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88화 (88/240)

쿤은 잠시 고민하다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구리구리한 냄새가 난다. 일단 수상한 무리의 행보가 어디로 이어지는 지만 확인 할 요량으로 움직였다. 길 주변 인파는 꽤 많았고, 안으로 섞여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느긋이 걸어 행렬의 뒤를 쫓았다.

‘어라? 요새로 가는 게 아니었나?’

선민관이 아프고, 독초의 냄새를 맡았다.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에 요새 방향을 예상했었는데, 현실은 달랐다. 행렬이 향하는 방향은 요새와 멀어지는 쪽. 경작지로 향하고 있었다.

요새 인근 마을과는 다르게 아래쪽으로 갈수록 사람의 숫자가 적어진다.

괜히 더 따라가다가는 들킬 염려가 있었다. 이쯤에서 돌아갈까. 쿤이 표지판에 기대어 선 채 생각했다.

“안 가?”

“……!!”

깜짝 놀란 쿤이 급살 맞은 닭마냥 퍼드득 거리며 뛰었다.

블루 비는 이미 뽑혀서 손에 들려 있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적이 상상하기 어려운 강자라는 의미. 긴장으로 얼굴이 굳었다.

“하하. 하하. 웃겨.”

하지만 그 앞에 있는 건 손뼉 치며 웃는 아도란이었다.

쿤이 대번에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애들 지키라고 했잖아.”

“지켜. 약속.”

“뭐? 무슨 헛소리야. 분명히 말 했을 텐데? 말을 안 들으면 같이 갈 수 없다고.”

“지켜. 진짜. 짜잔~”

아도란의 발밑으로 푸른빛이 어리더니 몸을 두 개로 나뉘어졌다.

분신. 예전에 들어 본 적이 있다. 마법사들은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허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게 바로 그 능력인가 싶었다.

“하. 그럼 여관에 허상을 두고 온 거냐?”

“아니. 여관이 진짜. 여기가 가짜.”

“……여기가 가짜라고?”

“응. 가짜. 안에 없어. 아무것도.”

아도란이 로브를 훌러덩 뒤집었다.

뜬금없이 노출인가 싶었는데, 로브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후드에 어린 검은 어둠을 제외하고 아래는 그냥 빈 공간이었다. 신기하다기 보다는 기괴했다.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다 이런 걸까. 쿤이 고개를 흔들었다.

“됐다. 너랑 싸우느니 루루와 용사 일대기를 토론하는 것이 낫겠어.”

“저거. 안 쫓아가?”

“더 내려가면 인적이 너무 없다. 들킬 위험이 있으니 안 가는 게 좋겠지.”

“이러면?”

위잉. 하얀 빛무리가 쿤의 머리위로 흩날렸다.

철 지난 잎사귀가 떨어지듯 천천히 내려앉더니 작은 빛 무리만 남긴 채 사라졌다. 쿤이 뭔가 싶어 머리와 어깨를 털었지만 이미 사리지고 없었다.

“뭐 한 거야?”

“투명. 안 보여.”

“투명?”

뭔 소린가 해서 손을 들어 보니 정말로 건너편 바닥이 비쳐보였다. 물론, 완전 투명은 아니었다. 희미한 안개라고 해야 할까? 굉장히 묘한 상태였다.

‘마법 인가?’ 쿤이 중얼거리며 지나가던 농부의 앞으로 슥 걸어가 봤다. 툭 부딪혔지만 농부는 고개만 좌우로 돌릴 뿐 코앞에 있는 그를 찾지 못했다. 쿤 자신이 보는 반투명한 상태와는 다르게 상대는 완전히 투명으로 보이는 거 같았다.

“……마법 함부로 쓰면 안 된다면서?”

“마법? 그게 뭔데?”

앓느니 죽지. 모른 체 하는 아도란을 무시하고, 그대로 행렬의 뒤를 쫓았다.

투명 마법까지 걸어 주었으니 기회를 잡아 따라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흠.”

그렇게 농지 방향으로 얼마나 내려갔을까.

행렬은 여러 방향으로 나뉘더니 농가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대화를 대충 들어보니 수확물을 바치라는 내용이었다. 신비롭게 내려와서는 세금 징수인건가. 어쩐지 김빠지는 모습이었다.

“어, 얼마 전에도 징수해 가지 않았습니까? 또 다시 거둬 가면 먹고 살 곡식도 부족해집니다요.”

“수확된 곡식의 오 할을 바쳐라.”

“아니, 얼마 전에도 가져갔으면서 또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세금 징수에 반항하는 것은 중죄다.”

“그런 억지가……”

열 중 다섯은 이런 내용이었다.

과한 징수. 척 봐도 농가의 형편은 매우 안 좋았다. 요새 부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는 행색부터가 달랐다. 정말로 다음 날의 한 끼 조차 걱정해야 할 거 같은 얼굴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검은 로브의 무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기계로 만들어진 것처럼 수확물을 내 놓으라는 말만 반복했다. 징수의 권한이 선민관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행태는 굉장한 월권이었다.

‘아무리 선민관이 병상에 들었다 해도 이 정도까지 월권을 할 수 있나?’

