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24화 (124/240)

쿤은 우선 신성대지의 축복부터 바닥에 깔았다.

힘이 전파되고 이에 반발한 도미닉의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 그 틈으로 세이혼이 달라붙고, 쿤은 축복을 전개했다.

빛이 중첩해서 이어지고, 세이혼의 검세가 무서운 힘을 발휘했다.

도미닉의 방어막을 연거푸 때렸다. 파문이 충첩되어 퍼지고, 땅이 덜덜 거리며 떨려왔다. 단순한 충격만으로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어 보였다.

“쿤, 오빠!”

라라가 던지는 주머니를 쿤이 받아 들었다.

물약이 들어있는 주머니. 냉큼 안의 것들을 꺼내어 입에 털어 넣었다. 힘과 용기. 신체의 반응이 상승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반작용으로 속이 매스껍고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참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단 심판도 걸어야 하는 건가?’

칭호를 걸고 능력이 발동되면 확실히 전투에서는 이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뒷일이 문제다. 하나 잡고 쓰러져 버리면 뒷감당은 누가 한다는 말인가. 아군의 전력을 생각하고, 도미닉의 능력과 비교해 봤다.

‘없어도 이길 수 있다.’

세이혼까지 합류 한 이상 도미닉이 아무리 강해도 이길 수 있다.

결론을 내린 쿤이 아쿤을 고쳐 잡고는 전장으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네놈들이 전부 한통속이었구나!! 하하하! 제법이야, 제법이야!!”

우르릉. 회색 안개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기둥에 금이 가고 바닥이 일어나 파편이 되어 주변 인물을 때렸다. 세이혼이 황급히 검으로 이를 베어내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멈춰!!!”

루루가 거대한 불을 소환해 앞으로 던졌다.

홍염이 바닥에 닿아서는 와류에 휩쓸려 거대한 불기둥을 만들었다. 열기 자체는 도미닉도 어찌 할 수 없는 바. 거대한 바람이 한 순간 주춤거렸다.

“잘 했다!”

쿤이 외치며 뛰었다.

늪으로 변했던 지면은 다시 본래의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단단한 지면을 걷어차며 고속으로 이동해 도미닉의 등 뒤를 노렸다. 단단하게 쥔 아쿤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물러나라!!”

붉은 섬광이 다시 한 번 떨어졌다.

오르가나의 법복. 예의 효과가 다시 한 번 발휘된 것이다. 처음에야 놀라고 당황해서 제대로 대응을 못했지만 두 번째는 다르다. 쿤이 검으로 섬광을 찍어 올리며 버텼다. ‘벤다’라는 의념이 법구의 힘을 그대로 버텨냈다.

단지 버티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는가?

간단하다. 그 시간이면 세이혼이 접근하여 검을 휘두를 수 있으니까.

“……!”

세이혼의 검이 찬란한 궤적을 그리며 도미닉의 몸을 베어냈다.

붉은 섬광이 삐걱거리며 움직이려 하지만 소용없었다. 법구의 힘은 쿤이 막고 있었으니까. 제아무리 강한 신관이라 하여도 의식의 검을 다루는 검수 둘과 싸워서는 버틸 수 없었다.

하지만……

“크, 크흐흐흐……”

“안 죽어!?”

몸통이 통으로 잘렸음에도 도미닉은 죽지 않았다.

백전노장의 세이혼 조차 순간 놀라, 동작을 멈칫했을 정도. 그 사이 반으로 갈린 도미닉이 붉은 빛을 토해내며, 쿤과 세이혼을 밀어냈다.

“빌어먹을 마법사 놈들이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솔직히 놀랐어. 이 정도의 검수를 둘이나 포섭해서 투입시킬 줄이야. 거행 시간이 다가오자 그 틈을 노린 거겠지? 적이 아니라면 박수라도 쳐 주고 싶군.”

두 동간 난 몸이 하나로 붙었다.

회색 연기가 뭉글뭉글 피어오르더니 절단면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건 대체 무슨 기사란 말인가. 라라와 루루. 심지어 세이혼 조차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놀랍나? 너희 마법사의 주구들은 힘에 취해 이 존재를 이용할 줄 모르지. 굴락께서는 이미 힘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셨다. 그 첫 번째 종자인 나 역시 마찬가지. 나는 이미 죽음에서 벗어나 있다. 너희같이 하찮은 것들이 어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전형적인 광신도로군.”

“미개한 놈들. 그 무지를 껴안고 죽어라.”

회색 안개가 뭉치더니 거대한 칼이 되어 회랑을 가로질렀다.

검에 닿은 기둥이 단번에 쪼개졌다. 어마어마한 위력. 세이혼과 쿤 조차 응대 할 생각은 버리고 냉큼 몸을 날렸다.

“숙여!!”

라라와 루루가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머리 위로 회색 빛 검이 지나가고, 통로 외벽이 통째로 무너졌다. 쿠릉. 쿠릉. 불안한 소리가 들리고 조금씩 그 간격이 줄어들어갔다.

