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18화 (118/240)

교내 경찰을 만나서 괴물을 만났다 말 하고는 뒤로 대피했다.

그리고는 군중에 섞여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피했다. 카메라나 블랙박스. 모습이 찍힐 위험이 없는 장소에 도착해서는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손과 얼굴에 피가 조금 묻어 있었다.

근처 화장실로 가 깨끗하게 씻어 낸 뒤, 이상이 없는지를 천천히 살폈다.

확실히 이상이 없음을 확인 한 뒤, 전화를 걸며 다시 미소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미 괴물의 등장 소식이 퍼진 건지, 가게 안도 웅성거리는 소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미소가 걱정한 얼굴로 다가왔다.

“아빠~! 왜 이렇게 늦었어요? 걱정했잖아요.”

“걱정? 아빠가 설마 화장실에 빠졌을까봐서?”

“아뇨, 아뇨! 지금 학교에 괴물이 나왔대요! 그, 게이트 너머에 있던 얼굴 빨간 놈들 있잖아요! 지금 경찰도 오고, 소방관들도 오고. 곧 군인들도 온다고 해요!”

“괴물이?”

놀란 연기.

어색하지는 않을까?

“아! 미소야, 이거 봐! 지금 SNS에 소식 올라왔어. 그 괴물은……어? 이거, 진자야?”

그때, 세주가 손을 흔들며 미소를 불렀다.

역시 SNS. 소식 전파 속도는 엄청나다. 계단 주변으로 사람이 없던 게 아니니까 그 중 일부가 소식을 올린 모양이다.

달려가는 미소의 뒤를 쫓아 세주가 보여주는 화면을 살폈다.

[……민간인 8명 사망. 구릉 계단 아래로 도망친 괴물은 사망. 머리가 절단 나서 처참하게 죽어 있었음. 정부의 비밀병기? 숨은 히어로? 누군가 괴물을 처리한 것으로 보임……]

급하게 날려 쓴 건지 문단이 죄다 끊어졌다.

하지만 요지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괴물의 등장으로 죽은 민간인은 전부 여덟. 그리고 괴물은 구릉 계단으로 도망치다가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머리가 잘려서 죽었다는 의미다.

여덟 명. 그래 그렇게나 죽었구나.

뿌득. 저절로 이가 갈렸다. 그 짧은 순간에 여덟이나 죽었다니. 내가 정의의 용사인 것은 아니지만, 선택만 달리했어도 죽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며, 부모 일 수 있다.

단순하게 남 일……이라고 치부 할 수는 없었다.

“세상에. 여덟 명이나 죽은 거야?”

“대체 뭐야? 정말 게이트 너머의 괴물이야? 그 괴물이 여기까지 온 거야?”

“세주야 너 어떻게 해? 그쪽도 위험 한 거 아니야?”

“모, 몰라. 나도 이런 건 처음 봐.”

우리만이 아니다.

가게 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SNS를 통해서 전해지는 소식에 떨고 있다. 공포의 확산은 매우 빠르다. 더군다나 바로 옆에서 일어난 일이라면……체감하는 바가 다르다.

우웅……

그때, 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확인하니, 앞서 만났던 총장이다.

받아서 통화를 해 보니 교내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개교기념 행사를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여덟이나 죽었는데 그대로 진행 할 수는 없다.

이야기를 미소 등에게 전하자 다들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다들 이해는 했다. 집에 대려다 주겠다는 말을 하고는 가게를 벗어나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걱정 어린 표정들이 전부 다 감각으로 잡혔다.

차남혁. 그리고 크랙.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일을 벌인 걸까?

이단의 존재가 세간에 알려져서 당장 이득 볼 수 있는 게 없다. 게이트가 위험하다는 증거를 들이밀어서 그들이 그 관리 권한을 잡을 것도 아니고……

우웅……!!

다시 폰이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 누구일까 생각하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저예요. 차준혁. 잠시 얘기 할 수 있을까요?]

소리. 그리고 시선.

