는 이상 부서지지 않는다.
[각인의 축복]
검에 각인을 내렸다.
쉔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보다 단순한 힘이 필요하다. 찍어 누르는 힘이 강해지고 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허면 이건 어떨까?
[망령제어]
잔해들이 허공으로 떠올라 쉔에게 날아갔다.
수십의 돌무더기가 유성우처럼 내렸다. 대경한 쉔이 풀쩍 뛰어 거리를 벌린 뒤 검을 벼락같이 휘둘렀다. 빛이 교차되고 돌무더기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수십의 돌 조차 그 앞에서는 작은 방해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분노-분노의 질주]
직선으로 달린 뒤 검을 찍었다.
면과 날이 부딪히며 충격파를 토해냈다. 천둥 치는 소리와 함께 지면이 가라앉았다. 의지의 힘이 접점에서 터져 주변으로 비산한 것이다. 어떤 것은 칼날처럼, 어떤 것은 부서진 망치처럼. 때 아닌 날벼락에 근처에 있던 이들은 모두 거리를 벌렸다.
“이……이익!! 다들 뭐하고 있느냐!? 당장 쉔을 도와 저놈을 제압해라!!”
“부대는 나를 따르라!”
쉔이 열세를 보이자,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멍하니 서 있던 라라가 다급히 뛰어나가며 외쳤다.
“아버지!! 멈춰주세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닥쳐라!! 너희가 내 마음을 어찌 이해한다는 것이냐!? 아, 이제 보니 알겠구나! 내가 힘을 키워 제국을 침공 할 까 두려워서 그런 것이지? 제국의 비호 아래에서 자란 너희의 마음은 이미 이곳에 없구나!”
“아……어떻게 그런 말을! 저희는 단지 누군가 다치지 않고 끝냈으면 하는 마음뿐이라고요!”
“정신 차리세요! 아버지는 이단에 홀린 거뿐이에요!!”
“닥쳐!! 뭐하는 거냐!? 당장 저것들도 잡아 들여라!!”
병사들이 라라와 루루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부녀지간인데 이게 무슨 짓인지. 아무리 욕망이 튀어나와 가슴을 잠식했다고 해도, 딸을 향해서 할 말이 있고 아닌 말이 있는 것이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주머니를 끌러서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밖으로 꺼냈다.
“일어나라!!”
칙칙한 흑기사들이 망령제어의 영향권에 들어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래서야 내가 네크로맨서 같지 않은가? 갑옷을 이루고 있는 힘을 흑기사들에게 투영했다. 검은 갑옷이 하얗게 변해가고 죽은 자의 색 없는 기색이 천천히 빛을 띠기 시작했다.
“오……맙소사! 저것과 싸우란 말인가?”
“저건 마치 신의 전사 같지 않은가?”
“저자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던 거 아니야? 공왕께서……”
이단에 영향을 받지 않았던 병사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광휘를 토해내는 흑기사. 아니, 백기사의 위용은 성전에 선, 신의 전사와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왕의 명령이라고 해도 하늘과 정면에서 대치 하겠다 마음먹기는 쉽지 않았다.
흔들림이 있을 때가 기회.
검으로 쉔을 밀어낸 뒤 크게 외쳤다.
“들어라!!! 너희가 정말로 공화국을 생각하는 병사라면 잘못 된 것을 바로잡을 줄 알아야 한다!! 공왕은 그릇된 힘에 휩싸여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가고 있다! 굴락의 대신관이라는 자가 그 뿌리며, 이곳에도 그 종자들이 있다. 내가 이곳에서 그 증거를 보일 터이니, 두 눈을 씻고 똑똑히 보거라!! 신성한 대지 위해서 부정한 자들은 고통 받을 것이며, 바른 마음을 지닌 자들은 축복을 누릴 것이니!”
연극배우처럼 과장되게 외치며 힘을 사역했다.
신성대지의 축복을 마구잡이로 깔았다. 신성점수 소모는 없다. 모드가 해제되면 다 사라질 것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 사용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것도 없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 공간이 모조리 축성지로 변했다. 몇 겹으로 중첩 된 곳도 있었다.
“크, 크으으으……!!”
“이, 이게 뭐냐!? 당장 치워!!”
“아아악!! 몸이 뜨거워!”
공왕을 비롯한 이단의 힘을 지닌 존재들이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리 대단한 효과는 아니지만, 머뭇거리던 병사들을 회유하기에는 충분했다. 고통 받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양편으로 분리되었다.
