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추가적으로 확인 할 게 있으면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수고하시네요.”
인사를 건네고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후아. 긴장해서 죽을 뻔 했어요.”
“걱정 할 필요 없다고 그랬지? 돌아가는 길에 점심이나 때우자.”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동락의 죽음으로 나와 서율이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그의 행적을 더듬어 가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 침착하게 출두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나와 서율이가 아는 건 술을 먹고 작은 다툼이 있었던 사실까지. 그가 먼저 자리를 털고 나가버린 뒤로는 모르는 일이었다.
차는 완파. 시체는 완전히 토막이 나서 본래의 모습을 알아 볼 수조차 없게 됐다. 차내 블랙박스와 주변 목격자 진술 위주로 조사를 한다고 하는데, 이야기를 듣자니 결론은 뻔하다고 했다. 취해서 과속을 했고, 끊어진 길로 달려서 나무에 들이받았다. 남 건드리지 않고 혼자 죽은 게 다행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생각했던 대로 일이 풀렸다.
오동락 쪽 집안사람들이 와서 조사를 철저히 해 달라고 이야기를 했다고는 하지만, 가리키는 증거가 뻔하다. 영험한 영매사라도 와서 내가 시체를 조작했다고 증명하지 않는 이상에야 현대의 과학으로는 결론이 나 있는 일이다.
살짝 걱정되는 것은 이 일로 크랙 쪽. 그러니까 이단의 관심을 끌지나 않았을까 하는 우려다. 적은 가까이 두고 보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상대도 나를 돌아본다면 그건 멀어져야 할 상황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죽은 자를 부활시킬 수 있는 게 아닌 이상……일단은 지금의 상황이 최선이라고 해야겠지. 걱정은 그것으로 잘라냈다.
“후.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멀쩡하게 돌아다는 게 마음에 걸려요.”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잖아. 그대로 두었다면 너나 내가 당했을 거야.”
그렇게 차에 타니, 서율이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뭔가 휙휙 지나가서 별 일 아닌듯 넘어갔지만 사람을 죽인 거다. 나야 뭐, 쿤의 경험이 있으니 그렇다 쳐도 여과 없이 그 모습을 본 서율이는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내가 워낙 태평하게 처리하고 있으니 체감하지 못했을 뿐.
어쩌면 개척자라는 부분이 그녀의 정신을 보호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게이트를 사용 할 때 보여 지는 힘의 단면을 보자면 그 양이 적은 건 아니니까.
서율이가 고개를 흔들며 한참을 생각하다, 긴 함숨과 함께 말을 했다.
“알아요. 그래도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그 이단이라는 거. 막 퍼지고 그러면 사람들이 더 변하게 될까요?
“인간의 욕망을 건드리는 거니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아. 결국 마찰이 벌어지고, 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폭주를 하겠지. 만약 상황이 심화되면 몇이나 죽어 나갈지 장담하기 어려워.”
“그렇게 생각하니까 굉장히 무서워요.”
“걱정 마라. 그럴 일 없도록 내가 노력하고 있는 거니까.”
노력으로 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냥 손 놓고 있는 사람보다야 낫다.
적어도 열심히 해 보고, 안 되면 땅이라도 칠 수 있는 거니까.
축 늘어진 서율이의 어깨를 다독였다. 살짝 놀란 듯 하다가 옆으로 기대왔다. 비밀을 공유했기 때문일까 전보다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보다 죠엘과 크리스티나를 완전한 아군으로 끌어들인 마당에 둘도 성물을 건네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 혹시나 오염되어 배신하면 큰일이니까. 남은 그리자의 크기와 정수를 생각하면 조금 부족 할 거 같기도 하다.
조만간 쿤을 보러 가야 할 거 같다.
“농사는 잘 되고 있나 모르겠네.”
“네? 뭐라고 했어요?”
“아무것도 아니다.”
부족 한 거 채우는데 농사부터 생각나다니.
나도 농사꾼이 다 된 모양이다.
#
“오, 오오. 이제 수확 할 수 있는 거예요!?”
쿤은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하루에 한 번. 오두막 부근에 세워 둔 임시 제단에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 신성함에 깊이 감복한 이후에는 한 번도 거르지 않는 행위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시끄러워?”
쿤이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걸어갔다.
허리 위로 올라온 헤그시아 밭 주변에서 라라와 루루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저것들이 수련은 안 하고 뭐하는 거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밭 아래쪽에 세이혼과 아도란의 모습도 보였다.
“쿤, 오빠! 빨리 와 봐요!”
