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98화 (98/240)

며칠 지나지 않아서 싹이 터오기 시작했다.

물을 때 되어 주고 숲속에서 사는 멧돼지 등이 내려와 귀찮게 구는 걸 막았다. 잡초를 정리하고 고르지 않은 땅을 정리해 주었다. 처음에는 대충 뿌리고 두면 자랄 거 같았는데, 의외로 신경 쓸 구석이 많았다.

그 사이, 세이혼이 분지 중앙에 만들어진 마을에 다녀왔다.

철제 농기구와 울타리를 지을 도구. 몇 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사 왔다. 떠돌다 분지에 정착했다는 말에 사람들이 의아해하기는 했지만, 불필요한 관심은 없었다고 전했다. 떠돌다 정착하는 사람들이 희귀한 일도 아니고, 굳이 남 일에 신경 쓸 만큼 오지랖 넓은 인물도 없었다.

루루는 정령사의 능력과 몸 쓰는 법을 연마하고, 라라는 물약 제조를 이어가며 약초를 찾아서 헤맸다. 세이혼과 쿤도 나름대로의 일로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바빴다. 그러다 보니 남는 건 아도란. 신비를 쫓아서 왔는데 정착해서 농사를 지어 버리며 딱히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당장 이단과 싸우는 일도 없는 상황.

괜히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것이 하루의 전부였다.

“아도란. 심심.”

오늘도 그렇다.

쿤의 곁에서 기웃거렸는데, 그는 농지 관리하느라 바쁘다. 자잘한 돌이 너무 많다고 투덜거리는 옆에서 바람 마법을 썼다가 괜히 한 소리만 들었다. 도망치듯 빠져나와 루루에게 갔지만 매일 보는 수련만 하고 있다. 잠시 머물러 있다가 라라에게 찾아갔다. 그녀는 좋은 약초를 찾았다고 즐거워했다.

하지만 풀떼기가 아도란에게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는 이내 흥미가 식은 모습으로 오두막을 벗어났다.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분지와 작게 만들어진 숲. 돌 따위가 가득이었다.

“신비. 신비.”

매일같이 뱉는 말을 입에 달고는 계속 그렇게 움직였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시간이란 금과 같고, 무언가를 탐구하기 바쁘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아도란의 모습은 확실히 독특한 것이었다. 너무 많은 걸 알아서 잊어야만 하는 마법사. 그렇게 멋진 표현을 안 쓰자면 치매에 걸린 노인과 비슷했다.

“응? 응?”

그러다 아도란이 오두막 뒤편에서 작은 균열을 발견했다.

땅이 굳고 잡초가 올라오면서 중간 부분이 갈라진 것으로 보였다. 주변 땅과 비슷하지만 살짝 들린 듯 한 모양새가, 조금 이상했다. 표현하자면 새끼 고양이가 숨어 들어간 담요? 불룩 솟은 모양이 흡사했다.

“숨은 거. 신비. 돌. 돌.”

아도란이 맥락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손을 휘저었다.

녹색 빛이 그 손을 따라 흐르더니 천천히 균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덜덜 거리는 소리와 함께 땅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균열이 쩍쩍 갈라지고 그 위로 세워져 잇는 오두막의 균형이 단번에 무너진 것이다.

“뭐, 뭐야!?”

“꺄아아악!!”

“라라!”

삽시간에 난리가 났다.

아도란이 손을 멈추고는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는 슬쩍 옆으로 돌아 오두막 앞쪽의 상황을 살폈다. 쿤이 뛰어오고, 오두막 안의 라라를 구해낸 세이혼이 검을 뽑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아도란이 후드 뒤쪽을 긁적였다.

옆에 한 번. 무너진 균열 한 번. 번갈아 바라 본 뒤에 살금살금 뒤로 물러나, 오두막 근처에 있던 나무 뒤로 숨어들었다.

“아도라아아안!!”

하지만 그 걸음이 전부 나무에 가려지기도 전에 성난 쿤의 목소리가 그를 흔들었다.

아도란은 잊은 듯싶지만, 쿤과 세이혼은 하푼식 감각수련법을 익혔다. 마법사의 마력 유동을 감지하지 못할 리 없다. 결과가 눈에 보일 정도로 뻔 하게 나타났다면 더더욱. 오두막 뒤로 돌아가는 쿤이 아도란부터 찾은 건 당연한 결과였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

“아도란……”

뭔가 우물쭈물하는 말투.

아도란이 잠시 말을 끌었다. 성난 쿤의 얼굴이 바로 앞에 다가와 있고, 팽창한 기세가 흉흉하게 공간을 차지했다.

