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20화 (120/240)

쿤은 무릎을 펴며 일어났다.

공물로 올렸던 금덩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몸이 가볍고 기분이 맑았다. 평소보다 기도의 효과가 좋은 거 같았다.

익숙하게 일어나 상태창을 살폈다.

몇 가지가 바뀌어 있었다. 단계가 오르고, 능력치가 증가하고 각인의 축복이 생겼다. 초상력이 1증가해 있고, 신성점수가 150으로 깎여 있는 것도 확인했다. 다른 추가 특기의 변화는 없는데 왜 점수가 깎여 있을까? 의아해 하며 다른 것을 살피다 상자를 소환했다.

그 안에 처음 보는 물건이 들어 있었다.

***

무한의 주머니

이름과는 달리, 무한하지는 않다.

소지자가 들 수 있는 물체에 한해서 최대 10개까지 보관 할 수 있다. 생명체도 가능하다. 단, 이 경우는 24시간을 넘어서게 되면 내용물이 죽는다. 강제로 집어넣을 수는 없다. 한 번 들어갔다 온 생명체는 24시간 내로 다시 들어 갈 수 없다.

내구성이 좋고, 기후 변화에 잘 적응하지만 찢어지지 않는 건 아니다.

작은 흠이라도 생기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

독특한 물건이었다.

손바닥 만 한 주머니였는데, 그 안으로 손에 잡히는 데로 물건들이 들어갔다. 꺼내는 것은 더 간단했다. 집어넣었던 걸 기억하면 그것이 빠졌고, 아니라면 입구를 열고 탈탈 털면 차례대로 쏟아져 나왔다.

이건 먼 거리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 한 물건이었다.

‘떠나라는 말일까?’

정착하는 사람에게 이런 물건이 필요 할 거 같지는 않다.

쿤이 주머니를 허리에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고민은 벌서 며칠째 이어서 하고 있다. 보통 때 같으면 신의 뜻이 이렇구나! 라면서 단번에 결정을 내렸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용병이 아닌 다른 삶.

무언가 쟁취하고 나아가는. 조금 다른 형태의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공화국 특수부대의 부지휘관 자리라면 그 꿈을 향한 발판으로 나쁘지 않다. 게다가 그렇게 되면 라라와 루루와도 헤어지지 않아도 되고.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다.

“아직도 결정하지 못한 건가?”

“음……”

문이 열리고 세이혼이 들어왔다.

공화국에서 지급하는 정복을 입고 있었는데, 확실히 여행할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야생의 짐승 같았던 인물이 대장군처럼 변했다고 해야 할까? 보면서도 이질감을 느끼고 있다.

“고민이 될 거야. 나도 그랬으니.”

“결정 한 건가? 아, 아니지. 어차피 답이 나와 있는 질문이었나?”

“그렇게 보였나? 그 답은 어디에 있는가? 하푼의 대장으로?”

“미련이 남아있는 집단 아닌가. 다시 세워서 대장직을 준다면 거절 할 이유가 없을 텐데?”

아니냐는 얼굴로 묻자, 세이혼이 가볍게 웃었다.

질문에 웃긴 내용이 섞여 있었나? 쿤이 미간을 찡그렸다.

“의회의 압박으로 하푼을 해체했다고는 하지만, 그 주체는 결국 공왕이었다. 라라와 루루의 정체를 알게 됐을 때 말 했을 텐데? 내게 충성심이라는 것은 그리 깊이 남아있는 단어가 아니야. 그 자리에서는 공왕이라는 인물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격어린 표정을 흉내 내야 했을 뿐.”

“그럼 설마 거절하겠다는 건가?”

“일단 사면은 받았으니 대장 직은 필요 없지. 요새로 돌아가 란과 함께 정착 할 생각이네.”

답을 하며 세이혼은 쿤을 바라봤다.

그것은 아마도 흑열병의 치료에 대한 것. 그 약속에 대한 걸 묻고 있음이다.

“레스터 요새의 제단 건설도 완성됐어. 조금 지나면 점수가 수급되겠지. 중급이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되는 데로 치료를 해 보겠네.”

“그 정도면 됐네. 서 준경교의 세를 더욱 늘리면 좋았겠지만 상황이 이래서야 답이 없겠지.”