“나, 나는 싸울 수 없어! 아무리 명령이라고 해도, 신의 사자와 싸우라니!”
“그래, 애초부터 이상했다고! 우리가 알던 공왕폐하는 이런 분이 아니야! 무언가 잘못되어 있어!!”
“저, 저자가 공왕 폐하를 농락한 것이다!!”
분노는 표출 될 곳을 원한다.
내가 지목한 굴락의 대신관이 적절한 대상이 되었다. 병사들이 라라와 루루를 그냥 둔 채, 도미닉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는 앞선 타격과 사방에 깔린 축성지. 그리고 내 몸에서 나오는 신성력에 노출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병사들이 다가오자 비적비적 물러났다.
일그러진 얼굴은 악귀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병사들에게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시체를 부리고 사이한 힘을 쓰는 존재. 처치해야 마땅한 존재일 뿐이었다.
“내가 이대로 포기 할 줄 아느냐!!!”
물러나던 도미닉이 속의 것을 토해내듯 외쳤다.
그리고는 한편에 방치되어 있던 왕좌로 뛰어가 이를 품에 안았다. 왕좌는 이단이 실린 그리자로 만든 물건. 금세 힘이 폭증하더니 도미닉을 휘감았다. 이는 경비대장이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모습이다. 이단으로 인한 변형. 완전히 그 힘에 모든 걸 바쳐서 인간조차 포기한 모습이었다.
“괴, 괴물이다!!”
“오, 맙소사!! 정말로 괴물이었어!!”
병사들. 심지어 하푼의 일원조차 그 모습에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단으로 힘을 얻고 그것에 취했으나, 지금과 같은 모습을 바란 것은 아닐 것이다. 이단에 의한 오염이 적은 이들은 거부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광휘를 두른 검을 들어 올리며 힘껏 외쳤다.
“보아라, 어리석은 공왕!! 이것이 정녕 네가 바라는 길이냐!? 욕망에 모든 걸 맡기고 괴물이 되는 것이!? 의회를 몰아내고 잘난 영광을 재현하더라도, 네가 지켜야 할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괴물이 되어 버린다면 무엇이 남겠냔 말이다!!!”
“나, 나는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야!!”
“정신 차리고 똑바로 봐!! 저것에 네 모습이니까!!”
흔들리던 공왕의 몸이 정지했다.
텅 빈 눈동자가 도미닉을 응시하고 있다.
내 눈에는 보인다.
그의 몸을 잠식하고 있는 이단의 기운이 흔들리고 있음을. 내 힘으로 정화하는 것은 이단 자체에 국한된다. 오염이 적은 이들은 그냥 그것을 지우는 것으로 해결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왕 정도로 깊게 빠진 이들은 그 원천을 지운다 해서 바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이단을 부정하기 시작한다면……
위이잉—!!
검 위로 새하얀 빛의 파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건 의식의 검이다. 하지만 한 명의 의식이 아니다. 나의 것이기도 하고 쿤의 것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의식이 하나로 엉키며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다. 어쩌면 몸 위로 두른 신의 의지조차 이것에 담겨있는 걸지도.
“오……!”
“오오오. 신이시여.”
도미닉과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하늘에 닿을 듯 찬란하게 빛나는 광휘의 검은 그야말로 신의 이적이었다. 악한 것을 멸하고, 선의 홍복을 대지에 뿌리는.
이왕 하는 연출이라면……
파아앗—!!
등 뒤로 새하얀 날개가 펼쳐졌다.
아름답게 빛나는 깃털이 마치 장식 조명마냥 허공을 맴돌았다. 찬란하고, 신성스럽다. 무엇도 이것을 부정하다고 말 할 수는 없다.
처억. 검을 들어 흔들리는 이단의 기운을 노렸다.
그리고 베었다.
어둠이 여명에 씻겨나가듯.
사위에 침묵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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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왕이 무릎을 꿇었다.
멍 한 두 눈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비슷한 이들이 여럿 있었다. 광휘의 검에 의해서 이단이 잘려나간 이들은 하나같이 눈물을 토해냈다.
그것이 참회의 것인지 단순한 충격의 여파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눈물 흘리는 이들에게서 더 이상 이단의 기운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크으으……네놈. 네놈! 단순히 최후의 문 동조자가 아니었구나. 대체 그 힘은 무엇이냐!?”
반 쯤 부서진 몸으로 도미닉이 물었다.
