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은 앞장서서 걸었다.
망령의 기억과는 주변 배경이 조금 달라져 있기는 했지만, 방향 정도는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 특히, 큰 바위나 오래된 나무 둥치. 수십 년 정도는 우습게 여길 만 한 자연의 산물들이 방향타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길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보물. 어디?”
“거의 다 온 거 같다. 만약의 경우에 쓸 만 한 마법은 있어?”
“음. 음. 화산 폭발. 유성 낙하.”
“……농담이지?”
아도란이 빙글빙글 돌았다.
확, 걷어찰까? 쿤이 미간을 좁히며 생각했지만, 그래봐야 또 사라질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치매 걸린 노인과 싸워서 남을 게 뭐가 있겠는가. 그냥 무시하고 걸음을 서둘렀다. 빙빙 돌던 아도란이 멀어지는 쿤을 발견하고는 종종 걸어 따라왔다.
“……음?”
그렇게 기억을 따라 한 시간 가량을 걸었다.
숲 속 전경이 계속 지나가고, 봤던 거 같은 돌들이 계속 눈에 밟혔다. 빙빙 돌지도 않고 한 길로 쭉 걸었는데 말이다.
감각법으로 투사를 해 봤지만, 미묘한 이질감만 잡힐 뿐 명확하게 알기가 어려웠다. 이대로 계속 걸을까? 고민을 하다, 아도란을 돌아봤다. 치매 걸린 마법사이지만, 그래도 특별한 무언가를 찾는 데는 그가 나을 거 같았다.
“아도란. 주변에 뭔가 있나? 같은 길만 계속 나온다.”
“빙빙. 돌아. 돌았어.”
“농담 말고. 뭔가 있는 거냐?”
“마법. 마법의 흔적.”
“마법의 흔적이 있다고? 그런 게 있었다면 진즉 말 했어야지.”
“쿤. 안 물어봤어.”
이 정도 대답은 예상했었다.
아도란은 마치 아이와 같다. 신비와 흥밋거리를 찾아 움직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목숨도 대수롭지 않게 던진다. 마법사가 원래 이런 존재인가 싶지만, 특징을 이해하면 다룰 수 있는 방법도 존재한다.
“해체해 봐. 안쪽에 재미있는 게 있을 거 같으니.”
“재미. 정말?”
“망령의 마지막 말을 쫓아서 온 거니까. 보고 싶지 않은 거야?”
“아도란. 보고 싶어.”
따악. 녹색 불이 사방으로 번져갔다.
동시에 작은 일렁임이 공간을 흔들었다. 조금 전까지 있던 바위와 나무 등이 사라지고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오두막이 하나 나타났다.
“역시 마법이라 이건가.”
쿤이 잠시 서서 생각했다.
만약 일행이 머물고 있는 오두막의 주인이 마법사의 보물을 본 뒤에 상처입어 죽은 거라면 더 이상 나가는 게 위험할 수도 있다. 주인 없이 떨어진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은 분명 차이가 있는 거니까.
게다가 대상이 마법사라면?
어린아이 같은 아도란만 보고 넘겨짚을 부분이 아니다. 괴이한 마법들이 날아 들 수도 있는 것이다.
“안 가? 오두막.”
“잠깐 있어 봐. 만약, 마법사가 남아 있다면 위험 할 수도 있어.”
“없어. 안에. 아무도.”
“아무도 없다고? 그건 어떻게 알아?”
“마법사. 영역. 흔적. 지워짐.”
아도란이 팔을 휘휘 저으며 설명했다.
마법사는 무언가 고유의 영역이 있고, 그 흔적이 안 보인다는 말은 떠나고 없다는 말. 쿤이 오두막과 아도란을 번갈아 살폈다. 조금 머리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아도란도 마법사. 그것도 악명이 자자한 마법사다. 적어도 같은 마법사간의 이야기는 확실한 것을 말했을 거 같다.
‘조심스레 살펴보고, 이상하면 튀자.’
쿤이 결정을 내리고 오두막으로 다가갔다.
