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도시 구르칸과 분지의 마을을 잇는 일직선의 길.
쿤은 일행을 곧바로 준비시킨 뒤, 그 접점을 향해 이동했다. 루루의 불꽃을 띄우고 그것에 아도란의 비전의 눈을 심었다. 예상 접점 지근부터 정찰을 시도하면 어긋난 위험성은 거의 없었다.
다만, 문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겠지?”
“음. 생각보다 대응이 빠르네. 호위 형식으로 개입을 막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분지를 떠나기 전, 마을에서 기사단이 움직인 것을 확인했다.
방해 요소가 있음을 알고, 공왕의 마중 나가 접점을 막겠다는 의미다. 일행은 도보, 상대는 기마다. 아무리 전력으로 달린다 해도 먼저 도착 할 가능성은 없었다.
“그렇다면 어찌 할 생각인가? 전부가 움직이지는 않았으나, 숫자가 오십에 달하네. 정면으로 부딪힐 수는 없을 텐데?”
“그들이 공왕에게 접근을 한다면 과연 어떻게 설명할까?”
“음. 암살 위협을 알리고 호위를 자청하겠지.”
“그렇다면 최대한 우리를 앞서서 요격하려고 하겠지. 만약이라도 공왕과 접촉한다면, 자신들의 상황을 알릴 수도 있으니까.”
“타당하군. 그래서?”
쿤이 바닥에 작은 원 하나와 큰 원 하나를 그렸다.
큰 원이 작은 원을 감싸는 형태였다.
“밖의 원을 메르헨의 기사단이라 치면, 우리가 해야 할 건 이를 끄집어내는 일이야.”
“유인이라 이거군. 허나, 수적으로 너무 부족하네.”
“아니, 그건 상황을 아는 우리의 생각이지. 상대는 우리의 구성을 몰라.”
“골렘! 골렘을 사용하면 되겠네요!”
루루가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쿤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린 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도란, 아케인 스톤을 심지 말고 흙으로 골렘을 몇 기 만들어 줘. 조작은 내가 직접 할 테니까.”
“망령제어로 골렘을 운영하여 상대를 꾀어내겠다? 하지만 움직여도 일부일 거네.”
“그때는, 유인계책에 양동공격을 함께 쓰는 거지. 한 쪽으로 유인하고, 다른 쪽으로 공격을 가하는 거라면 상대도 확신을 할 수 있을 거네.”
“양동공격? 우리 인원에서 말인가?”
“루루. 불공의 제어는 어느 정도까지 가능해?”
“크기 따라 달라요. 이 정도라면 백 걸음 밖에서도 움직일 수 있어요.”
루루가 불의 공을 하늘 높이 띄웠다.
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불로 만들어진 공은 충분히 위협적이다. 몇 개만 일행과 떨어진 위치에서 날릴 수 있다면 공격의 시발점으로 오해하도록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럼 중요한 건 돌입이군.”
“라라가 미친 꽃망울을 깔고, 내가 그 위로 신성 대지의 축복을 시전하도록 하지. 환각을 이겨내고 들어오는 적은 세이혼, 네가 막아야 할 것 같다.”
“쉔……노사를 말이군.”
“어렵나?”
“쉽지 않지. 그는 공화국 역사 상 최강의 검호로 추앙받는 인물이니까. 내가 하푼의 대장으로 활약할 당시에도 몇 줄이나 위에 있었어.”
세이혼이 드물게 약한 소리를 했다.
그만큼 쉔이라는 인물의 능력이 무섭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쿤은 어차피 그와 죽도록 싸울 생각 따위는 없었다.
“잠시면 돼. 라라와 루루를 앞으로 내밀어 확인만 시키면 되니까. 공왕이 둘을 인지하는 순간, 싸움은 끝이야.”
“기사, 메르한은? 과연 그가 검을 내릴까?”