한 쪽이 어긋나는 경우를 대비하여, 의회에서 선출하는 감찰관이 파견된다. 요새 꼴이 이 모양이면 그들이 나서서 중재하는 것이 보통. 하지만 들어와서 지금까지 그런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그만 해, 이 나쁜 놈들아!”

“테, 테로야 안 돼!”

그때, 징수를 당하던 농가에서 채 스물이 안 돼 보이는 청년이 트라이던트를 들고 나와 마구 휘둘렀다. 징수를 견디지 못해서 반발하는 모양이었다.

“항명은 즉각 처분이다.”

“네놈들이 무슨 권한으로!!”

“처분하겠다.”

“아, 안 돼!! 하지 마!”

검은 로브 인물 중 하나가 징이 박힌 철퇴를 뽑아 번개같이 휘둘렀다.

목표는 트라이던트를 든 청년. 어벙한 얼굴로 반응도 못하고 있으니 대번에 머리가 쪼개질 판이었다.

쾅!

그런데, 그때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던 철퇴의 방향이 갑자기 옆으로 틀어졌다. 무거운 철퇴의 끝이 바닥에 처박히고 돌이 옆으로 튀었다. 로브를 뒤집어 쓴 인물이 잠시 가만히 있었다. 공격이 빗나 간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푸욱. 이번에는 트라이던트.

테로라는 이름의 청년이 쥐고 있던 트라이던트가 갑자기 움직여 검은 로브의 인물을 꿰뚫었다. 낡은 날이 배를 관통하고 잠시 퍼덕이던 로브의 인물이 축 늘어졌다.

“어, 어? 뭐야 이거!?”

“테로야 지금 뭐하는 거니!?”

“어, 엄마. 그러니까 이건 나도 잘……”

다시 한 번 트라이던트가 춤추듯 움직였다.

찌르고 찌르고. 어어 하는 사이에 주변에 있던 로브의 인물들이 모두 죽어나갔다. 날 끝에서 핏물이 뚝뚝. 멍하니 이를 든 채 테로가 눈알만 데굴데굴 굴렸다.

“아, 아이고. 이를 어쩌냐!?”

“나, 나도 모르겠어. 그냥 막 몸이 움직였다고. 혹시 나한테 재능이 있는 걸까?”

“재능은 무슨! 이 미친 것아! 교단의 인물들을 이리 죽였으니 우리는 이제 끝난 거야! 다 죽었다고!”

그렇게 난리난리 치더니 어쩔 수 없다며 짐을 꾸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가져갈 것도 없고, 옷가지 몇 개 챙기니 그게 다였다. 모친으로 보이는 여성이 테로를 재촉하고, 이내 농가를 벗어났다.

“갔다.”

“흠.”

쿤이 그림자에서 스며 나오며 헛기침을 했다.

검은 로브를 입은 인물의 공격을 막은 것도, 트라이던트를 조작해서 공격한 것도 전부 쿤의 짓이었다. 투명마법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터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죽지 않았으면 됐지.’

집을 두고 도망가는 처지가 됐기는 하지만, 죽는 것보다야 낫다. 게다가 꾸리던 짐에 은화 몇 개를 집어넣어 두었다. 적어도 한 동안은 배 곪지 않고 이동 할 수 있을 터. 남 일이라 신경 끄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이놈들 말이야……뭔가 이상하다.”

쿤이 짧게 말을 한 뒤 쓰러진 상대의 품을 뒤졌다.

트라이던트의 끝자락을 잡고 상대를 공격했을 때,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다. 감각법으로 전해지는 상대의 기척 자체가 요상한 것도 그렇지만, 무언가 느낌이 생경했다. 로브 자락을 들치고 상처 등을 꼼꼼히 살폈다.

“피가 거의 나지 않았군.”

“인형이다.”

“인형? 아는 게 있나?”

“네크로맨시. 살아난 시체. 장난감.”

“네크로맨시!?”

쿤이 깜짝 놀라며 시체를 다시 바라봤다.

네크로맨시. 그 이름은 알고 있다. 사자를 추종하여, 죽음을 거부하는 행위. 이를 깊게 연구하여 시도하는 자들을 네크로맨서라고 부른다. 오래전, 거대한 사자의 군대가 대륙을 휩쓸고 난 뒤 모든 국가에서 네크로맨시는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상 사장된 학문이자 학파. 이런 곳에서 뜬금없이 그 이름이 나올 거라고는 쿤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이군. 방금 죽었는데도 온기가 전혀 없어.’

다시 천천히 살펴보니 확실히 보통의 인간과는 달랐다.

마치 오래전에 죽은 시체를 다시 살려내어 움직이게 한 것처럼. 차게 식은 피부는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이들 역시 이단일까?’

쿤이 생각을 해 봤다. 신성의 부름을 받은 뒤 만나는 적들이 족족 이단이었다. 어쩌면 이번에도……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돌이켜 보니 이단이라고 하기에는 적대했던 이들에게서 특별한 혐오감은 들지 않았다. 이단 특유의 느낌. 단순하게 네크로맨시라는 점에서 나오는 독특한 혐오감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일단은 좀 빠져있자.”

