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은 아도란에 대한 것을 일행과 상의했다.
마법사라는 존재에 라라 등은 놀라워했고, 세이혼은 걱정했다. 쿤과 같은 걱정을 한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달라붙는 마법사를 떼어 낼 방법은 세이혼 조차 알지 못했다. 신비로 무장한 그들은 검과 육체로 이겨 낼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었으니까.
다행인 것은 아도란이 건넨 마법사의 심장.
쿤과 세이혼은 깊이 상의한 끝에 그것이 정말로 심장이라 결론을 내렸다. 생명의 자취는 쉽게 감출 수 있는 게 아니다. 높은 수준으로 이룩한 세이혼의 감각법에 의거하여, 심장이 정말로 아도란과 연결 돼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목숨까지 내어 주며 쫓아오겠다는 마법사.
떼어 낼 수 없다면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리더인 쿤의 말에 절대로 복종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합류를 인정했다. 그리고 쨍쨍 거리는 아도란의 부탁대로 신관의 위를 내렸다 이로써 다섯의 자리가 모두 차게 됐다. 마법사가 신관이 될 수 있나 싶었지만, 아도란은 태연했다. 손등에 새겨진 문양이 예쁘다며 빙빙 돌기 바빴다.
어쨌든 그렇게 부족에서의 일이 일단락 지어지고, 일행은 다시 출발 할 준비를 마쳤다.
세이혼은 늪을 건널 수 있게 재료를 준비하였고, 라라와 루루는 부족민들을 찾아가며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질 좋은 약초를 다시 한 번 당부했다.
그리고 쿤은, 제단이 세워지는 터에 위치해 다른 이들에게 공물을 바치는 법에 대해서 시범을 보였다. 아도란에게 받은 거대한 보석들. 반짝이는 보석이 빛과 함께 사라지는 광경은 충분히 신앙을 끌어내는 시범이 될 것이다.
“충분하겠지. 흐흐. 충분……흐흐흐.”
어이쿠 웃음이 가시지를 않는군.
체통을 지켜야지. 흠흠.
쿤은 아도란이 건넨 보석 중 일부를 공물로 바쳤고, 이는 예쁘게 포장되어 나에게로 돌아왔다. 가장 큰 루비가 500의 가치. 나머지 자잘한 것들도 가치가 적지 않았다. 누적되는 같은 계통의 물건은 가치가 하락한다지만 그래도 양과 질이 우수하다보니 쌓이는 점수가 만만치 않았다.
일단 지금 획득한 것은 2600점.
아도란의 가입비로 치기에는 충분하다 못해서 넘칠 정도였다. 란이나 라라, 루루는 슬그머니 들어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아주 VIP다.
“크흠. 진정하자. 진정.”
손에 들린 루비를 내려놓고는 뺨을 살짝 때렸다.
쿤과의 접속이 끊어지고 난 뒤 줄기차게 웃었더니 광대가 다 아프다. 멀뚱히 보던 동식이와 남규는 드디어 내가 미쳤다면서 농을 던지기도 했다. 뭐, 여유롭게 받아 주었다. 매일이 오늘만 같다면 내 마음은 하늘과 같이 넓을 테니까.
“그래도 참 기특하단 말이야.”
생각하면 할수록 예쁘다.
쿤은 몰랐겠지만, 그가 시범을 보이기 전에 아도란은 혼자 구석에서 따로 공물을 또 바쳤다. 아마 나름대로의 실험을 하려던 거겠지. 라라 등이 어버버하다가 쿤의 도움으로 공물을 바쳤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신비에 죽고 사는 마법사라 할 만 했다. 덕분에 손톱 만 한 다이아몬드를 공물로 받았으니 뭐라 할 마음은 없다. 결혼 할 때도 이만한 다이아몬드는 본 적이 없는데. 참, 기묘하다 싶다.
[다이아……사파이어 소짜 5개……]
그렇게 실실 웃으며 나머지 자료를 정리했다.
단검이나 동화. 자잘한 공물을 적던 란에 보석을 주르륵 나열하니 어쩐지 모니터도 싱싱해 보인다.
제단이나 검은 바위. 다른 이야기보다 보석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나도 참 속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흐음.”
물론,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쿤이 보여주기 식의 화려한 공물에 신경이 팔려서 중요한 물건을 빼 먹은 것이다. 검은 바위의 파편. 그 물건이 공물로 전달되지 않았다.
쿤의 눈으로 본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해가 안 가는 부분.
이 바로 검은 바위였다. 세이혼의 것과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반응. 한 가지 가정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했다. 하지만 쿤은 그것 대신 보석들을 공물로 바쳤고, 지금은 마땅히 이를 벌 줄 만 한 상황도 아니었다. 만약 그러했다가, 보석을 싫어한다고 생각해서 공물을 멈추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건 피해야 한다.