“음. 그건 솔직히 장담하기 어렵군. 내가 엿본 바에 의하면 일단 적극적인 자세는 아니었어. 하지만 상황이 몰리면 사람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이니……”
“그렇다 해도, 기사단 전체가 그의 말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잖아요. 공왕이 명령을 내리면 아무래도 그쪽을 따르지 않을까요?”
“라라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리고 설사 기사단이 전부 메르한의 명령대로 반역을 저지른다고 해도, 공왕을 호위하는 병력을 생각하면 승산은 우리 쪽에 있어. 설마 몇 명만 데리고 나들이 가듯 움직이지는 않았을 테니까.”
최대한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하며 계획을 짰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을 기약하기는 어렵다. 승부를 가르는 것은 한 순간의 판단이 될 터.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필요했다.
“아도란, 심심.”
누구에게는 그것이 지루하다 할지라도.
예상 접촉 시간까지 앞으로 3일.
시간은 멈춤 없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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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도 방향을 바꾸지는 않았군.”
작은 능선 위.
쿤이 부서진 나무 조각을 수습하며 중얼거렸다. 아도란의 ‘비전의 눈’이 담겨있던 물건이다. 꽤나 먼 거리에 떨어진 무리를 살필 수 있게 해 주었다.
“왕이든, 공화국의 대표든 움직임에는 무게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쉬이 방향을 돌리지는 않는다.”
“안전보다 앞서는 것이 권위라. 변하지 않은 것은 항상 있군.”
“우리로서는 다행이지. 네 생각대로 진형이 움직이고 있다.”
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왕의 행렬은 중앙에 오십 정도의 인원을 두고, 밖으로 기사단 오십을 두른 형태였다. 쿤이 예상했던 것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아도란, 골렘은?”
“골렘. 안 튼튼. 불만.”
“어차피 유인만 하면 돼.”
쿤이 재차 말 하자, 아도란이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골렘을 내밀었다.
관절이 있고, 구동 역학 형태가 제대로 잡혀 있었다. 내구성이야 흙과 돌 따위니 기대하기 어렵지만 일단 움직이는 것 자체는 가능해보였다. 쿤이 망령제어를 사용해서 흙 골렘을 움직여 봤다.
덜컥덜컥 몸이 흔들리고 이내 중심을 잡고 섰다.
전부 다섯. 오면서 준비했던 천 후드를 머리위로 덮어 두니 그럴듯해 보였다. 일단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다 보니 분위기가 으스스했다. 적을 유인하기에는 적당한 느낌이었다.
“루루.”
“준비 됐어요.”
불꽃이 둥글게 맺혀서 루루의 손 위로 떠올랐다.
천천히 거리를 늘려가며 일행이 있는 곳에서 멀어져 갔다. 유인책이 시작되면 바로 불꽃을 던져서 상대를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후우. 둘 다 바짝 붙어서 따라와. 아도란, 오늘 사용 할 수 있는 마법은?”
“빙판. 벌레 소환.”
“흠. 이번에는 쓸 만 하군. 싸움이 시작되면 기사단을 목표로 사용해. 후일을 생각하면 피해를 줄이는 게 좋겠지만……아니다. 신경 쓰지 마. 우리 목숨이 먼저지.”
어차피 반역의 무리 혹은, 가담하지 않은 무리가 될 형편이다.
힘껏 싸우고 난 다음에 목소리 내기에는 쿤 쪽이 더 유리하다. 그렇다면 남의 사정 봐 주면서 움직일 이유가 없다.
‘융은 없는 건가? 다행이군.’
출발 당시 기사만 움직이는 것을 봤던 터라 배제하기는 했는데, 역시 신경 쓰이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행렬에는 융의 모습이 없다. 그렇다고 후드를 뒤집어 쓴 이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는 첫 예상대로 분지 마을에 남아있는 것 같다. 가장 두려워 하던 적이 빠진 것이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후우. 그럼 준비하자고.”
끼릭. 끼릭.