광휘의 검이 휩쓸고도 이단을 버리지 못한 이들은 장내에 전부 둘. 도미닉과 하푼을 이끌고 온 남자였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하푼을 이끌고 온 남자는 광휘의 검이 내뿜는 힘에 쓸려가 그대로 타 버렸다는 것이고, 도미닉은 이조차 이겨냈다는 점이다.
물론, 그 대가로 몸의 절반이 타 지금도 연기를 내뿜고 있기는 하지만.
“이단을 잡으라 하늘이 내려주신 힘이다.”
“이단? 이단이라고?”
“그릇된 힘으로 사람의 욕망을 부추기고. 힘에 잠식되어 인간임을 버리게 하는 힘. 그것을 이단이라 부르지 않으면 과연 무어라 불러야 할까.”
희미하게 빛이 남은 검을 들어 도미닉을 가리켰다.
자신 있게 말 하고 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다. 광휘의 검은 일종의 에너지 폭발. 자세하게는 알 수 없지만 모드를 유지 할 수 있는 시간이 대폭 감소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곧 모드가 해제되고 나는 쿤에게서 튕겨 나가겠지.
그 전에 상황을 마무리해야 한다.
“잠깐. 잠깐만……”
“공왕?”
그때, 눈물을 쏟아내던 공왕이 몸을 일으켜서는 다가왔다.
쉔이 옆으로 시립하고 병사 몇이 뒤를 따랐다. 설마 아직도 이단의 영향력에서 못 벗어난 건가? 그렇다면 꽤나 상황이 고약해 질 거 같은데……
“묻고 싶은 게 있다.”
그가 비적비적 걸어와서는 도미닉의 앞에 섰다.
“이 힘은……이 힘의 결과는 결국 그러한 것이었나? 굴락의 세를 펼친다 하여도, 그것이 잘못되었다 여기지 않았는데……”
“어리석구나, 공왕. 대가 없는 힘은 없다. 욕망을 불태워 힘을 얻었다면 그만큼의 대가도 내놓아야지. 모든 것이 너를 위해 준비된 안배라도 되는 줄 알았더냐?”
“하지만 어찌하여? 신도가 모두 힘에 취하여 괴물이 된다고 네게 이득이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
“이득? 아직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군. 그건 내 사명일 따름이다. 모든 이들에게 굴락의 은총을 내리는 것. 괴물이라고? 이게 어째서 괴물이지? 하등한 인간을 벗어나 새로운 존재가 되었는데?”
도미닉의 눈이 괴이하게 번뜩였다.
깊이 이단에 빠진 자의 모습이다. 이득에 따라 행동하는 듯 보이나 그 깊은 내면에는 단지 이러한 생각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마치 바이러스 같다.
인간에 기생하여 그 세를 넓히고, 종국에는 자신만이 남게 되는. 끝없이 번져가는 바이러스.
“하하. 하하하……나는 겨우 이런 것에 희망을 걸었구나. 부질없는 짓이었어. 욕망에 눈이 멀어 믿지 말았어야 할 것을 믿고 말았어……”
“욕망이 힘이다. 이제 와서 포기하는 네가 어리석을 뿐. 그 나약함이 번지기 전에 다시 한 번……”
파앙—!!
말을 하던 도미닉이 순간적으로 지면을 차서 공왕에게 달려갔다.
죽이려고? 아니다.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이건 예측하기 쉬운 부분이다.
두 배로 강화된 초감각이 이를 예지에 가깝게 짚어내고, 축성지와 분노. 히어로 메이커 모드로 강화된 능력이 이에 반응했다.
서걱—!!
검과 검.
내 광휘의 검과 쉔의 검이 엑스자 형태로 도미닉을 베어냈다.
핏물이 후두둑 떨어지고, 번들거리는 그의 눈이 빛을 잃었다.
“나는 결국 어리석은 왕이었구나.”
씁쓸한 공왕의 목소리가 그 위를 흘러갔다.
※작가의 말
파경편이 끝났습니다.
다음 편 ‘이름 없는 자’로 이어집니다.
* 히어로 메이커 모드는 일종의 슈퍼 차지 모드입니다.
특정 항목을 충족해야 발동 할 수 있으며, 작중 나온 설명대로 능력이 상승합니다.
경험치 상승과 정수 획득 문구는 분위기 상 일부로 제외했습니다. 오해 없으시기를.
* 하얀 갑옷에 하얀 투구. 하얀 날개에 빛나는 검. 어윽 눈부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