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15화 (115/240)

일주일이 지난 시점부터 죠엘에게서 진척 보고서가 전달되기 시작했다.

벌써 실험군 테스트에 들어가 성과를 봤다는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 굳이 복잡한 대조군 비교가 없어도 사진으로 보이는 효과가 대단했다. 완전히 죽어버린 모근을 재생해서, 젊었을 적의 헤어 라인을 그리게 해 주었다.

슬쩍 흘린 소문으로 이미 선주문이 들어오고 있는 모양.

아직 식약청 허가가 떨어진 것도 아닌데, 미리 좀 팔면 안 되냐는 전화도 있다고 한다. 길면 두 달. 짧으면 한 달 안으로 정식으로 판매가 시작 될 수 있을 거 같다.

초기 물량만 처리해도 투자비용은 모두 뽑고도 남는다.

그 다음부터는 인력과 시간.

그리고 경쟁사와의 싸움일 뿐이다. 효능에서 상대가 안 되면 취할 수 있는 건 로비와 방해공작뿐이다. 연구실 관리를 단단히 하고, 일찌감치 선을 좀 대라고 일러두었다. 물론, 돌아온 건 코웃음이었다.

그녀 말마따나 로비는 그녀의 전문이었다.

그렇게 사업을 관리하면서 다른 일에서 신경을 쏟았다.

가장 먼저 처리한 것은 회사 문제였다. 이미 게이트와 개척자 관련 형태에 대해서 이야기가 새어 나오고 있다. 얼마 안 지나면 큰 형태 변화가 일어 날 터. 그 전에 준비를 갖춰 두는 것이 좋았다.

크리스티나를 통해서 하늘 사랑과 접촉을 했다.

소규모 회사들을 병합해서 규모를 확장하자고 제안을 했다. 계약 조건은 누가 봐도 하늘 사랑 쪽에 좋은 형태. 운영권을 확실하게 주고, 제동 걸 빌미를 계약서에서 완전히 없앴다. 말 그대로 돈만 대어 주고, 커미션만 떼어 가는 형태. 자본을 떼로 부으며 이런 식으로 사업하는 사람은 없다고 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소향을 비롯한 회사 식구들도 처음에는 불신을 했다.

하지만 내부의 적이 가장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서율이와 내가 그녀를 설득했다. 조건이 좋을 때 개미끼리 힘을 합쳐야 나중에 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제의를 받아들이게 했다.

덕분에 개척자를 데리고 가족 회사 형식으로 있던 일부 회사를 흡수 할 수 있었다. 우리 쪽 제안이 좋았고, 비전이 마음에 든다는 얘기. 게다가 서율이의 이미지가 한 몫 더했다. 그녀를 우상처럼 여기는 개척자들이 꽤 있었으니까.

전부 세 명의 개척자를 회사 식구로 들일 수 있었다.

보조팀을 나누고, 신입의 가족들과 형태를 논의하느라, 꽤 삐걱거리는 시간을 보내야 하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사업도 확장하고, 회사 규모도 늘리고.

모든 게 잘 돌아갔다. 아니, 하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잘 돌아갔다. 떨어지지 않는 근심. 그건 바로 쿤에 대한 걱정이었다.

“후우.”

신성점수 수급은 지금도 꾸준하게 하고 있다.

삼시세끼를 축성지에서 나온 것들로 때우며 야금야금 점수를 확보하고, 맹약을 비틀어 사용하며 매일같이 1~200의 점수를 추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함이 느껴진다. 쿤의 능력은 빼어나지만 전쟁에 휩쓸리면 개인의 힘이라는 건 무력해 지기 마련이다.

초감각.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미래에 대한 경고뿐이다.

경전을 통해서 파악한 주변의 정세와 물자의 흐름. 미래를 엿볼 수 있으나, 그 순간에 대응 해 줄 수는 없다. 결국 그 자리에서 판단하고 움직이는 건 쿤. 점수로 수많은 특기를 부여하는 것보다는 순간의 판단을 도와 줄 수 있는 하나의 능력이 더 중요했다.

쉬이잇—!!!!