일단은 쿤을 통해서 안 사실과, 추측되는 정보.
일련의 흐름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정보는 힘. 이렇게 정리를 하다보면 결국 맥락을 짚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우웅……
[죠엘]
그리고 그때.
방정맞은 진동과 함께 전화가 왔다. 안 그래도 그녀에게 연락을 할 생각이었다.
참 시간은 잘 맞추는 거 같다.
정리 된 파일을 저장 한 뒤,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며칠 만에 본 죠엘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전처럼 그 얼굴을 순수하게 감상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엘란의 대사제. 나는 이름도 모르는 신의 대리자 같은 존재였다. 지금은 우군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관계 역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것이다.
“용건이 뭐죠?”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오늘은 크리스티나가 없다. 죠엘 혼자. 예약 된 식당 조명이 은은하게 빛나며 둘 사이를 밝혀 주었다. 얽힌 사연만 없다면 분위기 좋은 데이트라고도 생각 할 수 있을 텐데. 그 점은 조금 아쉽다.
“급하시네요. 와인이라도 한 잔 하면서 얘기 할 수는 없나요?”
“사정이 그리 넉넉지가 않네요. 그보다 전화로는 꽤 급한 용건이 있는 거 같던데. 굳이 제 앞에서 여유를 부리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이 달라졌네요. 뭐, 지금은 그 편이 편하겠지만요.”
그리 말 하며 죠엘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무언가 타이핑 돼 있었다.
[미친 마법사 아도란은 그리자의 일부를 앙크투 부족에서 찾아……]
뒤로는 별 내용이 아니었다.
중요 한 것은 아도란과 그리자라는 단어. 이는 조금 전 보고 온. 쿤이 겪은 일의 일부이다. 이것을 죠엘이 어떻게 알았다는 말인가?
“경전에 새롭게 적힌 내용이에요. 짚이는 부분이 있나요?”
“어느 정도는. 경전을 통해서 이렇게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는 겁니까?”
“때마다 다르다고 해야겠네요.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쿤과 준경 씨의 이름이 경전에서 나오고 부터에요.”
“음.”
경전이라는 것은 설정북. 혹은 로그북의 일종으로 생각된다.
쿤으로 겪는 일이 즉각적으로 기록되어 죠엘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으로 봐서는 경전이 이제야 주요 맥락을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서브 캐릭터의 내용만 줄줄 써 내려가다, 주연의 이야기가 시작 된 것.
다만, 이 경전은 매우 제한적인 물건일 것으로 추측된다.
모든 내용이 다 기술되어 있다면 굳이 나를 찾아 올 이유가 없다. 옛 야사에서 굵직한 이야기만 한 두 줄로 기록한 것처럼, 그녀가 아는 정보라는 것은 단편적인 것에 불과 한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글이 올라오자마자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나를 찾았겠지.
“다른 내용은 없었습니까? 예를 들어……레스터 요새의 선민관이나 장미의 기사 같은.”
“준경 씨가 얻은 정보인가요?”
“비슷해요. 말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나요?”
아는 바를 전부 전할 수 있지만, 내가 쿤과 통하는 방식을 직접적으로 말 하는 건 꺼려진다. 내가 그녀에게 확신이 없듯이, 그녀도 나에게 확신이 없어야 한다. 일단 지금은 다른 내용으로. 쿤이 나아가 방향에 대해서 물었다.
“다른 건 기억나는 부분이 없고, 레스터 요새에 대해서는 한 가지가 떠오르네요.
“레스터 요새? 특별한 거라도 있나요?”
“요새의 선민관이 앓아누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역 민심이 매우 안 좋다고. 경전에 나온 건 두 줄 정도가 전부였어요.”
“그걸 다 기억하고 있는 겁니까?”
“적어도 읽은 부분에 한해서는요.”
경전이 아노스와 연결하는 유일한 매개체라면 그걸 외부로 노출하는 건 어리석다.
지난 정보를 꾸역꾸역 외워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최선. 나와 마찬가지로 죠엘도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보다 선민관이 앓아 누웠다라……’
선민관은 세이혼의 처제.
앞으로 공화국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해 줄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프다는 건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단순히 병일까?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는 어렵다.
‘치유계통 중 하나에 투자를 해야 하는 건가? 축복은 아직 등급이 개방 안 됐고……’
세이혼과의 과거가 어떻든 상처나 질병을 치유해 준다면 행보에 이득을 가져 갈 수 있다. 당장의 상황에 맞춰 특기를 내려주는 것도 좋지만,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사실 최선의 방법. 마침 포인트도 넉넉하니 수단은 꽤 다양 할 거 같았다.