겉에서 보기에는 평범했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고는 문을 열었다. 마법사의 함정 등을 경계하고 있었는데, 아무 일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환영마법을 너무 과신한 건가?’
오두막 안쪽은 더 평범했다.
살림 도구가 늘어져 있고, 오래된 짐승의 박제 따위가 테이블 위에 장식되어 있었다. 주변에 설치된 마법과는 딱히 관계가 없어 보였다.
“흠.”
“신비? 어디? 어디?”
“정신 사나워. 가만히 있어 봐.”
쿤이 빙빙 도는 아도란의 머리통을 잡아서 세운 뒤 눈을 빛냈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집. 하지만 너무 깔끔했다. 누군가 조금 전까지 살고 있어서 그랬을 확률도 있지만,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 났다. 마치 일부로 꾸며 둔 무대 같다.
“……호오.”
그렇게 오두막을 뒤지던 찰나, 쿤의 눈에 희미한 빛이 잡혔다.
벽 너머에서 새어나오고 있는 거 같았다. 아도란에게 빛이 보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실제로 비춰지는 빛이 아닌, ‘보물’에 반응하는 특기였다. 바로 ‘발굴’. 오두막 저편에 숨겨진 보물의 빛을 감지한 것이다.
‘벽. 이건……물리적으로 숨긴 거군.’
외부는 마법으로, 내부는 물리적으로 숨겼다.
밖의 것을 해체하고 들어온 사람이라면 안에서도 마법적인 것을 탐지하려 할 터. 이 중의 트릭은 보물을 숨기기에 적당한 수법이었다. 하지만 쿤이 가진 발굴 특기는 그런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곳이군.”
박제되어 있던 새의 머리통을 옆으로 돌렸다.
그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벽난로가 빙글 돌았다. 안쪽으로 이어지는 통로. 밖에서 볼 때는 티가 나지 않는, 굉장히 기묘한 위치로 이어져 있었다. 쿤이 배낭에서 횃불을 꺼내 불을 붙이고는 앞장섰다.
“보물! 보물!”
신나라 떠드는 아도란과 같이, 그의 심장도 거세게 뛰고 있었다.
#
통로는 제법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이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규모가 상당했다. 아래로는 문까지 달린 방들이 통로 주변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식량만 충분히 비축해 둔다면 몇 달이고 아래에서 버틸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나저나 이 보물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반짝이는 빛을 따라서 왔으니 당장이라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멀었다. 긴 실을 연결 한 것처럼, 빛이 계속 이어졌다. 얼마나 대단한 걸 주려고 이렇게 사람을 이끌고 가는 것일까.
쿤이 속마음을 숨긴 채 계속 걸었다.
“음? 음!”
그때, 아도란이 갑자기 걸음을 세웠다.
그리고는 머리를 휙휙 흔들며 무언가를 찾는 시늉을 했다. ‘마법인가?’ 쿤이 경계하며 블루 비를 뽑아 들었다.
“냄새. 익숙한 거.”
“익숙한 냄새가 난다고? 어떤 냄새?”
“아. 음. 사람. 응. 친한 사람.”
친한 사람? 같은 마법사 동료의 냄새라도 맡은 걸까?
킁킁 거리는 아도란을 둔 채 쿤이 주변으로 시선을 넓게 펼쳤다. 너무 어두워 횃불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렁이는 그림자가 벽 너머로 투영되는 거 같았다.
“아……! 저게 보물이로군!”
그러다 구석에 쌓인 돌무더기를 발견했다.
흙과 돌조각으로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었는데, 희미한 빛이 그 안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전설의 검으로는 안 보이지만, 그래도 마법사가 남긴 물건이면 분명 고가의 것일 터.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느끼며 쿤이 돌무더기 앞으로 다가갔다.
“아도란. 마법적 함정이나 그런 건 없어?”
물론, 주의하는 건 잊지 않았다.
“음. 음. 없는……듯?”
“대답이 뭔가 미묘하다? 확실하게 알 수 없어?”
“미묘.”
하지만 이래서야 대응하기가 어렵다.