그렇기 때문에 수련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서 단련을 한다. 지금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것은 시속 200km의 야구공. 맞으면 아프다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는다.

읽고. 아니, 읽는 것은 느리다.

느낀다. 정보를 판단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분석하는 감각을 느낀다. 보는 것을 눈으로만 하지 않고, 몸 전체로 한다.

쉬이익—!!!

피하는 동작. 돌아가는 몸. 다음으로 쏟아지는 야구공. 하나의 동작 뒤로 이어지는 다음 상황을 그림처럼 그리고, 이것을 필름처럼 엮는다. 이것은 흐름이 되고, 흐름을 앞서 읽으면 그것이 예지다.

퍼억!!

“큭!”

느리다.

수십 개의 야구공이라 해도 한 발 빠르게 움직였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모자란 것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한 것을 추려서 가장 합리적인 것을 도출하는 속도. 바늘의 끝이 어떻게 갈라졌는지까지 세밀하게 읽어내도, 결국 진행 방향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아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정보를 단말로 나뉘어 파악하면 늦는다.

보고, 듣고, 맡고.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마치 태어나 처음 부모의 모습을 보았던 것처럼. 손에 쥐어진 따듯한 온기를 느꼈던 것처럼. 초월적인 단위에서 이 모든 것을 느끼고 통제해야 한다.

퍼억—!!

물론, 아직 요원하기만 한 일이다.

“그, 그만 끌게요! 삼촌 괜찮아요?”

찬 바닥의 감촉을 느끼고 있자, 서율이가 달려왔다.

뻥 뚫린 하늘의 전경 앞으로 그녀의 얼굴이 불쑥 들어왔다. 걱정했는지 볼이 상기 돼 있다. 그리고 눈가가 또 붉다. 몇 번을 봤는데도 또 울려고 그런 건가? 참 여리기도 하다.

손을 뻗어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때려놓고 불쌍해서 우는 거냐?”

“사, 삼촌이 시켰잖아요!”

“하하. 이 정도는 안 아프니까 그렇게 있을 필요 없어. 설마하니, 죽자고 이렇게 하겠니?”

“우……하지만 너무 아파 보여요. 피칭머신이 하나도 아니고……이렇게 많이 가져다 놓고 할 필요가 있어요?”

그녀가 손으로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부 서른 대던가? 구해오기가 꽤 힘들었다. 크리스티나 통해서 공수하고, 안 쓰는 창고 하나를 대여해서 수련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조했다. 아파트에서 사는데, 이런 수련을 했다가는 주민 신고 들어온다.

필요한 공간. 필요한 수련이다.

“내가 익히는 건 쿤도 익히니까. 그가 바른 길을 가는 것이 우리한테도 중요하다는 걸 알잖아.”

“그……이단이라는 거요?”

“연결고리가 있어. 쿤과 나. 게이트와 개척자. 그리고 이단. 언젠가 이 고리가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 이 세상은 큰 변화를 겪게 될 거야.”

“지금 사이비 종교 교주 같은 거 알죠?”

“나름 경력직이라서.”

농담으로 대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구공을 얻어맞아 욱신거리던 곳은 거의 다 회복이 되어 있었다. 자체적인 특기에 일전에 사 두었던 반지. 그리고 여차하면 쓸 수 있는 축복과 마법까지 있다. 맹약을 걸고 수련을 하기에는 충분한 배경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그보다 아까 전화 왔었어요.”

“전화? 누구한테서?”

옷을 갈아입고 있자, 그녀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미소]

우리 귀여운 딸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 시간이면 아직 강의 중이었을 텐데……

무슨 일일까?

통화 버튼을 눌렀다.

#

“하하. 직접 보니 더 젊어 보이는군요.”

“이곳 조명이 좋은가 봅니다. 처음 뵙는군요. 서 준경이라고 합니다.”

“어이쿠, 정신하고는. 윤 가람이라 합니다. 미약하지만 총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미소의 연락을 받고 내가 도착한 곳은 학교의 총장실이다.

곧 개교기념일인데, 개척자를 곁에서 보는 사람 중 하나로서 강연을 해 줬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사람도 있지 않나 싶었지만, 티비에도 나오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인지도가 높았다. 학생들의 청원이 들어오다 보니 미소를 통해서 넌지시 의견을 타진했다고 한다.