“그러게. 생각하던 것과 달리 상황이 너무 불안해.”

의회파와 공왕파의 대립은 한계까지 도달해 있고, 굴락의 대신관은 삼각뿔의 한 점처럼 움직이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교단을 확장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민심장악으로 목에 고리나 걸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

“……아무래도 거절하는 게 좋겠어.”

쿤이 짧게 중얼거렸다.

세이혼과 대화를 하다 보니 너무 이곳에 목메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도 안 좋은 곳에 끼어서 괜히 목숨 버릴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이곳을 떠나, 다른 장소에서 길을 찾는 것도 나름의 방법 일 것 같았다.

“결정 한 건가?”

“……음.”

라라와 루루를 더 이상 못보게 되는 것은 아쉽지만.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되었다.

#

쿤과 세이혼은 결정을 내리고 바로 공왕을 찾아갔다.

그는 공무를 뒤로 미루고 바로 둘을 맞이해 주었다. 예의 장소에서 몇 사람만이 모인 뒤 이야기를 전달받았다.

“……둘 다 거절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군.”

“죄송합니다. 하지만 또 다시 누군가를 맡는다는 건 무리라 생각되는군요. 휘장을 내려주신 것은 감사히 생각하나 감당 할 수 없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본디 용병. 내려주신 황금으로 받을 건 다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세상을 떠돌며 일 할 거리를 찾아보는 게 본성에 맞겠죠.”

쿤과 세이혼의 답에 공왕이 미간을 좁힌 채 입을 닫았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지 내리깐 눈동자가 멈춰 있었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그의 옆으로 시립한 쉔. 그리고 주변으로 위치한 인물들의 기도가 슬금슬금 올라왔다.

매우 미약한 변화였지만 쿤은 느낄 수 있었다.

‘위험 한 건가?’

그래도 라라와 루루를 구해온 사람들이다.

마음에 안 든다고 무슨 짓을 할까 싶었다.

헌데, 지금 분위기는 위험하다. 팔뚝 위로 올라오는 소름에 쿤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무기는 없지만 아쿤을 꺼낼 수 있다. 공물을 바치고 난 뒤 어째서인지 성물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음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아쉽군.”

그때, 닫혀있던 공왕의 입이 열렸다.

분위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쿤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솔직히 거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네. 둘을 위한 계획도 세워 놓았고. 다시 한 번 생각 해 줄 마음은 없나?”

세이혼이 곧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마음을 단단히 먹은 거 같다. 잠시 고민하다 쿤도 고개를 흔들었다. 위험 할 수도 있었지만 결정된 사항을 뒤집고 싶지는 않았다.

이에 공왕이 낮게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을 구금해라.”

“……통령!”

세이혼이 다급히 외쳤다.

쿤도 자세를 취하며 만일을 대비했다. 구금이라니. 설마 하던 게 진짜로 일어나고 있었다. 아쿤을 뽑아야 하는가. 순간의 망설임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목숨을 빼앗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은 시국이 안 좋아. 그대들 같이 유능한 사람들이 적의 손으로 넘어간다면 앞일을 예측하기 어렵네. 상황이 진정 될 때 가지만 가만히 있어 주게.”

“그런……”

쓰지 못하는 인물이 적에게 넘어갈까봐 구금한다니.

이게 정말로 통령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 취할 수 있는 자세란 말인가. 쿤이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하지만 상대의 행동이 한심한 것과 작금의 상황은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쉔이 다가오고, 주변의 인물들이 기세를 높이는 상황에서는 함부로 움직이기 어려웠다. 게다가 지금은 무기조차 없다. 쿤이야 아쿤을 쓴다 하지만, 세이혼은 맨손. 그의 능력이 아무리 빼어나도 쉔과 무기 없이 겨룰 수는 없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나?’

구금이라 하지만 일단 그 이상으로는 움직일 거 같지 않다.

쿤과 세이혼이 라라, 루루를 구해 온 건 이미 여럿이 아는 상황. 잠시 구금해 두는 것은 괜찮지만 그 이상은 사기에 심대한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쿤이 세이혼의 소매를 당기며 말을 했다.

“여기서는 가만히 있자.”

“으음……”

세이혼이 천천히 기세를 죽였다.

