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은 오두막으로 돌아오자마자 상황을 일행에게 전했다.
암살 시도가 있을 것이고, 융이 등장했다. 라라와 루루는 거의 졸도 할 정도로 놀랐다. 무리도 아니다. 여객선에서 도망 칠 당시 그녀들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이 바로 융이니까.
“어찌 할 생각인가?”
“하나는 공왕을 찾아 미리 알리는 것.”
“정보가 없네. 그런 게 가능했다면 지금까지 고생을 하지 않았겠지.”
“두 번째는 암살 시도를 막고 공왕을 구해내는 것.”
첫 번째는 어차피 쿤도 어렵다고 생각했었다.
아이린의 연락도 닿지 않은 시점. 공왕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고 그 소식만 기다리면서 오두막에서 죽치고 있는 건 어리석은 일.
“하지만 무슨 수로요? 융……융 아저씨가 왔다면서요?”
“언니! 아저씨는 무슨 아저씨야? 우리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라고!”
“진정해 둘 다. 융. 그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나도 잘 알아. 세이혼이라도 일대 일로 상대하는 건 어려울 수 있지.”
“음……”
세이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다. 쿤이 진정하라는 듯 눈짓을 했다.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상대의 전력을 높이 평가해 놓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옳았다. 그래야 만약의 경우를 대비 할 수 있는 거니까.
“상황을 보건데, 융을 비롯한 제국에서 넘어온 전력만이 암살에 동원되는 거 같아. 즉, 우리가 공화국 측 인물들과 싸워야 할 이유는 없다는 거지. 최대한 빠르게 공왕과 접촉하여 너희 둘을 노출하고, 암살을 막으면 그만이야.”
“하지만 쿤 오빠가 들켰다면서요? 방비를 하지 않겠어요?”
“끄응. 그 문제는 할 말이 없겠군. 아마, 하겠지. 하지만 암살 건을 뒤로 미루기는 힘들 거야. 타이밍과 기회를 놓치면 모두 허사가 되기 쉬우니까. 내 생각에는 강행 하리라 봐.”
특히, 융의 태도로 볼 때 심증이 굳어진다.
쉔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승심과, 자신감. 계획을 물리고, 다른 방법을 짤 만 한 성격은 아닌 거 같았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를 했으면 하는가?”
“방법이야 차차 생각을 해 봐야지. 지금은 일단……”
“일단?”
아도란이 고개를 기울였다.
쿤이 그 너머로 보이는 분지의 저편을 손으로 가리켰다.
“숨어야지.”
정든 집을 버리고.
아쉬움에 속이 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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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즉시 짐을 챙기고 오두막에서 멀어졌다.
마을로 들어선 무리는 침입자를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주변을 수색할 테니 계속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적어도 공왕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몸을 피해 있어야 했다.
다행이라면 분지가 매우 넓다는 점이었다.
마을로 들어온 백 명 남짓한 인원으로는 전부를 수색 할 여력은 안 됐다. 어느 정도는 거리를 벌린 다음에는 그냥 터 잡고 숨었다. 대충 적이 오는 것만 감시 할 수 있다면 분지에서 몸 숨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라면……
“공왕의 도착 시간이겠군.”
“아아. 접근 방향조차 모르는 우리로서는 대비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마을에 접근하면, 공왕보다 앞서서 우리가 습격당할 판이고 말이야.”
“아이린 언니의 편지를 받으면 되지 않을까요?”
“마을에 들리는 상인을 통해서 전한다고 했는데……지금 같은 상황이면 그도 어렵겠지.”
접근한 것이 발각되지 않았으면 기회를 잡아 보겠지만, 지금은 그도 어렵다.
쿤이 연신 혀를 찼다. 융을 발견하는 순간 조금만 더 침착했어도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지금 와서 후회해 봤자 의미 없지.’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잘라냈다.
“눈. 눈으로. 볼 수 있음.”
그때, 아도란이 손을 번쩍 들며 말 했다.
일행이 일제히 그를 바라봤다. 그의 기묘한 언행은 이미 다들 익숙해져 있다. 눈으로 보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그가 말 하면 다른 의미가 있을 가능성이 열 중 아홉은 된다.
쿤이 혹시나 하는 기분으로 물었다.
“눈으로 보다니? 어떤 걸 말이야?”
“비전의 눈. 먼 거리. 볼 수 있음.”
“먼 거리라면……공왕이 접근하는 것도 알 수 있다는 거야?”
“하늘이라면.”
아도란이 하늘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아!’ 쿤이 탄성을 흘렸다. 어떤 의미인지 이해를 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용병일을 하면서 들어 본 적이 있다. 전쟁에서 활약하는 워 메이지 중에 첩보에 능한 자들이 있다고. 그들은 사물에 마법적 눈을 달아 적진을 염탐하기를 즐긴다고 했다. 같은 마법적 능력자가 아니면 탐지가 안 되고, 한 번 걸어두면 별도의 마력 낭비도 없어 매우 유용하다고 하면서.