“무너진다! 둘 다 이쪽으로 와라!”

“빌어먹을 놈! 같이 죽자는 거냐!?”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쿤이 떨어지는 낙석을 아쿤으로 분쇄시킨 뒤 통로 쪽으로 달렸다. 세이혼이 라라와 루루를 챙겨서는 따라붙었다. 아도란은 시야에 안 잡혔지만 그라면 알아서 잘 살아 돌아올 것이다.

“같이 죽어? 우습구나. 내가 너희 따위와 같은 처지일 것 같으냐?”

회색 물결이 낙석을 관통하며 날아왔다.

돌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세이혼이 검세로 이를 빗겨내고, 쿤이 뒤로 뛰어 물결을 아쿤으로 찔렀다. 점에서 퍼져 선. 그리고 면으로 이어지는 힘의 확장이 물결을 통째로 붕괴시켰다.

‘앞으로 두어 번 정도가 전부인가?’

힘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쥐어짜 봐야 두어 번 정도. 그 이상이 되면 의식의 검을 사용 할 수 없다. 상대가 검수라면 기교로 어찌 해 보겠지만, 기괴한 힘을 사용하는 대신관이라면 무리다.

‘일단 밖으로……!’

싸우고 자시고 일단 살아야 뭐든 할 거 아닌가.

쿤이 무너지는 벽을 발로 차 통로를 열었다. 긴 회랑 끝 처음 들어왔던 입구 앞으로 토석이 쌓이고 있었다.

“갈 수 없다. 어리석은 놈들.”

“오지 마!!”

도미닉이 회색 기운을 일으키려는 순간 루루가 불덩이를 던졌다.

근처 낙석이 부딪히며 몇 갈래로 나뉘더니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충격이 지면을 흔들고 도미닉을 방해했다. 힘이 해체되고 그의 몸이 살짝 흔들렸다. 일단은 좋은 공격. 하지만 그 뒤로 붕괴가 빨라졌다는 부분에서는 그리 박수를 쳐 주기 어렵다.

쿠르르르……!!

간신히 견디고 있던 기둥 중 하나가 옆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상부 외벽이 갈라지고, 균열을 통해서 아래로 추락했다. 왕성 내실처럼 꾸며 두었던 장소가 순식간에 폐하로 변해갔다.

“둘 다 거부하지 마!”

그 순간, 쿤이 무한의 주머니를 꺼내서는 안에 들어있던 흑기사 두 구를 꺼내 던졌다.

그리고는 냉큼 라라와 루루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생명체는 거부하면 들어 갈 수 없는 바. 넣기 직전에 쿤이 당부하지 않았다면 되레 튕겨 나왔을 것이다.

“그건……뭔가?”

“설명 할 시간은 없다. 일단 밖으로.”

“그래야지. 이거 탈옥을 숨기기는 다 글렀군.”

겨우 그것만이겠는가.

왕좌가 있던 방을 이 꼴로 만들었으니, 공왕과 만나면 그 뒤도 걱정이다. 공왕파와 의회파의 전쟁 이전에, 자신들부터 쫓길 판이다.

쿤이 입술을 잘끈 씹으며 무너지는 통로를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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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르르릉……!!

우르릉!!

굉음을 토해내며 건물 하나가 통째로 무너지고 있다.

과거, 공국의 상징이었던 왕성이 지금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 창고 지지층이 무너지면서 그 충격이 전파되어 상부의 건물 역시 통째로 무너졌다.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바람을 타고 번져서 하늘을 뒤덮었다.

“콜록……! 콜록!!”

“괜찮나?”

“후우. 그럭저럭. 빌어먹을 놈, 가지가지로 해 주는군.”

쿤이 간신히 허리를 펴며 뒤를 돌아봤다.

완전 무너진 왕성의 모습이 보였다.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찌 되었을까. 아마 살아남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불편한 아픔이 가슴 한 구석을 찔렀다.

“거기 그대로 멈춰라!!”

“움직이지 마!!”

숨을 돌리기도 전, 일단의 무리가 다가와 쿤과 세이혼을 포위했다.

은색 독수리 문양이 박힌 정복을 입고 있었다. 수도 방위군의 표식이다. 소란을 듣고 달려온 것이 분명했다.

쿤이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를 탈탈 털었다.

“꺄악!!”

“어멋!”

라라와 루루가 퐁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내려앉았다.

쿤의 움직임에 무어라 다시 외치려 했던 병사 중 하나가 바닥에 넘어진 라라와 루루를 알아보고는 손을 들어 올렸다.

“머, 멈춰라! 통령의 자제분들이다!”

“뭐, 뭐? 두 분이 어째서 이곳에?”

어째서라.

그 점을 설명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쿤이 쓰게 웃고는 시선을 허공을 돌렸다. 초감각이 경고하고 있다. 도미닉 대신관은 아직 죽지 않았다. 아니, 죽을 리가 없다. 애초에 일행만 매장시키려고 건물을 붕괴시킨 거니까.