보물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그냥 포기하고 가야 하는 걸까. 생각 없는 모험가라면 덥석 잡았겠지만, 신중함보다 탐욕이 앞서는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보아 온 쿤은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윙……!!
그렇게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던 찰나, 갑자기 주변 공간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쿤이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무언가 이상이 생긴 것이다. 혹시 아도란이? 옆을 돌아봤지만 그도 영문을 모르는 듯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다.
“아.”
그러다, 진동이 단순히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품속에서도 진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황급히 안주머니 담아 둔 물건을 꺼내보니, 무엇이 떨고 있는지를 확인 할 수 있었다.
‘파편이……’
베사미어가 심어 두었던 심벌의 파편과, 아도란이 건넸던 검은 바위의 파편. 이것들이 희미한 빛을 내면서 떨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 공간에 검은 돌. 혹은 이단과 관계 된 물건이 있다는 걸까?
그우우우우……
하지만 고민 할 시간은 없었다.
잘게 떨던 돌무더기가 형태를 갖추며 일어났기 때문이다. 팔과 다리. 머리까지 달려서, 마치 인간과 같은 형태였다. 하지만 얼굴이 없고, 몸은 돌로 이루어진 상태. 쿤도 이러한 생명체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있다.
먼 옛날. 마법사들이 전장을 뒤흔들었던 시대에 활약하던 병기.
“골렘!!”
그우우우우!!!!!
대답이라도 하듯.
골렘이 울음을 토해내며 쿤에게 달려들었다.
#
골렘이 전쟁병기로 사용되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튼튼해서. 검과 창이 잘 들어가지 않고, 대형 투석 병기에 맞아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는 내구성이 있었다.
두 번째는 공포가 없어서.
골렘은 마법사가 남겨 둔 사념에 의해서 움직이며, 명령에 해당하는 일이라면 아무런 공포도 없이 일을 처리한다. 1만의 적이건, 10만의 적이건 두려움 없이 뛰어드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골렘의 숫자가 국가 전력을 가르는 척도가 된 적도 있으니, 그 위력을 짐작 할 수 있다.
‘이건 좀 작지만……그래서 더 무섭군.’
문헌에 남아있는 골렘의 크기는 작은 것이 3미터. 큰 것은 10미터 이상의 것도 존재했다.
반면, 지금 쿤 앞에 있는 것은 2미터 남짓. 확실히 문헌의 기록보다는 작지만, 그만큼 빠르고 날렵한 면이 있었다.
콰쾅—!
지금과 같이.
쿤이 골렘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바닥을 굴렀다. 감각법으로 공격의 궤적을 읽었지만 여유롭게 피할 수가 없었다.
“아도란!!”
쿤이 아도란의 이름을 외치며 다시 한 번 몸을 튕겼다.
바닥이 부서지고 돌주먹이 그 위로 틀어박혔다. 맞으면 즉사다. 저건 단련한 육체의 내구성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물약 먹을 틈이라도 있었다면……’
생명체는 호흡이라는 것이 있어, 격렬한 전투 중에도 물약을 뽑아서 먹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골렘은 다르다. 그들은 생각도, 호흡도 없다. 맹렬하게 달려들 뿐이다.
“크윽!!”
쿤이 연신 뒤로 물러났다.
블루 비로 간신히 공격을 흘리지만 힘의 차이가 크다. 몸이 뒤로 밀려서 벽에 처박히고, 그 위로 무쇠같은 주먹이 날아들었다. 황급히 피하지만, 쉴 틈도 없이 다시 두꺼운 다리가 날아들었다.
격식도, 도리도 없는 공격이지만 망설임 없는 주먹질은 그 이상의 무서움이 있다.
호흡의 틈이나, 패턴.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는 것 등이 불가능했다. 아주 단순하게 골렘보다 빠르고 강하지 않으면 그 공격을 벗어 날 수가 없었다.
“βάλτος”
그 순간, 아도란의 주문이 들려왔다.
의미는 모르겠지만, 녹색 물결이 출렁인다 싶더니 골렘의 동작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발과 허리. 몸 구석구석에 끈적끈적한 액체가 덮여 있었다. 적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마법이었다.