“하지만 분지 전역을 다 살피려면 꽤나 높은 위치에 달아야 하는데요?”
“아니, 꼭 전부일 필요는 없다. 어차피 들어오는 위치는 정해져 있어. 방위별로 네 곳만 설치 할 수 있다면 접근을 보다 빠르게 알 수 있겠지.”
“높이를 충족시킬 수 있다면. 하늘에 띄울 수 있는 물체가 있나?”
“아! 혹시 물건이 아닌 거에도 부착 할 수 있나요?”
“물건이 아니라면 어떤 거?”
“불꽃이요.”
루루가 손 위로 작은 불공을 만들어 보였다.
아도란이 그 주변으로 빙빙 돌더니, 손뼉을 짝하고 쳤다. 그러자 보라색 빛이 동글게 말려서는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불꽃 표면에 보라색 눈동자가 만들어졌다.
“억. 이건 좀 비위 상하게 생겼는데요?”
“불 눈. 불 눈.”
“정신 사나워. 루루, 몇 개 까지 가능하겠어? 하늘 위로 띄운다는 것도 고려해서 말 해 봐.”
“음~두 개 까지는 될 거 같아요. 계속 유지한다는 가정을 하면요.”
“두개라. 아무리 날짜가 어긋나도 하루 이틀일 테니까, 앞뒤로 사나흘 정도인가. 너 혼자는 무리겠군.”
기념행사니 낮에 도착한다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전날 와서 여장을 풀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즉, 불꽃을 하루 종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 루루 혼자서는 감당 할 수 없다.
“그럼, 내가 망령제어로 다른 쪽을 맡아야겠군.”
하루 종일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마땅한 방법이 없다.
어차피 적합한 시간에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공왕을 맞이하면 일이 어그러지고 만다. 지금은 최대한의 수를 내어 버티는 수밖에.
‘신께서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지만……과한 욕심이겠지?’
하루 한 번의 기도.
마지막으로 얻은 그리자의 파편을 공물로 바치며 빌어 볼 생각이다. 하지만 성물 건으로 지나치게 기대는 것이 잘못 된 자세임을 깨닫고 있어, 치밀어 오르는 욕심은 재빠르게 지워버렸다.
‘그저 작은 행운이라도.’
소박한 생각을 품으며 다음 일들을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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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띄워서 관찰 할 수 있는 거라.”
“왜요? 왜요? 이번에도 보고 온 거죠?”
중얼거리며 물러나는 내게 서율이가 다가왔다.
세주의 스케줄로 게이트로 왔는데, 쉬는 것도 마다하고 이리 다가와서 묻고 있는 중이다. 쿤의 세계라는 것이 꽤나 궁금한 모양이다.
“쿤이 꽤 다급한 상황에 놓였어. 공왕을 만나야 하는데, 시간과 날짜를 정확하게 맞추기 어려운 환경이거든. 마법의 힘으로 관찰 할 수단이 생기기는 했는데……효과를 보려면 하늘 위로 띄워야 할 판이야. 드론이라도 하나 던져주고 싶네.”
“삼촌은 그쪽으로 물건 못 넘겨요?”
“가능하면 이미 총이라도 한 정 구해다가 넘겼겠지. 아쉽게도 이 시스템은 일방통행인 거 같다.”
“불편하네요. 그럼, 뭐 다른 방식으로 도움을 줘야겠네요?”
남은 포인트는 1300.
벨의 상점에서 구입 할 수 있는 물건을 찾아보거나, 가능한 특기나 스킬을 찾는 게 유용 할 거 같다. 공왕이 오는 루트만 미리 알 수 있다면 굳이 이렇게 복잡한 일을 안 해도……
“아!”
“왜요? 뭔가 떠올랐어요?”
“아, 응. 그래. 방금 뭔가 떠올랐다.”
공왕이 오는 루트만 알면 된다.
즉, 공왕의 출발부터 지나온 행적 지를 살피면, 움직이는 동선이 예상 가능해 진다는 의미.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이것이 가능한 인물이 하나 있다.
“아무래도 죠엘 양하고 한 번 더 만나야 할 거 같네.”
“죠엘요? 그 여자는 왜 또 만나요?”
“그녀의 경전이 필요하거든.”
경전에는 아이린의 행적도 적혀 있었다.
쿤을 주인공으로 삼은 거라면 공왕의 움직임도 적혀 있을 확률이 있다. 그걸 확인한 뒤, 다음으로 나타날 장소와 시간을 추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
“내가 알아낸 정보를 어떻게 전하지?”
“정보? 글 같은 걸로 적어서 보내면 안 돼요?”
“글이 되면 내가 고생하겠냐?”