그제야 쉔과 병사들이 다가왔다. 손과 발에 굵은 수갑을 채우고 주변을 빙 둘러서 포위했다. 당연하다는 듯 수갑을 꺼내는 모습이 이미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다는 걸 의미했다. 말과는 달리, 부정적인 결과도 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신중하다기 보다는 조금 치사하군.’

주요 전력이 상대로 갈 수 있으리라 걱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처우가 이래서야 없던 마음도 생길 판이다. 공왕이라는 인물. 기회를 잡을 줄 알지만 그 이상의 큰 그림은 그리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따라와라.”

마음에 안 들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겠지.

쿤이 군말 없이 쉔의 뒤를 따라갔다.

#

쿤과 세이혼은 지하감옥에 수감되었다.

본래 범법자를 수감하는 곳과는 다른 장소다. 일종의 정치범 전용 감옥으로 시설도 좋고, 나오는 음식도 훌륭했다. 일단, 공왕이 아예 생각 없이 둘을 다루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쿤과 세이혼의 마음이 풀릴 리는 없지만.

“너무하는군! 대열에 합류하지 않는다고 구금이라니!!”

쾅!!

세이혼이 분에 겨워 주먹을 휘두르자, 벽이 찌르르 울렸다.

손과 발을 묶어두든 수갑은 없었다. 감옥 자체가 구금이라기보다는 잠시 구류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수갑은 어울리는 장식품이 아니었다.

쿤이 벨벳으로 짜여진 의자에 엉덩이를 걸친 채 물었다.

“공왕의 성격이 본래 이러했나?”

“전혀 아니네. 과거에는 오히려 소심한 축이었지. 그렇다고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었어. 마음이 따듯하여 낮은 위치의 이들까지 두루 돌보는 성정이었네. 그런 성정 탓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것인데……어찌 저렇게 바뀔 수가 있단 말인가!”

세이혼이 드물게 분기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오기 전에도 말했듯이, 하푼을 해체한 것은 결국 공왕의 결정이었다. 과거에도 그러했는데, 또 다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니 쉬이 진정이 안 되는 것이었다.

한참이나 씩씩 거리며 벽을 두드리다, 힘이 빠져서야 침대에 몸을 뉘였다.

쿤이 천장에 그려진 그림을 눈으로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쭉 생각해 오던 의문이었다.

“행동이 바뀌었다고 하니 더 이상하군. 혹시 이단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닐까?”

“이단에 의해서? 하지만 자네가 가까이서 보지 않았나?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알아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음. 꼭 그런 건 아니네. 힘을 드러내거나, 상징을 볼 수 있어야 이단임을 확인 할 수 있지. 만약 이를 숨기고 있다면 나도 알 방법은 없네.”

경비대장과 싸울 때도 그랬고, 그 이후로도 앞서서 찾지 못한 경우가 왕왕 있었다. 이단의 힘은 밖으로 드러내거나 그 본질을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제대로 감지가 어렵다. 직접 접촉이라도 해봤으면 모르겠지만, 당장은 뭐라고 장담하기 어려웠다.

세이혼이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그렇다면 더 큰일이지 않은가?”

“큰일이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어. 만약 그가 이단에 의해서 조정을 받는다고 한다면 어째서 의회와 반목을 하지? 의회의 주축 부대인 굴락의 팔에는 이미 이단이 전파되어 있어. 의회도 이것에서 벗어났으리라 생각하기 어려운데.”

이단의 전파되었다면 자신의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곳과 굳이 싸울 이유가 없다.

다 하나로 묶은 다음에 전파를 하면 그만이니까. 만약 그런 게 아니라면 전제가 잘못 되었거나, 혹은 싸울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싸울 이유라?’

같은 편이라 싸우지 않는다.

생각을 바꿔 보았다. 같은 편이라서 싸우게 할 수 있다. 본래의 공왕이라면 싸움이 되지 않는다. 소심한 성격으로 자애의 표본이 되어 민중의 지지는 받을지언정 누군가와 대척 할 인물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걸 누군가 억지로 바꾸고 싸움을 불러오는 거라면……

“설마……!”

쿤이 바닥을 탁 치며 일어났다.

얼마 전에 보았던 한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수도 입구 가교에서 공왕과 의회장이 만났던 장면. 그 대척을 해소했던 것이 굴락의 대신관이다.

