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103화 (103/240)

예전에 자주 가던 술집으로 안내했다.

시외에 위치해 있어서 사람의 눈을 피하기에 적당하다. 허름한 외관에 오동락이 투덜거렸지만 사뿐하게 무시했다. 잘 보이려고 끌고 온 게 아니니까.

“근사한 곳에서 대접을 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어머. 마음 써주시는 게 고맙네요. 하지만 이런 곳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답니다.”

“크흠. 뭐, 그렇기는 하네요. 한적한 곳에서 술 한 잔. 이런 멋을 말 하는 거겠죠?”

서율이가 웃음 비슷한 것으로 때우고는 앞서 들어갔다.

네가 고생이 많구나. 차를 주차시키고, 뒤따라 이동했다. 은색 레인지로버 옆으로 붉은 색 포르쉐. 눈에 팍팍 들어오는 차로 몰고 왔구나.

“해물파전하고, 청주 두병이요.”

익숙하게 주문을 했다.

뭔가 캐내기 위해서는 머리를 알딸딸하게 만드는 것이 편하다. 서율이 옆쪽으로 자리를 잡고는 매니저 답게 테이블을 세팅했다.

“크흠. 뭐, 거기 매니저 아저씨는 차에 가서 대기하면 안 되나?”

“죄송하지만 회사 방침 상 그렇게는 할 수 없겠군요.”

“젊은 사람 노는 곳에 늙은 아저씨가 끼어서 되겠어?”

“사고 치면 책임은 제가 져야 하니까요. 불편하면 그냥 갈까요?”

“아, 그거 참. 서율 씨. 꽤나 깐깐한 사람은 매니저로 두고 있네요.”

“든든한 거죠. 그보다 동락 씨는 거기서 뭐하고 있었어요?”

서율이가 부드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오동락이 나를 힐끔 째려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매니저 대동하고 술 마시는 게 특이한 일도 아닐 테니, 그럭저럭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약속이 있어서 들렀다가……뭐, 돌아가는 길이었죠.”

“여자?”

“하하. 여자는 무슨. 남혁이가 부탁한 물건 좀 전하러 갔다 오는 길이었어요. 아, 그보다 우리 슬슬 말 놓죠? 나이도 비슷한데 계속 올리려니 불편하네.”

“……그래요. 아니, 그래.”

“하하. 역시 말부터 트고 그래야 사람이 빨리 친해지지.”

생긴 건 멀끔한 놈이 조금은 분위기가 가볍다.

비슷한 나이또래의 여자들이라면 껌뻑 죽을지 모르겠지만, 서율이는 조금 다르다. 입 꼬리가 살살 떨리는 게 어지간히 싫은 모양이다. 이런 일 시킨 게 너무 미안해진다.

하지만 시작부터 정보 하나는 얻었다.

차남혁이 부탁한 물건. 그냥 개인적인 일일 수도 있지만, 느낌상 무언가 있을 거 같다. 크랙의. 그것도 이단의 인물에게 시킨 물건이라는 것이 뭘까?

“심부름이라. 의외로 남혁 씨가 동락 오빠를 함부로 굴리나 보네?”

“으, 응?”

“아니, 일전에 만났을 때는 다르게 느꼈거든. 전부 몇 명이었지? 여덟 명? 그 중에서는 그래도 동락 오빠가 제일 윗선에 있는 느낌이었는데.”

서율이가 매우 부드럽게 말을 받아 들어갔다.

슬쩍 차남혁과 비교하며 상대의 속을 긁었다. 한 쪽은 씨. 다른 한 쪽은 오빠. 친밀감에 경중의 두어 편 가르기 함도 잊지 않았다.

이 아가씨가 이런 건 또 어디서 배웠을까?

“큼. 누가 심부름을 했다고 그래. 그냥 부탁이었다고, 부탁. 남혁이가 나한테 뭐 시킬 만 한 입장이 되나? 사실, 크랙에도 제일 늦게 들어온 게 자기면서 말이야.”