“아. 저거. 아도란. 발견.”

그때, 그의 눈에 갈라진 균열 아래로 무언가가 보인 모양이다.

황급히 손을 들어 한 쪽 방향을 가리켰다. 쿤이 성난 얼굴을 하다, 손짓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이것도 수작질이면 단텔라온을 두르고 한 판 붙어 볼 생각이었다.

“어?”

헌데, 그 방향에 정말로 무언가 있었다.

쿤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균열 아래쪽으로 보인 건 철로 만들어진 문. 녹이 슬어 상당부분 변색되어 있었지만, 손잡이도 확실히 붙어있는 문이었다.

“무슨 일인가? 괜찮나?”

“쿤 오빠!! 무슨 일이에요?”

“적? 적인가요!?”

이내, 세이혼을 비롯한 이들이 뒤편으로 달려왔다.

“진정해. 적은 아니니까. 아마 아도란이 이 문을 보고 마법을 쓴 거 같다.”

“문이요? 어라? 진짜, 문이네요?”

“아도란이 했어요? 아이 참. 나는 또 적인줄 알았네.”

라라와 루루가 적이 아님에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을 때, 세이혼은 문으로 다가가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흙을 덜어내고 괭이를 가져와 주변을 팠다. 일 미터 남짓한 철제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두막 후면,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와아. 이런 게 있었네요. 전에 살던 사람이 만들어 둔 걸까요?”

“으음. 그럴 수도 있겠지. 지하에서 술이라도 담갔나?”

“나. 아도란. 찾았어.”

그때, 아도란이 불쑥 끼어들었다.

마치 칭찬해 달라고 말 하는 거 같다. 쿤이 어이없어 보다가, 그의 기세가 묘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감지했다. 혼나기 전의 아이라고 해야 할까. 네크로맨시를 익히고 난 뒤부터 묘하게 감각법 이상의 것들을 감지 할 수 있었다.

‘치매에 걸리면 아이처럼 된다고 하던데. 비슷한 건가?’

뭐라 한마디 할까 하다가, 일단은 참기로 마음먹었다.

아도란에게 시선을 떼고는 철문의 손잡이를 손으로 잡았다. 오래되어 뻑뻑하기는 했지만, 잠겨 있지는 않았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이 좌우로 열렸다.

“콜록……! 콜록!”

“아우, 먼지. 얼마나 오랫동안 안 쓴 거야?”

피어오른 먼지에 라라가 잔기침을 토해냈다.

말마따나 먼지가 상당했다. 쿤이 손짓으로 이를 날려버리고는 안을 살폈다. 썩어서 무너진 계단이 아래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척 보니, 물자를 보관하는 창고였다.

“루루, 따라와라.”

“저요?”

“조명.”

“으. 사람을 물건 취급하고.”

쿤이 먼저 내려간 뒤 루루를 받았다. 높이는 얼마 안 됐다. 바닥에 내려선 루루가 불꽃을 만들어 안을 밝혔다. 썩은 가죽 주머니와 곡식 낱알. 오래 된 식기와 나무 상자 등이 보였다. 생활필수품을 챙겨 두었는데, 세월에 못 이겨서 그대로 썩어버린 거 같았다.

‘잠깐만. 떠날 거였으면 다 들고 갔을 텐데? 설마 그렇지 못할 이유라도 있었나?’

사냥꾼이라면 들짐승에 당했을 확률도 있지만, 오두막 안의 모습은 딱히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돌아오지 못할 이유라도 따로 있었던 건가. 의아해 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꺄악!!”

“……!”

그때, 갑작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쿤이 반사적으로 루루를 끌어서 안으며 앞을 경계했다. 감각에서 잡히는 것은 없었다.

“뭐야?”

“해, 해골이요!”

“해골? 하, 참. 겨우 저거에 놀란 거냐?”

“저, 저거라뇨! 얼마나 무서운데요!?”

“판자가 날아다니는 건 안 무섭고?”

“네.”

그렇게 당당하게 말 하면 타박 할 기운이 빠진다.

쿤이 달라붙은 루루의 머리칼을 헝클어 버린 뒤에 떼어냈다. 그리고는 창고 구석에 놓인 해골로 다가갔다. 죽음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듯, 썩어버린 옷 아래로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못 돌아온 게 아니라, 안에서 죽어 버렸군. 상처 입은 채 돌아온 건가?’

바닥이 붉은 것이 당시의 피가 그대로 스며든 것으로 보였다.