“괜히 폐만 끼치는 게 아닐까 싶네요.”

“하하. 작은 한 마디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럼, 시간은 이때쯤으로……괜찮을까요?”

“나쁘지 않네요. 너무 길지도 않으니, 지루 할 틈도 없을 테고.”

적당히 시간을 조율했다.

45분 정도의 강연 시간. 할 말이 그렇게나 있을까 싶지만, 생각해보면 내 인생이라는 것도 꽤나 극적이다. 사고가 나기 전과 사고가 난 후의 삶이 완전히 바뀌어 있으니까. 물론, 하지 못할 말들도 많음은 알지만 그럭저럭 추려내면 45분 정도는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아빠, 한다고 했어요?”

“그래. 우리 딸이 부탁하는데 거절 할 수가 있나?”

미소가 해 달라고 부탁을 해 왔는데 거절은 선택지에 없었다.

정 곤란하다 싶으면 서율이나 스케줄에서 빼 와서 강당에 세워버리지 뭐. 그녀라면 45분 정도는 날로 먹어버릴 수도 있을 거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오, 소유도 있었구나. 잘 지냈니?”

“저는요!? 저는요!?”

소유와 인사를 하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팍 튀어나왔다.

안 봐도 안다. 머리를 손으로 잡고는 휙 돌려서는 웃었다. 오기 전에 소향한테 물어서 그녀가 스케줄 빼고 학교에 와 있음을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봐 놓고서는 무슨 인사냐.”

“치, 매정해요.”

“매정하면,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빼 놓는다?”

“놉. 노노노노. 아저씨 완전 착함.”

세주가 손가락을 힘차게 흔들면서 대꾸했다.

참 밝은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척자 일을 배우는 것이 그리 녹록하지 않음에도 항상 웃음을 잊지 않는다. 학교로 돌아와 친구들과도 같은 태도로 어울리고. 아무리 좋게 대해도, 개척자는 보통의 사람과는 다른 영역의 존재. 그 차이로 이유 없이 싫어하고 악담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런 태도를 보이고 있음은 천성이 밝은 이유도 있겠지만, 심지가 매우 굳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자에 여유가 있다면 그녀를 위한 성물도 하나 만들고 싶다.

예쁜 것으로.

“근데, 아저씨. 강연에서 무슨 얘기하실 생각이에요?”

“뭐, 별거 있겠니? 그냥 일 하는 거랑 덕담 몇 마디 해 주고 끝낼까 하는데.”

“아아! 아빠, 그러면 안 되죠. 그래도 명색이 강연인데 뭔가 교훈 되는 걸 말 해야죠.”

“그런가?”

“그럼요! 막, 가슴에 찌르르 하고 와 닿는 이야기!”

대충 무마할까 하는데, 미소가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고 있다.

감동적인 이야기라. 가정사를 말 할 수야 없고, 사고 이후 직업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각색할까? 하지만 그것도 사실 서율이가 꽃아 준 거라 감동과는 거리가 멀다. 아, 생각해 보니까 나도 꽤 도움을 많이 받았다.

“너무 거창하게 안 해도 될 거에요.”

걱정을 하고 있자 소유가 소매를 톡톡 치며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차례 끝나고 초대가수 공연이 있거든요.”

“걸 그룹이라도 오냐?”

“흥미 있어요?”

“하하.”

있다. 라는 말이 입까지 올라왔다가 쏙 들어갔다.

뭐, 삼촌 팬이라는 것도 있지 않나?

안 그런가? 응?

#

이틀 뒤.

적당한 연설문과 적당한 애드립.

강연 준비를 마치고 미소와 함께 학교로 향했다. 사전 행사 준비로 주변이 북적였다. 축제와 비슷하게 꾸몄는지 가는 길 곳곳에 가판이 들어서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주변을 구경했다.

“원래 이 시간에 이렇게 붐비니?”

“네. 일대에서는 제법 유명하거든요. 축제나 기념일에는 주변 상가 사람들도 와서 한 손 거들어요. 저번 축제 때가 진짜 제대로였는데.”