“하루 만에 헤그시아 꽃이라도 핀 거냐? 왜 이렇게 소란이야?”
“와! 바로 맞췄어요! 꽃!!”
“……정말?”
걸음을 조금 더 서둘러 밭에 도착해 보니, 헤그시아의 머리 쪽에 하얗고 작은 꽃이 피어 있었다. 눈송이와도 닮아 있었다. 톡 떼어 손 위에 올려보니 고소한 냄새가 났다. 먹을 수 있어 보였다.
“으아! 쿤, 오빠! 그냥 뜯어 가면 어떻게 해요!?”
“먹을 수 있는지 봐야지.”
“야만인! 그래도 꽃인데 조금은 감상을 해 줘야죠!”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
앙앙 거리는 루루를 밀어내고는 쿤이 헤그시아 주변을 살폈다.
진실의 돋보기로 확인하니, 수확 할 수 있는 시기라고 표시가 됐다. 화전을 하고, 씨앗을 심은 지 정확하게 스무 날이 된 시점이었다. 아무리 루루가 매일같이 생명수를 부었다고 해도 성장이 기가 막힐 정도로 빨랐다.
‘역시 신이 내려주신 이유가 있네.’
보리와 옥수수 등은 이제야 겨우 머리를 내밀고 있으니 확실히 차이가 있다.
쿤이 헤그시아 하나를 뽑아서 알을 털어 보았다.
갈색으로 잘 익어 있었다. 바스락 거리는 껍질을 벗겨 낸 뒤 입 안에 쏙 집어넣었다. 오독오독 씹히는 것이 그냥 먹어도 나름대로 맛이 있었다.
게다가……
[신성점수가 미량 증가했습니다.]
“하하. 이거 재미있군.”
“쿤. 쿤. 왜?”
“먹어 봐라. 신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유를 알 수 있을 거야.”
쿤의 말에 아도란과 라라 등이 냉큼 낱알을 입안에 털어 놓았다.
‘쓰지 않을까?’라며 망설이던 세이혼도 마지못해 하나를 입에 넣었다. 오독오독 소리가 이어졌다.
“아……!”
“이건, 신성력이군요?”
라라가 먼저. 그리고 루루가 반응했다.
헤그시아의 낱알에 들어있는 것은 신성력. 미약한 양이지만, 그녀들은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뒤이어 세이혼과 아도란도 이를 느끼고 각자의 반응을 보여 주었다.
***
헤그시아의 낱알(신성재배)
신성한 대지에서 난 헤그시아의 수확물.
그 기운의 일부를 품고 있다.
***
쿤이 남은 낟알을 털어 놓고는 웃었다.
씨앗을 심고, 일을 하고 그 수확물을 받아드는 모습. 선순환의 고리를 통해서 신성한 힘을 수급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것으로 만들라는 의미였구나!’
성물제작.
공물을 바치고 깨어났을 때, 불쑥 들어와 있어서 의아했었다.
능력을 주는 것은 좋지만, 그리자를 채우는 것이 어찌 가능할지 궁금했던 것이다. 축성지에 올려두어 봤지만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렇다고 신성점수로 이를 채우려 해도 방법을 알 도리가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러던 차에 수확으로 얻은 낱알에 신성한 힘이 서려있음을 깨달았다.
이것이다. 바로 느낌이 왔다. 성물이라는 것은 신성함 그 자체를 대변하는 물건. 하지만 그 의미는 결국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나옴이다.
농부의 삶처럼.
씨앗을 뿌리고, 노동을 하여 수확하다. 이 행위 자체가 가지는 고결함을 깨달으라는 신의 의지를 느끼고 있다.
당연하지 않은가?
뿌리고 거둔다. 균형을 나타내는 것이다. 신의 가르침. 이보다 뚜렷한 증거는 없다. 항상 내려다보고,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신이시여.’
쿤이 조용히 무릎을 꿇고 그 마음에 기도를 올렸다.
오늘 따라 하늘도 맑았다.