멀지 않은 곳에 그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단만이 아니라 이놈의 문제도 남아 있었지.

[12시. 평화 공원.]

바쁘게 움직여야 할 거 같다.

#

“미소는 괜찮아요?”

밤이 와 하늘을 덮고 난 뒤, 차준혁과 만났다.

그는 이미 맥주 몇 캔을 마셨는지 얼굴이 붉었다. 발을 가볍게 떨면서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두려움. 그에게서 읽히는 가장 큰 감정이었다.

옆에 앉은 뒤 멀쩡한 캔을 따 입에 털어 넣었다.

아직 시원했다.

“미소는 멀쩡해. 사고가 일어났던 곳과는 거리도 상당히 멀었고.”

“사고. 사고……정말로 일어 난 거죠? 그 괴물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죽인 거죠?”

“그래. 다행이 누가 먼저 처리 한 거 같지만 죽은 사람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

차준혁이 손톱을 물어뜯었다.

다리의 떨림은 더 거세지고, 눈동자의 요동은 멈출 줄을 몰랐다. 술기운 때문에? 아니, 그렇게만 보기는 힘들다. 무언가를 극심하게 두려워하고 있었다.

“네 형. 차남혁. 그가 전부 저지른 일인가?”

“……”

“영상은 가지고 왔겠지?”

두 번을 물었지만 답이 없다.

넋이 나간 사람마냥 덜덜 떨기 바쁘다. 상태가 꽤나 심각하다. 이대로는 무언가를 알아내기 어려울 거 같다. 반지 낀 손으로 목을 세게 쥐며 마법을 발동시켰다. 미약한 힘이지만 정신을 일깨우기에는 충분 할 것이다.

눈에 초점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 한 뒤 뺨을 한 대 세게 후려쳤다.

짝. 소리가 나고, 표정이 두려움에서 분노로 바뀌었다.

“무슨 짓입니까!?”

“넋 나간 병신 같아서. 이제 좀 정신이 드나?”

“아……”

그제야 자기가 벌벌 떨었던 것을 인지한 모양이다.

맥주 한 캔을 따서 건네주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받아 한 번에 들이켰다. 벌컥벌컥. 목이 따가울 텐데 잘도 마신다.

전부를 비우고 나서 캔을 손으로 우그러뜨리더니, 길게 트림을 했다.

더러운 새끼.

“진정이 되나?”

“네, 네. 겨우. 후우.”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지? 네 형인가?”

“……네. 맞아요. 차남혁. 저는 그 인간이 너무 두려워요.”

형이라는 호칭도 삭제했다.

손을 모은 채 어깨를 좁히고는 힘 빠진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얼굴이다. 그래도 형제인데. 대체 뭐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 인간은 예전부터 그랬어요. 가지고 싶은 건 무조건 가지고, 길을 막는 인간들은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제거했죠. 미친 싸이코패스 새끼……정상이 아니에요. 하지만 아버지는 또 그런 그 놈을 좋아했죠. 몰라서? 아뇨. 알아요. 그놈이 어떤 놈인지. 헌데도 그 잘난 재주 덕에 회사가 커진다고 두둔하고 있죠.”

“네 가정사가 궁금한 게 아니다.”

“……당신하고도 관련이 있는데요?”

“음? 무슨 소리지?”

“교통사고. 아직까지 내가 냈다고 생각하고 있나요?”

교통사고.

2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날려버린 그 일을 말 하는 건가?

“설마……”

“그래요. 사고를 낸 건 내가 아닙니다. 차남혁, 그 미친놈이죠.”

“잠깐. 그럼 어째서 네가 사고를 낸 것으로 돼 있지?”

“……대신 자수를 했으니까요. 아버지가 말 하더군요. 그 인간은 안 된다고. 앞으로 그룹을 이끌어갈 사람에게 이런 흠이 있으면 안 된다고.”

“그래서 그걸 그냥 받아 들였다고?”

“집을 나가는 조건으로. 어차피 사고야 돈으로 무마시킬 걸 알았으니 신경 쓰지 않았어요. 기록에 남는다고 해 봐야, 큰일도 아니고. 하지만……”

그가 다음 말을 망설였다.