“그럼 뭐 강림 같은 거 안 돼요? 신과 아바타면 기본이잖아요. 그냥 보는 거 말고 의지를 받아라~! 이런 거 좀 해 봐요.”
서율이가 장난스럽게 말 했다.
반달 같이 웃는 것이 적어도 진지한 의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뗑 하면서 종 치는 소리를 들었다.
강림.
그래, 왜 그걸 잊고 있었을까? 그리자를 반쯤 채우고 게이트에 반응했을 당시, 쿤과 접촉을 했었다. 그리고 내 의지를 그에게 전할 수 있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다. 시간과 장소만 지적 할 수 있으면 되니까.
“으핫! 서율아, 네가 날 돕는구나!”
“……!”
기쁜 마음에 서율이를 껴안고 이마에 뽀뽀를 해 줬다.
정말 기특하지 않나? 툭 던진 말로 내 고충을 한 번에 씻어 내 주는 게? 이래서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상의를 해야 하는 거다. 혼자서 끙끙 앓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지 않은가.
“그럼, 일단 죠엘 양부터 만나고 오마. 넌 스케줄 있지? 오는 길에 연락 할 테니까, 있다가 통화하자고.”
“……”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멍하니 서있기만 한다.
설마 허락 없이 껴안았다고 삐진 걸까? 묻고 싶기는 한데, 지금은 빨리 죠엘한테 가서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급하다. 손만 가볍게 흔들어 주고는 돌아서서 빠져나왔다.
진짜 삐진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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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물을 바치고 일어난 쿤은 자신의 몸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약간의 이질감이라 해야 할까. 하푼식 감각수련법이 두 번째 단계에 이르면서 이런 감각적인 부분에 매우 민감했다.
‘망령제어? 아니, 다른 건가? 뭐지, 이 느낌은?’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이나 서성였다.
걷는 것, 뛰는 것. 모두 전과 같은데, 아주 미세하게 어긋난 부분이 계속 느껴졌다. 마치 이빨 사이에 낀 반찬마냥 혀끝으로 건드려도 잘 나오지가 않았다.
쿵. 그러다 쿤이 벽에 부딪혔다.
정확하게는 벽에 걸어 둔 가방. 어지러워서 그랬나? 생각하지만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이끈 것 같은 기분. 얼떨떨한 와중에도 일단 가방을 끌러서 그 안을 열어 봤다.
“지도.”
가장 먼저 들어온 물건이다.
다른 것들이 많았지만 유독 선명하게 다가왔다. 마치 펴 보라고 말 하는 거 같다. 쿤도 이 쯤 되자 단순한 이질감이 아님을 깨우쳤다. 마른 침을 삼키고는 지도를 펼쳐 봤다. 요새를 떠나기 전, 아이린에게 받아 둔 물건이다. 주변 지형이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
눈으로 지도를 쭉 훑었다.
위부터 아래로. 눈이 닿는 지역이 바뀔 때 마다 무언가 약간씩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정답!! 이라고 외치는 것처럼. 중간중간 눈길을 멈추고 그런 부분에 표시를 해 두었다. 점점이 찍은 표시는 부드럽게 이어져 하나의 선을 이루었다.
“이건……공왕의 행적이군.”
시작이 공화국의 수도.
마지막으로 멈춘 곳은 일행이 있는 분지와 열흘 거리에 있는 상업도시 구르칸. 중간에 작은 규모의 마을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오랜 시간 머무를 만 한 장소는 없었다. 기념일 행사를 위해서 움직이는 공왕의 행렬이라면……
“마을 밖에서 미리 대기를 할 수 있다는 얘기잖아?”
탄성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무언가 덜컥하고 흔들리는 느낌과 함께, 몸을 가득 채우던 이질감이 사라졌다. 마치 할 일을 다 했다고 말 하는 듯이.
‘하하……마음을 비우니 오히려 도움을 내려 주시는구나.’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마음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다잡자 그것이 기특하여 이런 상을 내려주신 것이다. 아마도 조금 전의 느낌은 신의 발자취.
쿤이 눈을 감은 채 흩어진 그 잔향을 더듬었다.
“쿤, 오빠. 세이혼 삼촌이 찾아요. 정찰 한 번 띄워보는 게 어떻냐고 하는데요?”
“굳이 힘들게 정찰까지 할 필요가 없어졌다.”
“네……?”
쿤이 성물이 된 아쿤에 입을 맞추며 찾으러 온 루루에게 다가갔다.
동그랗게 뜬 눈동자에 자신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신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까.”
이미 이 싸움은 승리했다.
쿤의 걸음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작가의 말
* 그리자에 채운 양에 따라서 접속 시간이 달라집니다. 컨트롤이 가능한 것은 아니고, 일전과 같이 무의식적인 전달 정도만 가능합니다.
* 메르스가 극성이네요. 다들 건강에 유의하세요. 저도 감기기운이 있어서 외출을 삼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