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대지의 축복. 일대 영역에 축복을 내려서 아군에게 이로운 효과를, 적에게는 해로운 영향을 불러오는 축복이다. 이것을 영구적으로 사용하면 지역을 고정해서 축성지로 만들 수 있다. 뒤틀린 생명체들이 나타나는 것이 검은 바위의 영향이라면 이를 축복의 힘으로 상쇄하는 것이 적합했다.
그리고 쿤의 생각은 그대로 적중했다.
신성 대지의 축복을 사용하는 순간, 일대가 정화됐다. 날뛰던 식물 따위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검게 물들어 있던 토양이 제 빛깔을 찾았다. 대지의 영향력은 오두막을 전부 감싸고도 남으니 밖으로 새어나갈 염려도 없었다.
“정화! 정화~! 신비!”
아도란은 손뼉을 치며 웃었다.
힘을 확인한 것에 기꺼워하는 모습. 쿤이 역성을 내며 따져 물었지만, 그는 빙빙 돌아 허공으로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미친 마법사는 말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허어. 이걸로 된 건가?”
족장은 크게 안도를 했다.
기묘한 생명체들은 척 봐도 위험해 보이는 것들. 이를 사전에 봉쇄한 것이니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이 당연했다. 앞선 전투에 이어서 두 번째. 연달아 신세를 졌다면서 쿤에게 매우 감사를 했다. 못된 마법사의 장난질을 그가 막아 준 것이라 생각하는 듯 보였다.
반은 맞고 반은 아니다.
하지만 쿤은 전부를 설명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도 정체를 잘 모르는 것. 추측을 섞어서 말하기보다는 둘러서 설명하는 것이 나았다.
예를 들어 저주와 신의 축복 같이.
“서 준경?”
경험치가 올라간다.
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도란의 장난질로 신성 점수를 무려 500이나 날렸다. 그 덕분에 바위에서 새어 나오는 기운을 일차적으로 막을 수 있었지만 아까운 건 사실. 좋은 일 했다고 손 털고 가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다.
“아도란은 앞서 봤던 검은 바위를 막고 있던 겁니다. 그 안에 깃들어 있는 건 매우 어둡고 음습한 힘. 단정 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그대로 두었다면 일대를 오염시켜 괴물을 양산했겠죠. 다행히 새어나오는 힘의 파편을 제가 믿는 분의 능력으로 막을 수는 있었지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완벽하지 않다면 또 나올 수 있다는 건가?”
쿤이 자연스레 긍정했다.
거짓말은 양념에 불과하다. 어차피 서로 좋은 일이니, 거리낌도 없었다. 본래 전도라는 건 그렇다. 믿음을 파는 장사. 밑밥 깔고, 좋은 가격으로 흥정하는 건 여타의 장사와 다를 바 없다. ‘서 준경’이라는 이름으로 불안이 희석대고 사람들이 결속된다면 그것이 상품의 가치.
입질이 있다면 살살 당겨야 한다.
“제단을 세우고 공물을 바쳐야 합니다. 지속적인 정성만이 힘을 유지하게 할 수 있죠.”
“제단? 신상이라도 세우라는 건가?”
“그렇게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형태를 이루고 정성을 바칠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신성한 힘을 유지하는 것은 믿음. 그것을 돕는 것이 제단일 뿐이죠.”
“허. 미친 마법사가 불쑥 찾아와 자리를 달라 했을 때부터 이상하다 싶더니, 이게 뭔지……”
족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거의 다 왔다. 조금 더 힘내자.
“아마 마법사의 능력으로 이를 사전에 간파한 거겠죠. 아도란의 상태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일단 마법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저 바위를 아애 없앨 수는 없는 건가?”
“글쎄요. 가능했다면 아도란이 이미 하지 않았을까요?”
“허. 불쑥 튀어나온 바위 하나 때문에 무슨 일이지 모르겠군.”
“불쑥 튀어나와요?”
본래 있던 게 아니었나?