이제 와서 망설일 게 있나? 내가 알던 사고의 개요까지 전부 바꿔놓은 상황에서?

“미소와 결혼을 하고……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녀는 착해요. 그리고 맑아요. 나 같은 놈이랑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

“아버지는 식물인간에, 어머니는 그 모양. 괴로워하는 게 보였어요. 하지만 내 입장에서 뭔가를 해 줄 수는 없었죠. 가족을 그렇게 만든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염치없이 어떻게 그러겠어요. 그냥 집을 떠나서 그녀가 괴롭지 않게 만드는 게 최선이었죠.”

“진실을 밝히고, 적극적으로 도와 줄 생각은 없었고?”

“……겁쟁이니까요. 겁이 났어요. 내가 할 수 있을까. 차남혁. 아니, 아버지를 거역 할 수 있을까? 그냥 멀리서 엇나간 게 바라보는 게 전부였죠.”

그가 무릎을 손으로 꽉 쥐었다.

피가 안 통하는지 손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건 진실의 돋보기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적어도 그가 말 하는 건 모두 진실이었다.

“그러다 당신이 깨어나고, 미소를 데려가게 됐죠. 아쉽지만……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가족과는 멀리 떨어지는 게 무조건 좋은 일이니까요. 헌데, 그 시점부터 그 인간과 당신이 묘하게 엮이기 시작하더군요. 개척자와 보조팀으로. 또 경쟁 회사로. 솔직히 신경 안 써도 되는 일이지만 미소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어요. 당신이 다치면 그녀가 또 슬퍼 할 거 같았으니까.”

“순정남 나셨군. 그래서 차남혁의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거냐? 그러다 영상을 발견했고?”

“맞아요. 그놈과 어울리는 놈들도 하나같이 이상하고, 뭔가 있을 거라 생각한 거죠. 물론, 이런 일을 예상 한 건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참 이놈도 기구하다.

형과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서 살고, 사고까지 덤터기를 썼다. 그러고 나서도 무언가 있을 두려움에 허리를 못 피고 살아간다. 기껏 하는 반항이라고 해 봐야 멀리서 바라보는 게 전부. 그 날 보았던 피어싱과 양아치 같은 모습은 소극적인 반항에 불과한 것이다.

“됐고, 그 영상이나 내놔 봐라.”

“……여기요. 그럴 줄 알고 담아왔어요.”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재생했다.

화질이 굉장히 구리지만, 방 한 편에 서 있는 게 차남혁임은 확인 할 수 있었다. 주변으로 몇 사람이 더 있었는데 앵글의 한계로 얼굴은 확인 할 수 없었다.

“음?”

아니, 한 사람은 확인이 가능했다.

이진혁. 큰 키와 좋은 체구. 창틈으로 들어온 달빛으로 옆선만 봤음에도 그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역시, 화면에 나온 이들은 모두 이단과 관계된 자들이었다.

“아, 슬슬 나오는군.”

차준혁이 말 한 괴물에 대한 것이 영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허름한 복장의 사람이 영상 중앙으로 등장해서 무언가를 차남혁에게서 받았다. 화질이 안 좋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 그리자를 개량한 마약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곧 이어 마약을 털어 넣은 사람이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변이. 몸이 부풀어 오르고 피부가 붉은 색으로 변질되었다.

“……음?”

변이까지는 예상했던 부분인데 그 뒤로는 조금 달랐다.

변이한 괴물은 이성을 잃고 날뛰었고, 주변에 있단 차남혁 등은 황급히 밖으로 대피를 했다. 그리고 조금 지나 힘이 빠진 괴물이 쓰러지자 차남혁이 다시 들어와서는 무언가를 조작했다. 마치 낙인을 새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는 성공하지 못했다.

낙인이 괴물의 몸 위로 스며드는 순간, 짧은 스파크와 함께 몸 전체가 터져나갔기 때문이다. 육편이 사방으로 튀고, 카메라가 나갔다. 충격으로 고장 난 것이다.