“아. 남혁 씨가 제일 늦게 들어왔어?”

“그래. 그래놓고 완장 질은……쯧. 그거만 아니면 쥐뿔도 없는 새끼가.”

“그거?”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어때? 역시 차남혁이나 이진혁보다 내가 낫지?”

“글쎄. 그건 조금 더 봐야 알겠는데?”

‘그거’라. 내가 예상하는 것일까?

상류층 젊은이들 사이에서 문화를 공유하듯이, 차남혁을 중심으로 이단이 도는 것일까? 만약, 게이트 너머에서 이단이 깃든 그리자를 공수해 오는 거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가져와서 선물이라고 덜컥 내어주면 그만이니까.

만약 일찌감치 그런 식으로 이단이 퍼지고 있던 거였다면 내게 불리한 일이 된다. 어디까지 퍼졌는지 가늠하기 어려우니까. 차남혁이 이단의 중추가 맞다면 라이오스로 개척자의 수를 확보하려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래야 이단에 물든 그리자의 수급이 원활해 질 터. 정부와의 거리를 두는 형태가 훨씬 유리하기도 하고.

생각의 폭을 넓히니까 확실히 착착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어요~”

그 사이, 주문해둔 해물 전과 청주가 나왔다.

나는 운전을 해야 하니 빼고, 오동락과 서율이에게 잔을 건넸다.

꼴꼴꼴 거리며 술잔이 채워지고, 천천히 돌았다. 한 잔씩. 잘 익은 해물 파전에 달콤한 청주가 입술을 적셔갔다.

서율이는 술 마시는 속도를 조율하면서도 부드럽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끈질기게 치근대는 오동락과 밀당을 하며 그의 주변사. 특히 크랙에 대한 것을 툭툭 쳐서 물었다. 워낙 자연스러운 질문이라, 오동락은 넙죽넙죽 대답하면서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다.

청주가 한 병, 두 병 비워지고 금세 볼링 핀처럼 모이게 됐다.

“후아. 그래서 말이야. 내가 그 인간한테 그랬거든? 야! L그룹이면 다야!? 시팔, 나도 대림 건설 장남이라고! 우리나라 고층 빌딩 중에 대림 손 안 거쳐 간 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그랬더니, 그 인간이 뭐라고 그러는 줄 알아?”

“뭐라고 그랬는데?”

“그, 그, 그랬어? 어버버하면서 말을 떠는 거 있지? 크하하하하!”

취했네. 허풍이 섞이고, 목소리가 올라가는 걸 보니 확실하게 취했다.

치근덕거리며 수작질 부리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뭐가 좀 더 있나 싶었는데, 술도 약하고 말주변도 별로다. 대림 건설의 장남. 이 간판 하나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별 볼일이 없는 남자다. 뭐, 얼굴이야 그럭저럭 쓸 만하지만.

“와아. 그렇게 확 휘어잡고 있으면, 크랙에서도 다 주도하고 있겠네?”

“그럼! 그럼! 내가 다 주도하고 있지?”

“아~그럼 그거 물어봐도 되겠다. 저번에 보니까 남혁 씨랑 진혁 씨가 뭔가 중요한 일이라면서 소곤거리고 있던데.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 줘서 굉장히 서운했다고. 동락 오빠는 말 해 줄 수 있지?”

“으, 응?”

서율이가 슬쩍 떴다.

오동락의 얼굴이 대번에 굳었다. 모르는 걸까? 하는 짓 보니까, 뭔가 중요한 일을 해도 안 알려줄 거 같기는 한데……

“아, 설마 모르는 거야?”

“아, 아니야! 모르기는. 다 내 머리를 통해서 나가는데, 모를 리가 있나.”