#
***
이름 : 쿤 타이 / 서 준경(다섯 번째 단계) 종족 : 인간
칭호 : 이단 심판관(이단에 대한 징벌)
이단 수집가
제약사
힘 : 19 민첩성 : 16
체력 : 22 지능 : 16
스킬 : 맹약-망자의 부탁, 인고의 시간, 상자 소환, 비약제조, 네크로맨시(50), 골렘 제작술, 성물제작
특기 : 중급 생명력, 하급 단검술, 분노(+), 냉정한 사고(집중 사고), 하급 은신, 하급 행운, 하급 화술(+)(고백), 하급 위기 감지, 하급 청력, 중급 체력 단련, 중급 힘 단련, 하급 민첩성 단련(+), 학생의 자세, 정리의 달인, 하급 위압, 하급 요리(+), 하푼식 감각 수련법(1단계), 강화신체, 발굴, 약초꾼의 후각
축복 : 하급 신관의 축복, 하급 상처 치유의 축복(+), 하급 질병 치유의 축복(+)
하급 성기사의 축복, 신성 대지의 축복, 능력의 축복
제단 : 샤타콤, 앙크투, 레스터 요새
신성 점수 : 5300
루루(하급 신관) +
하급 축복 개방 - 50
라라(중급 신관)
개인 스킬 : 치유의 손길
개인 특기 : 약초꾼의 후각
개방 스킬 : 하급 축복 개방 - 50
란(중급 신관)
개인 특기 : 중급 생명력
하급 축복 개방 - 50
세이혼(하급 성기사) +
신성한 힘 개방 - 50
아도란(하급 신관)
하급 축복 개방 - 50
***
성물을 제작하기에 앞서서 상태창을 살폈다.
그 동안 몇 번이나 공물을 바쳤지만 이번에 생긴 성물제작을 제외하고는 바뀐 것이 없다. 점수는 누적되어 5000점을 돌파했음에도 말이다.
‘내가 직접 선택하라는 말이겠지?’
선택해야 할 승급 항목들로 고민을 했더니, 선택의 권한을 내린 것으로 보였다.
쿤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준다면 받는 게 당연하다. 손가락을 두드리며 올려야 할 항목을 골라봤다.
‘일단 전투 관련해서 분노는 반드시 올려야 할 거 같고, 루루와 세이혼의 승급도 당연하겠지. 그럼 다음이 문제인데……축복계열도 전부 올려야 하려나?’
상처치유와 질병치유도 올려두면 좋지만, 조금은 점수를 사용하기 애매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질병 치유의 경우는 정 급하면 그 당시에 점수를 소모하면 그만. 미리 올려 둘 필요성까지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럼 상처 치유만 일단 올릴까?’
그렇게 하면 2000점.
‘아, 민첩도 올려야지. 그럼 2500점인가?’
이렇게 구매를 해도 2800점이 남는다.
질병을 찍어야 하는 경우를 고려해서 500을 남기고, 신성 대지의 축복을 영구히 사용 할 경우. 포인트 소모를 하여 축복을 해야 하는 걸 고려해서 조금 남겨준다고 하면 1500점 정도를 더 사용 할 수 있다.
‘성물제작에 점수가 들어갈지도 모르는구나. 일단은 이 정도만 해 둘까? 아아 화술. 화술도 찍어 둬야지.’
쿤이 상태창의 몇 가지 부분을 조작했다.
루루 등을 승급시키고, 특기를 부여했다. 그녀의 경우는 워낙 성격이 경망스러운 부분이 있어, ‘냉정한 사고’를. 세이혼의 경우는 ‘하급 행운’을 집어넣었다. 기본 능력치를 올릴까도 생각을 해 봤지만, 실력보다 앞서는 것이 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행운을 선택했다.
각각의 경우 스킬을 부여시킬 수 있었지만, 가능한 것들 중에서는 마땅한 게 없었다. 일단 스킬은 공란으로 비워 두고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분노인데……”
분노의 경우는 두 가지로 특기가 분할되어 있었다.
***
분노의 광기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한계 이상의 능력을 발휘시킨다. 마법을 비롯한 정신계열 능력을 모두 무시한다. 단, 분노로 이성을 잃고 적아를 분간하지 못하게 된다. 지속은 시전자의 목숨이 끊기거나, 분노가 가라앉을 때 까지 이어진다.
***
하나는 전형적인 광전사의 능력.
매력적인 부분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적아를 못 가리고 날뛰는 것은 마뜩치 않다. 쿤이 시선을 떼어 다음 것을 확인했다.
***
분노의 질주
활성화된 분노로 신체의 기능이 활성화된다.
일정 분노 이상일 경우 활성화 되며, 돌진 속도가 증가하고 속박 계열에 대한 저항능력이 증가한다.
***
두 번째는 접근을 할 경우 유용한 능력.
상대에 마법사나 주술사가 있을 경우, 아예 접근 자체를 방해 할 수도 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어차피 첫 번째를 마뜩치 않아 했으니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쿤이 분노의 질주를 선택했다.
‘다음은……’
남은 점수는 2300점.
일단은 성물 제작으로 들어갔다.