중재자의 입장.

단순히 그 장면 하나만이 아닌, 앞으로의 상황에서도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면.

“전쟁이 발발하면 민중은 신에 의지하게 된다. 그때 굴락이 세를 전파한다면? 이단에 의해서 오염 된 굴락이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파고든다면?”

“……무슨 소리인가? 그럼 일부로 전쟁을 조장하고 있다는 건가?”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는지 모르겠네. 라라와 루루를 초대하고 갈등을 고조시킨 거지.”

“하지만 중간 과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네.”

“완벽하지 않은 거지. 그래, 맞아. 베사미어도 그러했고, 경비대장도 마찬가지였어. 이단의 힘은 교리를 틀고, 욕망을 불러오는 역할을 할 뿐이야. 이단이라 하여 사람을 완전히 다 조정 할 수 있었다면 이런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지 않았겠지. 이단은 본능. 가장 깊은 욕심을 자극하여 사람을 조정하네. 그 과정이 조금 삐걱거리기는 했으나, 결과는 지금처럼 완성되었어. 공왕은 힘을 모아 의회파를 칠 수 있는 세력을 갖추었고, 의회파는 몇 번의 실패로 조급함을 드러내게 됐지.”

라라와 루루가 등장하지만 않았어도, 공왕은 지속적으로 의회에 눌려 있었어야 한다.

저항세력이라고 해 봐야 응집되지 않은 군소전력. 그 힘이 공왕을 중심으로 집결 된 것은 결국 라라와 루루의 생존. 그리고 의회의 잇따른 실패 때문이다. 힘이 밖으로 나가고 신경이 집중되지 않으니 그 틈에 공왕은 힘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허. 그럼 이 상황 자체가 이단에 의해서 조작된 것이란 건가?”

“확신은 없지만……가능성은 충분해. 유일신으로 다른 교리의 진입을 엄금하는 제국이야 모르겠지만, 공화국은 종교적으로 개방되어 있지. 전쟁이 발발하고, 변질 된 굴락이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거네.”

“와아~굉장히 똑똑하시네요?

“……!!”

그 순간 생소한 목소리가 곁에서 들려왔다.

쿤이 황급히 아쿤을 뽑아서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노렸다.

하얀 아지랑이 같은 것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기척을 잡지 못했다. 심지어 초감각마저.

“워, 워! 이봐요 아저씨. 진정하세요.”

“넌, 누구냐!”

“전 그냥 편지만 전달하러 온 사람이에요. 그 단검 무서우니까 좀 내려놓으면 안 될까요?”

아지랑이가 점차 형태를 띄워가더니, 사람으로 변했다.

10살? 그보다 어려 보이는 외모였다. 다만, 귀가 뒤로 착 붙어있고 코가 뭉툭한 것이 인간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런 외모, 어디선가 들어 본 기억이 있다.

쿤이 미간을 좁히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러자, 앞에 선 상대가 입술을 비죽이고는 퉁명스레 말을 했다.

“핀네스 처음 봐요?”

“아! 핀네스! 정말 핀네스인 거냐!?”

“흥~!”

핀네스.

숲의 종족이라 불리며 숲지기가 아닐까 하고 추정되는 종족.

10대 초반의 어린이 외모를 가지고 있고, 뭉툭한 코가 특징이다. 어지간한 일에는 숲 밖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게다가 종족 특유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잡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능력이라는 것은 조금 전 쿤이 목도한 연기화. 불리는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막거나 가두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능력이라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 그 탓에 과거에는 숲의 세력이 악과 싸울 당시 전령으로 사용하곤 했었다.

쿤이 놀란 사름을 추스르고는 입을 열었다.

눈은 여전히 핀네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하. 핀네스라니. 아니, 그보다 숲의 종족이 여기는 무슨 일이냐?”

“자요. 당신이 쿤 맞죠? 전하라는 편지 가지고 왔어요. 아도란은 접근하려고 해도 이상한 막을 걸어둬서 불가능하더군요.”

“편지?”

핀네스 소년이 건넨 건 밀봉된 편지 하나였다.

“프리실라가 전하라는 편지에요. 그럼 전 전했으니 이만 가 볼게요.”

“잠깐……!”

픽!

쿤이 황급히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핀네스 소년은 연기로 변하며 흩어졌다.