불쑥 나왔다는 말에 쿤이 조금 더 자세히 물었다. 족장이 텁텁한 얼굴을 한 채 설명했다. 검은 바위가 나타난 것은 약 3년 전. 폭풍우가 몰아치고 난 다음 날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마냥. 그리고 바위가 나타난 지 한 달 가량이 되었을 무렵에 아도란이 찾아왔다고 한다. 선대의 약속을 빌미로.
‘그렇다면 검은 바위나 그 안에 깃든 힘 모두가 본래부터 있었던 건 아니로군. 어떤 일을 계기로 그리 되었다는 건데……’
신기한 일이지만 당장 알아 낼 수단은 없다.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 한 번 검은 돌에서 새어나온 힘의 위험성과 제단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다 넘어온 물고기가 찌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괜히 망설이면 툭 치고 도망가 버릴 수 있다. 혼신을 다해 설명했다.
“마법사가 지키던 곳입니다. 그냥 두면 어떻게 될 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까?”
“그렇겠지……?”
족장은 쉬이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자기가 본 것과 마법사의 존재에 조금씩 설득을 당했다. 이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제단. 지금도 은은하게 남아 있는 축정지의 기운은 설득력을 더 해 주었다.
물론, 바탕이 된 것은 화술의 힘.
이번에도 충분한 능력을 발휘해 주었다.
“끄응. 자네 말대로라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군.”
“일단 남은 여파는 신성한 대지로 막아 두었으니 당장의 위험은 없을 겁니다.”
“휴우. 그래야지. 그래서, 그 제단이라는 것은 어찌 세워야 하나?”
[제단 건설이 시작됩니다.]
쿤이 망설임 없이 긍정을 했다.
***
1. 샤타콤(엘본의 본단) : 하급 제단(45일 후 공사 시작)
- 엘본(60%), 아라콤(30%), 서 준경(10%)
- 지역 인구 950 / 신앙지수 0
- 월간 신앙점수 : 0
2. 앙크투 : 하급 제단(0일후 공사 시작)
- 민간 신앙(90%), 서 준경(10%)
- 지역 인구 700 / 신앙지수 0
- 월간 신앙점수 : 0
***
바로 상태가 변화했다.
샤타콤과는 달리 경쟁상대가 민간 신앙이었다. 엘본이나 아라콤과는 달리 개종이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공사 시작 날짜가 바로 당일이다. 늪을 건널 준비를 하는 동안 진척 과정을 살필 수도 있어 보였다.
“형태에 구애받을 필요 없습니다. 의미를 담을 수 있기만 하면 되니까요.”
“의미라. 뭐, 그렇게 말 한다면 제단을 세우일이 크게 어려울 거 같지는 않군. 다만 걸리는 게 있네. 우리는 성정이 제멋대로인 놈들만 모여 있어. 그쪽 신을 믿을지는 미지수라네.”
“그건 곤란한 이야기군요.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신앙이 필요합니다.”
“강제 할 수는 없는 부분이네.”
“흠. 강제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이렇게 하죠. 족장의 권한으로 부족의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아 주십시오.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죠?”
엘본의 무리야 본래 믿는 신앙이 있으니 이를 억지로 바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앙크투의 사람들은 기본적인 토속신앙 말고는 따로 믿는 것이 없다. 신도의 숫자는 신의 힘이고, 그것이 늘어날수록 쿤 자신이 받는 축복 역시 강해짐을 알고 있다.
검은 돌에서 새어나오는 힘을 신성한 대지로 막고, 제단을 세울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잘 차려진 밥상과도 같은 상황. 500이라는 신성점수까지 소모 한 마당에 그냥 제단만 만들고 빠지는 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
‘그 정도야.’ 라고 말 한 족장이 긍정을 하며 멀어졌다.
그 사이로 세이혼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화 내용을 다 들었으니 걱정을 하는 것이다.
“쿤, 어찌 할 생각인가?”
“포교를 해야지. 경비대장, 벤타. 그리고 이번에 만난 검은 바위. 이런 만남들이 전부 우연이라고 생각하나?”
“우연이 아니면?”
“신앙을 짊어진 자의 책무 같은 거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야. 알고 있다면 준비를 하는 것이 현명하겠지.”
“흠.”