“그럼 뭔데? 나도 이제 곧 크랙에 들어갈 거잖아. 아, 혹시 매니저 삼촌 걱정하는 거야? 걱정 마. 입 무거운 걸로는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니까.”

“크흠. 뭐, 그렇게 말 하면……”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뭔가 비밀스러운 걸 얘기하려는 태도. 정말로 뭔가 아는 걸까? 어쩌면 지나가다 주워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태룡이 알지? 일산 제약 외아들.”

“아, 응. 얼굴 하얗고 안경 낀 남자?”

“그래, 그 놈. 개랑 뭐, 차남혁이랑 이진혁 포함해서 쩌리 몇 놈 해서 뭘 좀 계획했거든.”

“그러니까, 그게 무슨 계획인데?”

“씁. 씁. 그거.”

“……응?”

“씁. 그거. 씁씁하는거.”

뭔가 싶어 보다가, 그의 행동을 보고 알아차렸다.

코로 빨아들이는 시늉. 마약이다. 순간 맥이 탁 풀렸다. 겨우 마약이었는가. 물론, 마약도 큰일이기야 하지만 내가 기대하던 것과는 다르다. 겨우 재벌 2세들의 탈선을 듣고자 이 자리까지 온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괜찮아?”

“걱정은. 법관 집 자제도 있는데, 그게 문제겠냐? 다만 그 뭐냐……”

“응? 뭐가 또 있어?”

“저번에 보니까 혼합에 애를 먹는 거 같더라. 이번에 구해온 것도 아마 거기에 들어 갈 물건일 거야. 결정 형태를 이루지 못하면 반응이 안 된다나 뭐라나.”

자기가 주도했다고 하면서, 결론은 주워들은 내용이다.

마약과 마약에 사용할 재료. 흥미롭지만 크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치부로 생각해서 무기로 쓸 수도 있지만, 그가 말 한 것처럼 법관 자제도 있단다. 법률쪽으로 다가가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무리가 아니다.

돈 있고, 백 있는 그들을 어설프게 건드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쯧. 그걸 꼭 굳이 대량으로 뿌리겠다고. 그냥 우리끼리만 맛 봐도 좋은데 말이야.”

“으, 응. 그렇지……”

“아, 그러고 보니 넌 아직 본 적 없지?”

혼자서 감탄을 하더니 갑자기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설마 마약을 밖으로 들고 다닌단 말인가? 아무리 머리통에 빵구 난 놈들이라고 그래도 그런 짓을 안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자, 이거야. 그럴싸하지?”

“……”

그가 테이블 위에 올려 둔 것은 내 예상을 훌쩍 벗어나 있었다.

검게 빻아진 가루. 작은 유리병 안에 담겨서 조명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보는 순간 치밀어 오른 혐오감. 형태는 달라졌지만 그것이 그리자임은 너무나 분명했다.

마약? 아니다.

그리자를 가루 형태로 만들어서 이단에 대한 영향력을 늘리려는 것이다. 상상도 못 해 본 일이다. 가루 형태로 이단의 힘이 담기는 것은 둘째 치고, 그렇게 뿌리는 게 효과를 발휘 한다는 사실이.

“으, 으음. 동락 오빠 그거 좀 치워주면 안될까요? 보니까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그러네.”

“뭐야, 기껏 보여 줬더니. 뭐, 가끔 그런 애들이 있다고 하더라. 하지만 익숙해지면 이것보다 좋은 것도 없다고. 한 번 하면 다시는 못 잊지.”

씩 웃는 동락의 얼굴에서 묘한 일그러짐을 읽었다.

적어도 현대에서의 이단은 믿음에 대한 영역이 아니었다. 차라리 마약 그 자체와 닮았다. 깊은 곳의 감정을 건드려서 사람을 흔드는 물질.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힘을 확장하고 있었다.

“서율아, 이제 슬슬 일어나자. 너무 늦은 거 같네.”

그렇다면 이놈한테는 더 이상 들을 이야기가 없다.