“쥐새끼 같은 것들.”

회색 연기로 뒤덮인 도미닉이 건물 잔해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끝에는 왕좌가 들려 있었다. 건물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그것은 챙겨 나온 것이 대단했다. 무거운 왕좌를 손으로 들고 있다는 사실은 둘째 치더라도.

“도미닉 대신관?”

“뭐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병사들이 혼란에 휩싸였다.

한쪽은 통령의 자제가 포함된 무리. 다른 한 쪽은 굴락의 대신관이다. 무너진 왕성의 잔해에서 두 집단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잠깐. 어쩌면 이걸 이용 할 수 있겠군.’

쿤이 혀로 입술을 핥았다.

상황이 복잡하다면 주도하는 자가 흐름을 만들 수 있다. 굴락의 신도들은 보이지 않고, 달려온 이들은 수도 방위군에 불과하다.

눈을 빛내며 크게 외쳤다.

“도와주십시오!! 저자가 두 분을 해하려 합니다!!”

“무, 무슨……?”

“공왕의 자제분을 납치하려 했던 자들과 한 편입니다! 겨우 이곳까지 도착했는데, 설마 대신관이 그들과 한패 일 줄은 몰랐습니다!!”

“서, 설마! 굴락의 대신관이!?”

병사들의 시선이 잔해위에 올라선 도미닉에 쏠렸다.

그의 자태는 신의 위엄을 드러낸다는 의미에서는 훌륭했다. 기세등등하고 패악하다. 하지만 일반 병사의 눈으로 보기에는 확실히 신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병사 들 중 일부가 의혹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거냐? 그딴 농간에……”

“저걸 보십시오!! 저놈이 들고 있는 저 의자!! 왕좌가 아닙니까!? 공왕의 자제분들을 납치하고 자기가 그 위치를 차지하려는 속셈입니다!”

“허어!! 맞아! 저 의자. 예전에 본 적이 있어.”

“그래. 분명 내실 끝자락을 장식하고 있던 의자였어.”

나이 좀 있는 병사들이 이를 알아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단 다행인 부분. 공왕이 왕좌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켰다면, 그 배경을 아는 병사는 왕성에 있는 자들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왕성이 무너지며 모두 깔려버렸고, 지금 달려온 이들은 수도를 방위하는 병력. 즉, 기본적으로는 공왕파의 인물이나, 내막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옛 왕좌를 손에 쥔 도미닉의 모습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도미닉 대신관!! 분명하게 말 하십시오! 지금 이 말이 사실입니까?”

“무슨 헛소리를!! 전부 지어낸 말이다!”

“그럼 그 왕좌는 왜 가지고 있는 겁니까? 게다가 잔해에서도 멀쩡하게 나오시고……아무리 봐도 왕성을 무너뜨린 것이 대신관으로 보입니다만.”

“이건……”

도미닉이 순간 멈칫했다.

왕성을 무너뜨린 것은 그가 맞다. 아니라고 말 하려는 순간 그것이 생각나 머뭇거린 것으로 보였다. 아주 잠시의 망설임이지만 의심하고 보던 이들에게는 충분한 모습이었다. 긴가민가하며 보던 병사들이 무기를 들어 그를 겨눴다.

“도미닉 대신관!! 일단 따라와 주셔야겠습니다.”

“왕좌를 놓고 내려오십시오!”

병사들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기본적으로 종교에 대해서는 공화국이 간섭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인정되고 있지만, 일의 경중에 따라서는 간섭하는 것이 가능하다. 게다가 지금 등장한 이들은 수도 방위군. 수도에 발생한 이상 상황에 대해서는 다른 부대보다 높은 권한을 가진다.

상대가 대신관이라 해도 충분히 억류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건방진 놈. 세치 혀로 나를 구속하려 드는구나. 하지만 어리석다. 이곳은 내 영역이라 말을 했을 텐데? 나를 잠시 가둔다 해서 결과가 바뀔 거라 보는가?”

“누가 잠시라고 했지?”

쿤이 씩 웃으며 힘을 사용했다.

망령제어. 보이지 않는 기운이 천천히 뻗어나가 사위를 지배했다. 왕성은 네크로맨서가 주둔지로 사용하던 곳. 이미 땅을 뚫고 나온 언데드와 싸운 바 있다.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 아쉽지만.’

드드드드……!!

지면을 뚫고 죽은 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네크로맨서다!!!!”

“뭐, 뭐!?”

쿤이 더 없이 크게 외쳤고, 기다렸다는 듯 루루가 불꽃을 던졌다.

그리고 세이혼이 검을 들고 달려갔다.

“공화국을 지키자!!!”

적은 사악한 네크로맨서니까.

※작가의 말

몸이 좀 안 좋아서 며칠동안 글을 제대로 못 쓰고 있습니다.

지금은 좀 상태가 나아지는 거 같으니, 내일부터는 다시 2연재로 돌아오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건강 조심하세요.

아픈데 챙겨주는 사람 없으니 개서럽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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