의뢰가 꼬이고 제국의 정찰병들에게 쫓겨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서 준경이라는 이름의 신과 만나게 된 것은 어느 한 날의 우연이 아니다. 라라와 루루. 그리고 이어지는 이단과의 조우까지. 일련의 흐름이 있고 의지를 느낄 수 있다. 단순한 보신을 위해 이를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
어느덧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
쿤은 장내로 모인 사람들 중 몸이 불편하고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추렸다. 흔한 약장사의 모습. 대부분이 불신의 눈치를 보냈다. 하지만 훈련하다 베였다는 상처를 흰 빛과 함께 치료하는 모습을 선보인 이후부터는 태도가 달라졌다. 토속신앙은 말 그대로 벽을 보고 기도하는 수준. 제대로 된 신성력의 발현에 동요는 불 번지듯 퍼져갔다.
“오, 오오!! 묵은 상처가 다 나았어!”
“내 허리가! 허리가! 와이프, 일루 와 봐!”
몇 시간 지나지 않았을 무렵, 토속신앙과 ‘서 준경’에 대한 신앙비율은 처음과 거의 거꾸로 역전이 됐다. 8:2. 쿤의 행동을 보았음에도 믿지 않은 자는 고작 열 중 둘 뿐이었다. 물론, 그것도 시간이 흐르면 차차 믿게 될 터. 지역 부락에 대한 포교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부족의 특성이 도운 것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토속적인 부족 중에는 자신들만의 신앙을 맹신하는 자들도 더러 있으니까. 신앙에 대한 중요도가 그리 높지 않은 앙크투 부족이었기 때문에 전도가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진 것이다.
***
1. 샤타콤(엘본의 본단) : 하급 제단(45일 후 공사 시작)
- 엘본(60%), 아라콤(30%), 서 준경(10%)
- 지역 인구 950 / 신앙지수 0
- 월간 신앙점수 : 0
2. 앙크투 : 하급 제단(0일후 공사 시작)
- 서 준경(80%), 민간 신앙(20%)
- 지역 인구 700 / 신앙지수 0
- 월간 신앙점수 : 0
- 교구장 : ( )
***
그렇게 신앙 비율이 역전되었을 때, 창에 변화가 생겼다.
바로 교구장. 제단을 세우는 지역은 교구가 되며 신앙의 점유도가 60% 이상이 되었을 때, 교구장을 선출 할 수 있다. 일종의 지역 선교사.
쿤은 잠시 고민하다 족장에게 이것을 넘겼다.
그는 주저하기는 했으나, 제단을 지키고 검은 바위의 봉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권위 있는 자가 맡아야 한다는 말에 설득되었다. 족장이 앞서서 포교를 한다면 신앙의 전파는 더욱 쉬울 터. 남은 20%역시 넘어오는 건 시간 문제였다.
[오이칸이 교구장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지역 선교의 속도가 10% 상승합니다.]
‘오이칸. 이게 족장의 이름이구나.’
이름까지 새겨놓고 나자, 제단 정보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남은 건 건설에 들어가 신앙지수가 쌓이고 신앙점수가 누적되는 것. 오이칸이 내 준 제단의 터가 부족의 중앙 부분이니 자리도 나쁘지 않았다. 완성만 된다면 점수가 쌓이는 것은 그리 어려울 거 같지 않았다.
“아……이게 다 뭐래요?”
“라라. 몸은 좀 괜찮은 거냐?”
그렇게 일을 진척하고 있을 때, 수척한 얼굴로 라라가 다가왔다.
열은 가라앉은 듯 보였지만, 아직 몸 상태가 멀쩡하지는 않은 듯싶었다. 비틀거리는 몸을 쿤이 부축했다.
“설명하자면 길어. 간단히 말해서, 엘본의 무리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제단을 세웠다.”
“아. 제단. 그럼, 공물에 대한 것도 설명을 다 했나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면 꽤 헷갈려 할 텐데……”
“일단 족장에게 해 두었다. 그를 교구장으로 선출해 두었으니 제단이 완성되면 알아서 잘 설명하겠지.”