“잘 했어!”
힘껏 외치고는 냉큼 물약을 꺼내서 마셨다.
[전사의 용기], [짐승의 힘]. 그리고 [가속 물약]이었다.
앞의 둘은 전의를 고양시키고 힘을 불어넣는 물약. 뒤의 것은 이미 한 번 사용해 본 적 있는 신체 반응을 가속시키는 물약이었다.
보통 물약의 효력이라는 것은 강할수록 반작용이 크다.
약은 약사에게.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다. 전투에 사용 할 수 있는 물약들은 고통이나 부작용을 수반하는 것이 대부분. 특히, 순간적으로 효력을 내는 것들이 그 반작용이 크다.
“크으으으……!”
쓰고, 떫고, 아프다.
목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참으며 쿤이 튀어나갔다. 심장박동이 평소보다 빨라지고, 근육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며, 신경의 반응이 수 배로 증가했다.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하게 해 주는 물약의 힘. 하지만 그만큼 몸에 부담이 크다.
‘앓아눕겠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도란의 마법은 믿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언제 또 뭐가 튀어나올지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이 순간에 기회를 잡았다면 승부를 보는 것이 옳다.
그우우우우……!!!
막, 골렘이 녹색 액체를 뜯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흉흉한 기세는 쿤의 몸을 단번에 쪼갤 듯 무섭다. 몸이 찌릿찌릿해 진다. 심장이 터질 듯 박동하고, 예민해진 감각이 홍수 같은 사고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벤다. 벤다. 벤다.’
의식을 일점으로 집중시켰다.
하푼식 감각수련법으로 전해지는 상대의 정보가 총 망라되어 머릿속을 떠다녔다. [정리의 달인]이 이를 집약하고 [냉정한 사고]와 [집중 사고]가 이를 처리했다. 벨 수 있을까? 과연 블루 비로 골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을까?
불가능—
결론이 내려졌다.
블루 비로 골렘을 벤다 하여도 그것은 표면에 불과하다. 치명적인 충격을 중기 위해서는 중추를 찔러야 한다. 골렘을 움직이게 하는 핵. 마법사들이 심어 둔 그들의 에너지 원.
사념은 망자의 목소리와 같다.
[집중 사고]로 이어지는 사고의 해일 속에서 하나의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무의식적인 판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걸 시도하는 것이 옳다.
[망령제어]
눅눅하고 무거운 망령의 기운이 몸을 저미고 지나갔다.
가뜩이나 과부하 걸리는 정보의 홍수에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한 짐 더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눈에 핏발이 섰다. 아마 이대로 오래 버티면 머리가 터져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찾아라.’
마법사는 잔존 사념으로 골렘을 움직인다.
이것은 망자가 남긴 사념의 목소리와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골렘의 안쪽. 핵이라 부를 수 있는 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한다.
“βάλτος”
다시 한 번 아도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골렘의 발치가 녹색으로 물들었다. 덜컥 하고, 중심이 어긋나 머리가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쿤은 봤다.
핵—!
응축했던 힘을 폭발시켰다.
잔득 당겼던 용수철이 튀어나가듯.
블루 비를 첨탑으로 하여 쏘아진 쿤의 일격에 골렘의 머리를 강타했다.
검극이 단단한 돌을 파고들고, 그 안에 깃든 핵을 파괴했다. 충돌한 에너지가 폭발하고, 빛과 충격파를 불러왔다.
콰콰쾅……!!!
쿤이 돌진했던 방향의 반때 쪽으로 튕겨나갔다.
벽에 부딪히고, 그대로 쓰러졌다. 손목부터 어깨까지가 완전히 엇갈린 형태로 부서져 있었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것이다.
“아파?”
아도란이 쪼르륵 다가와 물었다.
‘그래, 이 새끼야.’ 쿤이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이렇게 답을 했다. 아니, 답을 하려고 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다.
그대로 기절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끼절.
휴. 우리 쿤 야케요. 너무 야케요. 보약 피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