기척의 이동조차 없다. 마치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한 순간에 사라졌다. 쿤이 허망하게 허공을 손으로 젓다가 편지로 시선을 돌렸다.

‘프리실라라고?’

그 이름이면 기억하고 있다.

오두막에서 머무를 당시 찾았던 봉인지의 주인. 아도란과 동문이며, 이단이 담긴 그리자 덩어리를 보호하고 있던 인물.

다급히 떠났다는 것 말고는 흔적이 없었던 자가 지금 접촉을 해 온 것이다.

그것도 핀네스를 통해서.

“쿤, 무슨 내용이 적혀있나?”

“아……그렇지.”

세이혼의 목소리에 쿤이 정신을 차렸다.

편지를 먼저 돋보기로 살폈다. ‘프리실라가 자필로 작성한 편지.’ 설명으로는 그녀가 보낸 편지가 확실했다. 밀봉을 뜯고 안의 것을 꺼내 들었다. 휘갈겨 쓴 글자들이 편지지 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쓰레기 같은 아도란. 감히 내 연락을 무시하다니 네놈이 드디어 죽을 때가 됐구나. 머리통을 으깨서 늪지 괴물의 먹이로 줄까? 응?]

서문은 꽤 험악했다.

[어디에 있든 연락을 받았다면 당장 갈색 숲으로 찾아와라. 로즈도 단단히 화가 나 있으니 이번에 돌아오면 네 잘난 면상이 무사 할 거라 장담하기는 어려울 거다.]

“로즈? 아……장미 가시의 기사.”

아도란을 찾으러 왔던 바운티 헌터들의 의뢰자.

접점이 없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등장하고 있다. 아래 문단으로 조금 살펴보니, 로즈가 아도란을 찾기 위해 바운티 헌터들에게 의뢰를 한 거였고, 실패하여 화가 많이 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공화국의 기사와 마법사인 프리실라.

이 둘은 대체 어떻게 인연이 닿아 있는 것일까? 편지를 살펴도 그 내용은 없었다. 쿤이 생각을 접고 다른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 빌어먹을 그리자의 정화 방법. 힌트를 찾은 거 같아. 빨리 안 돌아오면 나 혼자서 독식할지도 몰라. 아, 그리고 충고 하나 하지. 혹시나 공화국을 가로지를 생각이면 수도 근처로는 가지 마. 그리자에 오염된 놈들이 진을 치고 있으니까.]

정화 방법을 찾았다는 내용.

마법사들이 이단을 봉인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단과 상대하고 이를 정화해야 하는 쿤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소식.

게다가 후미에 적힌 내용.

‘수도에 오염된 이들이 있다.’

혹시나 싶어 조금 더 자세하게 살폈다.

아도란에 대한 욕. 그리자를 이용하는 자들에 대한 욕이 한 동안 이어지고, 짧게 공왕에 대한 평이 있었다.

[허수아비. 이미 농락당하고 있어. 괜히 사고치지 말고 피해서 와.]

겨우 한 줄이었지만, 쿤과 세이혼이 생각하던 한 부분을 뒷받침 해 주는 내용이었다.

허수아비에 불과한 공왕. 의지를 불태워, 의회와 전쟁을 하려는 그의 속셈은 누군가의 농간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였다.

“세이혼.”

“음. 역시 네 생각이 옳았던 거 같다.”

그리자에 오염된 놈들이 진을 치고 있다.

공교롭게. 어쩌면 행운이 작용한건지도 모르겠다. 의문을 풀어 줄 수 있는 내용이 딱 손에 배달이 되었으니까.

‘지금 이 전쟁은 계획된 것이다.’

확신이 섰으면 필요한 것은 다음 행보.

쿤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아갔다.

※작가의 말

핀네스는 엘프와는 다릅니다.

보다 정령 쪽에 가깝고, 장난을 좋아합니다. 다만, 천성이 맑아서 싸움을 싫어하고 피를 무서워 합니다.

* 그나저나 요즘 문피아가 무섭네요. 저는 연재를 하는 입장이다보니 그 말들이 모두 제가 쏟아지는 거 같기도 하고...제대로 쓰고 있는지, 잘못 된 건 없는지 계속 걱정되고 그러네요.

* 문제가 있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가감없이 지적해 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