헤그시아의 낱알에서 느껴지던 성스러운 기운. 그것이 그리자를 채울 수 있다면 성물을 제작 할 수 있다.
쿤이 미리 준비 해 둔 낱알을 곱게 빻아 정화를 한 그리자 위로 뿌렸다. 희미한 빛과 함께 그 힘이 스며드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빈 통을 성스러운 힘으로 채워 성물을 만든다……!’
뭔가 사명감 같은 것까지 느끼며 쿤이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자는 그 동안 누적해 둔 것이 있어서 성물제작에 사용되는 크기 이상을 갖출 수 있었다. 필요 한 것은 그 안을 채우는 신성력.
후드득. 후드득.
쿤이 계속해서 헤그시아의 낱알 가루를 뿌렸다.
힘이 줄기차게 사라졌다. 텅 빈 그리자 안을 채워가는 성스러운 힘. 곧 성물이 되어 눈앞에 나타 날 것 같아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
뿌리고 계속 뿌렸다.
“……”
부족한 거 같아서 왕창 털어 넣었다.
“……뭐야.”
하지만 가지고 온 낱알을 모조리 털어 넣었음에도 그리자의 안은 채워지지가 않았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다. ‘생각보다 많이 필요한 걸까?’ 쿤이 미간을 좁혔다.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밖으로 나갔다. 아직 영글어 있는 낱알은 많았다.
“쿤, 오빠?”
“수확하자.”
그 말을 끝으로 수확이 시작되었다.
꽃이 피고 먹을 수 있게 영글은 것들을 싹 털어서 가루로 만들었다. 얼떨결에 따라왔던 라라가 건네주는 낫을 쥐고는 수확에 동참하게 됐다. ‘어? 어?’ 하며 땀방울을 그렁그렁 달았을 때는 이미 꽃 핀 헤그시아는 전부 수확한 뒤였다.
쿤이 다시금 헤그시아의 가루를 그리자에 뿌렸다.
이번에는 되겠지. 양동이 한 가득 담겨있는 가루라면 물에 불려 스프를 만들어도 한 달은 족히 먹을 양이었다.
“……”
붓고, 부었다.
“……”
석상이 된 것처럼, 그리자 앞에 앉아 계속 부었다.
“……허.”
그 많던 헤그시아 가루는 전부 다 어디로 갔을까?
휑하니 비어버린 양동이의 모습을 보며 쿤이 아연한 얼굴을 했다.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그리자. 수확의 산물은 성물을 위한 씨앗이 되기에는 너무나 미력했다.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나무 둥지를 기둥 삼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독. 오독.
“쿤, 하나 줘?”
아도란이 낱알을 씹으며 다가와 물었다.
쿤이 고개를 푹 숙였다. 화 낼 마음도 안 생겼다. 타버린 재처럼 마음이 휑했다. 어디부터 잘못 된 걸까? 신의 의도는 분명했다. 성물 제작과 꽃 핀 헤그시아. 하지만 결론은 지금처럼 허망한 것.
괜히 바닥만 손으로 두드렸다.
‘너무 쉽게 생각 한 걸까?’
고개를 들고 생각해 봤다.
성물이다. 타 종교를 생각해도 성물은 쉽게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종교를 대변 할 수 있는 물건. 힘은 둘째 치고라도 상징성이라는 것이 가지는 무게는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래. 너무 안일했어.’
스무 날 농사지은 것으로 성물이 뚝딱 만들어진다?
신은 받은 것 이상으로 퍼부어 주는 자비로운 존재인가? 단순히 은총으로 빛나는? 아니다. 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다. 그것이 가르침이다. 스무 날의 농사가 성물과 교환이 되는 거라면 고생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균형의 신. 서 준경 님께서 항상 인도하는 길이다.
‘내가 어리석었어. 그리고 나태했어. 이걸로 안 되면 더 하면 되잖아. 겨우 이 정도에서 허망함을 느끼다니. 예전이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을……’
농사.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이라도 한다.
언제부터 이 정도면 됐다고 손을 놓았는가? 스무 날의 평화가 몸을 나태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쿤이 이를 악다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망령제어]
“일어나라, 농기구들아.”
농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작가의 말
어느 분이 수도에 축성지를 깔자라는 의견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 그걸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물은 계속 흐르고 섞이죠. 힘을 빨아서 성장하는 식물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관련 축복이나 스킬의 등장까지는 효율이 없는 쪽으로 분류했죠 ㅎㅎ
기발한 아이디어나 생각이 있다면 계속 남겨주세요.
적극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슬슬 쿤 쪽도 진행을 할 때가 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