앞서 말 한 것으로 봐서는 내용도 모르고 심부름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진혁이 가진 것 같은 상징도 없다. 말단으로 부리는 부하 1 정도. 물어봐도 더 이상 나올 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차라리 이 정도에서 끊고 빠지는 것이 낫겠다.

“어이, 어이. 뭘 벌써 간다고 그래? 이렇게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슬슬 단 둘이 진솔하게 이야기를 해 봐야지.”

“아하하. 미안, 오빠. 내일 스케줄이 있어서. 다음에 보자.”

“……뭐? 스케줄? 겨우 그런 변명으로 빠져나가려는 거야?”

“내일 스케줄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취하신 거 같은데, 여기까지 하죠.”

“쯧. 아까부터 짜증나게 하네, 이 새끼. 어이, 좆도 아닌 매니저면 좀 짜져 있어. 왜 자꾸 이렇게 끼어들어!”

쾅—!

내려치는 손에 테이블 위의 젓가락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행이 술집 안에는 우리 일행밖에 없어 시선은 안 받았지만, 카운터에서 졸던 사장이 슬그머니 눈꺼풀을 밀어 올리고 있다.

“적당히 하시죠. 소란 피워봤자 피차 좋을 게 없습니다.”

“캬. 이 새끼가 아까부터 진짜 사람 속을 긁어놓네. 어이, 매니저 양반. 깝치지 말라고. 내가 전화 한 통만 넣으면 너 같은 건 바로 모가지야. 나이를 봐서 대우 해 주면 알아서 기라고. 낄 때 안 낄 때 분간 못하지 말고.”

그가 내 가슴팍을 밀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밀려나지 않았다. 손을 잡고 그대로 힘으로 버텼다. 힘줄까지 세워가며 부들부들 떨어 보지만, 이겨 낼 리가 없다. 내 힘 스텟은 19. 거기다 지금은 속이 부글부글한 것이 분노까지 작동하고 있는 거 같다. 일반인이 이겨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이이!!!”

“서율아, 넌 먼저 차에 가 있어.”

“사, 삼촌 어떻게 하게요?”

“취객은 재워야지. 처리하고 갈 테니까 먼저 가 있어.”

서율이가 우물쭈물 하는 거 같더니, 그대로 몸을 돌렸다.

오동락의 핏대가 더욱 도드라졌다. 눈알에 핏줄까지 세워가며 힘을 주는데, 내가 밀리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은 서율이까지 돌아가고 있는 상황. 악다문 이가 부러질 것처럼 마찰했다.

“비켜, 이 새끼야.”

“취하신 거 같습니다만. 끝까지 매너는 좀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너, 이거 안 놓으면 내일부터 길바닥에 나 앉을 줄 알아!!”

“하, 이거 참.”

그렇게 놔 달라면 놔 주는 수밖에.

잡건 손에 힘을 풀고 무너지는 중심을 따라 아래로 눌렀다. 균형이 무너지며, 오동락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일찍이 주문해 두었던 해물파전. 몇 점 안 남은 그릇 위로 얼굴이 처박혔다.

와당탕……!

무너지는 소리에 가게 주인이 깜짝 놀라서 우리 눈치를 봤다.

“들어가 계세요. 부서진 것들은 모두 변상해 드리겠습니다.”

“겨,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세 배로 변상을 하죠.”

냉큼 방으로 돌아갔다.

뭐, 이번 기회에 내장도 다시 꾸미고 좋은 거지.

“너, 이 새끼가아아아아!!!”

처박혀 있던 오동락이 벌떡 일어나서는 주먹을 휘둘렀다.

권투 좀 한 모양이다. 훅의 모양이 그럴싸하다. 하지만 술 먹고 취해서 난동부리는 취객1 정도에 당할 거라면 쿤에게서 배운 경험과, 그 동안 체육관 다닌 노력이 아깝다. 허리를 빼는 것으로 피하고 목을 가볍게 쳤다.