흙 골렘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행렬 앞쪽으로 가로질러 가는 방향.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조작이 부담스러워 지기는 하지만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조우까지는 이제 촌각.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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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색 독수리를 박아 넣은 깃발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광택이 흐르는 갑옷과, 자주색으로 수를 놓은 망토가 그 아래에서 함께 어울렸다. 기사단.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투구의 아래로 보이는 것은 굳건한 눈빛이었다. 적이라면 가차 없이 양단해 버릴 사나운 기세가 그 안에서 꿈틀거렸다.
“……음!?”
그런 기사단의 앞으로 황갈색 거적때기를 뒤집어 쓴 무리가 나타났다.
선두의 기사단원이 손을 들어 행렬을 정지시킨 뒤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에일 듯 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냐!? 신원을 밝혀라!!”
기사단의 선두는 목소리를 보고 뽑는 것일까.
추상같은 그 음성에는 전장이라도 떨쳐 보낼 듯 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요지부동. 거적때기를 뒤집어 쓴 상태로 천천히 무리로 다가왔다.
“경고한다! 더 이상 다가오면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겠다.”
다시 한 번 경고가 내렸다.
보통이라면 이 정도에서 멈춰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상대는 멈춤 없이 계속 다가왔다. 외치던 기사단원을 제외한 다른 이들도 즉시 무기를 뽑아 들었다. 성난 기세가 파도처럼 몰아쳤다.
끼릭—!
그때, 선두에 있던 거적때기 무리 중 하나가 무언가를 던졌다.
녹색 액체가 담긴 병. 투척 무기라 판단한 기사단원 중 하나가 이를 허공에서 베어냈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안개 같은 것이 주변으로 퍼졌다.
“독이다!!”
“선두는 적을 격파하라!! 나머지는 대열을 지켜!!”
“천으로 입을 막아! 호흡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해라!”
선두의 기사들이 앞으로 튀어나오고, 나머지는 입을 막으며 간격을 지켰다. 기사단 중 대략 열 명 정도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콰콰쾅!!!!
쾅!! 쾅!!
“뭐, 뭐야!?”
“적이다!! 후방에도 적이 있다!!”
“젠장, 양동작전인가!? 릭, 토마스! 대열을 나눠서 후열을 지켜라! 나머지는 움직이지 마! 대열을 유지해라!”
“대장, 대열이 너무 얇습니다! 안쪽으로 뭉치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안 된다! 최대한 밖에서 적을 요격한다!!”
빛나는 갑옷의 메르한이 거칠게 외쳤다.
기사단이 만든 원형의 대열은 중앙 행렬과 가리가 꽤 있다. 넓게 분포한 만큼 방어선이 얇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사단원 중 하나가 이를 지적했지만 메르한은 무시했다. 그에게는 안으로 좁힐 수 없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로군.”
“준비는 다 됐겠지?”
“후우. 후우. 준비 됐어요!”
“여, 열심히 뛰어 볼게요.”
“아도란. 잘 뜀.”
그 사이 대열의 측면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쿤 일행이다. 골렘으로 선두를 유인, 라라의 불꽃으로 후방을 교란하였다. 얇던 대열은 더 얇아졌고, 일행이 돌파할 만큼의 틈이 나타났다. 필요 한 것은 적에게 포위되기 전에 공왕 무리에 당도하는 것. 그리고 적으로 오인 받아 목이 떨어지기 전에 라라와 루루를 확인시켜 주는 일이다.
“마셔.”
쿤의 말에 일행이 일제히 허리춤의 병을 따 물약을 들이켰다.
[샘솟는 활기]. 지구력을 늘려주는 물약이다. 반나절 정도 지속되며, 효력이 끝날 때는 구토와 어지럼증을 동반한다. 리스크가 좀 있지만, 지금처럼 한 번의 싸움을 대비 할 때는 좋다.
쿤과 세이혼은 [전사의 물약], [짐승의 힘], [체력 재생의 물약]도 마셨다.
셋 다 전투에 도움이 되는 물약들이다.