옷은 완전히 썩어버린 터라 딱히 무언가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대로 뜯어 낸 뒤에 해골을 집어서 들었다. 루루가 입을 막은 채 기겁을 했다. ‘겁이 많기는.’ 쿤이 픽 웃고는 해골을 이리저리 살폈다. 갈비뼈가 완전히 박살나서 으깨진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적어도 무언가 충격을 받은 뒤 이곳으로 도망 와서 죽은 건 맞는 거 같았다.

“쿤, 오빠 우리도 내려가야 해요?”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다. 오두막 전 주인이 이곳에서 죽은 모양이야. 올라 갈 수 있게 밧줄이나 하나 묶어서 내려. 여기는 나중에 천천히 뒤져보면 될 거 같으니까.”

“네~”

답을 들으며 해골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꾸역꾸역 살고자 기어왔는데, 도와 줄 사람이 없어서 그대로 죽은 사람.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용병일을 할 때의 쿤 역시, 그와 비슷한 것을 많이 경험해 봤으니까. 혼자서 죽어간다는 외로움. 그것은 겪어 본 이가 아니라면 알 수 없다.

‘아. 그러고 보니, 다른 스킬이 있었지.’

그러다 문득 얼마 전에 익힌 네크로맨서의 스킬 중 하나가 떠올랐다.

[망자와의 대화]. 죽은 자를 불러와서 대화하는 능력이다. 오두막의 전 주인이 죽은 뒤 현생에 집착하여 남아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시도 해 볼 만은 했다.

“루루, 잠시 뒤로 물러나 있어라.”

“네, 네? 뭐 하려고요?”

“대화.”

“대화……?”

무언가 안 좋은 기운을 느꼈을까.

루루가 황급히 뒤로 거리를 벌렸다. 쿤은 망설이지 않고 스킬을 발동했다. 해골 주변으로 뿌연 기운이 서리더니, 덜컹덜컹 하는 소리를 냈다.

“꺄, 꺄악!! 해, 해골이 움직여요!!”

“조용히 해. 그러다 너한테 간다.”

“으읍!”

겁이 참 많은 거 같다.

쿤이 입을 틀어막는 루루의 모습에 슬쩍 웃고는 희게 뭉친 빛 덩어리를 바라봤다. 해골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빙빙 돌고만 있었다.

“어이, 이름이 뭐냐.”

[이, 이, 이름. 이름. 나, 나, 나는 테오릭. 테오릭. 너, 너는. 너는 누구?]

“쿤. 이쪽은 루루. 오두막에서 네 해골을 발견했다. 죽은 건 기억하고 있나?”

[주, 주, 죽어? 내, 내가? 난. 나는. 죽은 건가?]

“죽었다. 확실하게.”

[그, 그, 그런가. 죽었군. 나는.]

죽은 망령의 반발심 같은 것을 걱정했지만, 테오릭이라 불린 망자는 의외로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 하지만 그렇게 순순히 인정할 거였다면 어째서 망자로 남아있는 것일까.

쿤이 다시 물었다.

“어째서 남아있는 거지? 한 동안은 오두막을 쓸 거 같아서. 찝찝하기는 싫은데, 그냥 갈 길 가주면 안 되겠나?”

[차, 찾지 못한. 찾지 못한 보물. 아, 아, 안타까워. 그, 그걸 못 보고 죽은 것이.]

“보물? 보물을 찾다가 이 꼴이 됐다는 거냐?”

[아, 아, 아. 안타까워. 보물. 찾지 못한 거이. 아아아아아!! 보물!! 보물!!!!]

집착하던 대상이 드러났음일까. 망령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쿤은 그 상념의 회오리 속에서 몇 가지 단편적인 장면을 읽어 낼 수 있었다. 몇 가지는 처음 보는 것. 하지만 다른 몇 가지는 분명 눈에 익은 것이었다. 오두막의 주변.

[맹약의 등급이 개방되었습니다.]

[스킬 변형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망자의 부탁이 스킬에 추가됩니다.]

“……이건 또 뭐야?”

얼빠진 소리를 내며 스킬을 종료했다.

휘몰아치던 기운이 사라지고 해골도 움직임을 멈췄다. 망자라는 것은 특별한 힘의 연계가 없으면 보통은 이렇게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스킬 변형?’

손등을 두드려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스킬 목록에 올라와 있는 ‘맹약’의 아래쪽으로 ‘망자의 부탁’이라는 스킬이 추가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스킬이 승급 된 적은 없었다. 아니, 애초부터 스킬은 승급되는 건지도 몰랐으니까. 고개를 기울이며 설명을 읽었다.

***

망자의 부탁

집념이 남아있는 망자의 부탁을 들어준다.

성공 시 망령의 힘 일부를 얻을 수 있다. 한 번에 하나의 부탁만을 수락 할 수 있다.