컥 소리와 함께, 오동락의 몸이 구겨졌다.

“술 먹었으면 얌전히 잠이나 자라. 좋게 술자리하고 이야기 끝났으면 깔끔하게 손 흔들고 갈라지는 게 매너다. 집에서는 그런 걸 안 배우나 보지?”

“커억……컥! 너,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이 지랄인 거냐!?”

“줄기차게 들었다. 대림 건설 장남이라고. 그래, 그쯤 되면 사람이 눈 아래로 보이고 모든 게 하찮더냐?”

재벌가 사람과 시비 터서 좋을 게 없다는 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나라고 생각 없이 이놈과 드잡이 질 하는 건 아니다. [망각초]. 간단하게 말해서 기억을 지워버리는 약초다. 본래 독초로 사용되는 걸로, 앙크투 부족 사람 중 한명이 공물로 바쳤다. 효과인즉, 하루의 기억을 날려버리는 것. 정상적인 사람에게 먹이면 효과가 없지만, 지금처럼 술 취해 인사불성인 인물이라면 즉빵이다.

“이거나 처먹고 잠이나 자라.”

버둥거리는 놈의 주둥이에 약초를 쑤셔 박았다.

상자를 소환하고 냉큼 꺼내는 손동작은 내가 봐도 재빠르다. 이 짓도 하다 보니 늘었나 보다. 컥컥 거리는 놈의 주둥이에 남은 청주를 처박고는 코를 막았다. 꼬륵꼬륵 하다가 전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이건 두고 가야겠지?”

테이블 위에 있는 그리자의 가루가 탐나기는 하지만, 냉큼 챙겨오면 너무 티가 난다. 취해서 대리 불렀다 치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는 게 좋겠지. 때린 거야 뭐, 티 안 나게 했으니 걸릴 위험은 없다.

“아저씨, 여기 대리 좀 불러주세요.”

배상금은 자빠진 놈 카드로 긁으면 되겠지.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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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괜찮아요!?”

차로 돌아오자 서율이가 냉큼 달려 나왔다.

눈 꼬리가 축 처진 것이 꽤나 걱정하게 만든 모양이다. 어른이 되어서 참 못난 짓이다. 괜찮다고 머리를 쓸어 주었다.

“재우고 왔어. 대리 불러서 태우라고 주인아저씨한테 몇 푼 쥐어 줬으니까, 알아서 보낼 거야.”

“와, 와. 그 사람 왜 그런데요? 아무리 취해도 그렇지.”

“인성이 어긋난 놈들이 다 그렇지. 술 먹고 저렇게 난장피우는 놈은 만나면 안 된다. 알았지?”

“확실히……술버릇은 좋은 사람 만나야겠어요.”

그래. 그래야지.

술 취해서 그만……이라는 변명은 개소리에 불과하다. 결국 내재된 인성이 튀어나오는 것에 불과하다. 정, 스스로의 본성을 못 믿을 거라면 술을 자제해야지. 되도 않는 말로 자위하는 것들은 거시기를 잘라 버려야 한다.

“빨리 돌아가자.”

가는 길에 따듯한 차라도 한 잔 사 줘야겠다.

차에 타기위해 문손잡이를 잡고 당겼다.

쾅—!!

그 순간, 갑작스러운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감각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위기감. 다가오는 적의 발걸음. 거친 숨소리와 바람 갈라지는 느낌. 쿤으로 느끼던 것들이다. 자연스럽게 몸을 돌리고 다가오는 무리를 피했다.

콰앙!!

다시 한 번 충돌음.

차 문에 누군가 부딪쳤다. 반걸음 뺀 뒤 살피니, 벌건 얼굴의 오동락이었다. 어떻게? 그는 망각초를 먹이고 재웠다. 한 두시간 내로 일어 날 상태가 절대로 아니었다.