생각을 정리 한 뒤 다시 대화에 집중했다.
“그래서 이 아도란이라는 인물과 그리자라는 물건과 무슨 과계가 있는 거죠? 갑자기 경전에 실릴 정도라면 매우 큰일이라는 이야기인데 말이죠.”
“글쎄요. 저도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등장 자체는 부인 안 하죠. 하지만 정보가 부족해요.”
“준경 씨. 이러기에요? 저는 필요 한 정보를 드렸잖아요.”
“정말입니다. 아직은 등장했다는 사실 밖에는 말 할 것이 없어요. 죠엘 씨처럼 저 역시 마음대로 사건을 조정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좋아요. 이번 한 번 만 믿어 드리죠.”
전부를 털어놓는 건 어리석다.
게다가 아도란의 일은 말 한 것처럼 아직 파악되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 일단은 이 정도 선으로 마무리 늦는 게 좋다. 그녀의 경전이 어떤 방식으로 일을 기록하는지 조금 더 살펴본 뒤, 알려야 할 정보를 정하고 싶다. 치사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오늘 죠엘과 만난 건 다른 용건이다.
“그보다 한 가지 부탁 할 게 있습니다.”
“부탁이요?”
“몇 가지 물건에 대해서 성분 분석을 좀 해 주었으면 하는데요.”
“……어떤 걸 말이죠?”
가지고 온 배낭에서 진공 포장된 약초 꾸러미를 꺼냈다.
이것들은 모두 라라가 공물로 바친 물건들이다. 중급 신관으로 오른 뒤에는 시간이 날 때면 약초를 찾고 그것의 일부로 공물로 바치기를 반복했다. 쿤은 모르고 있었지만 공물을 받는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게 다 뭐죠? 풀?”
“죠엘 씨에게 건넨 동화와 마찬가지로 아노스에서 나고 자란 약초입니다. 그곳에서의 사용되는 역할은 따로 정리를 해 두었으니, 성분 분석을 한 뒤 비교해 주세요. 아노스와 이곳의 차이점을 확인해야 하니까요.”
“아노스의……헌데, 이걸 왜?”
“필요하니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기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차별화 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에요. 조금 더 자세하게 알고 비교하기 위해 부탁을 하는 겁니다.”
생각해 봤다.
개척자를 확보하고 현실에서의 세력을 구축하는 건 분명 준비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한가. 쿤의 세계의 등장하는 이단과 게이트 너머로 보았던 존재들의 관계. 현대에 나눠지는 세력도. 이는 단순히 땅따먹기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했다.
그렇다면 무얼 할까?
총이라도 사서 모을까? 아니면 대포? 전차?
물론, 그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그런 행동을 하는 건 불가능. 그렇다면 적어도 취할 수 있는 행동 중에 이득이 될 만 한 것을 추려야 한다. 그리고 깊이 생각해 본 결과 나는 이것을 택했다.
“일시적인 강장 효과를 가진 것들도 섞여 있어요. 어쩌면 개척자의 피로를 회복시킬 수도 있겠죠. 아니면 접속 시간을 늘려 준다든가.”
“……아!”
“그 외에도 생각하는 것들은 많이 있습니다.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면 가능하겠죠.”
“현대의 물건이 아닌 것으로 개척자에 영향을 준다 이겁니까?”
“개척자만이 아닙니다. 죠엘 씨와 저 같은 이들이 몇이나 있을 거라 보나요?”
“우리가 유일하지는 않겠죠.”
“만약 다른 이들 중에 그 세계의 능력을 사용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경전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었을 텐데. 지금의 우리가 대응 할 수 있을까요?”
죠엘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그녀나 나는 신과 접속하는 방법이 다르다. 즉, 다른 이가 존재했을 때, 그 방법이 지금의 상식선이라는 장담은 누구도 못한다. 말마따나 신이 직접 내려와 아바타처럼 움직인다면 다른 이가 상대가 될까?
적어도 그런 걸 미리 방비하기 위해 이런 준비가 필요하다.
“분석이 완료되면 말 해 주세요.”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약초꾼의 후각을 선택하면서 부터 고려했던 부분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 Lv4로 승급했을 당시 이전과 다른 부분이 개방되었다.
스킬의 습득.
Lv4에서는 특기 말고도 스킬의 습득이 가능했다. 다만 가지 수가 적고 비용이 만만치 않아 대다수의 것들은 포기해야 했다. 그나마 배울 수 있는 것 중에 내 눈길을 잡아 끈 것은 딱 하나.