“아이 참.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지역 사람들이 바칠 만 한 물건이 뭐가 있겠어요. 잡은 짐승의 가죽이나 양 젖 따위나 올리겠죠. 이왕 제단까지 마련했는데, 공물이 좋을 게 올라가야 오빠한테도 도움이 되잖아요.”
라라가 쿤의 가슴을 탁탁 치며 핀잔을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종종 거리며 돌아다니는 루루를 불러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뭐 하나 싶어서 유심히 보니 부족 인근에서 나는 약초에 대해서 묻고 있었다. 공물로 바칠 만큼 가치가 있는 약초를 찾아서 부족 사람들에게 일러주려는 것이다.
‘아직 몸도 안 좋은데……’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열의를 가지고 움직이는 터라 말리기 힘들었다.
어차피 세이혼이 준비를 마칠 때 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추격대가 있다 한들 바로 쫓아올 확률은 매우 낮았다.
정비를 하면서 시간을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이었다.
다만……
“제단. 신비.”
동동 거리며 돌아다니는 이 미친 마법사가 문제.
어떻게 해야 떨어뜨려 놓을 수 있을까.
쿤의 이마위로 주름이 깊어졌다.
#
“아도란.”
흩어지는 목소리에 아도란이 고개를 돌렸다.
쿤이 말없이 잠시 동안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후드 아래에 가려진 어둠.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사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묘한 목소리와 안 맞는 멀끔한 얼굴? 아니면 모든 걸 조롱하는 태도대로의 괴팍한 노인의 모습?
가늠하기 어려웠다.
“당신은 어째서 검은 바위를 지키고 있었던 거죠?”
생각을 곱씹어 본 결과 떠오른 질문이다.
어째서 아도란은 검은 바위를 지키고 있었을까? 족장의 말에 의하면 그는 바위가 나타나고 얼마 안지나 부족을 찾아왔다고 한다. 누가 부른 것도 아니고 자기가 자기 발로 와서 검은 바위에 눌러앉은 것이다.
서 준경과 같은 신성의 부름이 그에게도 있는 걸까?
쿤이 일렁이는 후드 아래의 어둠을 쏘아봤다.
“봤어. 결과. 세상의 끝.”
“예언 같은 건가요?”
“음. 달라. 가지 중 하나. 뿌려진 어둠은 씨앗.”
“뿌려진 어둠? 검은 바위를 의미하는 겁니까? 이단……어떤 존재가 그것을 뿌렸고?”
조금 올라간 목소리로 물었으나 아도란은 답이 없었다.
대신 빙글빙글 돌더니 쿤의 앞에 척 하고 서서는 숨을 후 불었다. 이게 뭔 짓인가 싶어 그가 한 발 물러나자 깔깔 거리며 웃었다. 남자 같기도 하고 여자 같기도 한 음성이었다.
“어둠은 어둠. 씨앗은 씨앗. 그리자는 그리자. 그리고 너는 누구?”
“끄응. 뭘 알고 싶은 겁니까?”
“여기 있지만 여기 없어. 시간. 안 맞아. 뒤틀린 세계. 그 사이로 넘어드는 힘. 어떻게 가능해? 궁금해. 알려줘.”
“서 준경 신에 대해서 물어보는 건가요? 마법사는 신앙이 없다고 아는데?”
“신? 아니. 그건 신이 아니야. 되다 만. 아니, 되기 전? 이상한 느낌.”
아도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마법사라고 해도 신앙을 거부하면 참지 않습니다.”
“응? 응. 미안. 신 해.”
“……참 힘 빠지게 하는 재주가 있군요.”
살짝 울컥했던 쿤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도란은 상대하기 너무 힘든 유형이었다. 말도 잘 안통하고, 행동 패턴도 읽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힘으로 어쩌기에는 마법사라는 것이 걸리고.
툭 떼고 도망갈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었다.
“휴. 어쨌든 본론을 말 하죠. 저와 제 일행은 따로 할 일이 있어요. 아도란과 함께 다닐 수는 없습니다.”
“왜?”
“끄응. 말 했잖아요. 따로 할 일이 있다고. 그러니까 당신과는 같이 갈 수 없어요.”