“너……이 새끼!!”

어쨌든, 지금은 생각 할 타이밍이 아닌가 보다.

차문을 밀고 몸을 세운 그의 주먹이 얼굴로 날아왔다. 차 안에 있던 서율이가 비명을 질렀다. 이거 계속해서 안 좋은 모습만 보이네.

손을 비틀어 잡고는 그대로 돌렸다.

합기도에서 나오는 요령이다. 중심을 완전히 빼앗아 힘 따라 돌리니 버티지 못했다. 그대로 바닥에 처박혀서는 꺽 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그냥 잠이나 처 잘 것이지.

“너, 너!! 그아아아!!”

그런데, 한 순간 잡고 있던 손의 힘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첫 만남의 때와 같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이 튕겨나갔다. 얼얼할 정도의 위력. 보통 힘이 아니었다.

“꺄악……!”

서율이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히 싸움 때문에? 아니다. 팔을 쳐내고 몸을 일으키는 오동락의 모습 때문이다. 입고 있던 옷이 찢어지고, 검붉은 돌기 따위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얼굴도 취기로 인한 홍조가 아닌, 말라붙은 페인트 색으로 바뀌었다. 그륵 거리며 입가로 새어나오는 숨은 썩은 하수구 냄새를 풍겼다.

“이단……”

바로 이해했다.

그리자의 가루를 지니고, 이단과 관계가 있음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반응 할 수준임은 솔직히 예상 못 했다. 경비대장이나 벤타의 경우는 본래부터가 투쟁하던 인물들. 게다가 둘 다 종교가 이단에 의해 잠식당하여, 잘못된 믿음을 가지던 경우다. 단지 마약처럼 그리자를 다루는 오동락의 경우와는 달랐다.

단순히 약처럼 다루어도, 이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니……

망각초를 무시하고 일어 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인 거 같다.

“캬아악!! 캬악! 카르르륵!!!”

오동락이 머리를 마구 흔들며 괴성을 토해냈다.

말이 안 맺히고, 눈에 초점이 없다. 경비대장이나 벤타와는 다른 부분이다. 그들은 모습을 바꾸었을 지언즉 적을 정확하게 인식했다. 지금처럼 맛 간 짐승의 모습이 아니라.

찌잉—!

아찔한 느낌.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머리 위로 날카로운 손톱이 스쳐갔다. 가가각. 레인지로버 표면이 긁히고 불꽃이 튀었다. 썩을 놈. 내 애마를 건드려?

원, 투. 스텝을 밟으며 안면을 후려쳤다.

턱이 돌아가고 몸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이내 중심을 잡고 다시 손톱을 휘둘렀다. 제대로 된 데미지가 안 들어간 것이다.

“삼촌, 조심해요!!”

“캬륵!?”

“……아!”

서율이가 깜짝 놀라 외쳤다.

그리고 오동락이 반응했다. 이런……속으로 혀를 찼다. 여주인공이 주인공을 부르다 위기를 초래하는 건 영화속에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놀란 그녀의 반응은 당연한 거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좋지 못하다.

콰르륵. 거친 손톱이 차문을 긁었다.

당장이라도 서율이를 꺼내서 씹어 먹을 듯 흉흉한 모습이었다. 곤란하다. 지금의 나는 블루 비도 없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 손으로 결착을 내야 하는 상황.

내가 할 수 있을까?

쿤이 아닌 내가? 아무리 그의 능력을 공유하고 있다 해도 과연 할 수 있을까?

“꺄아아악!!”

젠장.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야 하는 문제다.

눈앞에 있는 여자 하나 못 구하는데, 신이라 자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여기서는 다른 가치를 따질 필요가 없다.

한다. 그러니까……

“네 상대는 여기다, 머저리!”

싸움을.

후려친 주먹에 오동락이 고개를 돌렸다.

※작가의 말

나는 한다 싸움을.

나는 바란다 댓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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