“음. 그때도 같이 있었다면 좋았을 걸 그랬네.”

“아……죄송해요.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닌데.”

“괜찮아. 같이 있지 못했던 건 사실인데 뭐. 그리고 앞으로는 계속 같이 있으면 되니까.”

미소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입학식에도 못 온 나쁜 아빠지만, 지금부터 잘 하면 된다. 졸업식에도 올 거고, 행사란 행사에는 다 참여할 거다. 주책이라고 말릴 때 까지. 그러니까 괜찮다.

“일찍 오셨네요.”

“……소향 씨?”

그렇게 강당으로 향하는데, 의외의 사람이 다가왔다.

“스케줄 조정을 해 달라고 하더니, 이런 일이었어요?”

“아……네.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서 그냥 조용히 있었는데, 어쩐 일로 찾아오셨어요?”

“준경 씨가 강연을 한다는데 놓칠 수는 없죠. 그리고 가끔은 이런 곳에서 신선한 공기를 쐬는 것도 기분전환이 되고 좋아요.”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답을 했다.

대학가의 공기는 조금 특별한 구석이 있다. 학창시절에는 알 수 없지만 후에 돌아보면 느끼게 되는. 과거의 장소가 안 그런 곳이 있겠냐만은, 청춘의 활기랄까. 확실히 그런 느낌은 있었다.

“소향 언니. 언니 혼자만 왔어요?”

“……응? 아, 응. 다른 사람들은 스케줄이 안 돼서.”

“헤에. 그래요?”

미소가 가자미 눈을 하고는 소향을 바라봤다.

서로 사이가 안 좋은가? 오가며 자주 봐서 그럭저럭 친하게 지내는 걸로 생각을 했었는데.

“아, 아!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저쪽으로 가 봐요. 일찌감치 먹거리 준비하고 있던데. 둘 다 공복이죠?”

“뭐, 일단은.”

“잘 됐네요. 이렇게 된 거 제가 한 턱 낼게요.”

조금은 허둥대는 기색으로 소향이 우리를 안내했다.

앞장 설 거면 재학생인 미소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아가씨는 길이나 알고 앞장서는 건지 모르겠다. 주변이 온통 가판이라 알던 사람도 찾아가기 힘들게 돼 있는데.

“천천히 가요. 어차피 시간도 넉넉한데.”

“그, 그게 낫겠죠? 이런 곳에 오는 게 흔한 일도 아닌데.”

“미소야 앞으로도 충분히 보겠지만, 우리 둘은 그렇죠. 간만에 대학교의 공기를 마시니까 확실히 상쾌하기는 하네요.”

“그러게요. 10년은 젊어지는 기분이랄까?”

“에이, 그건 좀 오바.”

미소가 태클을 툭.

꽤나 깊었는지 소향이 휘청거렸다.

역시 사이가 안 좋은 걸까?

“저쪽에 있네요. 냄새부터가 좋은데요?”

그렇게 투닥거리며 걷다보니 벌서 장사를 시작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국수를 파는지 고소한 냄새가 멀리서도 느껴졌다. 조금 서둘러 나오느냐고 공복인터라 배가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옆을 보니 미소도 소향도 굶주린 표정. 빨리 안 먹이면 봉기라도 할 판이다.

일단 자리를……

찌릿—!

걸음을 세우고 주변을 둘러봤다.

방금 전, 기묘한 시선 하나를 느꼈다. 지나가는 행인의 눈길은 분명 아니었다. 조금 더 농밀하고 특별한 기운이 담긴 눈길이었다. 초감각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적? 아니, 그렇게 단순하게 말 할 건 아니었다.

적대적이라 말 하기는 힘든 느낌. 그렇다고 우호적이라고 단정 짓기도 힘들다. 애초에 확정짓기 충분한 시간도 아니었으니까.

굳이 말하자면 관찰.

그래, 관찰이 어울린다.

대학 부지에 모여든 사람들 중 누군가.

나를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

※작가의 말

스토킹!?

아저씨도 걸그룹을 좋아 할 수 있습니다! 탕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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