그리고 쿤은 라라 등에게 걸린 축복을 발동시켰다. 세이혼은 신성한 힘. 신성점수 200이 단번에 날아갔지만 아낄 때가 아니었다.
“달린다.”
대답은 없었다.
쿤과 세이혼. 그리고 골림이 선두에 서서 달렸다. 숨어있던 구릉과 기사단이 만들어 둔 대열 중간에 있는 것은 평지. 달려가는 일행을 가릴 수 있는 방도는 없었다.
“적이다!! 측면에도 적이 있다!!”
“흔들리지 마라!! 대열을 유지하고 적을 격퇴하라!!”
“말에서 내려라! 방패를 들어라! 적의 돌진을 저지하라!”
일행 쪽에 선 기사단원의 숫자는 전부 열.
아직 어느 곳이 진짜인지 판단을 하지 못하여 메르한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때가 기회. 최대한 빠르게 돌파하고 나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쿤이 신성 축복의 대지를 바닥에 깔며, 몸을 가속시켰다.
“지나 갈 수 없다!!”
방패가 거칠게 바람을 때리며 다가왔다.
등에 멜 수 있게 고안된 라운드 실드. 테두리가 금속이고 가운데는 합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화살이나 검. 각종 무기를 막을 수 있게 만들어진 물건이지만, 타격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될 수 있다.
‘머뭇거리지 않는다.’
피하고, 약점을 노린다면 피해 없이 상대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 방패에 저지당하면 전체적인 진행 속도가 떨어 질 수밖에 없다.
쿤이 호흡을 깁게 들이마시고 그대로 아쿤을 방패에 내질렀다.
콰아아앙—!!!
손부터 팔목. 팔꿈치를 지나 어깨까지.
전신이 욱신거릴 정도의 충격이 전해졌다. 악다문 이빨도 삐걱거리며 고통에 동참했다. 하지만 버텼다. 그리고 이겨냈다.
충돌로 반파 된 방패를 기사단원이 놓치고 만 것이다.
빙글빙글 돈 방패가 뒤편으로 처박혔다. 아연한 표정의 기사단원 얼굴이 쿤의 눈에 잡혔다. ‘그래, 믿기지 않겠지.’ 단검으로 방패 파괴술을 쓴다. 자신도 믿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일은 벌어졌고,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비켜라!!”
쿤이 얼빠진 기사단원의 턱을 후려치고는 기울어지는 몸을 밟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검과 방패가 옆으로 날아들었지만, 세이혼이 걷어냈다. 순간적으로 몇 번의 충돌음이 들리고, 기사단원 둘이 옆으로 쓰러졌다.
“이곳으로 집중한다!”
“그럼, 불로 갑니다!!”
쿤이 망령제어를 해제했다.
동시에 루루도 다른 방향의 불공을 해제하고, 앞으로 불을 만들어냈다.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불꽃이 전면을 쓸고 지나갔다. 위력은 대단치 않았지만 불은 그 자체로 두려움을 불러 올 수 있는 도구였다.
“마법사다!!”
“적에 마법사가 있다!!”
혼란스러운 외침.
그렇다면 응당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예의다.
쿤이 손짓을 하니, 거적을 두르고 있던 골렘이 튀어나갔다. 아도란이 심혈을 기율여서 만든 골렘. 이름 붙이기를 게리온. 과거 존재했던 거대 골렘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고, 골렘이다!!”
“젠장! 진짜로 마법사가 있잖아!”
기사단원 중 하나가 골렘과 힘겨루기를 하다 쓰러졌다.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대열이 흐트러졌다. 열 중 일행을 선두에 맞은 건 다섯. 후방과의 거리가 벌어지니 이를 돌파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쿤이 하나, 세이혼이 둘.
그리고 나머지를 골렘과 루루가 처리했다. 순식간에 대열에 구멍이 나고, 공왕 행렬과의 일직선 길이 뚫렸다.
“돌파한다!!”
“막아!!”
쿤과 메르한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작가의 말
천원돌파~
* 오빠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