“난 갈 거야. 따라서. 그리자 안의 어둠. 네 힘이 막았어. 신비해. 신비한 건 좋아. 좋은 건 따라가. 그래서 난……”
“아아. 그만. 거기까지 하시죠. 당신의 흥미에 어울려 줄 마음은 없어요.”
쿤이 강경하게 나섰다.
아도란이 강한 마법사라 할지라도 종잡기 어려운 인물과는 함께 다녀서는 안 된다. 다루지 못하는 힘은 자신을 좀먹는 독 일 뿐. 주변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그와 함께 다닌다는 건 짚을 쥐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나, 실망.”
“그런 모습해도 소용없습니다.”
“이래도?”
아도란의 모습이 흰 빛에 휩싸이더니 알몸의 미인으로 바뀌었다.
출렁거리는 가슴이 쿤의 눈에 잡혔다. 폭발적인 몸매. 기습적인 공격에 쿤이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뭐하는 겁니까? 그런다고 들어 줄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도? 응?”
이번에는 작은 소녀의 모습을 했다.
귀엽게 반짝이는 눈매는 당장이라도 껴안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쿤은 눈을 부릅뜨는 것으로 대꾸했다.
“치사해.”
“하아. 본래 마법사들은 이런 겁니까?”
“글쎄. 나는 몰라. 다른 마법사. 본 적 없어.”
“기가 막힐 노릇이군요. 어쨌든 제 의도는 모두 전했으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당신과의 인연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진짜? 난 가고 싶어. 따라서. 신기해.”
아도란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쿤의 앞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안 됩……”
“약속. 네 말. 따를게. 나도 같이 가.”
“아니, 왜 그렇게 집착을 하는 겁니까? 마법사쯤 되시는 분이면 다른 할 일도 많을 텐데.”
“없어. 지루해. 너. 그리고 너. 제일 신기해.”
쿤의 옆으로 쪼르륵 와서는 소매를 잡고 콕콕 당겼다.
마치 아이가 조르는 것처럼. 이 정도까지 하니, 아무리 쿤이라 해도 고민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이상 세게 나가도 괜찮을까? 사실, 마법사가 작정하고 붙으면 쿤으로서는 떼어 낼 방도가 없다.
‘차라리 이 정도에서 타협을 할까? 잘 다루면 도움이 될 거 같기는 한데……’
“이거 줄게. 마법사 심장. 없으면 죽어.”
그때, 아도란이 로브 안쪽에서 붉은 색 보석 하나를 꺼내서 건넸다.
쿤이 얼떨결에 받았다. 반짝이는 보석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맥동치고 있었다. 심장을 결정화 시킨 것처럼.
‘마법사의 심장……’
쿤도 들어 본 적이 있는 얘기다.
마법사는 자신의 생명을 한 곳에 모아 고정시킨다. 이는 능력의 원천이자 생명의 상징. 이것을 갈고 닦는 것으로 힘이 상승하고, 더럽혀지고 부서지는 것으로 늙고 쇄락해진다. 이를 내어준다는 것은 신용 그 이상의 문제였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마법사. 지루하면 죽어. 신비. 삶의 의미. 나, 따라가. 돼?”
불을 보고 따라가는 불나방인가.
오직 신비 하나만을 쫓는 마법사의 특성이 본래 이러한가. 쿤은 한참 동안이나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 그거. 나도 같은 거 할래.”
“……네?”
“여기 문양. 같은 걸로.”
손을 쭉 내민 채 손등을 탁탁 쳤다.
동그랗게 손가락을 빙빙 돌리는 모양새에 쿤이 뭘 의미하는지 이해했다.
“신관의 상징이 보인다는 말인가요?”
“응. 응. 나도 같은 거.”
“잠시 만요. 아직 당신을 데리고 간다는 말도……”
“그럼 이거 줄게.”
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 하려는 순간, 아도란이 로브 안쪽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와르르르르……
주먹 만 한 보석들이 쏟아져 내렸다.
※작가의 말
부자 아도란.
본격 전도 소설.
더위 먹었는지 컴퓨터가 느려지고 있네요 쿨럭;
어쨌든 미친 마법사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
상점 편으로 이어집니다.
* 아도란 말투는 원래 이렇습니다.