***

망령의 힘?

쿤이 눈매를 좁혔다. 망자와 대화하고 그 힘을 부리는 것은 모두 체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 아니었나? 다른 힘이 추가된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럼 지금 이게……’

아까부터 머릿속에서 깜빡이는 질문이 있다.

도와 줄 거냐, 말 거냐. 힘껏 외치고 사라진 망령에 대한 선택. 그 외침이 부탁으로 남은 것이다. 잠시 고민을 해 봤지만 이왕 뜬 거 받아서 나쁠 건 없어 보였다. 긍정을 누른 뒤 상태창을 닫았다.

‘보물을 찾아주면 된다 이거지.’

쿤이 해골을 근처에 있던 가죽으로 둘둘 동여 맨 뒤 등에 멨다. 지역 분지에서 살던 사냥꾼이 발견한 보물이라고 해 봐야 별 다른 게 있을까 싶지만, 찾아서 나쁠 것은 없다. 혹시 또 아나? 전설의 검이라도 찾을 수 있을지.

“다, 다, 다 끝났어요!?”

“오줌 싼 건 아니지?”

“안 쌌거든요!!”

앙칼지게 답하는 루루에게 한 번 웃어 보인 뒤 손을 잡아 일으켰다.

지리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다리는 풀린 거 같다. 휘청휘청 하는 걸 잡아서 품에 안은 뒤 말했다.

“살이 좀 붙었네.”

퍽.

단련 덕분인지 주먹이 꽤나 매웠다.

#

보물에 대한 걸 말 하니 모두가 흥미를 보였다.

특히 루루와 아도란이 적극적인 자세를 했다. 당장이라도 분지를 다 뒤질 분위기였다. 하지만 오두막을 지키고, 농지를 관리 할 사람도 필요하다. 게다가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세이혼과 쿤은 나뉘어서 움직일 필요성이 있었다.

“그럼 쿤 오빠랑 아도란이랑 둘이서 다녀오세요.”

“언니~! 나도 가고 싶은데!”

“루루야, 넌 세이혼 삼촌이랑 수업 있잖아.”

“하지만……”

“언니 말 들어야지? 자꾸 그러면 약에 수가 꽃잎 안 넣어준다?”

“아, 알았다고. 안 가면 되잖아.”

수가 꽃잎 없이 물약을 만들면 굉장히 쓰다.

루루는 쓴걸 굉장히 못 먹었다. 백 마디 말보다는 수가 꽃 하나가 훨씬 낫다. 라라가 빙긋이 웃고는 쿤을 보며 말했다.

“너무 늦지 않게 오세요. 수련 시간 끝나면 음식 해 놓고 기다릴게요.”

“아……그래. 부탁하지.”

쿤이 조금 어색하게 답을 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라라의 어떤 부분이 굉장히 강하게 느껴졌다. 마치 쿤 없으면 이곳은 내가 책임 진다……이런 느낌이랄까? 분명 세이혼을 두고 감에도 그녀의 그런 눈빛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루루 때문이겠지?’

책임 질 사람이 있으면 항상 성장하는 법이다.

루루가 정령의 힘이라는 독특한 것을 얻게 됐으니, 아마도 책임감을 더 강하게 느끼고 있을 터. 그것이 행동에 드러나는 것일 거다.

적어도 쿤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도란. 준비 끝.”

그렇게 대충 할 일을 일러두고 오두막을 빠져나오니, 아도란이 큼지막한 배낭을 등에 맨 채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은 상기된 기색이다. 말투, 태도. 어둠으로 가려진 얼굴까지. 변한 건 하나도 없었지만, 쿤은 미묘한 차이를 읽을 수 있었다.

“사고 치면 숲에서 그냥 묻어 버린다.”

“아도란. 착해. 말 잘 들어.”

“어련하겠냐. 말하기 전에는 마법 쓰지 말고. 따라와.”

망자에게서 읽은 단편적인 장면은 숲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거꾸로 찾아가면 본래 보물이 있던 위치까지 따라 갈 수 있을 터.

‘보물 사냥인가. 옛날 기억이 나는군.’

엄한 의뢰에 휘말려 신과 만나기 전.

일확천금을 노리며 보물이라는 두 글자에 유적을 헤매던 기억이 떠오른다.

‘뭐, 대부분이 허탕이었지만. 그래도……’

간만에 옛 기억.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느끼며 쿤이 가볍게 웃었다.

보물. 아도란에게 받은 보석이 산만치 쌓여도 그 단어는 심장을 뛰게 하는 힘이 있었다.

바스락.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숲으로 들어갔다.

※작가의 말

개구쟁이 아도란.

12시에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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