몸을 뒤져 보았지만 딱히 가져 갈 만 한 것은 없었다.

쿤이 시체를 그대로 둔 채 집밖으로 물러났다.

조금 지나자 다른 농가로 퍼져있던 무리가 이상을 감지하고 찾아왔다. 시체를 발견하고 저들끼리 뭐라뭐라 이야기를 하더니 그대로 우르르 물러났다. 두드러지게 행동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

‘인형이라는 말이 어울리는군.’

보통의 사람이면 현장도 좀 조사해 보고, 주변도 탐문 해 볼 만 한데 그냥 물러나고 있다. 명령에만 따르는 인형. 아도란이 말 한 인형에 딱 어울리는 행동이었다.

‘그보다……’

쿤이 근처에 있던 앙상한 나무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폈다.

네크로맨시를 사용한 인물이 요새에서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고 치자. 그런데 하는 일이 겨우 세금 징수? 이름조차 희귀한 그 존재를 다루면서 하는 일이 너무 소소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당하는 입장에서는 전혀 아니겠지만.

“저기. 저기.”

“음? 뭔가 보여?”

“마력의 흐름. 공포. 죽음.”

아도란이 어느새 쿤의 옆에 위치한 채 이곳저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죽죽 긋는 손을 이어붙이니 어떤 도형을 이루고 있었다. 설명인즉슨, 공포와 죽음의 기운을 퍼뜨려 그것을 특정한 방법에 맞춰서 집약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가혹한 징수는 그냥 수단일 뿐인가?’

쿤이 나무에서 내려와 아도란이 가리킨 지점으로 이동했다.

검게 물든 바닥위로 돌들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굉장히 안 좋은 느낌이 났다. 머리가 울렁거릴 정도.

‘이런 걸 사기라 부르던가? 이교의 느낌과는 다르지만 굉장히 안 좋……응?’

거리를 두고 살피던 쿤이 눈을 빛냈다.

돌로 쌓은 탑 가운데에 무언가 있었다. 근처에 있던 나뭇가지 하나를 가져와 툭툭 쳐 봤다. 헐겁게 쌓아 둔 돌이 무너지고 안에 있는 물건이 밖으로 드러났다.

찌잉……!

그리고 그 순간, 아득할 정도의 혐오감이 쿤의 몸을 때리고 지나갔다.

이는 부인 할 수 없는 이교의 느낌이었다. 진하게 농축해서 뽑아 낸 거 같았다. 구토감이 올라와 고개를 돌리고 심호흡을 해야 했다.

돌탑에서 나온 건 해골 형태로 조각한 석판이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

“신비. 밖의 것. 집약. 안의 것. 증폭. 고리.”

“후우. 네크로맨시와 이교의 기운이 따로 움직인다는 거냐?”

“상생? 고리? 엮임.”

“단순히 이교의 것을 받아들인 게 아니라, 네크로맨시에 응용하고 있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굴락이나 아라콤과는 또 다른 형태임을 추측 할 수 있다.

완전히 받아서 본래의 신앙을 변형시킨 것과는 다르게, 일부만을 수용한 경우. 눈여겨 볼 필요가 있었다.

‘어쨌든 이 빌어먹을 건 부숴야겠군.’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려서 참기가 어렵다.

블루 비를 뽑아 해골과 닮은 상징을 반으로 갈랐다. 작은 저항감이 느껴지고 이내 반으로 갈라져 툭 떨어졌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정수를 획득했습니다.]

“……어?”

쿤이 얼빠진 소리를 흘렸다.

상징을 부셨는데 경험치와 정수라니. 이것들은 이교를 잡아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나? 잘린 상징을 바라보며 눈을 껌뻑였다.

“힘. 흘러 감. 신기.”

“저번에 그 괴물 잡을 때 보지 않았나?”

“응. 또 봐도 신기. 이해 불가. 흥미.”

후드를 깊이 눌러 쓴 음침한 모습으로 나들이 나간 새색시의 어투를 해도 감흥은 없다. 쿤이 아도란을 무시 한 채로 잘린 상징을 살폈다. 검으로 베면서 실린 힘은 모두 정화가 된 건지 별 다른 느낌은 없었다. 혹시 몰라 따로 들고 온 주머니에 쑤셔 박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돌탑으로 상징을 가려 둔 곳은 농가 사이사이로 전부 열 군데나 있었다. 쿤은 전부 돌아다니며 상징을 베어버렸다. 경험치와 정수가 빠르게 쌓였다. 정수는 직접 확인 할 수 없었지만, 신에게 넘어가는 공물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 이것이 누적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좋은 일. 기분 좋게 상징들을 처리했다.

‘슬슬 돌아가야겠군.’

만약을 위해 쫓아갔던 일에 경험치와 정수를 대거 획득했다.

길 가다 금덩이 주운 격.

돌아가는 쿤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작가의 말

여기서 문제!!

지금 이 장면에서 쿤이 한 실수는 무엇일까요? 정답을 말씀하신 분들은 얼굴이 예뻐지는 축복을 내려 드리겠습니다!!

*예약연재. 잘 올라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