“……봤죠? 그 인간은 단지 괴물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에요.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하고 있어요.”

“조종이라.”

방금 본 낙인.

갑자기 든 생각인데, 내가 신관위를 내리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즉, 차남혁은 이단에서도 급수가 높은 존재. 그 아래의 존재를 만들어서 낙인을 찍어 조종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영상에서 본 것처럼 시도는 실패. 대상자는 폭발하고 말았다.

마약은 이단의 힘을 전파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지만 완벽하지 않다.

이는 오동락이 말 한 배합 비율과 연결이 되는 내용일 것이다. 어쩌면 이번 실험은 다른 배합을 시도해 보려는 것 아니었을까?

……아니야.

영상에 나온 것으로 봐서, 대상자는 노숙자로 보인다.

즉, 차남혁도 실험 자체를 공공연하게 드러낼 생각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갑자기 공인에게 약을 공급해서 실험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만약, 일련의 행위가 같은 지휘 계통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아! 너, 계획을 알아냈다고 했었지? 어떻게 안 거냐?”

“차남혁 그 인간의 컴퓨터를 조사하다가 알아냈어요. 따로 쓰는 노트북을 숨겨 두었는데,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죠.”

“따로 카피는 안 하고?”

“그건 못했어요. 걸릴 뻔 한 터라 그냥 눈으로 훑고 나오는 게 전부였죠.”

“그럼, 기억을 잘 더듬어 봐. 이게 차남혁이 준비하던 계획이었어?”

차준혁이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건 꽤 중요한 일이다.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상대의 약점을 찌를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아……그러네요. 확실히 다른 폴더로 분류되어 있었어요.”

“이름은? 주도한 사람의 이름은 몰라?”

“글쎄요. 그것까지는……아! 그러고 보니 그룹이 ‘2’로 지정되어 있었어요.”

“2? 단순 넘버링 아닌가?”

“아니,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1에 차남혁을 포함한 다른 그룹원들이 들어 있었으니까요. 2는 아마도 두 번째 그룹. 아니면 2인자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2인자라……일리가 있군.”

이단이라고 해서 완벽하게 하나 된 조직일 거 같지는 않다.

완전히 이단에 녹아서 통일 된 종교처럼 모시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형태는 그보다 수위가 약하다. 마치 힘을 받아들이고, 그 아래에서 서열싸움을 벌이는 종자들 같다. 차남혁이 그 중 수위에 있는 자라고 한다면 그보다 못한 이들 중에서 보다 강한 힘을 추구해서 다른 마음을 먹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즉, 쿤이 내게 공물을 바치는 것처럼……

보다 많은 이단을 만들고, 보다 넓은 세력을 꾸리는 것으로 이단의 힘을 더욱 강하게 받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단순히 그리자를 통해 이단을 받아들이는 것 이상의 존재. 나로 비교하면 신관위의 존재들이 꾸릴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균열이 있다는 의미다.

적은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다. 국내가 이런 상태라면 해외. 전 세계적인 규모에서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세력이 적다.

그리고 세력을 확장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적의 이러한 틈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비집고 들어가 날카로운 단검을 쑤셔 박을 수 있으니까.

“근데……당신이 그걸 어떻게 다 알고 있죠?”

그러니까 말이다.

아무리 미소 변명을 대도 지금 내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건 이상하다. 추측의 근거도 없는데, 결론을 쑥쑥 내 놓고.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상하다고 생각 할 것이다.

그러니까……

“……읍!!”

망각초 좀 먹자.

미안하지만, 우리 만남은 일단 여기서 끝내야 할 거 같다.

자세한 내용은 일주일 뒤에, 정부의 특수 요원으로 변장한 내가 물어 볼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지금은 근심걱정 다 버리고 자라.

술 먹고 벤치에서 잠든 것 마냥.

푸욱.

※작가의 말

과연...다음편에는 어떤 일이!? 두둥!!

크라임씬 너무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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