바로 [비약제조]. 약초를 사용해서 비약을 만들어내는 스킬이다. 습득 포인트는 1000점으로 다른 것들에 비해서 싸다. 마침 약초 관련한 것으로 머리를 쥐어짜고 있으니 딱 적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직 익히지는 않았지만, 설명만으로 몇 가지 구상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지금 죠엘에게 약초의 분석을 요구 한 것도 이 스킬을 염두에 두고 한 일.
힘 포션, 민첩 포션, 체력 포션……
어떤 싸움이 벌어지든, 레벨만큼 중요한 것이 템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장비에 투자하는 것의 1할조차 소모품에 신경 쓰지 않는다. 일단 착용하고 보이는 것이 우선시 되는 거니까. 그건 잘못 돼 있다. 진정한 고수라면 도핑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한다.
라라의 활약으로 앙크투의 사람들은 공물로 약초를 선택하게 될 터.
공급은 일단 나쁘지 않다.
뽑고 갈고 양산해서 돌리는 것이 공대장의 역할.
약초를 분석하여, 양산 할 수 있는 것들은 양산 할 생각이다. 국내가 어려우면 외국의 농장이라도 사서 대규모로 키워버리면 되니까. 물론, 그만큼의 자본력은 필수. 연합을 맺었으니 죠엘의 돈으로 가능하지 않나? 아니, 그건 어리석다. 수중의 것이 아니라면 말 그대로 사상누각.
“아, 그리고 이거……”
쿵. 번쩍이는 루비와 다이아몬드를 테이블 위로 올렸다.
죠엘의 눈이 지금껏 봐 왔던 것 중 가장 크게 뜨였다.
“자본금으로 삼고 싶네요. 처분 해 줄 수 있겠죠?”
“……”
침묵은 긍정으로 여겼다.
고맙다, 아도란.
#
죠엘과의 만남을 끝내고 난 뒤 차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슬슬 미소 강의가 끝날 시간. 끝나고 저녁 먹자는 톡을 남긴 뒤 천천히 차를 몰았다. 아직은 한산한 시간이라 그런지 도로는 막힘없이 뚫려 있었다.
이야기가 잘 끝나서인지 드라이브의 느낌이 썩 괜찮았다.
저녁 식사를 근사한 곳에서 하고 난 다음에는 미소랑 같이 외각으로 한 번 돌아도 괜찮을 거 같다.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미소에게 할애 할 시간은 항상 있다. 그 아이를 위해서 살아남은 목숨에 주객이 전도되어서야 말이 안 된다.
나중에는 서율이나 세주도 같이 부를까?
이왕이면 소향 씨도 부르는 게 좋겠군. 아니, 그럴 거면 남규나 동식이. 서연이까지 전부 불러서 회식을 하는 게 좋겠다.
북적거리며 먹어야 사람 사는 느낌도 나고 그러니까.
“하……예전에는 회식이라면 치를 떨었는데.”
창틀에 팔을 걸치고 불어오는 바람을 얼굴로 맞았다.
참, 환경이 바뀌면 대하는 사람의 태도 역시 바뀌는 게 맞나 보다. 술 상무마냥 탬버린 치며 아부하는 꼴이 싫어 회식에 진저리 치던 내가 사람 모아 북적이며 식사 할 생각을 하다니. 여러 가지 일로 머리가 복잡한 것은 맞지만, 역시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현재가 즐거운 것이 사실이다.
“별 다른 일 없이 이대로 지내는 게 가장 좋을 텐데……”
본심이 혼잣말로 흘러나와 창밖으로 떠내려갔다.
좋은 시절은 한 때라고, 달콤한 것은 항상 흘러내린다. 살면서 그 사실을 잘 깨우치고 있다. 즐거울 때 일해야 불행하지 않게 살 수 있는 법이다. 항상 발을 저어야 우아한 백조의 얼굴을 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사는 게 힘들다고 말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뭐, 복에 겨운 말인가.”
직장에 예쁜 딸에. 남부럽지 않은 돈까지.
이 정도면 누군가 보면 부들부들 떨 만큼 좋은 조건이다. 꽤나 눈이 높아졌구나. 괜히 웃음이 나와 픽 웃었다.
그러던 그 순간—
“어?”
하얀 빛 무리 같은 게 하늘 위에서 뚝 떨어졌다.
착시인가? 눈을 두어 번 깜빡하고, 혹시나 몰라 속도를 조금 줄였다. 잔 떨림 같은 것이 몸을 타고 흘러갔다.
그리고—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과 땅이 뒤바뀌었다.
※작가의 말
짧은 에피입니다.
날이 더워지네요. 엉덩이가 축축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